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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 (23)화 (23/242)
  • 혼술사 도로테아 23화

    “주인어른, 조금 더 드셔요.”

    제인이 자신의 몫으로 넘겨진 그릇을 벤에게 떠밀었다.

    며칠 사이 수척해진 벤이 말간 국물 위로 고기 몇 덩이가 떠다니는 그릇을 내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네가 먹거라.”

    “그렇지만…….”

    “많이 먹어야지.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그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옆에서 게걸스레 음식을 먹어 치우던 우드가 한숨을 삼켰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로테아가 걱정되지 않았다.

    ‘그 애라면 이미 가문에 입성해서 사람들을 다 휘어잡고 떵떵거리고 있을 것 같은데.’

    평소에 에이든을 대하던 태도만 봐도 그랬다.

    얼굴을 뒤덮은 수염에 커다란 덩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검을 쓰는 이들답게 특유의 거친 몸놀림을 구사하는 남자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꺼리고 무서워할 법했다.

    ‘그런 삼촌을 만난 첫날부터 뺨을 갈긴 아이가 어디서든 기죽어 지낼 리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납치까지 감행하여 데려간 것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애가 어디 납치해서 데려갈 만한 인물인가.

    조그마한 게 영악하기는 얼마나 영악하고 심보는 얼마나 고약한지.

    그녀를 데려간 에이든이야말로 지금쯤 잔뜩 고생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막 아이를 잃고 상심한 아버지의 앞에서 그런 소리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기에 그는 그저 식탁에 고개를 박고 먹는 일에 집중했다.

    “두 사람 다 남길 거면 나한테 주십쇼.”

    다 먹고 남은 음식마저 처리하겠다는 우드의 말에 제인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그도 나름 할 말은 있었다.

    어린 제인을 업고 안고, 짐까지 짊어진 채 먼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우드 본인이 아닌가.

    “그 애라면 괜찮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괴물 같은 외숙부가 있지 않습니까.”

    에이든 하이클레어, 전장의 맹수.

    왜 처음부터 떠올리지 못했을까.

    뛰어난 창술과 타고난 괴력으로 이미 10대 시절부터 명성이 드높던 인물이었다.

    한때 군에 몸담고 있었던 우드가 그의 명성을 모를 리 없었다.

    “안 그래도 애를 애지중지하던데, 조카한테 무슨 일이 생기도록 둘 사람도 아니고요. 오히려 지금쯤 조카를 위해 호화로운…….”

    우드의 말에 벤의 눈동자가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았다.

    다시 딸을 데려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조금 골치 아프기는 해도, 안전만큼은 마음 놓아도 되지 않을까.

    벤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려는 찰나 뒤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저 인간 또 저러네.”

    “며칠째 웬 민폐야.”

    여관에 자리하고 있던 몇몇 단골들이 혀를 차며 인상을 찡그렸다.

    육중한 몸으로 계단을 구르듯 내려온 남자에게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얼굴의 절반을 수염으로 가린 남자가 꺼이꺼이 울었다.

    “우리 가여운 테아는 어찌하누. 그 아이를 잃어버려서, 어찌하누!”

    “…….”

    익숙한 이름에 뒤를 돌아본 벤이 하얗게 질렸다.

    에이든 하이클레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수행원들이 달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힘에 부쳐 보였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박혔다.

    “도대체 어쩌다가 조카를 잃었대요?”

    “듣기로는 며칠 전 여기서 패싸움인가 하는 것이 일어났는데, 저이가 시비를 걸어온 상대들과 싸우던 와중에 누가 아이를 데려갔나 봐요.”

    “아이고, 참. 범인을 모르면 찾기도 어려울 텐데.”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제인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에이든 하이클레어가, 도로테아를 잃어버린 것이다.

    멍하니 앉아 있던 벤이 벌떡 일어나 휘청거리면서 비틀비틀 위태롭게 에이든에게 걸어갔다.

    호리호리하고 비쩍 마른 몸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 커다란 거인의 멱살을 움켜쥐고서 울부짖었다.

    “내 딸을 어찌한 거요! 지금 테아가 대체 어디 있다는 겁니까!”

    “모르오. 나는 모르오.”

    엉엉 우는 에이든을 보며 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우드는 진짜로 일이 심각해졌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에이든의 곁에 도로테아가 있었다면 위험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여유로웠던 것이다. 지금 도로테아가 그의 품에 없다면, 도대체 그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기억해. 당신은 내게 빚을 졌어. 그것도 생을 넘어 갚아야 할 깊고 무거운 빚을. 그러니 내 다리로 쓰인다 해도 불평해선 안 돼.”

    조그만 여자아이가 앙상한 손으로 그의 옷을 잡아당기며 그렇게 말했을 때, 우드 데버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깊고 어두운 기운들이 소용돌이치는 눈동자와 마주할 때면 무릎을 꿇고 그녀를 올려다봐야 할 것 같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 불안과 두려움이 처음으로 그를 잠식했다.

    *   *   *

    벤과 제인을 진정시킨 우드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용병 의뢰소였다.

    따분한 얼굴로 카운터를 보고 있던 접수원이 턱을 괸 채 사무적으로 물었다.

    “의뢰 내용과 의뢰자에 대해 말씀하십시오.”

    “의뢰자는 벤 에버리. 의뢰 내용은 납치당한 딸의 행방을 찾는 것이오.”

    우드가 실종된 도로테아의 초상화를 내밀자, 접수원이 찜찜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알겠지만 어린아이가 납치를 당해 행방이 묘연하다면 찾기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아이를 찾는 작업 자체도 까다롭고요. 기본적으로 드는 선수금도 비쌉니다.”

    “…….”

    “그리고…… 별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딴에는 선심 쓰듯 건넨 충고에 우드는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접수원의 말처럼 의뢰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벌린 것뿐이다.

    마침 물주도 생겼으니, 돈을 쓰는 데에야 지장이 없었다.

    수행원 중 일부가 가문으로 갔다고 하니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선수금은 여기 있소. 아이의 행방에 관한 단서라도 생긴다면 더 많은 값을 쳐줄 거요.”

    급한 대로 에이든의 옷에 붙어 있던 금박과 보석들을 모조리 떼 왔더니 주머니가 제법 불룩했다.

    물건을 확인한 접수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삼켰다.

    “이건 상등품 보석인데. 이걸 이렇게나 많이……?”

    “애만 찾으시오. 그러면 아마 더한 것도 받을 거요.”

    씁쓸한 어조로 말하던 우드가 무심코 게시판을 훑다 멈칫했다.

    실종자들을 찾는 명단 가운데 아주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벤 에버리

    지금 그의 일행이자 도로테아의 아버지인 벤의 이름이 가장 상단에 걸려 있었다.

    게다가 수배금이 몹시 높은 듯 얼기설기 그린 초상화 옆에 붙어 있는 별이 다섯 개였다.

    “이자는 누가 찾고 있는 거요?”

    우드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벤을 가리키자 접수원이 심드렁하니 어깨를 으쓱했다.

    “하이클레어 가문에서 높은 포상금을 건 인물입니다. 덕분에 용병들도 저 초상화 한 점에 의지해서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는 모양인데, 아직까지 행방을 아는 이가 없다고 하더군요.”

    “……,”

    조악한 초상화의 수준으로 보건대 이걸 지니고 다닌들 용병들이 벤을 알아볼 수 있을 리 없었다.

    헛기침을 한 우드가 다시금 물었다.

    “왜 찾는 거랍니까?”

    “거 아직도 모르십니까. 예전에 하이클레어 후작가에서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이 상인과 눈이 맞아 도망간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연이 끊어졌었는데 이번에 친손녀를 후작이 찾아낸 모양이더군요.”

    “……!”

    “제아무리 깐깐한 후작도 먼저 간 딸이 눈에 밟혔나 봅니다. 가문의 치부나 다름없을 손녀를 정식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사위도 함께 데려오겠다고 사람을 풀어 찾고 있는 겁니다.”

    우드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벤 에버리의 이름과 그 옆에 쓰인 포상금을 훑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납치당하던 도중에 다시 납치를 당한 도로테아가 후작가에 알아서 도착했단 말인가.

    심지어 옹고집이던 후작을 꺾고 정식으로 손녀임을 인정까지 받았다고?

    게다가 벤 에버리를 사위로 인정하고 저택에 들이겠다는 발언까지 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녀가 무사하다는 안도감보다도 먼저 도로테아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궁금해졌다.

    보나 마나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했겠지.

    ‘무사한 건 다행이지. 다행인데…….’

    복잡한 얼굴로 물끄러미 초상화를 바라보던 우드가 이내 고개를 돌려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래서, 포상금은 얼마나 되는 거요?”

    제인이 들으면 뛸 듯이 기뻐할 소식이었다.

    *   *   *

    우드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를 털고 일어난 벤과 함께 의뢰소를 찾았다.

    ‘이자가 바로 벤 에버리’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던 직원은 곧 재빠르게 본부에 연락하여 확인 절차를 거쳤다.

    후작가에서 사람을 보내겠다 연통이 왔지만 벤은 마다했다.

    초조하게 자신을 데리러 올 사람들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가서 제 눈으로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덕분에 벤에게 걸려 있던 포상금을 받게 된 우드는 그 돈의 일부로 고급 마차를 빌렸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벤과 달리, 에이든은 몹시 신이 나 있었다.

    “우리 테아는 똑똑하기도 하지!”

    “저희 아가씨가 대단하긴 하죠.”

    “혼자 집도 잘 찾아가고 말이야!”

    밤낮으로 술을 퍼마시던 폐인일 때도 봐 주기 힘든 몰골이었지만, 기운을 찾고 나니 그것도 그것대로 성가셨다.

    심드렁하니 밖을 내다보던 우드의 눈에 저 멀리 길게 늘어선 마차 행렬이 보였다.

    그에 따라 쌩쌩 잘 달리던 마차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더니 종내에는 기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근처가 몹시 혼잡해서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마부가 조심스럽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벤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줄줄이 늘어서 있는 마차들이 저 앞의 대저택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들 이렇게 모여든 겁니까?”

    “그것이, 이번에 하이클레어 후작가에서 새로이 얻은 손녀를 공표한다더군요.”

    마부가 꺼낸 말에 마차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걸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들고 방방곡곡의 친인척들과 친분 있는 가문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그런 거지요.”

    “…….”

    그러고 보니 마차마다 커다란 짐칸을 매달고 있거나 궤짝을 싣고 있었다.

    빈손인 채 후작가로 향하는 마차는 이들뿐인 것처럼 보였다.

    “그, 우리도 무언가를 사 들고 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제야 처음으로 아내의 친정에 방문한단 것을 자각한 벤이 안절부절못하고 말을 꺼냈다.

    잔뜩 긴장한 그를 본 에이든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매형이 가진 돈은 모두 우리 가문에서 내린 포상금 아닙니까. 그걸로 선물을 사 들고 간들 뭐 대단한 거라고.”

    “…….”

    단순한 인간이라는 건 알았지만.

    도로테아가 무사히 후작가의 저택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정신을 차린 에이든은, 그 뒤로 벤을 자신의 매형으로 인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몹시도 친근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다.

    ‘납치범 주제에 뻔뻔하기도 하지.’

    애초에 그가 애를 데리고 도망가다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는 줄을 설 필요 없지 않아요?”

    가만히 앉아 있던 제인이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물었다.

    의아한 시선들이 소녀를 향해 모였다.

    “다른 사람들은 손님이지만 우리는 가족이라면서요. 이분 그 후작가의 3공자 아니에요?”

    “……!”

    동그랗게 눈을 뜬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여긴 우리 집이었지. 하도 밖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잊고 있었다.”

    그가 허둥지둥 마차의 문을 열고 정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경비병을 향해 달려갔다.

    “이봐, 여기 내가 왔다!”

    *   *   *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후작님은 일이 있어 잠시 출타 중이십니다. 아가씨를 모셔 오지요.”

    일행들은 안내받은 응접실에서 초조하게 도로테아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호화스런 드레스를 입고 그 사이를 걸어 들어오는 깡마른 소녀가 보였다.

    여전히 병마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을 받은 듯 확 달라진 분위기의 도로테아가 느릿한 걸음으로 일행들을 향해 다가왔다.

    한 걸음씩.

    잃었던 아이가 다가올 때마다 벤은 차마 마중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할 지경이었다.

    도로테아는 자신을 바라보며 두 눈이 촉촉해지고 있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며칠 내내 노숙을 불사하며 이곳까지 강행군을 달린 일행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납치된 이후 처음으로 재회한 도로테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아빠?”

    “그래, 테아야. 내가 왔단다.”

    며칠 새에 말쑥한 옷을 입고 머리를 예쁘게 손질한 아이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도로테아는 곧장 손을 내밀어 벤에게 폭 안겨들었다.

    아이를 안아 든 벤의 어깨가 감격과 안도로 들썩였다.

    “아빠, 울지 마.”

    소녀가 어른스럽게 자신의 아빠를 달래는 사이, 후작가의 기사들이 흉흉한 얼굴로 남은 일행들을 향해 접근했다.

    우드가 본능적인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채 주변을 경계했다.

    “제인, 내 뒤로 서라.”

    도로테아를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막내딸을 끔찍이 아꼈던 후작이 진심으로 벤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게다가 자신들은 벤의 옆에 딸린 혹이나 다름없었다.

    세간의 평판을 생각했을 때도 도로테아의 옆에 자신들이 없는 것이 더 나을 테지.

    잔뜩 긴장한 우드가 검에 손을 가져간 그때였다.

    우르르 몰려든 기사들이 에이든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어, 엉?”

    조카를 안아 보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에이든이 얼빠진 얼굴로 자신에게 들이밀어진 검을 바라보았다.

    “후작님께서 도련님을 데려가 지하 감옥에 가두라 명하셨습니다.”

    “저, 저기. 아직 나는 우리 테아를 안아 보지 못 했…….”

    “후작님의 명입니다.”

    “안 돼. 이럴 순 없다! 얼마 만에 보는 조카를 안아 보지도 못 하고 이럴 순 없어!! 도로테아, 테아야!”

    기사들에게 단단히 구속된 채 연행되는 에이든이 연신 애절한 목소리로 도로테아를 부르짖었다.

    벤의 품에 안겨 있던 도로테아가 반짝 고개를 들고 끌려가는 에이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가.”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촌극에 혼란스러운 우드가 눈을 굴리자 시종장이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씻을 물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시지요.”

    뭔지 모르겠지만 하이클레어 후작가도 그리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멍하니 서 있던 우드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몹시 파란만장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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