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사 도로테아 5화
남자의 눈에 들어찬 살기에 제인의 몸이 덜덜 떨렸다.
달빛에 요요히 빛나는 검을 보자 어린 하녀는 한층 더 겁에 질렸다.
‘도대체 아가씨는 무슨 생각으로 이자를 만나러 오신 걸까?’
그러나 벌벌 떨면서도 제인은 필사적으로 도로테아를 제 몸뚱이로 가리려 애썼다.
“제인.”
“네, 네.”
“잠깐 귀를 막고 있어.”
망설이던 제인이 슬그머니 두 손을 귀에 가져다 댔다.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제인을 중간에 두고 도로테아는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신은 어떻게 하셨어요?”
“……!”
“칼로 사람을 해한 것과는 별개로, 시신을 함부로 대하면 벌을 받아요.”
저승으로 가야 할 길을 잃은 넋들은 고스란히 검에 달라붙는다.
남자의 검이 무겁고 음울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였다.
굳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도로테아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강물에 씻는다고 검에 묻은 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 검은 조금씩 요물이 되어 가는 중이에요.”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사기가 도로테아의 눈앞에 넘실거렸다.
남자의 정신이 강건하지 않았더라면 진즉 이지를 잃고 이리저리 휘둘렸을 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복수가 뿌린 핏물이 그를 망가뜨리려 했지만, 복수를 향한 집념이 지금까지 그를 무사하게 만들어 준 셈이다.
“개소리.”
남자가 침을 퉤, 하고 뱉었다.
한 손으로도 으스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가녀린 목 위, 도로테아의 조그마한 입에서는 연신 터무니없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소녀의 고요한 눈이 몹시 거슬렸다.
“이쯤에서 멈춰요.”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비극을 만들어 낸 ‘모두’를 처벌하기 전까지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더 이상 곁에 있는 혼을 더럽히면 승천할 수 없게 되니까. 당신의 가여운 누이는 그 검으로 만든 살업(殺業)을 대신 짊어지고 있어요.”
영문 모를 말에 남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매서운 살기에 귀를 막고 있던 제인이 잠시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귀에서 손을 뗐다.
도로테아가 명했다.
“막고 있어.”
“하지만…….”
“제인!”
단호한 외침에 제인은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다시 틀어막았다.
도로테아는 고집불통인 남자를 바라보다 그의 어깨 위로 보이는 흐릿한 인영의 내력을 읊기 시작했다.
“마샤 부인은 전장에 나간 당신을 대신해 하나뿐인 여동생의 혼사를 중매했죠.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집이 가난하고 신분도 보잘것없었어요.”
“…….”
“부인은 당신의 늙은 어머니를 설득해 이곳에서 제법 먼 마을의 어느 부유한 상인에게로 여동생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죠. 인덕 있는 시모에 능력 출중한 신랑, 그리고 아카데미를 다닌다는 어린 도련님까지 다들 점잖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로 마음을 움직였어요.”
혼수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뛰어난 외모는 오히려 재앙인 법이다.
마샤 부인은 하나뿐인 딸을 후처로 들이겠다는 졸부와,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행정 관리 탓에 늙은 어미의 마음이 조급한 것을 이용했다.
돈과 권력에 딸을 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혼처를 정한 것이 되레 문제였다.
마샤 부인은 이웃에 살며 그동안 자라는 것을 지켜봐 온 ‘딸 같은’ 처녀를 먼 마을 망나니의 첩으로 넘겼다. 속았음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은 후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주어진 상황에 순응한 그녀의 삶은 괴로웠을 것이다.
도박을 일삼고, 여인을 희롱하며 심심찮은 폭력까지 휘두르는 새신랑과, 그를 모른 척 용인하는 시부모의 아래에서 얼마나 시달렸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의 꽃 같았던 얼굴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망가졌다.
반반한 외모가 망가지자, 새신랑은 이내 아내에게 싫증이 났다.
“내 누이는…….”
침묵하던 남자의 입술이 무겁게 떼어졌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듯 먹먹한 목소리였다.
“내 동생은 목을 매지 않았다.”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멀리 홀로 있는 어머니를 두고 홀로 죽고자 했을 리 없었다.
자신보다도 훨씬 억척스럽고 재주도 많은, 반짝반짝 빛나던 동생이었다.
“그 애가 목을 매었을 리 없어.”
형체도 알 수 없는 시신을 가져다준 시댁에서는 성의 없는 변명을 건넸다.
얼굴이 망가져 삶의 의욕을 잃어 스스로 목을 맸노라고.
믿을 수 없는 소식에 군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던 것은, 굶어 죽은 노모와 땅에 묻히지도 못한 여동생의 관이었다.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는 시체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꽃같이 예쁘고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았던 동생은 시체가 되어서야 그 지옥을 벗어났다.
“그녀는 우물에 빠져 익사했어요. 가난한 집에서 팔려 온 첩의 죽음 따위야, 돈 몇 푼이면 쉽게 덮을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리죠.”
참 희한한 일이다.
‘명재신’이었을 적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다른 몸으로 존재하고 있건만.
생소하고 낯선 언어와 복식을 한 이곳의 사람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골목 곳곳에 누군가의 한이 서려 있고, 눈에 들어찬 탐욕에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투며 이웃을 기만한다.
“몰랐을 거예요. 자신이 얼마나 업을 쌓았는지.”
그저 중간에서 동전 몇 푼을 받고 보탠 마샤 부인의 말 몇 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끔찍한 지옥으로 몰아넣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을 테지.
그러니 검이 다가온 순간에도, 또 그 검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마샤 부인은 자신이 죽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으리라.
그걸 보면서도 외면하거나 방치한 마샤 부인 일가도.
“……그 이야기들 모두,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냐.”
동생이 우물에 빠졌다는 사실은 그조차도 힘겹게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런 사실을, 눈앞의 소녀는 직접 보기라도 한 듯 상황을 생생히 그려냈다.
“당신의 동생이 알려 줬어요.”
도로테아가 그의 어깨에 매달린 것을 보며 웃었다.
형체만 간신히 남았지만 한때 맑고 영롱한 혼이었으리라.
수많은 불행에도 마음이 꺾이지 않았던 순수한 영혼이었다.
진즉 건너갔어야 할 넋이 이승을 맴도는 것은 결국 소멸을 각오하고라도 꼭 전할 말이 있었기에.
어리석게도 죽은 자를 기리고자 살업을 행하는 가엾은 오라버니를 구원하기 위해.
“그거 알아요? 당신의 여동생이, 검이 가진 살(殺)을 먹어 주고 있었다는 거.”
진즉에 미쳐 버렸어야 할 남자의 혼이 덜 무너져 내린 것도 그 덕이었다.
남자는 이미 마샤 부인 일가를 죽였다.
다음은 돈을 받고 동생의 죽음을 묻어 버린 조사관에게 갈 참이었겠지. 돈 몇 푼에 펜으로 남의 죽음을 더럽힌 이들의 죄를 물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더해 동생의 남편, 시부모…… 마샤 부인의 자식들까지도.
“여기서 더 나가면 당신은 혈귀가 되고, 당신의 동생 또한 원귀가 되어 평생을 형체도 없이 떠돌게 되겠죠.”
여동생의 넋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남의 업을 먹어 준다는 것은 망자의 강을 건너는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제아무리 튼튼한 배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있거늘, 그녀가 떠안은 업이 너무 무겁고 컸다.
도로테아는 퀭하고 야윈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여유로워 보였다.
기묘한 소녀를 바라보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낮췄다.
시선을 마주한 순간 살기 짙은 붉은 눈은 소녀에게 완벽히 압도되었다.
홀린 듯 멍하니 눈을 맞추고 있던 남자의 살기가 한층 사그라졌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영문 모를 말의 절반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아이를 무시하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았다.
“당신의 동생이 나를 찾아온 거예요. 내가 그녀를 찾아낸 게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 준 기회가 기뻤다.
마샤 부인에게 붙어 온 작은 홀씨는 퍽 간절하게 부탁했다.
하나뿐인 오빠가 걱정되어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을 가여운 혼.
“돌아가서 당신의 검으로 생명을 앗아 간 시신들을 모두 태워요.”
“…….”
“그들이 사는 저택까지 모두 다.”
강을 건너 남은 사람을 죽일 것인가, 이대로 처형을 마무리할 것인가.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도로테아는 그저 누군가의 뜻을 전했을 뿐이다.
곁을 맴도는 산들바람이 남자의 이마에 맺힌 강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식혔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도로테아의 입가에 만족스런 웃음이 은은히 퍼졌다.
여동생의 믿음처럼 그는 마지막 선을 넘는 대신 먼 길을 떠나야 할 그녀의 마지막 무게를 덜어 주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도로테아가 제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얼굴이 하얗게 되도록 숨을 참던 소녀는 그제야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뗐다.
“자, 이제 나를 업어요.”
도로테아가 남자를 향해 팔을 뻗었다.
“…….”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남자는 그녀의 명에 머뭇거리다 이내 등을 내밀어 업었다.
튼튼한 다리가 푹푹 빠지는 젖은 땅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있는 도로테아와는 달리 제인은 힘겹게 곁을 쫓고 있었다.
소녀가 헉헉대며 앞서가는 남자의 다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필요한 게 일꾼이라고 말씀하시면 좋았잖아요.”
자꾸 다리가 필요하다, 새 다리가 올 거다 그러시니 제가 헷갈린 거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제인은 다행스러웠다.
다리를 잘라 붙이는 것보다야, 튼튼한 다리를 가진 일꾼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훨씬 나은 까닭이다.
* * *
남자의 걸음은 지나치게 빨랐다.
헉헉대며 뒤를 쫓던 제인이 외쳤다.
“아가씨, 어딜 가시는 거예요!”
도로테아는 눈을 감은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 덕분에 온몸에 스치는 바람이 시원한 것이 만족스러웠다.
제 발로 힘껏 뛰어 본 것은 죽음 직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몸에서 피비린내가 난다는 것이 단점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남자가 흘끗 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이제 그만 돌려보내지.”
앞으로 보게 될 참혹한 광경을 굳이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감고 있던 눈을 뜬 도로테아가 제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집에서 잿물과 소금, 그리고 얇은 종이 몇 장을 가져오렴.”
“지금요?”
“응, 그것들을 갖고 마샤 부인의 저택으로 오면 돼.”
뜬금없는 말에 제인이 주저하며 남자를 흘끔거렸다.
낯선 이와 아가씨를 단둘이 두고 싶지 않은 마음과, 명을 따라야 한다는 마음이 부딪혔다.
“얼른.”
단호한 도로테아의 목소리가 제인의 결정을 도와주었다.
주춤하던 하녀가 달려가는 것을 보던 남자가 물었다.
“잿물과 소금이라니. 종이는 또 어디 쓰려고?”
“피는 피를 낳는 법이니까요. 땅에 스며든 피를 오래 두면 그 원한이 또 다른 귀를 부르고, 삼도천을 건너지 못하는 원혼들이 모여들면 자연히 마을 전체에 영향을 미칠 거예요.”
“삼도천?”
“그건 몰라도 돼요.”
도로테아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입을 다문 남자의 얼굴에 심란함이 스쳤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입에 담는 소녀인데도, 그 말을 가볍게 치부할 수가 없었다.
등에 업힌 이 가벼운 존재의 눈은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의 것처럼 깊고 넓었다.
“여동생의 혼이 평화로워질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줘야 하잖아요.”
죽은 아이를 달랜다는 말에 혼란스러운 남자가 머리를 흔들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소녀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매번 흔들리는 자신이었다.
결국 죄를 저지른 장소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미친 짓이나 다름없지 않나.
‘장군이 보았다면 분명 비웃었을 것이다.’
옛 전우를 떠올린 그가 이내 잡념을 털어 내고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