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외전 1. 참한 남편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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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외전 1. 참한 남편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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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외전 1. 참한 남편의 완성
2023.01.15.
말이 부부궁이지, 사실상 모든 의식주를 거기서 해결하게 되었던 것처럼 부부성도 ‘말이 부부성’이 되었다.
이제는 양쪽 나라 사람들도 ‘곧 수도는 무아렌이 되겠군.’ 하고 생각할 정도로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시간을 부부성에서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아렌의 부부성이 완공되기도 전에 리시스의 임신 사실이 밝혀졌다.
그것도 슬슬 배가 나올 즘이 다 되어서야.
“대체! 어떻게! 그걸 모르실 수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느낌도 없으셨습니까?”
“모를 수도 있지…….”
에드린의 어의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려 했고, 쉬란의 황의가 그걸 부축했다.
처음에는 서로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멱살 잡고 싸우던 두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합심하기 시작했다.
리시스는 손톱 옆 거스러미만 생겨도 호들갑을 떨며 의사를 부르는 여느 왕족과는 달랐다. 웬만큼 아파도 그냥 아픈가보다,
하고 참고 넘어가고, 그러다 아팠던 것도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쉬란의 황후였을 때에는 솔직히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입장이었으니 황의도 일부러 찾아가 건강을 챙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에드린의 왕이자 쉬란의 황후가 된 리시스는 그 누구보다 유의하여 건강을 살펴야 하는 사람이었다.
에드린에도 어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쉬란의 황후 폐하는 쉬란의 황의가 살펴야 합니다!’며 그 먼 길을 굳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다.
“모르실 수 없는 겁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떻게 임신 사실을 모르실 수가 있습니까! 생리는요? 입덧은요?”
“바빠서 깜빡했어.”
이번에는 황의가 뒷목을 잡았다. 쓰러지려던 어의가 황급히 황의의 몸을 부여잡았다.
겨우 서로에게 의지해 쓰러지지 않게 버텼지만 리시스의 이어진 말에는 둘이 동시에 쓰러질 뻔했다.
“그럼 이제 그만 바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힘든 일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두 의사의 간절한 애원을 지켜보던 키에르트가 묵묵히 한마디 했다.
“이제부터 모든 일은 제가 일차 보고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키에르트는 이미 한차례 놀란 후라 두 의사들보다는 침착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밤에 후계 얘기를 하다가 리시스가 문득 생각난 듯 ‘그러고 보니까, 생리 안한 지가 좀 됐네요?’라는 말로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그래주시면 저야 편하긴 하지만…….”
부부궁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일부는 사용할 수 있었다.
두 나라 사이에 긴밀하게 주고받으며 협력해야 할 일이 많았다. 두 사람은 사용할 수 있는 곳에 공동 집무실을 차렸다.
붙어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각자의 일을 할 때에도 함께 고민해 주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상대의 일을 대신 맡아 처리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무조건 그렇게 해야지요, 에드린 왕.”
키에르트가 강경하게 주장했다.
황의와 어의가 서로를 부여잡고 목이 빠져라 고개를 끄덕였다.
리시스가 머쓱하게 동의했다.
“……알겠어요.”
“그럼 지금부터 몸에 좋은 약재를 준비하겠습니다!”
“저는 요리사와 식단을 상의하겠습니다!”
의사들이 우당탕탕 물러나고 둘만 남자 키에르트는 리시스에게 성큼 다가와 안아들었다.
“리시스.”
“키에르트.”
둘만 있을 때는 호칭이 바뀌었다.
리시스는 키에르트를 내려다보며 습관적으로 웃으려다 말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키에르트의 표정이 해가 떴는데 비가 오는 것 같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
“너무 좋은데, 그만큼 챙기지 못해 미안해서.”
지금껏 피임을 했던 것도 아닌데 왜 한 번도 임신 생각을 못 했을까.
남편으로서 실격이었다.
“내가 더 잘 챙기고 살폈어야 했어. 이제까지 눈치채지도 못하고 그대의 몸만 고생시키다니.”
아무리 임신이 남녀가 함께하는 일이라지만 몸의 부담은 결국 여자 혼자만의 것이다.
원래도 리시스의 몸은 가녀리다. 저 몸으로 그동안 겪은 일들만 생각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험했다. 그런데 그 일들을 겪는 동안 임신한 채였다니.
“나 진짜 괜찮은데…….”
속이 타들어가는 키에르트와 달리 리시스는 남 일처럼 덤덤했다.
“……정말 괜찮아?”
키에르트는 리시스를 안아 침대로 향하는 내내 표정을 뜯어보았다.
그러나 정말 괜찮은 ‘척’이나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어 얼떨떨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렇지 않은 기색이었다.
“응, 딱히 몸이 불편한 건 없고……. 아, 그래서 배가 좀 자주 출출하고 잠이 좀 많아졌었나?”
“그게 불편한 거지!”
키에르트는 냉큼 리시스를 침대 속에 밀어넣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
손끝 하나라도 움직이면 가만히 두지 않을 기세였다.
“근데 그거 말고 딱히 아프다거나 이상한 건 없어.”
리시스는 헤헤 웃으며 이불 밖으로 손을 빼 키에르트의 손가락을 쥐었다.
키에르트는 칼에 찔린 것처럼 아픈 표정으로 리시스를 내려다보았다.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드러난 이마에 입술을 꾹 누른 키에르트가 옆에 비스듬히 누웠다.
“몸 말고 마음도. 갑작스러워서 놀라지는 않았어?”
“딱히?”
리시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애먹이지 않고 빨리 와줘서 고마운데.”
“그대가 아무렇지 않다니 다행이야.”
키에르트는 리시스의 손등을 끌어와 입을 맞추었다.
부담스러운 의무를 너무 힘겹지 않게 받아주어 고마울 뿐이었다.
“의무를 벗어나서……, 나는 그대가 나와의 아이를 가져주어서 너무 기뻐. 물론 그대의 안위가 가장 걱정되지만, 그대를 닮은 존재가 이 세상에 늘어난다는 건 행복하군.”
“어…….”
“왜?”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리시스는 그제야 임신이 왜 부부에게 축복인지를 깨달았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강제적인 관계를 맺어 생긴 자신. 그리고 공주이기 때문에 지워졌던 의무. 리시스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임신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키에르트의 말로 그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리시스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에르트를 마주보았다. 이런 눈빛을 가진 존재가 이 세상에 하나 더 늘어난다면……?
“나도……, 행복한 것 같아.”
리시스는 그제야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키에르트가 말없이 리시스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
임신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주변 모든 사람들이 수선을 떨었다.
“황후 폐하아아아!”
우선 앨린과 허멀 후작이 맨발 벗고 달려왔다.
앨린은 리시스의 손을 붙잡고 울먹거리다가 허멀 후작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았다.
“회임하신 분 앞에서 정신 사납게 굴지 마십시오.”
“넵.”
앨린은 콧물을 우렁차게 들이마시며 진정했다.
“다시는 쉬란으로 안 돌아오시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요.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정말……. 아니,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수척해지셨어요!”
“그런가……?”
리시스는 자신의 얼굴을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게으름을 피우느라 거울도 안 보고 지내서 자신의 얼굴이 무슨 꼴인지도 몰랐다.
허멀 후작도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임신한 상태에서는 잘 드셔야 하는데……. 식사는 잘 하고 계신 겁니까?”
“응. 엄청.”
리시스는 단호하게 ‘엄청’이라고 표현했다.
“뭘 얼마나 드시길래 ‘엄청’이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잘 드시는 것 같긴 한데…….”
리시스는 잘 먹는 편이었다.
황후궁에 있었을 때에도 새 모이처럼 음식을 쪼아먹는 여느 귀족 여성들이 기함할 정도로 먹음직스럽게 잘 먹었다.
그래도 그걸 ‘엄청’ 먹었다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런 리시스가 얼마나 잘 먹으면 ‘엄청’ 잘 먹는다고 말하는 것일까.
“폐하. 점심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마침 식사 때가 되어 시종이 문을 두드렸다.
“아, 어쩐지 배가 좀 고프더라.”
리시스는 창밖을 내다보며 해가 기운 것을 살폈다.
어느 틈엔가 해가 중천에 올라 있었다.
“아침 많이 먹은 것 같은데 금방 배가 고파지네. 요즘 배고픈 걸로 시간을 알아.”
리시스는 웃으며 살짝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었다.
먹어서 나온 배는 아닐 것이다……. ……아마.
앨린과 허멀 후작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물러나는 시종의 얼굴을 놓치지 않았다.
“모처럼 셋이서 같이 식사하지?”
곧 상이 차려졌다.
이 정도면……, 이라고 생각한 양을 뛰어넘어 일반적인 점심의 두 배, 세 배, 다섯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상에 올라왔다.
보기만 해도 이미 배가 불렀다.
특히 세상의 모든 새를 잡아다 구워 놓은 것 같은 저 새 튀김의 산이 그랬다.
“저 새 튀김은 대체……, 혹시 에드린의 식문화인가요?”
“어? 아니. 어제 자려는데 새 튀김이 먹고 싶더라고. 남편한테 말했더니 아침에 바로 올라오긴 했는데 내가 원하는 새가 아니었어.”
리시스가 막 새 튀김 하나를 집었을 때 키에르트가 들어왔다.
황급히 절을 올리던 앨린과 허멀 후작은 똑똑히 보았다. 사냥 복장을 한 키에르트를.
“일단 보이는 대로 종류별로 잡아봤는데, 그대가 원하는 맛이 이 중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리시스는 다가온 키에르트를 안아 칭찬하듯 등을 토닥이고 새 튀김을 한입 물었다.
“음.”
“어떻습니까.”
리시스는 새 튀김을 우물거리다가 남은 튀김을 내려놓았다.
키에르트가 심각하게 리시스의 평을 기다렸다.
“갑자기 새 말고 생선이 끌려요.”
“당장 잡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키에르트는 벌떡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을 나서기 직전, 키에르트가 돌아보며 다시 물었다.
“생선 종류는?”
“잘 모르겠어요.”
“종류별로.”
용이라도 잡으러 가는 사람처럼 비장했다.
리시스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배웅하고는 남은 새 튀김을 식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성의는 고맙지만, 끌리지 않는 음식은 먹지 말라 했으니…….
오늘은 주방 식구들이 새 튀김 파티를 여는 날이 되겠다.
“저기……, 지금 혹시 폐하께서 직접 잡아 오시고 잡으러 가신 건가요?”
앨린이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물었다.
“응, 왜?”
“남편 역할 잘 하신다 싶어서…….”
키에르트는 아주 참한 남편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생선 올라올 때까지 과일이나 먹고 있을까.”
리시스는 종을 울려 시종을 불렀다.
주문을 받은 시종이 잠시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하인들 여럿이 아예 상을 하나 더 들고 들어왔다.
“……설마?”
앨린이 들어오는 과일의 행렬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