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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금가루 가져와 (111/153)


111. 금가루 가져와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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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 어린 공주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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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어려. 결혼적령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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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물정 모르는 분을 속여서 빼먹는 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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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다니. 뭘 빼먹어. 강제로 뭘 한 건 아무것도 없어.”

키에르트는 한 마디를 져 주지 않았다.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상태에서는 상대가 리시스의 양육자였다는 것도 잊었다.

이미 남자 대 남자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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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모든 건 합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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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한 합의는 무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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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효라고 하기엔……, 무효……, 를 할 수가 있나?”

잠시 머리회전이 느려진 키에르트가 리시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리시스도 키에르트의 말에 급히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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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미 해 버린 건 무효라고 하기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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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해버리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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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번엔 리시스가 키에르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차마 자신이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이렇고 저런 일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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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키에르트가 대신 당당히 대답했다.

렉싱턴이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다가 들고 있던 의자 손잡이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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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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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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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정보통은 두 분이 합궁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고…….”

그 정보가 틀리지는 않았다.

어쩌다보니 초야 때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된 합궁 날짜는 다 넘겨버렸고, 결국 진짜 남녀 간의 일이 벌어진 건 부부궁에서였다.

그건 뜻밖의 사건이어서 준비를 할 새도 없었다.

황궁 안에는 파다하게 소문이 났지만 첩자의 귀에까지는 미처 들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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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꼭 합궁 날이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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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흠. 그래. 장군님도 나보고 밤에만 조심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려면 낮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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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사실이라는 뜻이다.

렉싱턴은 망연자실해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의자에 앉아 있을 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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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어떻게 내 공주님이.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남자들 중에 하필이면 저 원수! 적국의 황제와!

아무리 생각해도 리시스가 세뇌를 당했든 협박을 당해서 그렇게 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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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는 즐거웠어…….”

리시스가 황급히 달려가 렉싱턴의 몸을 끌어안아 위로했다.

그러나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급기야 렉싱턴 장군은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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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떻게 키운 공주님인데! 하필이면 저 원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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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땐 원수였지만 남편으로는 진짜 괜찮았다고……. 남자로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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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오!”

리시스는 위로에 소질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지만 렉싱턴 장군의 뒷목을 조이는 일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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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장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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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봐.”

키에르트가 끼어들었다.

둘의 관계를 알아도 리시스와 부둥켜안고 있는 꼴을 더 이상 봐 주기가 싫었다.

지금도 살려놓고 있는 건 그나마 리시스를 군에서 보호해주었다는 공,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리시스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만 아니었어도 이미 머리를 뽑아 화분에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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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자꾸 껴안지 마.”

키에르트는 리시스를 떼어내 자신의 등 뒤로 감췄다.

그리고 자신이 대신 렉싱턴의 몸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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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면 내 품에서 울어. 리시스 건드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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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본의 아니게 키에르트의 품에 안긴 렉싱턴은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파다닥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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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서네.”

어디서 힘 빠진 척 내 아내 품을 넘봐?

키에르트의 노골적인 경계에 렉싱턴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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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생각하던 원수와의 정략결혼이 아닌데?’

지금까지 내내 얘기를 들으며 느꼈다.

리시스가 얘기하는 키에르트와의 결혼생활은 원수와의 정략결혼이 아니라, 평범하게 연애해서 결혼한 사람 같았다.

심지어 함께한 시간이 몇 배는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은근히 키에르트의 편을 더 들었다.

그래, 가까이서 본 키에르트가 뜻밖에 엄청나게 잘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건 인정한다.

싸우면서 몇 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투구가 있어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다.

잘생겼다는 소문이 전장에 자자해도 별로 믿지 않았다.

실제로 본 키에르트는 흠칫할 정도로 잘생기기는 했다.

리시스가 혹할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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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주님 혼자 빠진 것 같아야지!’

의외로 키에르트가 더 난리였다.

시종일관 리시스에게서 눈이 떨어지지를 않는데다, 양육자였던 렉싱턴을 제가 견제하고 있다.

늘 시커먼 사내새끼들 사이에서 견제를 하던 입장이었지 한 번도 견제를 받아 본 적은 없던 렉싱턴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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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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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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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 쓸데없는 말로 그대의 마음을 어지럽힌 건 아닌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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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말도 없었어요. 다 제 걱정해서 하는 말인걸요.”

리시스가 괜찮은지를 챙기는 건 늘 렉싱턴의 몫이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홀랑 빼앗겼다.

그도 모자라 자신이 괴롭힌 사람이 되어버렸다.

렉싱턴의 혼은 다시 한번 빠져나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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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진정하고, 앉아서 차나 좀 마셔.”

키에르트는 문밖의 시종에게 차를 가지고 오라 지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렉싱턴은 대답도 하지 않고 키에르트를 노려보기만 했다.

곧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시종이 차를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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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의 황제가 내오는 차를 마실쏘냐!’

렉싱턴이 그렇게 각오하는 순간, 어디서 많이 맡아 본 차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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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냄새가 왜 여기서 맡아져?

왜 낯선 나라에서 익숙한 고국의 향기가?

렉싱턴은 저도 모르게 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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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걸로 타 오라고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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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익숙한 맛이 기분전환에 좋지 않을까 해서.”

키에르트는 익숙하게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렉싱턴의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리시스와 자신의 것도 차례로 따라 각자의 앞에 놓았다.

앞에 놓인 차에서는 조금 더 진한 차의 향기가 났다.

처음 맡는 사람은 지옥에서 먹고 자란 짐승의 입냄새라고 표현하기까지 하는 그 향기가 맞았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게 또 은근 구수하고 고소한 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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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진하게 타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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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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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셨어요. 저는 이게 입맛에 맞네요.”

리시스가 먼저 차를 한 입 맛보았다.

심지어 차와 같이 나온 다과는 고기가 들어간 것이었다.

이런 최고의 조합을 아는 것은 에드린 사람뿐이다.

렉싱턴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키에르트와 리시스를 번갈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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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지. ……아.”

키에르트는 자연히 권하다가 손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였던 찻잔과 렉싱턴 장군의 찻잔을 끌어다 나란히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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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걸로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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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와서.

이미 주전자에서 따르자마자 리시스가 마시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차에 독이 섞여 있었으면 리시스부터 죽었을 것이다.

남은 건 찻잔인데……, 그 정도야 묻었든 안 묻었든 상관이 없다. 닦아내고 마시면 되니까.

렉싱턴 장군은 원래 자신의 앞에 놓였던 찻잔을 들어, 엄지로 가장자리를 닦아내고 한 입 머금었다.

놀랍게도 전장에서 마시던 그 맛 그대로였다.

그러나 진정이 되기는커녕, 다시 욱하고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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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먼 곳까지 오셨으면, 좀 좋은 것을 드시지……, 왜 이런 잡초 썩힌 것이나 여전히 드시고 계신 겁니까……! 쉬란이 그렇게 가난합니까?!”

뭘 봐도 트집거리였다.

이번에는 키에르트가 욱했다.

키에르트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더니 시종을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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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루 가져와!”

결국 키에르트는 ‘잡초 썩힌 차+금가루 듬뿍’을 에드린의 사절에게 접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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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가루가 너무 많아 차 위에 뜨지도 않고 수북이 쌓인 모습을 내려다보며 렉싱턴은 입이 붙어버렸다.

무슨 말을 하기가 무서웠다.

차도 효과가 있었다.

날아가버린 이성으로 아무 말이나 마구 쏟아냈던 것과 달리 키에르트의 대응을 먼저 생각하고 말을 고르게 되었다.

그러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실로 무서운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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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고……, 그 걱정이 고맙기도 한데, 나 진짜 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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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이 그렇게 느끼신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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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워주다시피 한 장군님이니까 많이 서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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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제가 감히…….”

리시스는 손을 뻗어 렉싱턴 장군의 손등을 토닥였다.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다시 콧등이 시큰해졌다.

언제 이렇게 성장하셔서, 저런 얼굴만 반지르르한 놈팡이에게 낚이셔가지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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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도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살 만은 했거든. 에드린 왕성에 있을 때에 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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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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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쉬란의 황궁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거의 안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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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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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를 평생 묶던 의무에서 꽤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다? 에드린의 공주로서가 아니라, 그냥 ‘리시스’로서 살 수도 있더라고.”

황후의 의무와 책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에드린의 공주로서 강요받던 것에 비하면 가벼웠다.

리시스의 조곤조곤한 설득에 렉싱턴은 코를 훌쩍이며 가만히 듣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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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이런 걸 떠나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 주셨어, 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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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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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금 더 그 길을 따라 가 보고 싶을 뿐이야. 그러려면 방해물들을 치워야 하는 거고.”

그 방해물이 바로 로구안과 에드린 왕이었다.

렉싱턴도 이제 차츰 이해가 되려 했다.

적국이라는 인식이 워낙 오래 박혀 있어 리시스가 단시간에 마음을 내려놓은 것이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리시스가 그렇게 변하게 된 과정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렉싱턴은 키에르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키에르트는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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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주님을 잘 대해주신 것에는 감사드립니다.”

키에르트는 ‘네가 뭔데?’라고 하려다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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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잘해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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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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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한테 잘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뭘 원하신 겁니까.”

‘호감의 이유’. 딱 잘라 말하기에는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키에르트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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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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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싱턴이 이번에는 의자 다리를 뽑아버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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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 공주님은 이런저런 이유를 길게도 말씀해 주셨는데, 뭐라고요? 그으냐앙? 성의 없는 대답을 들은 지금 이게 현실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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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 왜 자꾸 ‘우리’, ‘우리’ 붙여대지? 굳이 소유격을 붙이자면 리시스는 ‘내’ 아내이고, ‘내’ 황후이자, ‘내’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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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주님이 물건입니까? 어딜 함부로 소유격을 붙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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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붙였거든? 그리고, 나도 ‘리시스의’ 황제이자, ‘리시스의’ 남편이고, ‘리시스의’ 남자야. 아, 그래 말을 하다보니 ‘그냥’이 왜 튀어나왔는지 알겠군.”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그냥’이라 그냥 말했을 뿐이었다.

그 ‘그냥’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떠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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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사람을 소중히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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