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 프러포즈 대작전 (1) (106/153)


105. 프러포즈 대작전 (1)
2022.08.04.



“프……러포즈?”

키에르트가 더듬더듬 되물었다.

프러포즈는 연애의 범주에 넣어 생각하지 못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에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그래봤자 미묘한 차이라 리시스를 제외한 세 사람은 키에르트가 당황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 폐하. 프러포즈는 일생일대의 이벤트이다 보니 이목을 끌기가 쉽습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적당히 흘려 넣고, 마지막으로 프러포즈를 펑! 터뜨리는 것이지요.”

“그럼 연애는…….”

“프러포즈에 그런 내용을 섞어 넣어서 공연처럼 만들어도 되고, 상징적인 장식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리시스와 직접적으로 연애를 할 일은 없다는 소리였다.

키에르트는 몹시 실망했다.

아무리 보여주기식이라 하더라도 연애 같은 연애를 하게 될 줄 알았다.


“그, 어떤 연애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같이 생각해서 짜 보아요!”

키에르트의 실망한 표정을 읽은 리시스가 얼른 위로하듯 제안했다.

그러나 키에르트의 실망은 더욱 커질 뿐이었다.

연애를 생각한 건……, 자신뿐이었다.


“어……, 프러포즈도 같이 고민해 볼까요?”

실망감이 떠나지 않는 키에르트의 표정에 리시스가 눈치를 보며 제안을 덧붙였다.

그러나 키에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프러포즈만큼은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으로 하고 싶었다.

비록 축제에서 보여주기 위한 행사의 일환일지라도, 프러포즈는 프러포즈니까.


“아니, 그대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

“제가 진짜로 놀라버리면……, 괜찮을까요?”

행사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사전에 조율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프러포즈를 행사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리시스는 그 부분을 걱정했다.

혹시 자신이 놀라서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해 버리면?

그래서 축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망해버리면 어쩐다?

두 사람이 아무리 죽이 잘 맞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잘 맞을 수는 없었다.

키에르트도 리시스의 머릿속이 빤히 보였지만 모르는 척했다.


“오히려 군중에게는 진솔함이 더 잘 전달되기도 하지.”

“그건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래도 행사에 잔뼈가 굵은 허멀 후작이 키에르트의 편을 들었다.


“그럼 프러포즈는 전적으로 폐하께서 책임지시는 겁니까?”

“그러지.”

“저희는 일절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

편을 든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나라도 줄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속내가 어쨌든 목적이 같으니 키에르트도 동의했다.


“그래, 프러포즈는 축제 당일, 그 시점까지 극비로 진행하도록 하지.”

이쯤 되니 리시스가 놀라 기절할 만한 프러포즈를 만들어주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와, 저 기대돼요!”

……그리고 부담감도 생겼다.

***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꼬이기 시작한다.

키에르트는 자신이 이렇게 긴장할 수도 있는 사람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미 결혼하셨습니다, 폐하.”

허멀 후작은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깍지를 끼운 키에르트의 손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었다.
 

 
뭐든 편히 생각나는 것부터 의견을 떠올려 보자는 말에도 키에르트는 입을 떼지 못했다.

무조건 최고의 프러포즈를 준비하겠다는 황제 폐하의 마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긴장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어차피 받아 주실 프러포즈인데 왜 그렇게 긴장을 하십니까.”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허멀 후작.”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리시스가 만족해야 해.”

허멀 후작은 턱을 긁으며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보아 온 바에 의하면, 리시스는 그렇게 소박한 취향은 아니었다.


“황후 폐하시라면…….”

“뭘 좋아할 것 같나?”

“……글쎄요.”

그렇다고 리시스의 취향을 허멀 후작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리시스는 취향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지나치게 소박하거나 희미하지만 않으면 웬만하면 다 좋아했다.

호불호가 없는 사람은 평소에는 대하기 쉽지만 ‘최고’를 맞춰주려 할 때에는 어려워졌다.

더욱이 키에르트가 스스로 ‘최고’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라 더 그랬다.


“황후 폐하께서 뭘 좋아하시는지는 폐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인데.

더군다나 부부궁에서 둘만의 은밀한 시간도 꽤 가졌다.

키에르트는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뭘 좋아하는지는 잘 알지. 고기, 낚시, 호미, 도끼, 화려한 카펫, 벨벳 침구, 특이한 모종, 수학문제, 장기.”

정말 잘 알기는 했다.

허멀 후작도 하나하나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만큼 리시스가 대놓고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프러포즈에 대체 어떻게 써먹는단 말인가.

화려한 카펫을 깔고 벨벳으로 된 커튼을 드리운 다음, 특이한 모종을 사방에 심어 장식하고, 친위대에게 검 대신 호미와 도끼를 들려 도열하게 한 다음 한 문제에 한 걸음씩 다가가 마지막으로는 장기판 같은 무대에서 키에르트가 낚여주는 프러포즈를 할 수는 없었다.

리시스가 좋아할 것 같기는 했지만 이 프러포즈는 두 사람만의 알콩달콩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온 세계에 널리 알린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완성도에 리시스의 취향까지 맞춘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 일반적인 프러포즈부터 알아보지.”

“예, 폐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으나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

키에르트가 눈빛으로 재촉했다.

황제인 내가 제안을 했으면 신하인 그대가 답을 내야지?


“……저는 결혼을 안 해 봐서 모르겠습니다, 폐하.”

결혼식은 초대를 받아 가니 결혼을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프러포즈는 대부분 둘만의, 또는 가문간의 작은 이벤트다.

두 사람의 결혼과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볼 일이 없었다.


“해 본 사람의 의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군.”

책에서 지식을 얻는 것은 이제 자제할 생각이다.

책과 현실이 다름을 경험으로 배웠다.

키에르트는 즉시 유부남 두 사람을 추천받았다.


“황제 폐하의 부르심에 즉시 달려왔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볼드윈 후작과 하웬 백작이었다.

귀족들의 대부분은 정략결혼을 하지만 이들은 불타는 연애결혼을 한 사람들로 유명했다.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없는 키에르트는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랑꾼들이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부인만 바라보고 사는 대표적인 두 유부남이니 분명 프러포즈도 그럴싸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대들에게 프러포즈에 대한 정보를 듣고 싶어 불렀어.”

“프러포즈……, 말이십니까?”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볼드윈 후작이나 하웬 백작은 황궁 출입을 할 수 있는 명망 있는 귀족들이었지만 키에르트와 독대로 회의를 진행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냥 안건도 아니고, 프러포즈라는 아주 사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라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그……, 프러포즈를 혹시 어디에다 쓰실 목적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내가 할 생각인데.”

“아, 혹시 황후 폐하가 바뀌십니까?”

오늘 회의 때만 해도 황후 폐하와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정략결혼답게 정책적인 합의를 봐서 아무렇지 않게 깨지기로 결정된 건가?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부부궁까지 만들고, 두 분 사이가 어마어마하게 좋다고 했는데?

황궁에 직접적인 연결책이 없는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


“황후가 바뀌긴 왜 바뀌어. 절대 안 바뀌어. 바꿀 일 없어. 안 바꿔줘.”

키에르트는 단호하고 강경하게 부정했다.


“아, 그, 그럼……, 프러포즈는…….”

“결혼은 했지만 내가 프러포즈를 하지는 않았지 않은가. 이제라도 할 거다.”

“아, 아아! 아!”

“그것 참 훌륭한 계획이십니다!”

두 사랑꾼 유부남들은 박수를 치며 키에르트의 말에 환호했다.

자신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남의 사랑도 잘 되는 걸 보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각각 어떤 프러포즈를 했었는지 참고삼아 들으려 하는데.”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난 유부남들은 자신의 프러포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랑꾼이 자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랑뿐이다.


“그러니까 처음 본 순간부터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꽃이 개화하는 것을 본 것 같았지 뭡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생명의 탄생이자 신비, 그 자체……. 폐하께서도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아내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런데 아름다운 것은 그뿐이 아니라…….”

키에르트가 듣고 싶은 것은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는가.’뿐이었지만 이야기는 첫 만남부터였다.

이 이야기를 세 번 이상 듣지 않았다면 사교계에 발을 담갔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하고, 또 반복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키에르트는 물론 처음 들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군.”

“그럼요! 사실 외모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눈마다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영혼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아아, 그래. 황후도 가끔 눈을 감아도 눈이 부실 만큼 사람 자체에서 맑은 빛이 흘러나올 때가 있어.”

“폐하께서도 아시는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다가, 키에르트가 공감할 만한 내용도 의외로 많았다.

키에르트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폐하, 저는 좀 자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프러포즈 얘기로 넘어가면 일어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사랑도, 결혼도 관심 없는 허멀 후작만이 괴로웠다.


“그러도록. 그런데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오나?”

“예.”

“……자도록.”

키에르트는 관대하게 허락하고 남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웬 백작과 볼드윈 후작이 각각 하고 싶어 근질거렸지만 더 이상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못 하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잘 만큼 잔 허멀 후작이 눈을 떴을 때는 마침 프러포즈 이야기까지 갔을 때였다.


“그래서 저는, 요란한 걸 싫어하는 그 사람 성격에 맞춰서 화원을 준비했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미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서, 그날부터 매일 한 송이씩 그 사람 닮은 꽃을 심은 화원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이건 몇 월 며칠, 당신이 이 색 드레스를 입은 것이 마치 이 꽃 같아서 심었음, 이런 푯말도 적어놓았고요. 그 꽃길을 쭉 지난 다음에 아무것도 심어지지 않은 화원 앞에서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아직 화원에 공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내 인생이라는 화원도 그렇습니다. 당신이라는 꽃으로 나머지를 다 채울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호오오…….”

“오오…….”

“오…….”

허멀 후작마저 감탄했다.

인정했다. 멋있고, 의미도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폐하, 혹시 심어두신 꽃 있습니까?”

“…….”

키에르트가 쓸 수는 없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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