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불륜, 순애보, 삼각관계의 콜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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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불륜, 순애보, 삼각관계의 콜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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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불륜, 순애보, 삼각관계의 콜라보
2022.07.21.
“황후 폐하!”
“폐하아아!”
“황후 폐하아아!”
황후궁에 들어서던 리시스의 걸음이 멈칫했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세 사람의 성난 무소 같은 기운에 밀렸다.
몸집이 세 배는 큰 남자들을 신나게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던 리시스를 민 세 사람은 앨린, 가넷, 하녀장이었다.
세 사람 말고도 황후궁의 모든 사용인들이 나와 리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어. 다들 잘 지냈지?”
리시스는 건장해진 얼굴로 껄렁껄렁하게 인사를 건넸다.
노지훈련은 병아리 같던 황후를 한 마리 들개처럼 거칠고 자유분방하게 뒤바꿔 놓았다.
사실 병아리는 쉬란에 와서 뒤집어 쓴 보호색 같은 것이었고, 들개 쪽이 본 모습에 가깝긴 했다.
노지훈련은 리시스에게도 벅찬 훈련이었다.
쉬란의 황궁에서 편하게 지내던 버릇을 다 버리고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험하게 지냈다.
그 결과, 본래 모습이 튀어나왔을 뿐이다.
“화, 화화, 황후 폐하?”
리시스를 가까이에서 확인한 가넷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휘청거렸다.
리시스는 핫핫,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보이고 황후궁 안으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새 걸음이 더 빨라져 사람들은 뛰듯이 리시스를 따라가야 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나마 최대한 빨리 이성을 찾은 하녀장이 물었다.
“아니. 배고파.”
“식사 먼저 하시겠습니까, 우선 씻기부터, 아니면 휴식을 취하시겠습니까?”
“욕실에서 씻으면서 먹을래. 씻겨주면 쉬는 것도 같이 되겠네.”
리시스는 효율적인 답을 즉시 제출했다.
“그럼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녀장의 안내에 따라 욕실로 향하는 리시스의 옆에 가넷이 바싹 따라붙었다.
그래도 씻으러 먼저 가 주신다 해서 다행이었다.
식사나 휴식을 선택하셨으면 반란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황후 폐하, 대체 어떤 생활을 하셨길래 몰골이 이리 되신 겁니까…….”
가넷이 흐느꼈다.
하루하루 자신의 손끝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리시스의 모습에 인생의 만족감을 채워가던 가넷은 자신의 공든 탑이 일시에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좌절을 맛보았다.
군장을 차리면서도 ‘세수할 땐 꼭 이걸로, 자기 전엔 이걸 꼭 발라 주시고, 이건 손, 이건 목, 이건 발에 바르시는 겁니다. 아침엔 이걸로 먼저 톡톡 수분 공급을 먼저 해 주시고, 아. 이건 하루 세 번 꼭 잊지 말고 덧발라 주세요.’ 등등 온갖 당부를 멈추지 않던 가넷이다.
리시스는 그 당부를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가넷을 마주하니 마음이 콕콕 찔려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
슬그머니 눈을 피하는 리시스에게 가넷이 더 격렬히 달라붙었다.
“폐하? 폐하! 제 눈을 봐 주세요! 세수는 하신 겁니까!”
“아……, 아니……. 식수도 모자란데 세수는 무슨…….”
전투상황 대비 훈련이기 때문에 실제 상황과 모조리 같게 맞췄다.
식수 부족은 흔한 일이다.
식수도 부족한 판에 세수를 할 여유가 어디 있어. 눈곱 때문에 눈이 뻑뻑하면 침 발라 떼어내면 그만이다.
그것은 가넷의 복장을 두 번 터뜨리는 얘기였다.
“머, 머, 머리는 당연히…….”
“세수도 못 했는데 머리를 감을 수 있을 리가…….”
“황후 폐하아악!”
가넷이 리시스를 처음 만났을 때, 리시스는 단출하나마 반짝거렸다.
그나마도 결혼식을 위해 최대한 갈고닦은 뒤 쉬란의 황궁에 와서 편히 지내며 빛이 난 결과물이었음을 가넷은 미처 몰랐다.
“서, 설마,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몰골로 돌아오시게 되는 걸까요……?”
“……잘 부탁해.”
이번 노지 훈련은 종료되었지만 훈련은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좋게 얘기해 주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아 리시스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저는, 황후 폐하를 햇살처럼 만들어 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는 녹슨 구리동전 문질러 닦기로 목표치가 뚝 떨어졌다.
가넷은 땅을 치며 애통해 했다.
“그놈의 전쟁이 뭐라고!”
“그러니까 말이에요! 전쟁통에 파티는 무슨!”
옆에서 앨린도 함께 애통함에 공감하며 덩달아 버럭했다.
번쩍번쩍한 파티장에 등장한, 햇살처럼 반짝반짝한 황후 폐하.
두 사람이 그리고 있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언제 보게 될지 몰랐다.
“전쟁 안 나게 하려고 이 먼 나라에서 결혼까지 하셨는데, 어떻게 또 전쟁이 일어나게 됐을까요…….”
“그거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리시스는 욕조에 몸을 담그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하녀장이 먼저 가져다 준 빵을 입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넷이 달라붙어 리시스의 머리를 박박 감기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유, 오늘 향유 한 통을 다 쓰겠어요. 그래도 아직 전쟁이 나지는 않았는데 왜 황후 폐하는 벌써 전쟁 한 세 번 치르신 꼴이 되신 거예요.”
“그야 세 번 치른 만큼 훈련을 했으니까…….”
“꼭 그걸 하셔야 해요?”
보통 황후 폐하는 전쟁이 나도 성 안에서 기다리며 황제의 승리를 기다리는 역할을 맡지 않던가.
하지만 리시스는 자신이 황제보다 더 앞서 전쟁터로 달려 나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쉬란 출신도 아닌 사람이 그러니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성격이 못 되나 봐.”
“하다보면 되지 않을까요?”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섰던 거였는데…….”
리시스가 전쟁터에서 앞에 나섰던 건 자신의 역할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계속 지켜만 보는 것이 힘들어서이기도 했다.
자신이 좋은 전략을 짜내면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으니까.
가만히 지켜보는 것보다는 그쪽이 마음 편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키에르트가 혼자 전쟁터에 나가버리고 혼자 남아 기다리는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기다리다 초조해서 미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진짜 나긴 나는 거예요, 황후 폐하?”
옆에서 가넷을 돕던 앨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그러고 보니 전쟁 난다는 소리는 어디서 들었어?”
두 사람은 이미 전쟁이 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었다.
아직 쉬란과 로구안, 에드린, 어느 쪽에서도 확실히 선전포고를 하지는 않았다.
정식으로 전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돌 상황은 아니었다.
“소문이 자자해서요…….”
“소문?”
소문이 날 곳은 많았다.
황제 부부가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한 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외에 또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지는 몰랐다.
리시스가 받아 든 정보는 로구안의 실시간 동태, 에드린 군의 이동, 쉬란 군 유지 실태 같은 것들이었다.
저잣거리의 소문까지 모아듣기에는 알아야 하는 정보가 너무 많았다.
“네에……, 아뢰옵기 황송한데…….”
“언제는 황송할 짓 안 했다고. 그냥 말해.”
“그렇긴 한데요, 이번 건 진짜 황송하긴 해서요.”
앨린은 파티 열자고 쫑알거리지, 가넷은 관리 잘 하셔야 한다고 쫑알거리지.
두 사람의 황송과 무엄 목록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었다.
리시스가 소탈하고 위계서열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 다 같이 웃고 지냈지, 세니아였으면 목이 열두 번씩은 잘렸다.
그런 그들이 말을 꺼릴 정도로 황송한 소문이라니?
“내 소문이야?”
“예에……, 그렇긴 하죠.”
“괜찮아, 말해 봐.”
어차피 적국에 정략결혼으로 팔려온 순간부터 등에 따라붙어 다닐 온갖 소문들은 각오한 바였다.
그런 소문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상처받을 성격이었으면 에드린의 공주였을 때 이미 화병으로 쓰러졌다.
리시스의 통 큰 허락에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누가 말할지 몇 초간의 눈빛싸움이 오가다가, 결국 입을 연 것은 앨린이었다.
“로구안의 왕자가 황후 폐하를 원해서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그러던데요…….”
“?”
리시스는 잠시 동안 로구안의 왕자가 누구였는지 머릿속 기억을 더듬었다.
“아, 아아. 걔. 그 로구안 놈.”
알헨크.
이름도 가물가물했다.
그 로구안 왕자놈.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는 늘 ‘그 로구안 놈’으로 호칭을 통일하다 보니 왕자라는 사실도 가끔 까먹었다.
쫓겨나기 전에 추근거리던 걸 리시스도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날짜가 꽤 오래 흘렀다.
이제 와서 소문이 도는 것이 이상했다.
목격자가 말을 흘리고 다니는 것이었다면 이미 진작 말이 돌고도 남았어야 했다.
“또 무슨 말이 같이 도는데?”
“아니, 이걸 진짜 말씀드려도 되나…….”
“해 봐, 왜?”
이미 중요한 얘기는 나온 것 같은데 뭘 망설이지?
리시스는 대수롭지 않게 뒷말을 재촉했다.
앨린과 가넷은 다시 주저주저하며 서로 얼굴을 흘끔거렸다.
“가넷 양이.”
“아니, 앨린 양이.”
“한 번은 제가 했잖아요.”
“한 김에 계속하시지요.”
“가위 바위…….”
“보. 제가 이겼네요. 가넷 양이.”
“…….”
리시스는 두 사람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러나 두 사람은 진지했다.
가위바위보까지 해서 정해진 순번 앞에 가넷은 심호흡까지 했다.
“황후 폐하. 너무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들어 주십시오.”
가넷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던 비누마저 내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리시스도 덩달아 긴장해서 욕조 안에서 허리를 세웠다. 빵도 내려놓았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가넷이 입을 열었다.
“도는 소문에 의하면, 불륜과 순애보와, 삼각관계의 콜라보입니다.”
“……뭐?”
소설로 치면 절대적 성공지표의 세 가지 키워드가 다 모였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이 문제였다.
“대체 나랑 그것들이 어떻게 하면 동시에 얽혀?”
“그게, 사실은 황후 폐하랑 로구안 왕자가 마음을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황제 폐하와 정략결혼을 하면서 비극이 시작된 거다, 뭐 이런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또 결혼 전부터였다, 결혼 후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두 가지 얘기가 동시에 돌더라고요. 그래서 황후가 되신 후에도 민가에서 내통을 한 적도 있었고……, 로구안 왕자가 목숨을 걸고 쉬란에 잠입해 연회에서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황제 폐하께 들통이 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요.”
리시스는 기가 막혀 쩡 소리가 나게 얼어버렸다.
어쩜 그렇게 잘 가져다 붙인 이야기가 만들어졌을까.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그런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소문이니 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하……, 어이가 없네?”
“설마 진짜는 아니죠, 폐하?”
진짜겠어?!
리시스가 소리치려 입을 벌린 순간,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가운 한 장만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인 키에르트였다.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에는 비누거품마저 매단 채.
키에르트의 굉장한 차림에 욕실 안의 세 여자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키에르트는 온몸에서 열을 풀풀 쏟아내며 이를 득득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장……, 전쟁 선포해도 되겠나, 황후……?”
키에르트도 씻다가 리시스가 들은 것과 같은 소문을 접한 모양이었다.
리시스는 앨린과 가넷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도 진짜같아?”
“……아니요…….”
그럴 리가 없었다.
이미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는 정략결혼의 수준을 한참 넘었다.
저게 정략결혼이면 세상의 연애결혼은 멸종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