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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욕망은 나한테만 (93/153)


93. 욕망은 나한테만
2022.06.23.


오늘은 친위대와 황실군의 합동훈련이었다.

친위대와 황실군은 미묘한 관계였다.

쉬란의 모든 군대는 본질적으로는 쉬란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다.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수장은 황제였다.

황제의 명령을 받으며, 쉬란을 위해 싸우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역할에서 생기는 차이 때문에 언제나 경쟁하게 되었다.


“어딜 곱상한 도련님들이!”

“뭐! 이 성 안에서 곱게 지내던 놈들이!”

친위대는 언제나 황제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부대다.

전투 시에는 황제와 함께 칼을 뽑고, 유사시에는 땅도 굴러야 했다.

그러니 황제를 모실 만한 웬만한 ‘격’이 갖춰진 사람들로만 뽑았다.


“화초가 온실 밖에 나가도 화초지! 출생부터 다른걸!”

전원 귀족가 출신이라는 특성은 친위대의 위상을 높여줌과 동시에 콤플렉스가 되기도 했다.

높은 곳을 우러러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올라가지 못해 욕을 하기도 한다.

특히나 병사라는 존재는 신분이 실력을 대변해주지 못한다.

실력으로 평가가 가능한 집단이다 보니 귀족이라는 것은 약점이 되기도 했다.


“오오냐, 화초한테 쳐 맞고 죽어봐야 그딴 말이 안 나오지?”

“화초한테 맞아 봐야 가렵기만 하다!”

“그 화초가 밖에서 미친 듯이 구르며 질겨졌을 거란 생각은 왜 못 하지?”

반대로, 황실군은 황제의 명을 따라 어느 전장이든 달려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느 전장에서든 최고의 실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신분, 출신, 성별을 불문하고 오직 실력만으로 선발했다.

당연히 평소의 훈련도 일반 병사의 몇 배.

명실공히 최강의 부대였다.

그러나 키에르트가 직접 전장에 나가면서부터 위치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황제가 가는 곳이니 친위대가 자연히 따랐다.

아무리 깨작깨작 싸우는 전쟁이었어도 실전은 무시할 수 없다.

원래는 황제 곁에서 망토나 펄럭이고 있었을 친위대가 실전의 용사로 거듭났다.

그러는 동안 황실군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황도를 지켰다.


“화초가 질겨져 봤자 풀이지! 이빨이라도 달고 오시든가!”

“그 이빨 초콜릿 먹다 다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나?!”

황도가 전선에 비해 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황실군의 실력을 드러낼 기회도 없었다.

강함의 대명사가 친위대로 바뀌어가려는 시점이었다.

그때 합동훈련이 열렸다.

자신들의 강함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것도 황제 부부가 자리한 곳에서!


“호오……, 저 사람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리시스는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지켜보다 몇 명을 골라냈다.


“아, 랜딜이라는 친구입니다. 저 친구가 힘이 좋죠.”

“힘도 좋은데 민첩하기도 하네.”

“정확하십니다.”

골라내는 사람마다 확실한 실력을 가진 자였다.

리시스의 눈은 제럴드와 미하엘도 놀랄 정도로 정확했다.


“정말 잘 보십니다.”

리시스는 대답 대신 웃었다.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전략이나 전술도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시할 수 있을 만한 실력자였다.

아무리 리시스가 멋진 전략을 세워 시킨다 해도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말짱 꽝이었다.

그래서 보기 시작한 것인데, 이제는 한때 적군들의 무예까지 보게 되었다.


“오, 저 사람도 탐난다. 저 사람도.”

“예.”

리시스의 간택을 곁에서 지켜보던 키에르트는 한참 말이 없었다.


 
팔짱 낀 팔을 손가락이 톡톡 건드리는 것이, 생각이 깊은 상태였다.

하지만 리시스의 의도가 무엇이고, 그것이 지금은 꼭 필요한 것임을 아니 함부로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런데 황후.”

함부로 열지는 않고, 고민 끝에 신중히 열었다.


“네?”

“그대가 원한다면 다 주긴 할 건데 말이지.”

사람도, 병사도.


“하지만 ‘탐난다’, ‘갖고 싶다’는 말은 참아주지 않겠나?”

“……아, 역시 사람한테 그런 말은…….”

너무 물건 고르듯 했지.

오랜만에 훌륭한 병사들을 구경하니 신이 나서 그만 속마음이 고스란히 튀어나오고 말았다.

전쟁터에서 훌륭한 병사는 정말로 소중한 존재여서 그랬다.


“그런 말은 나에게만 써 줬으면 좋겠군.”

“……아?”

“욕망은 나한테만.”

“……아…….”

그쪽이셨구나.

리시스는 입을 벌렸다가, 할 말이 없어 다시 다물었다.

입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무언가가 얼굴로 기어올라 왔다.

아마도 새빨간 색이 빠져나가려 했던 모양이다.

리시스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흠, 큼.”

“엣큼! 흠!”

옆에서 그걸 생생히 들어야 했던 제럴드와 미하엘은 저마다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표시했다.

이 와중 당당한 것은 키에르트 혼자였다.


“그런데 병사는 어디에 쓸 건가?”

키에르트의 질문은 앞뒤가 바뀌어 있었다.

질문을 할 것이면 리시스가 ‘저 사람 주세요.’라고 말을 했을 때 했어야 했다.

그러나 키에르트는 달라니까 일단 준다고 해 놓고 용도를 물었다. 심지어 어차피 리시스가 가질 사람에게 질투까지 해 놓고.


“특수부대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특수부대?”

“네, 언제, 어디서든 전투를 벌일 수 있고, 소수로도 최대의 전투력을 뽑아낼 수 있는. 쇠공 같은 부대요.”

군사회의에 참여한 것으로도 리시스가 쉬란의 군사에 손을 댈 수 있는 권한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수부대도 만들겠다면 만들 수 있다.

어쨌든 이기기 위한 방법인데 누가 말리겠는가.


“지금까지 보였던 로구안의 특징은 기병 위주의 빠른 공격이었어요. 우리가 했던 것처럼 몇 날 며칠 진 치고 전략 짜며 장기하듯 하는 전쟁이 아니잖아요.”

“그랬지.”

“그리고 알헨, 아니. 그 로구안 놈도 그런 식이었어요.”

이전에 있던 모의전투에서 얻은 정보였다.

정보 같은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지만 그날, 모의전투를 하면서도 ‘어라?’ 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키에르트야 숱하게 상대를 해서 공격의 방향이 훤했다.

그런데 알헨크는 의외의 공격법을 사용했다.

본인은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리시스에게는 보였다.


“그럼 방어선을 튼튼하게 구축하는 건 어떻습니까?”

특수부대도 어쨌든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방어선은 물질적인 것이 많이 포함된다.

사람이 하는 일의 변수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제럴드의 물음에 리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방어만 하면 어떡해.”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감히 공격해 온 놈들인데. 다 싹 죽여 버려야지.”

리시스의 눈이 살기로 빛났다.


“…….”

“…….”

우리 황후 폐하, 무서운 분이셨구나…….

아니, 원래 무서운 분이셨지.

리시스는 황제의 친위대를 극한까지 몰아넣은 전략의 달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제럴드와 미하엘도 리시스의 깜찍한 외모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더 전쟁터에서 활약하던 리시스의 흉흉함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리시스의 병아리 같은 머리카락이 용암으로 보였다.

가까이 가면 죽는다…….

공평하게 죽는다…….

그런 가운데, 키에르트만이 유독 남다른 감상을 내놓았다.


“……역시 내 황후야.”

키에르트는 진심으로 황홀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감탄에 감탄을 거듭해 감동 중이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리시스의 한 수에 당할 때마다 가슴이 짜릿했다.

전쟁터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리시스의 한 수에 당해 죽을 뻔했던 순간, 가슴이 저렸다.

장기를 둘 때에도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모의전투 때는……, 그냥 반했다.


‘……나는 강한 여자를 좋아했던 건가.’

자신도 모르던 스스로의 취향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아, 쟤도!”

“그래, 쟤도.”

가슴이 두근거리니 리시스가 남자를 골라도 좋게만 보였다.


“그 옆의 저자는 어떤가.”

“음……, 체력은 좋아 보이는데 섬세하지가 못하네요.”

“아하. 역시. 그럼 뒤쪽의 저자는?”

“아, 괜찮은 것 같아요. 포함.”

“포함.”

키에르트는 이제 황후의 남자쇼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뭐든 사준다고 했다. 남자도 못 사줄 건 뭔가.

구매의 개념이 살짝 틀어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만족했다.

***

쇼핑……, 이 아니라 선발이 끝났다.

황후 폐하에게 간택당한 병사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해 가슴근육을 부풀렸다.

뽑다 보니 친위대와 황실군이 적절히 섞이기까지 했다.

굳이 의도해서 나누어 뽑은 것은 아니었는데 뽑고 나서 보니 그렇게 되었다.


“흠, 흠. 확실히 저 아이들은 황실군에서도 손꼽히는 인재긴 하지요.”

“친위대에서도 내로라하는 천재들이니 뒤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두 대장들도 선발 결과에 만족했다.

출중한 안목이었다.

언제나 이들을 보아 왔던 대장들이 인정할 만큼.

한두 명 정도 의외의 선발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선발 이유를 들어보면 납득이 갈 만한, 숨겨진 재능이 있었다.

보는 눈은 본인이 할 수 없어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특수부대는 잘하는 사람을 뽑아 모아놓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특수부대만의 훈련도 필요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황후 폐하?”

“훈련해야지.”

“저희가 그 훈련을 맡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두 대장들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 있게 나설 수 없었다.

제국을 통틀어 최고의 정예인 두 부대였다.

지금까지 해 온 훈련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최대한의 훈련을 해 왔다.

그 말은, 두 대장의 훈련으로는 더 이상의 기량을 뽑아낼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지,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면 똑같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어디에서 훈련을 맡을 고수를 뚝딱 초빙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찾고, 고용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언제까지나 여유 있게 훈련을 할 수도 없다.

이러는 동안에도 로구안의 병력은 언제 습격해 올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하면 되지.”

그런데 리시스가 당당하게 나섰다.


“……황후 폐하께서요?”

병사를 고르는 안목, 전략을 짜는 지성과 훈련을 시키는 실전은 아예 분야가 달랐다.

황후 폐하의 출중한 능력은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리시스가 칼을 들고 날아다닐 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불신으로 가득 찬 눈빛들을 받으면서도 리시스의 자신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한 한 방을 기다리는 악동처럼 개구지게 씩 웃기까지 했다.


“기대해, 초저예산으로도 초부유국인 쉬란의 군대에 밀리지 않고 압박해 들어갈 수 있었던 전설의 훈련법을 전수해 줄게.”

“…….”

“…….”

“진짜야.”

“아, 예…….”

그 훈련법의 진실 여부가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선발된 병사들의 안녕이 불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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