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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파티란 이런 것이었나 (78/153)


78. 파티란 이런 것이었나
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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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트가 행사 전에 왜 노심초사했는지 이해했다.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

리시스는 뒤늦게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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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는 위험한 곳이구나!’

온갖 불륜과 부도덕한 관계가 오가는 곳이라 말은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실감하기 어려운 법.

엄연히 황제와 결혼을 한 황후인 자신에게 대놓고 들이대는 알헨크 덕분에 한 번에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이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소문에 휩싸이기라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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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설이 퍼질 수도 있어!’

그것은 위험했다.

다른 무슨 일이 있어도 둘 사이를 의심할 만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특히나 다른 사람의 눈이 있는 곳에서는.

리시스의 눈에 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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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사교계!’

황후로서 자리잡는 것만 생각하느라 미처 몰랐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만큼 사람을 경계하기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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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확실히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쪽도 경계심을 좀 내려놓아야 상대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알헨크 같은 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계도 해야 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리시스가 지금껏 걸어온 길도 험난했다.

안 가본 길이라 어려운 것이지, 못 갈 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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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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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네, 황제 폐하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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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리시스의 경계가 쓸데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리시스가 치는 철벽에 찔끔해서 물러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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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춤 한……, 아, 아닙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리시스에게 접근을 해 보기도 전에 알아서 물러났다.

리시스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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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춰 보지.”

리시스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는 키에르트 때문이었다.

키에르트는 리시스가 어디를 가나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처음에는 못 보았던 사람도 점점 더 뜨거워지는 키에르트의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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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또 언제 와 계셨어요?”

물론 키에르트도 사람들을 아예 상대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잠깐씩 자리를 비우기는 했다.

그것이 리시스의 눈에는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성거리다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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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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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괜찮아요. 폐하도 볼 일 보셔야죠.”

이제 선을 어디쯤에 그어야 하는지도 대충 파악했다.

키에르트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키에르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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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 미더우신가?’

진짜 잘하고 있는데…….

리시스가 내심 서운해지려던 차였다.

보다 못한 허멀 후작이 나서 한 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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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황후 폐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지요.”

가능할까?

실제로 해 보려고 가늠하는 키에르트를 보고 허멀 후작은 혀를 내둘렀다.

단단히 미치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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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 어디 안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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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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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긴 어딜 가십니까.”

허멀 후작이 기가 차 던진 핀잔에도 키에르트는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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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쉬란에 정 떨어졌다며 에드린으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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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철없는 분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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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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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럴 일은 없겠군요.”

말을 하고 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이 놓였다.

그렇다고 전부 놓인 것은 아니었다.

관계의 지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는 리시스가 내쳐질 것을 걱정했다.

황후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는 것을 염려하는 입장이었다.

이제는 적어도 키에르트의 손에 쫓겨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리시스가 황후를 관두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릴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호화로운 생활에 길들여진 공주님이 아니었다.

그 험한 전쟁터에서도 잘 살아남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저렇게 반짝거리고 있다.

누구든 리시스를 채 가고 싶어 눈을 빛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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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저 로구안 놈처럼.

리시스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지만 키에르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저놈, 리시스를 탐내고 있다.

남자로서의 본능이 경계를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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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리시스가 혼자 생각에 빠져든 키에르트를 바라보다 살그머니 불렀다.

키에르트는 겨우 망상의 늪에서는 빠져나왔지만 기분은 여전히 진창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질척거리는 시선에서 리시스를 한 번에 빼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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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키스.”

겨우 생각해 낸다고 뽑아낸 생각이 이거였다.

오늘은 아침부터 행사 준비를 하느라 모닝 키스를 주고받을 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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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금요?”

리시스는 어이가 없어서 키에르트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허멀 후작도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러실 나이는 아니지만 노망이 나셨나’를 축약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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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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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리시스는 못된 강아지 혼내듯 엄하게 선을 그었다.

키에르트는 차마 거절이 돌아올 줄 몰랐던 것처럼 미간을 움찔거렸다.

왜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리시스야말로 기가 막혔다.

황제 폐하는 가끔 부끄러움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아무리 부부간의 사이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자리에서 버젓이 키스를 나누는 사람은 없…….

그때 리시스의 눈에 기둥 뒤에 숨어 키스하는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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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있긴 있구나.

한 번 눈에 띄니 이번에는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아 입을 맞추는 사람도 보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은근히 여기저기 있었다.

대놓고 사람들 보는 곳에서 쪽쪽대지는 않아도 알게 모르게 숨어서 입을 맞추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신경 써서 찾아봐야 보이지만, 그렇다고 꽁꽁 숨어서 하나도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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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란 것은! 이런 것이었나!’

오늘은 황실 파티라 점잖은 편이었다.

성인들이 모여 술 마시고, 노래 들으며 춤추면서 눈이 맞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인맥을 다지지만 뒤로는 연애도 하는 곳.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했다.

리시스는 전선의 연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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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밥 먹으면 들어가라고 했던 거였나 봐…….’

렉싱턴 장군은 리시스의 철저한 보호자였다.

어린 나이에 전선에 몰린 리시스가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곱게 자랄 수 있던 이유였다.

특히나 성적인 부분에서는 결벽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싸고 돌았다.

병사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철저히 감시, 먹고 마시는 것도 늘 보이는 곳에서만.

연회 역시 리시스에게는 출입금지인 장소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낮의 연회에는 참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차 끓이는 법, 고기 굽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잘 먹고 잘 마시며 논 후, 슬슬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리시스는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 뒤에 술 마신 병사들이 어떻게 노는지까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이제야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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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도 안 돼요.”

차분하려 해도 얼굴이 익었다.

리시스의 발그레진 얼굴을 바라보던 키에르트는 더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선 것도 아니었다.

소유권 주장을 하고 싶은 마음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내 아내다! 내 황후란 말이다!

감히 함부로 쳐다보지 마! 눈독도 들이지 마!

내 거라고 이마에다 도장이라도 박아두고 싶었다.

이마에 도장 대신 키스면 굉장히 관대한 처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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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모의 전투를 시작하겠습니다!”

황실의 행사는 일정이 쭉 정해져 있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춤추는 무도회도 누군가가 발표를 하든, 작품을 선보이든 하는 수순이 줄지었다.

오늘은 목적이 확실한 행사라 일정이 빽빽했다.

이번 차례는 병사들을 위한 행사인 만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즐거워할 놀이를 만들어 넣다 보니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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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군,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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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군, 이쪽으로!”

백군과 흑군으로 나누어 조를 짠다.

내키는 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인원은 무작위다.

전투에서는 꼭 같은 수가 붙지 않기 때문에 모의전투 역시 양쪽의 수를 정확히 맞춰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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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편성 끝냅니다! 삼! 이! 일!”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유리한 조에 붙으려고 신경전이 치열해진다.

기왕이면 친위대가 많이 들어간 조, 강하다고 소문난 병사가 들어간 조에 붙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놀이라지만 이겨야 기분이 좋으니까.

거기에 이 모의 전투는 그저 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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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엔……, 지휘관을 하실 분!”

누구든 지휘관을 할 수 있다.

전쟁 경험이 없는, 장기조차 못 두는 사람도 지원 가능하다.

어차피 재미로 하는 놀이니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쪽이 더 즐겁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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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시면 이곳의 누구에게든 소원을 말하실 수 있게 됩니다!”

승리하면 굉장한 상품이 따라온다.

‘누구에게든’은 황제 부부도 포함이었다.

황제와 황후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상품. 정말 막강한 상품이었다.

다만 반드시 승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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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패배하시면 상금을 내셔야 합니다!”

패배했을 시, 내야 하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

전투에 참가한 모든 병사들에게 돈을 줘야 했다.

이긴 조에게는 두 배다.

한 사람당 금화 한 개라고 쳐도 어림잡아 오십 명이고 조가 반반으로 나뉘었으면 칠십 오 개의 금화가 필요했다.

더구나 승자의 관용으로 베푸는 것도 아니고, 패자의 벌금이다.

내면서도 뻐기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못 내면 사교계에서 영원히 퇴출당한다.

아무도 대놓고 질책하거나 빚처럼 징수하지는 않지만 바닥을 친 평판으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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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동전 던지기로 결정됩니다! 하지만 어느 조가 승리에 가까울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조를 자신이 고를 수도 없다.

아무리 놀이여도 전술이라 미리 공부하고 준비를 할 수도 없다.

전술 공부를 했다 한들 조에서 어떻게 운명이 뒤바뀔지 모른다.

온전히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에 돈까지 걸렸다.

상대가 만만하면 한 번 나서 보기라도 할 텐데, 상대가 누군지를 모르니.

원래 늘 처음 사람이 나서는 데 가장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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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겁이 많아 섣불리 나서지를 못하는 모양이네요. 황후 폐하께서 한 번 이럴 때 모범을 보이시면 어떨까요?”

리시스의 주변에 있던 귀족 하나가 부채질을 했다.

전선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사실 전쟁터의 사정을 잘 몰랐다.

리시스가 그 악명 놓은 전쟁터의 악마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돈 한 푼 없이 짐짝처럼 넘겨진, 본국에서도 예쁨 받지 못한 공주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그 꿍꿍이속이 리시스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리시스는 쿡쿡쿡 배를 치고 올라오는 웃음을 겨우 숨기며 수줍은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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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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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전쟁이라고는 구경조차 못 해 본 순진한 공주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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