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밀렸던 모닝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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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밀렸던 모닝 키스
2022.04.21.
“흡!”
리시스는 놀라 숨을 삼켰다.
그러나 숨을 다 삼키기도 전, 키에르트의 입술을 같이 삼켜버리고 말았다.
무작정 들이대는 입술은 참으로 재빨랐다.
“읍, 폐.”
고개를 비틀어 피하려 하던 리시스는 문득 깨달았다.
오늘 아침엔 못 만났다.
오늘 치 모닝키스는 남아 있다.
키에르트는 방금 자다 깼으니까 시기적으로도 지금 이것은 모닝키스로서 합당하다.
리시스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키에르트의 입술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입술이 잠시 떨어지나 싶다가 다시 꾸욱 눌러 밀어붙여 온다.
마주친 상태로 각도를 트니 입술이 뭉개졌다.
뭉개진 입술의 감촉은 아주 부드러웠다.
리시스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 감촉에 집중했다.
“?”
그런데 벌어진 입술 사이로 뭔가가 닿았다.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려도, 키에르트의 팔이 단단히 팔과 어깨를 잡고 있어 피할 수 없었다.
“으읍, 흡!”
다시 한 번 닿은 순간, 발끝이 찌릿했다.
아니야, 이건 뭔가 아니야!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몸이 이상했다.
리시스는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키에르트는 더 이상했다.
보통 리시스의 허락 없이 무언가를 하지도 않지만, 리시스가 아주 약간이라도 피하는 것 같으면 바로 떨어져나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리시스가 이렇게 놀라 도망가려는데도 밀어붙이다니.
평소의 키에르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답지 않다.
덜컥 겁까지 났다.
“폐, 흡, 하!”
막혀오는 입술 사이로 겨우 소리를 쳤다.
감히 그럴 생각도 못 했던 황제 폐하의 어깨도 팡팡 때렸다.
그제야 입술이 떨어졌다.
“갑자기, 왜, 하아!”
“……황후?”
키에르트가 멍한 눈으로 리시스를 바라보았다.
몇 번 눈을 더 깜빡이는 사이 눈에 남아 있던 잠기운이 싹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맑은 눈이 된 키에르트는 그 순간 헉 하고 놀랐다.
“내, 내가 지금…….”
리시스도 눈치를 챘다.
잠결에 저지른 실수였구나.
“미, 미안. 사과하지. 정말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키에르트가 너무 쩔쩔 매며 사과를 해서 리시스는 본인이 화를 낼 기회를 잃었다.
화가 나야 화를 낼 수 있다.
애초에 화가 나지를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해 놀랐을 뿐이지, 키에르트의 입술이 맞닿아 있는 내내 싫었던 순간은 하나도 없었다.
“꿈결에 제가 암살자인 줄 아셨던 것보단 나은 것 같아요.”
“그건 그래.”
키에르트는 신중하게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꿈결에 이런 일을 벌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꿈이 하필, 그리고 눈앞에 당장 보였던 것이 하필, 리시스였던 탓이다.
“그런데 무슨 꿈을 꾸셨던 거예요?”
“…….”
그걸 물어 올 줄이야.
키에르트는 멈칫하며 긴장의 침을 삼켰다.
그건 말해줄 수 없다.
말해줬다가는 리시스가 앞으로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어린 나이도 아닌데 왜 이런 꿈을 꿨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저번 합궁 때문에 정보 수집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릿속에 그것만 박혀버렸나.
그렇다면 큰일이다.
주인공은 모두 리시스의 얼굴로 치환되어 보이는데, 키에르트가 본 수십 종류의 이야기들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매일 밤 꿈에 그런 것들을 보았다가는 낮에도 또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있었다.
“저, 여쭤봤는데.”
키에르트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리시스가 재촉했다.
무슨 꿈이냐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키에르트가 자신의 입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꿈은 알고 싶었다.
“……그대가 나오는 꿈.”
“저요?”
키에르트는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다.
그냥 그렇게 대충 넘어가 주지.
리시스는 한 번 꽂힌 것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제가 뭘 했는데요?”
“그냥, 있었어.”
“……?”
그거랑 눈 뜨자마자 키스한 거랑 어떻게 연결이 돼요?
리시스는 키에르트의 답변에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키에르트의 생각은 달랐다.
리시스의 존재가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키스하고 싶게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렇게 귀여운 입술을 뾰족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한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이 누워 있는 소파 바로 옆에서, 안 그래도 작은 몸을 더 작게 웅크리고서는.
그래서 지금도 키스하고 싶었다. 더.
“며칠 동안 밀렸던 모닝 키스, 받아도 되나?”
“예……?”
리시스는 어이가 없어 키에르트를 올려다보았다.
진지한 눈빛이 더 황당했다.
농담으로 시작해서 넘기려고 했는데 왜 진지해져 버리는 거야.
그것도 키스로.
리시스는 난감하게 눈을 돌렸다.
싫은 건 아니어도 더 할 수는 없었다.
발끝을 울렸던 짜릿한 느낌이 기억났다.
너무 이상했다.
또 그랬다가는 머릿속이 온통 번개로 가득 차 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리시스는 생각만 해도 다시 떠오르는 그 순간을 잊어버리려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안 돼요! 어제 아침 걸렀다고 오늘 두 번 먹진 않잖아요.”
“…….”
칫.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키에르트는 불퉁하게 혀를 찼다.
아니, 이분이 정말?
평소에는 결점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잠결에 멍한 짓을 하더니, 토라지기까지 한다.
무엄하지만 귀여우셨다.
리시스는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폐하, 그런데 어쩌다 여기 와 계셨어요?”
“지나가는 길에.”
“어, 저도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요.”
“왜?”
거기서 이유를 물을 타이밍인가?
키에르트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리시스는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롬이 인테리어 수정해 놓은 게 궁금해서요.”
“…….”
앗. 이건 실망한 눈빛이다.
너무 티가 나서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리시스는 다시 한 번 내장이 간지러웠다.
목을 타고 기어오른 간지러움이 입꼬리까지 번져서 움찔거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여우실까?
“같이 쓰기로 한 부부궁인데 아무도 안 쓰게 될까 봐 제가 먼저 자리 잡아둘 생각도 겸사겸사.”
그제야 조금 풀리는 단단한 입매.
“그러는 폐하는요?”
“나는…….”
키에르트도 진심을 돌려 말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리시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대가 보고싶어서.”
“…….”
이번엔 리시스가 화끈해질 차례였다.
“어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도 주체할 수 없이 얼굴에서 따끈함이 흘러넘쳤다.
“어머머.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럼 안 되나?”
“안 되는 건 아닌데요.”
“나만 보고 싶었어?”
“바빴잖아요, 서로…….”
“그건 대답이 안 되는데.”
키에르트의 추궁은 날카로웠다.
리시스를 추격하던 가닥이 어디 가지 않았다.
“……저는 그렇게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자기 얼굴도 못 알아볼 만큼 바빴으니까.
하지만 이건 일부러 솔직하게 얘기한 것이었다.
키에르트의 토라진 표정이 귀여워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아니나 다를까, 키에르트는 리시스의 말에 대번에 안색을 바꿨다.
이번엔 정말 극히, 커다랗게, 엄청 토라진 표정이었다.
리시스는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달랬다.
“막상 주무시고 계신 폐하를 보고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
노려보는 눈빛은 똑같아도 눈빛에 실린 힘이 좀 느슨해졌다.
리시스는 헤헤 웃어버렸다.
“계속 보고 싶어서 깨우지도 않고 훔쳐보고 있었어요.”
“……언제까지 볼 생각이었어.”
“글쎄요, 내일 아침까지?”
그제야 키에르트도 마주 웃어주었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는 여유 있다는 말이군.”
“어?”
“저녁식사, 같이 하지.”
저녁식사 초대는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처음부터 제하고 던져졌다.
리시스는 물론 거절할 생각도 없었지만 왠지 떠밀린 기분으로 식당 의자에 앉게 되었다.
역대 황제 부부가 최소 하루 전에 연락을 주고받아 시간을 조정하고, 식사 시간에 입을 옷과 나눌 대화내용까지 정했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으로 심플한 약속이었다.
그만큼 편해졌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느꼈다.
“……그런데요. 오늘 요리는 누가 하나요?”
하지만 요리 당번을 정하는 것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저번 생선구이는 먹을 만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먹을 만했을 뿐이고.
양념은 거의 치지 않은 생선구이의 맛은 그냥 생선 자체가 힘을 낸 것이었다.
키에르트가 크게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리시스도 알았다.
그리고 리시스 역시 요리를 못한다는 것은 키에르트도 아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내가……!’
똑같은 생각을 하던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만 황후궁 가서 먹어요.”
“……그러지.”
그리고 원만한 합의를 만들어냈다.
***
오랜만에 황후궁에 손님이 들었다.
그 손님이 가장 익숙한 손님이신 황제 폐하라, 일동은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아예 입구가 다른 연결된 주방을 부부궁에 만들어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군.”
요리사는 요리만 하고, 음식을 작은 창문으로 내기만 하면 나머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는 걸로.
역시 살아 봐야 불편한 것이든 필요한 것이든 보인다.
키에르트와 둘이 있는 시간에는 일 얘기는 안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두 사람 모두 허덕이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저는 가볍게 앉아 구경만 하려고 해요.”
“그래, 그 정도가 낫긴 하지.”
“아예 불참하는 건 오히려 기분 나빠하는 것 아니냐, 에드린이 친하게 지낼 생각 없는 것 아니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그대가 참가해 줘서 오히려 고마운 상황이니 크게 신경쓰지 말고.”
간단하게 행사에 대한 대화가 오가던 중, 리시스는 율라의 말을 떠올렸다.
“그런데요. 제가 소식 하나를 들었는데.”
“음?”
리시스는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식사시중을 들던 하녀와 시종들이 알아서 자리를 물렸다.
이제 그 정도로 사람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키에르트는 그 변화가 새삼스러웠다.
처음에는 버려진 어린아이 같던 황후가 이젠 제법 늠름하다.
“저번에 왔던 그 로구안 사람. 기억나세요?”
“로구안?”
어렴풋이 첩자만 떠올리던 키에르트는 곧이어 하녀를 뽑을 때를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불쾌함이 확 치밀어 올랐다.
감히 허락도 없이 남의 아내의 몸에 손을 대려 했던 괘씸한 놈.
역시 그때 손모가지를 하나쯤 작살내 놨어야 했다.
“이름이 알헨크였던가.”
“네, 네, 맞아요!”
겨우 잊고 있던 놈을 리시스가 다시 꺼내어 화제에 올린 것이 사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아내인데, 왜 다른 남자한테 관심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