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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너는 안 되지만 나는 돼 (66/153)

66. 너는 안 되지만 나는 돼2022.03.20.

키에르트는 리시스를 아예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놓고 입술을 부딪쳤다. 리시스는 못 이기는 척 입술을 받아주었다.

16549368571469.png“한 번.”

16549368571474.png“네, 한 번.”

리시스는 자신의 입술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키에르트를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무릎에서 내려가지는 못했다. 키에르트의 팔이 리시스의 허리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16549368571469.png“요즘 일정이 많이 바쁘다고.”

키에르트는 리시스를 무릎에 앉힌 채 공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리시스도 도망가며 승강이를 벌이느니 그냥 포기하고 몸에 힘을 뺐다. 잘 때 베어 봐서 아는데, 키에르트의 탄탄한 몸은 기대기에 참 적절한 몸이었다. 힘을 주면 튕겨나갈 정도로 단단하지만 힘을 풀고 있으면 쫀득하다. 사람 몸에 ‘쫀득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키에르트의 근육은 잘 숙성된 반죽만큼이나 찰기 있고 부드러웠다. 사람들이 반죽놀이를 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키에르트의 근육에 닿아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남자로서 다가오면 불안하고 불편한데, 닿아 있으면 편하다니.

16549368571474.png‘어?’

리시스는 퍼뜩 이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반대로 자신이 만지는 건 괜찮은 것 아닌가?

16549368571469.png“부부궁으로 쓸 궁은 결정했나?”

16549368571474.png“두세 개로 추려놨어요. 중간 지점에 있고, 너무 많이 수리하지 않아도 될 만한 궁이 꽤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자신이 먼저 키에르트를 만진 적은 거의 없었다. 남자와 손을 잡는다는 것만으로도 오그라들어서 시도를 할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이제는 손만 잡나? 입술도 마주친다. 손잡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무릎에 앉고, 팔 베고 자고, 마주 안기도 하니까.

16549368571469.png“궁만 정하면 나머지는 제롬이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쓸 것 없고. 황후궁 정비는?”

16549368571474.png“하녀들을 전부 새로 뽑을 수는 없어서 일단 수감된 하녀들 석방부터 시켜주려고요. 하녀들 중에서 수상한 사람은 다 골라낸 거죠?”

16549368571469.png“그 작업은 이미 끝났지. 암살 시도 사건은 그저 해이했던 거라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람은 없었어.”

신기하게 온몸의 근육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키에르트의 몸을 보면 알게 된다. 그저 턱관절을 움직여 말만 할 뿐인데 턱에 연결된 목이 움직이고, 쇄골이 흔들리고,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배와 팔도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빠진다. 생동감이 느껴졌다. 리시스는 홀린 듯 키에르트의 두툼한 팔뚝을 손끝으로 꾹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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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368571469.png“제각기 추천 받은 가문들과의 연관성은……, 응?”

16549368571474.png“……어.”

16549368571469.png“왜?”

16549368571474.png“……어…….”

키에르트는 리시스가 자신을 부른 줄 알고 말을 멈추며 내려다보았다. 리시스는 멍하니 키에르트를 마주보았다. 지금 키에르트의 팔을 찌른 것이 자신의 손가락인지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16549368571469.png“왜? 무슨 할 말 있어서 그런 것 아니야?”

16549368571474.png“……아.”

리시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머나. 미쳤나 보다. 리시스는 스스로의 정신상태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키에르트는 계속 용건을 기다리는 눈빛으로 리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이 급해진 리시스는 미친 상태 그대로 질문했다.

16549368571474.png“만져도 돼요?”

16549368571469.png“?”

리시스의 내면을 키에르트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일 얘기 하다가 갑자기 만지는 얘기가 왜 나온 것인지? 그동안 리시스의 널뛰기 화법에 꽤 익숙해졌음에도 이번 건 정말 모르겠다.

16549368571469.png“만지는 건 상관없는데……, 아.”

무심결에 허락하던 키에르트가 얼른 정정했다.

16549368571469.png“웬만한 곳만.”

16549368571474.png“웬만한 곳요?”

16549368571469.png“목만 조르지 않으면 돼. 명치를 찌른다든가.”

리시스의 돌발행동이 어디까지 갈지 키에르트는 아직도 끝을 짐작하지 못했다. 리시스가 자신을 죽이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 믿기는 하지만 해서는 안 될 짓에 대한 주의는 줄 필요가 있었다.

16549368571474.png“아, 네.”

16549368571469.png“그런데 갑자기 왜 만지려는 거지?”

16549368571474.png“아니, 그냥……, 만져보고 싶어 보여서?”

둘러대는 이유도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키에르트는 흔쾌히 팔뚝을 내주었다. 이제 허락도 받았겠다, 리시스는 당당하게 손을 올렸다. 손가락으로 찔렀을 때와는 다른, 단단하고 두터운 근육의 질감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16549368571469.png“……!”

키에르트는 본격적으로 만져대는 리시스의 손길에 당황스러워져 눈길을 사방으로 돌렸다. 별 생각 없었는데 막상 리시스의 손길이 닿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16549368571469.png‘당해보니 알겠다!’

키에르트는 왜 리시스가 자신의 손 하나 잡는 것도 쩔쩔맸었는지 깊이 이해해 버렸다. 다르구나. 시종들의 손길이나, 예법상 잡는 손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의식할 틈이 없어서 모르고 넘어갔을 뿐이었던 것이다.

16549368571469.png“자, 잠깐…….”

한 번 의식하니 계속 의식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지금까지처럼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키에르트는 몸을 뒤로 빼 리시스의 손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럴 때만 눈치 없는 리시스는 자연스럽게 키에르트의 몸을 따라가며 주물럭댔다.

16549368571474.png“그렇게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폐하 몸이 진짜 좋으시네요. 이 정도면 웬만한 장군들도 상대가 안 되겠어요.”

16549368571469.png“그, 그런가…….”

16549368571474.png“네, 이두, 삼두는 기본이라 쳐도 전완까지 꼼꼼하게 잘 키우셨네요.”

전문용어까지 나왔다. 전선에서 뼈가 굵은 리시스는 꽃처럼 자란 공주님들과 달랐다. 병영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일은 다 안다고 해도 무방했다. 밥만 축내는 공주가 되기 싫어 닥치는 대로 참견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남는 식재료로 죽 끓이는 법도 알았고, 칼의 녹을 제거하는 법도 알았다. 남자의 몸도 숱하게 보았다. 그러면서 근육의 구조와 훈련법 같은 것도 자연히 배웠다. 근육이라는 것이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갈고닦는 면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남의 근육이 가벼이 보이지 않았다. 지방보다 무거운 무게만큼이나 노력의 시간이 배어들어 있던 것이다. 리시스는 순수하게 키에르트의 몸에 감탄했다. 그러나 키에르트는 감탄을 가만히 받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16549368571469.png“황후, 잠깐만.”

급해진 손이 리시스의 손을 잡아 끌어내렸다. 한 손은 키에르트의 어깨 위에 올린 채로, 다른 손은 맞잡은 채로, 리시스는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왠지 다급한 키에르트의 얼굴에 갸우뚱하던 것도 잠시. 리시스의 얼굴이 확 굳었다.

16549368571474.png“……어. 폐하. 큰일났어요.”

16549368571469.png“음……?”

순식간에 너무 단단히 굳어버린 리시스의 얼굴에 키에르트는 당황하던 것도 잊었다.

16549368571474.png“……저희가 완전히 까먹고 있던 게 있었는데요.”

16549368571469.png“으, 음?”

16549368571474.png“……춤…….”

16549368571469.png“음?”

키에르트가 뭔가를 알아차리기에는 단서가 너무 적었다.

16549368571474.png“저희, 춤 연습 안 했어요.”

16549368571469.png“……아.”

리시스의 부연설명에 키에르트의 눈이 커졌다. 춤. 키에르트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허멀 후작이 황제궁에 들어오기 귀찮아서 일시 정지되었던 교양 수업. 거기에 포함된 중요한 수업 하나가 춤이었다.

16549368571474.png“이번 행사도 분명히 춤추는 시간이 들어가겠죠?”

16549368571469.png“……들어가지. 특히나 이번엔 병사들을 놀고먹게 해 주기 위한 행사니까, 더욱.”

그냥 밥만 먹는 자리에서도 춤이 꼈는데, 놀고먹으라고 깔아준 자리에서 춤이 빠질 리가. 키에르트도 사뭇 진지하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웬만한 매너는 허멀 후작이 말한 것처럼 키에르트에게서 배웠다. 테이블 매너나 일상적인 부분은 어렵지 않게 몸에 익혔다. 하지만 춤은 따로 시간을 내어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행사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안에 춤만 배워도 될까 싶은데 그 사이에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부부궁이야 천천히 준비한다 쳐도, 리시스의 황후궁 복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무방비하게 대비할 수도 없었다. 저번엔 만찬이었기 때문에 키에르트와 한 곡만 추고 퇴장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사교파티니 다른 사람과도 춤을 추어야 했다. 그때 황후가 춤을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이 까발려지는 것은 체통에 큰 문제가 된다.

16549368571474.png“일단은……, 시작할까요?”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것보다, 조금이라도 가진 패가 있는 쪽이 낫다. 곧장 허멀 후작이 소환되었다. ***

16549368705104.jpg“아. 이런. 춤 배우시는 걸 깜빡 하셨다고요.”

16549368571474.png“급하니 둘이서 하는 것보다는 가르쳐 줄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쪽이 나을 것 같아서 불렀어.”

허멀 후작은 갑작스러운 소환에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16549368705104.jpg“잘하셨습니다. 옆에서 누군가가 보면서 알려주는 쪽이 더 빨리 늘 수 있지요. 남들은 몇 년씩 배우는 걸 며칠 만에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침착하면서 냉정했다. 황제 부부는 준비 소홀의 책임감을 나눠가지며 말을 아꼈다.

16549368705104.jpg“저번에 황후 폐하께서 겪으셨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 같습니다만.”

16549368571474.png“어, 괜찮아졌어. 아무 문제없어!”

남자 손은 상상만으로도 못 잡던 리시스를 떠올리며 한 염려였다. 리시스는 정말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키에르트의 손을 덥썩 잡고 붕붕 흔들어 보였다. 리시스는 정말 괜찮았다. 키에르트가 괜찮지 않았다.

16549368571469.png“…….”

키에르트는 느닷없이 덥썩 잡힌 손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걷어 쳐내지는 않았지만 잡힌 손부터 몸이 서서히 돌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이라는 이름의 돌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키에르트가 황태자 시절부터 받아 온 조기교육의 성과가 이런 데서 쓸데없이 발휘되었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 리시스와 단둘이 있을 때엔 자신도 모르게 그 법칙이 무너지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리시스 외에도 허멀 후작이 있었다. 덕분에 겉으로 보기에 키에르트는 긴장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한 모습이었다.

16549368705104.jpg“좋습니다. 폐하께서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16549368571469.png“……그러지.”

그러나 자신은 없었다. 이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허멀 후작은 차근차근 리시스에게 기본 스텝부터 시작해 수업을 진행했다. 리시스 혼자 배우는 부분은 이전의 교양 수업과 마찬가지로 진도가 쭉쭉 빠졌다. 병사들만큼 몸을 갈고닦은 것은 아니지만 타고난 운동신경이 빛을 발했다. 허멀 후작은 훌륭한 제자의 성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6549368705104.jpg“좋습니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그럼 이제 두 분 함께 추는 것으로 넘어가 보시겠습니까?”

문제는 키에르트와 합을 맞추는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16549368705104.jpg“……폐하?”

16549368571474.png“폐하?”

두 사람의 부름에 키에르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손을 마주잡고 올려다보고 있는 리시스와 눈이 마주쳤다. 곁눈으로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허멀 후작도 보였다. 자세를 잡는 것까지는 기계적으로 했다. 그러나 눈을 들어 리시스를 마주본 순간, 키에르트의 내면은 그만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6549368571469.png“……아. 잠깐.”

맞잡은 리시스의 손의 감촉만 느껴져서 뵈는 것이 없었다. ……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키에르트는 입을 달싹이다 겨우 말 같은 말을 지어냈다.

16549368571469.png“……졸았어.”

그것 또한 말 같지 않은 것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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