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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68화 (468/470)
  • 제468화

    468화

    “화살은 만들어놓기만 하고 이번에는 못 써먹었네? 많이 만들어놔서 이런 전투를 몇 번은 더 해야 할 텐데.”

    린린은 어느새 화살이 재고로 남을까 봐 그 걱정을 하고 있었고 아진은 수적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무대회와 수적 토벌 문제가 사라지고 나자 이제는 화살 재고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그 후에는 또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터였다.

    “산본의가에 돌아가고 싶다. 지루해. 밖에 나와서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건 이틀 정도가 한계인 것 같아.”

    린린은 남아있는 일정이 지겹다는 듯이 말했고 아진은 그만하면 린린이 정말 잘 참았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나온 김에 설인정을 보고 가려고 했는데.”

    “그래? 그럴까, 그럼?”

    린린의 눈이 금방 빛나는 것을 보며 아진이 린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는 참 다정다감한 천마야. 역대급으로 그럴 거야. 어떤 천마가 너처럼 수하를 못 잊어서 수하가 다시 태어난 후에도 쫓아다니면서 챙길까.”

    린린이 그런 말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런 거였는데 역시나 린린은 그냥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해서 가 보는 거라며 끝내 바락바락 우겼다.

    “말도 한대. 발달 과정이 전부 다 빠른가 봐.”

    “그럼. 당연하지. 누구 수한데.”

    린린은 그때부터 빨리 설인정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는 듯했다.

    그래서 비무대회가 끝나는 것을 그 누구보다 기뻐하고 북리의천보다도 더 빨리 가버렸다.

    * * *

    독고소영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린린의 시선은 독고소영의 옆에 있는 하연에게 가 있었다.

    하연은 린린이 그곳에 온 후 자꾸만 린린에게 가려 했고 독고소영은 린린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끌어다가 옆에 앉혀두는 중이었다.

    린린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그냥 놔두라고 하지는 않고 신기한 듯 하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연은 어머니가 자기를 다시 끌어다 옆에 앉혀놨는데도 또 린린에게 걸어갔다.

    린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구나 하면서.

    아진은 그런 린린을 보고 린린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웃어버렸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고 지금 린린이 딱 그런 꼴이었던 것이다.

    “린린 기저귀 갈아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진이 그러자 린린이 기가 막힌다는 듯 아진을 보았다.

    본좌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거만하게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하연이 아장아장 걸어와서 린린의 목을 꼭 끌어안자 독고소영이 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우리 연아가 오늘따라 왜 이럴까?”

    독고소영은 린린이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불편하게 하는 게 싫었는데 하연이 오늘따라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런 아이였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평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더욱 난감했다.

    “그냥 두시지요. 사고님. 연아가 린린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린린도 아이를 좋아해요. 자기가 예뻐하는 아이만 좋아하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연아는 확실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린린. 정말 괜찮아?”

    “네.”

    그러고는 린린이 하연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반듯하게 세운 채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독고소영은 하연이 놀라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자기도 린린이 그런 식으로 똑바로 바라보면 긴장이 될 것 같은데 저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울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연은 린린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만지고 주물럭거렸다.

    독고소영은 그 모습을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당장 린린이 화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하연을 다시 데려오려는데 린린이 그대로 얼굴을 대주고 있었다.

    “본좌의 얼굴을 이렇게 함부로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얼굴이 잡힌 린린이 말했다.

    “좀 안아줘 봐라. 린린.”

    “나는 아이를 잘 못 안는데.”

    “들어 올리지는 말고 그냥 안아주기만 하면 되잖아.”

    “그러면 답답할걸?”

    “답답하면 울겠지. 그러면 바로 놔주면 되고.”

    린린은 자신 없다는 얼굴로 한 번 갸웃거리더니 하연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러면 좋겠냐는 얼굴이었는데 하연이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먼저 린린을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린린이 하연을 안아주었고 하연은 너무 기분이 좋은 듯 무릎을 구부리면서 춤을 추듯이 좋아했다.

    “어머. 연아가 이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나랑 있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연아야. 이러면 어미가 서운하지 않니?”

    독고소영의 말에도 불구하고 하연은 린린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린린도 못 이기겠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고 아진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귀여운 아이가 재롱을 부리는 것 같겠지만 사정을 알고 있는 아진은 그 모습이 흐뭇했다.

    설인정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오랜만에 이루게 된 소원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애틋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왜 이렇게 서두른 거야? 오는 김에 의천이랑 같이 오지.”

    독고소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말했고 그때마다 아진과 린린은 애매하게 웃었다.

    “사고님이 너무 뵙고 싶어서 그랬지요. 연아도 보고 싶었고요.”

    “정말? 의천은 안 보고 싶었고?”

    “스승님은 거기에서 많이 뵈었으니 되었습니다.”

    “나야 당연히 고맙지만 생각도 못 한 일이라서. 그런데 연아를 한 번 보고 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는 할 거야. 정말 너무 귀엽잖아. 나는 잠시도 연아랑 못 떨어지겠어. 그런데 의천은 연아를 산본의가에 보내면 어떠냐고 해. 산본무관에서 가르치면 좋을 것 같지 않냐고. 물론 지금 당장 그러자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삼사 년 정도가 지나면 보내고 싶은 모양이야.”

    “산본무관에서 가르치고 싶다고 하세요?”

    아진이 희한하다는 듯 묻자 독고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내가 허락을 안 해서 의천도 그냥 말만 그렇게 하고 있는 거기는 한데…… 아진은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하는 게 좋을까?”

    많은 명문무가에서도 산본무관으로 사람들을 보내는 실정이기는 했다.

    처음에는 외부 무사나 방계를 보내더니 직계혈족의 삼남이나 차남을 보내는 일이 생기다가 나중에는 장남을 보내는 곳도 있었다.

    산본무관의 교두들 실력이 뛰어난 것도 증명이 되어 있었고 산본무관 출신으로 수도에 진출해 무관이 된 이가 많다는 것도 작용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산본무관이 산본의가의 지근거리에 있어 가끔씩 그곳에 오는 아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게다가 명문무가의 자제들이 한두 사람 산본무관에 오가면서 그곳에 오면 그들과 교류를 하며 자연스럽게 인맥을 넓힐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 되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스승님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시면 하시도록 해드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하신 것이 있겠지요.”

    그러자 하연이 독고소영에게 가서 독고소영을 안아주었고 독고소영은 하연이 뭔가를 알고 그러는 것 같다면서 희한하게 여겼다.

    “연아야. 연아는 산본무관에 가고 싶어? 산본무관에 가서 그곳에서 배우고 싶어?”

    “웅!”

    “그러면 이 어미와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

    “응!”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하는 말에 독고소영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하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연아가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은데.”

    “참아. 어머니.”

    아진은 하연 속의 설인정을 알고 있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독고소영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웃지도 못했다.

    “연아 샨본무간에 갈 거야.”

    “어머니가 안 가도 정말 괜찮은 거야?”

    “웅!”

    “그래도 지금은 너무 어려서 안 되고 어차피 몇 년은 기다려야 돼. 이리 와. 연아야.”

    그러면서 독고소영이 하연을 안으려 하자 하연이 린린의 등 뒤로 도망쳤다.

    독고소영은 정말 서운해지는 얼굴이었다.

    “부르시지 않느냐.”

    린린이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하연이 독고소영에게 갔고 독고소영은 린린이 하연에게 그러는 게 못내 서운한 듯했다.

    아진은 하연이 설인정이라는 사실을 계속 그들에게 비밀로 하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하며 린린에게 전음을 보냈다.

    [린린. 이제 사고님도 아셔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하연을 가르치려면 그걸 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야.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분들이고.]

    린린은 아직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아진이 몇 번 더 말을 하자 그러면 오라버니가 알아서 하라며 한발 물러섰다.

    스승님이 도착하면 한 번에 말을 할까 하다가 아진은 그냥 사고에게 먼저 말을 하기로 했다.

    “사고님. 그동안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은 미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독고소영은 긴장된 얼굴로 아진을 보았다.

    아진이 웬만해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긴장이 되었을 터였다.

    독고소영은 말해보라고 하기 전에 일단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래. 아진아. 준비된 것 같아.”

    “언젠가 제가 설인정 루주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그 일을 기억하고 계실지요?”

    “설인정……? 루주?”

    독고소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언제 들은 걸까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아진이 설인정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자 아아 하고 탄성을 냈다.

    “맞아. 그랬지.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래. 생각나.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그 일로 린린이 마음 아팠을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어.”

    그러다 독고소영이 이상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 이름이 나올 이유가 뭐가 있을지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연아요. 연아가 설 루주입니다. 연아가 설 루주의 환생입니다.”

    “…….”

    독고소영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웬만한 얘기라면 그녀는 의심도 하지 않고 아진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아진이 한 말이라고 해도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연아가 설 루주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데?”

    의혹을 지우지 못하는 독고소영을 보며 아진은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해 주었다.

    그러자 독고소영은 아진이 그녀를 보러 왔을 때 놀랐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면 그때 알고 있었던 거야?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린린을 불렀었지. 린린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그런 거였구나.”

    그렇게 하고 보니 하나하나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이해가 되었다.

    “린린. 린린도 알고 있었던 거지?”

    “네.”

    그러자 독고소영이 린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음을 지었다.

    “린린. 그 일을 생각하면 나도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는데…… 이제는 좋지?”

    “네.”

    린린이 말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독고소영의 표정이 부담스럽고 이럴 때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독고소영도 그런 마음이 이해가 된 듯했고 이번에는 하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연아도 알고 있을까?”

    “그럴 것 같습니다.”

    아진이 말하자 린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아도 아마 지금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모르는 척하는 것 같습니다.”

    하연이 움찔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착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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