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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67화 (467/470)
  • 제467화

    467화

    부상을 당한 채 물에 빠지는 바람에 도종이 빠진 곳이 잠시 붉게 물들었다가 흩어졌다.

    “죽었나 본데요, 두목?”

    “이자가 서도진의 형이라더니 꼴 좋게 됐습니다. 비무대회에서 우승한 자라고 하던데 이런 자를 우리가 잡았으니 앞으로 아무도 우리를 함부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형님.”

    수적들은 어렵사리 싸움을 끝내놓고 이제 남은 배도 처리하자고 생각했다.

    그때 아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진이 아주 가까워질 때까지도 그가 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도종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면만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배가 부서질 것처럼 요동하고 갑판에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아진을 발견했다.

    “……!!”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상황에 말을 제대로 잇는 이도 없었다.

    아진은 대화를 하는 대신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에게 소도를 날렸다.

    이미 소도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는데 시간을 끌며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 있던 이들은 그 상황에 경악성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서도진은 정파에 속한 자가 아니던가.

    정파네 아니네 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는 일을 보면 정파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앞뒤 가리지도 않고 얘기를 들어보려 하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칼을 날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진은 그러는 동안 우두머리에게 다가와 소도를 회수했다.

    그사이에 아진을 막아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에 도종이 뱃전에서 떨어질 때까지만 해도 이겼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아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물속으로 몸을 날렸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상상을 하는 것은 가능했다.

    소도를 날리고 그 후에 도종이 물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던졌으니.

    “혹시 소도가…….”

    누군가 말을 하면서 아진이 빠진 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두머리가 칼에 찔렸지만 그를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적들은 자기들의 무기를 손에 든 채 수면을 주시했다.

    서도종은 부상을 입고 빠진 거라고 하지만 서도진은 달랐다.

    “그자가 수면에 나오는 순간 일제히 활을 쏴라!!”

    우두머리가 죽은 후 가장 서열이 높은 자가 말하자 활을 든 이들이 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며 수면을 노려보았다.

    그러고 한동안 아무도 나오지 않자 그들의 얼굴에 일말의 기대감이 감돌았다.

    죽어버린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을 때 갑자기 수면에 포말이 일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볼 것도 없이 서도진 형제였다.

    수적들은 그 자리에 있다가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물속으로 숨으면 그래도 조금은 살아날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바람이었다.

    도종을 어깨에 걸친 채로 아진이 수적들의 배를 향해 검강을 날렸다.

    수십 장이나 솟구쳤던 강물이 쏟아져 내리고 그 주위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아진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무린과 양민들이 타고 있는 배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들은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갈렸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던 무인들은 아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그때까지 사람들을 도륙하던 간자들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뒤집혔다.

    아진은 도종을 내려놓고 그에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도종의 몸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는 것을 보았다.

    옷을 입고 있어서 상처가 아무는 모습이 직접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예상했다.

    과연 서도진이라고 생각하며 무인들은 간자를 잡아 꿇어 앉혔다.

    “뒷일은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아진은 자기가 소도를 통해 흑암괴에게서 얻어낸 정보를 말했다.

    “놈들의 소굴이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신법을 잘하는 분이 먼저 가서 관군의 도움을 청하십시오. 다른 이들도 그곳으로 집결하도록 할 테니 먼저 서둘러주십시오. 오늘 그곳을 칠 것입니다.”

    아진의 말에 그들은 아진이 언제 그런 것까지 알아낸 걸까 하면서도 다른 얘기를 묻지 못했다.

    아진이 도종을 그들에게 맡긴 채 그대로 그곳을 떠난 탓이었다.

    남은 곳은 두 곳이었다.

    아진은 수적이 출몰한 두 곳에 모두 가 보았고 남은 두 곳에서는 모두 수적을 전멸시킨 것을 확인했다.

    확실히 실전의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진은 북리의천이 있는 배로 내려섰다.

    “스승님.”

    “그래. 아진아. 다른 곳은 어떻더냐. 우리도 다른 곳으로 가 보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알고 있느냐.”

    “예. 스승님.”

    아진은 수적들이 나타난 곳이 모두 네 곳이며 다른 세 곳도 이제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술법으로 알아낸 모양이구나.”

    “그게…….”

    소도가 알려 주었다는 말을 하기에는 시간이 없어 우선은 수적들의 소굴로 향하도록 하고 아진은 제일조를 불러 각각의 포구에서 출발한 무인들에게 전서를 날렸다.

    “린린에게는 바로 오라고 해줘.”

    그러나 특별히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린린이라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올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그 후의 일은 오히려 거칠 것이 없었다.

    수전이 아니라 뭍에서의 싸움이었다.

    배에서 싸우는 것은 지긋지긋했다며 무인들은 그 한풀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검을 휘둘렀다.

    관군은 함께 나설 필요도 없었다.

    비무대회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무인들은 이렇게나마 공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으로 여겼다.

    서로 앞다투어 검을 휘두르고 달려 나가는 바람에 수적들은 숨을 틈도 없었다.

    강호의 명숙들은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그 모습을 모두 지켜봐 주기만 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으니 아진은 더 이상 나설 필요도 없었다.

    “다른……, 다른 자들이 숨어 있는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누군가 소리치자 강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기세를 늦추지 않고 검을 휘두르던 자들이 아진을 돌아보았다.

    이런 경우에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것이 없어서 그에게 묻고 싶은 거였다.

    “들어보는 것이 어떨지요, 소협. 이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적 패거리가 더 있지 않습니까.”

    이 기회에 전멸을 시키자는 생각으로 몇 사람이 말했다.

    문제는 그런 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거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다가 그들을 동류로 몰아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을 한 사람들이 아진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저자가 하는 말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습니다.”

    아진은 망설이지 않은 채 소도를 날렸다.

    그러자 이번에도 여지없이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인지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두 알 수 있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진이 얘기를 듣지도 않고 소도를 날린 것에 놀란 듯했다.

    아진에 대해 얘기만 들었던 사람들은 특히나 더 놀라며 아진을 겁냈다.

    “독장을 날리려고 해서 그런 것입니다. 수적이 독공을 익혔다니 희한한 일이군요.”

    아진의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그에게 공격을 당한 사람이었다.

    독장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껏 무공을 익히지도 못하고 수적질로 살아왔던 그에게는 얼토당토않은 얘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진이 하는 말을 믿었다.

    아진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 사실을 알았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두 그에게서 물러났다.

    린린만이 그 모습을 희한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장소를 이동했다.

    아진의 말을 듣고 새로운 장소로 수적들을 찾아가는 거였는데 사람들은 아진이 섭혼술과 같은 술법을 써서 알아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린린은 아진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그에게 다가왔다.

    [뭐 한 거야?]

    [이 오라버니는 모든 걸 알지.]

    [웃기지 말고 제대로 말해봐. 어떻게 한 건데?]

    [폐하가 주신 소도 말이야. 그거 이상해.]

    [소도?]

    아진은 수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의 일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린린이 신기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소도가 오라버니에게 말을 걸어?]

    [아니. 누군가를 찌르면 그 사람의 기억이 나한테 전해지는 모양이야. 그런데 얼마나 유용한지 모르겠어.]

    [그러기는 하겠네. 이번에는 적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으니까 바로 소도를 날릴 수 있었던 거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잖아.]

    아진도 그 생각을 하던 차여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도가 전해준 기억이 정확하다는 것은 새로 도착한 곳에서 수적들을 발견하고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여러 사람의 기억을 얻을 수 있었고 그렇게 상당히 많은 곳을 토벌할 수 있었다.

    토벌을 당하는 수적들 중에 자기들만 토벌 당하는 것을 좋게 여기는 자들은 없었고 그들은 다른 수적들의 본거지를 경쟁적으로 쏟아냈으며 아진은 그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효과가 좋았다.

    게다가 사련의 비무대회 참가자의 수가 많다는 것은 더 유용했다.

    그런 일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무림인이 한곳에 모이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 하늘이 내린 기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비무대회 참가자들은 다른 상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 비무대회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 두고두고 할 이야기가 생겨날 것 같았다.

    성주들마다 수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무림인들을 치하했고 양민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대했다.

    아진은 수적의 소굴에 갈 때마다 소도를 시험했고 그때마다 소도는 단 한 번도 아진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소도의 효과는 확실했다.

    일단 몸에 박으면 찔린 사람의 기억을 전해준다는 것.

    “린린. 이거 너 줄까?”

    수적 토벌이 거의 끝났을 즈음 아진이 묻자 린린이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쓸모가 없을 것 같아. 나는 마음이 약해서 사람을 잘 못 찌르잖아. 그러니까 소도를 써먹을 수가 없지.”

    “…….”

    아진은 가증스럽다는 듯이 린린을 보았고 린린은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정말 필요 없어?”

    “응. 나는 섭혼술을 하면 되니까 그냥 오라버니가 가지고 다녀. 섭혼술을 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해서 유용할 것 같아.”

    “그래서 네가 가졌으면 하는 건데.”

    “아냐. 아냐. 괜찮아. 나는 앞에 나서는 일 안 할 거야. 그런데 오라버니는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줘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오라버니가 가지고 있어. 잘된 것 같아. 황제 폐하가 가끔씩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 같아.”

    황상이 들으면 서운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린린이 소도를 한 번 바라보았다.

    “오라버니한테는 희한한 게 자꾸 꼬이는 것 같아. 신기하네.”

    아진 역시 그 말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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