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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66화 (466/470)

제466화

466화

서도진의 검이 그대로 흑운괴를 노리고 들어와 가슴팍을 베어 냈다.

“살려줘! 나를 살려두면 쓸모가 있을 것이다. 너는 나를 통해서 알아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으냐!!”

그가 소리치자 서도진이 웃었다.

“말을 하는 데 팔은 필요 없지. 안 그런가? 다리도 그렇고 말이다.”

그 말을 하더니 빠르게 여덟 번의 검격을 가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런 고통을 다시 느끼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데 포기해버리면 영영 죽게 될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았다.

그러는 동안 뜻밖에도 어디선가 강기가 날아왔다.

서도진을 노린 것이다.

‘아니. 서도진을 노렸다고 해도 서도진만 죽는 것도 아니잖아!’

그가 원망을 할 틈도 없이 강기는 빠르게 덮쳐들고 있었다.

그가 고용한 고수였다.

설마 그자에게 그 정도의 용기가 있었나 할 정도로 놀라운 일격이었다.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이미 서도진의 공격에 휘말려 쓰러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흑운괴를 베어내고 그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던 아진은 상상하지 못했던 공격에 깜짝 놀랐고 내공을 다시 움직여 공격을 시작하기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생각난 것은 품 안에 있던 소도였다.

황제에게 받고 꺼내두려고 하다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어 늘 가지고 다니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잠깐 정신을 분산시키는 정도면 될 것이라 급히 소도를 날리자, 아진이 흑운괴를 베면서 동시에 순간적으로 반격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사파의 고수가 뒤로 몸을 풀쩍 날렸지만 날아가는 소도를 피하지는 못했다.

아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기는 했다.

앞뒤 생각하지 못하고 급하게 던진 소도로 그의 주의를 흩어지게 만들겠다는 정도였지 소도가 그대로 날아가 몸에 박힐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힘을 주어 던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진의 손을 떠난 소도는 기어이 그에게 날아가 꽂혔다.

사파의 고수가 강한 자력을 가지고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엄청난 기억의 해일이 아진의 머릿속을 덮쳤다.

그것은 절대 아진의 것이 아니었다.

아진이 본 적도, 아진이 들은 적도 없는 말.

경험하지 않은 일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혹시 저자의 기억……?’

그러나 그것이 놀라운 게 아니라 지금 왜 그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게 문제였다.

‘설마…… 소도 때문에?’

아진은 그를 향해 다가가 그의 목을 치고 소도를 뽑아 들었다.

흑운괴는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팔다리가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 틈을 타서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지만 도망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흑운괴에게 돌아온 아진이 주저하지도 않고 그의 가슴팍에 다시 소도를 밀어 넣었다.

여기에서 지체한 시간 때문에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다시 일어났다.

흑운괴가 보고 들은 것들이 아진의 머릿속을 덮쳤던 것이다.

아진은 그 잠깐의 일로 인해 수적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차렸다.

흑운괴는 서도진이 자신을 베고 그대로 떠나 버릴 거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직 서도진과 협상할 것들이 남아있었는데 왜……!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흑운괴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진은 함께 온 무림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기가 먼저 떠날 것임을 말하고 그대로 강변가로 몸을 날렸다.

신기에 가까운 술법으로 물을 차고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모두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서두릅시다. 우리도 최대한 서둘러서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서 소협이 있었지만 다른 곳은 어떨지 모릅니다. 이미 괴멸한 곳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격이 시작됐을 때 가장 선두에서 공격을 막아 내던 이가 사람들을 독려했고 다른 이들도 정신이 든 듯 그때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하마터면 그래도 몰살할 뻔했던 이들이 모두 힘을 합쳤고 배가 다시 움직였다.

새로운 삶이 이어질 거라는 것을 대변하듯이.

* * *

도종은 오랜만에 비무대회에 나왔다가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 하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사람들은 도종이 지난 비무대회 우승자라며 그에 대한 기대가 엄청났다.

도종은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그렇게 높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부담감을 크게 느꼈는데 그것도 배에 오르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일단 배에 오른 후에는 멀미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운기를 해서 기운을 좀 차려보려고 해도 운기조차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뱃전에서 고생하며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배를 타고 가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먹기만 하면 토하기 바쁘니 먹고 싶은 의욕도 생기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수적의 공격을 받았다.

화살이 날아왔지만 각자가 검격으로 막아 냈다.

균형을 잡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배가 이리저리 요동쳤다.

도종은 이제 자기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힘을 내며 도종은 아진을 생각했다.

지금 아진이 와 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마나가 갑자기 듣지 않게 됐을 때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유롭게 할 수 있던 일이, 물 위의 싸움이라는 것 때문에 제약을 당했고 시간이 갈수록 승부는 점차 명확하게 갈리는 듯했다.

그들 중 수적의 배로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러는 동안 수적의 목표가 될 것이고 그러는 동안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가 되어 강에 빠질 수도 있었다.

무모한 일이다.

도종은 이렇게 계속해봐야 힘만 빠질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같은 공격과 방어를 계속했다.

이게 결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는 없어서 그러는 것뿐이었다.

빨리 좋은 생각이 나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멈추면 그곳으로 곧바로 공격이 밀려들 터였다.

그러는 동안 한 사람이 쓰러졌다.

그렇게 생겨난 자리로 공격이 퍼부어졌고 연달아 몇 사람이 같이 쓰러졌다.

불화살 몇 개가 날아오고 갑판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그것을 끄느라 매달렸다.

도종은 자기가 수적의 배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결국 배에 있는 모두가 몰살당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바다로 내려서자 갑판에 있던 사람들이 수적이 탄 배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도종이 자기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처음과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다.

옆에서 동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자기들도 수적의 배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을까 하며 움츠러들었던 이들이 이제는 자기들이 맞더라도 도종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적들은 도종이 자신들의 배로 올라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도종은 호신강기를 두르고 동시에 신법을 펼쳐 배로 향했다.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쳐내는 것까지 성공했지만 그는 그 후의 일을 장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도종은 지금도 후회하고 있었다.

비무대회에 나오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전에는 아진이 옆에서 도와줘서 한 거였지 자신은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도종이었다.

‘잘못 왔어. 잘못 왔어.’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최선봉에 설 사람이었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수적들에 의해 무고한 인명이 스러져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지 않았는데 사련의 비무대회를 통해 수적을 척결할 거라고 했을 때 얼마나 피가 끓었던가.

이렇게 하고 나면 랑랑이 물려받게 될 세상이 조금은 평화롭고 안전하지 않을까 하며 그는 기꺼이 이곳으로 왔던 것이다.

도종이 갑판에 내려섰을 때 수적들은 긴장한 채 칼을 휘둘렀다.

곳곳에서 희한한 병장기를 든 자들이 그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도종은 그런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배운 것이 그런 것이니 배운 것을 하는 것뿐이었다.

한꺼번에 사방팔방에서 그를 압박하고 들어왔지만 그것도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산본의가에서는 그보다 더 심한 방식으로도 훈련을 해 왔기에 산본의가에서 훈련한 것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적의 배에 올라오자 그때부터는 좀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도종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적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이들이 도종에게 소리쳤다.

“저 배에는 간자가 있다. 이제 곧 저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 다 죽을 것이다. 우리는 죽어도 우리 동료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네놈과 네놈의 가족을 전부 다 죽일 것이다!!”

악독한 말에 도종은 힐끔 돌아보았다.

자기가 타고 있던 배에 간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간자가 혼란한 틈을 타서 사람들을 공격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피할 수가 없을 터였다.

도종은 수적들이 자신의 주의를 다른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니었다.

수적들의 공격이 일시적으로 멈췄는데 건너편에 있는 배에서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싸움도 아니었다.

몇몇이 사람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고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배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삼아 무인들을 겁박하는 것 같은데 인질 때문에 무인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오래 보고 있을 틈도 없었다.

도종은 그곳으로 가서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가 돌아가는 동안 수적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턱이 없었다.

도종은 속으로 탄식하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쥐어짜 냈다.

그러는 동안 수적들이 빈틈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것처럼 도종에게 덤벼들었고 도종은 그때마다 그들을 베어 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끝을 내야 돌아갈 수 있다.’

도종이 그 생각을 하며 검강을 펼치려고 했을 때 희한한 무기가 날아들었다.

위도가 서악에게 만들어준 부메랑이라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왔는데 엉겁결에 검으로 치자 폭음이 났다.

그러나 날아온 것은 하나가 아니었고 도종이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동안 날아온 또 하나의 무기가 도종의 팔을 깊이 벴다.

“윽!”

도종이 놀라며 뒤로 물러서자 그 틈을 노리고 주위에 물러서 있던 자들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떨어진 것을 보자 무기의 한 면에 날카로운 칼날이 붙어 있었다.

한 번의 실패가 뼈아픈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부터 도종이 막아내지 못하는 공격이 계속 생겨났고 도종은 점점 뒤로 밀리다가 그대로 물에 빠졌다.

“나오지 못하도록 화살을 날려라!”

금방이라도 다 죽을 줄 알았던 우두머리는 도종이 물에 빠지자 신이 나서 소리쳤고 배 위에 있던 이들은 활을 들고 수면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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