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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65화 (465/470)

제465화

465화

갑판에 있던 사람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선실 앞에서 쓰러지고 뒤엉킨 사람들이 있기는 했어도 결국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사람들이 선실로 들어가고 갑판에는 이제 삼사십 명 정도의 무림인들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아직 자기들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만 소극적으로 막고 있었고 확실하게 상황을 바꿀 생각으로 나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아악!!”

그때 갑자기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허리에서 붉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가 울부짖었다.

화살이 박힌 것인가 했지만 화살도 없었다.

그러나 화살이 스치고 지나간 거라고 하기에는 피도 많이 나왔고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듯했다.

무슨 일인가 하면서 그를 보던 사람들 중 몇이 화살에 맞았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큰 혼란이 야기됐다.

처음부터 검막을 만들어냈던 사람은 이제 힘 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선실로 피한 것을 확인하고 이제는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듯했다.

새카만 화살 무더기가 멈추고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아진은 세 척의 배들이 서로 붙은 것처럼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 불화살입니다……!!”

누군가 소리쳤고 상대의 배에서 불길이 번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불화살이 날아왔다.

배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공격이라니.

아진은 수전이 절대로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불붙은 화살은 처음에 날아온 화살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이번에야말로 끝내버리겠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보통의 수적들이라면 재물을 노리거나 몸값을 받을 목적으로 사람을 납치하는데 이번에는 사련의 비무대회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그런 것인지 그냥 배를 공격해 가라앉히려고 하는 듯했다.

‘이곳에 간자는 없었던 건가?’

아진이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몇 개의 불화살이 갑판에 날아와 꽂혔다.

“불을 꺼야 합니다!!”

“불을 먼저 끄세요!”

여기저기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오자 선실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불화살이 날아들고 있는데도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갑판으로 튀어나온 그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두 팔을 흔들어댔다.

미친 것인가 하면서 사람들이 피하라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폴짝 뛰기까지 하며 팔을 흔들어댔다.

아진은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 듯했다.

간자.

이쪽의 정보를 모아두었다가 수적에게 알려주기 위해 선박에 몸을 실은 이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화살이 날아들자 자기가 여기에 있으니 불화살은 쏘지 말라고 그렇게 애절하게 팔을 저어대는 모양인데 그 간절함은 닿지 않았다.

마치 보란 듯이 불화살이 날아와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아진은 아무리 그래도 일부러 의도하고 그렇게 맞춘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거리도 상당했고 다른 것은 제대로 조준이 안 돼서 강물로 떨어지는 것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산적 중에 그만한 고수가 끼어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쨌건 간자는 그렇게 죽음을 당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들도 아진이 생각한 것을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동료를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자들.

그 생각으로 동요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듯했다.

실전 경험이 많지 않고 사람을 죽여 본 적도 없이 지금껏 수련만 해온 이들이라면 이런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한 번으로 끝을 내려고 하는 것처럼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던 불화살의 뒤로 불을 머금지 않은 다른 화살이 더 날아왔다.

그중 몇 개의 화살은 특별히 더 위력적이었다.

그들 중에 무림인이, 어쩌면 상당한 고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진은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진은 린린이 가르쳐준 적이 있던 무공을 펼쳐 구름을 불러 모았다.

가까운 곳에 구름이 있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불러들일 수가 있었고 사람들은 배 위로 비가 쏟아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기사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인가 하는 표정을 짓던 사람들은 그러고 있을 게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배를 몰아라! 저자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비무대회에 접수하고 함께 이곳으로 온 이들이 선원들에게 소리치자 선원들도 급하게 움직였다.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으니 이제 수적들이 탄 배가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들이 탄 배는 오히려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비가 내린다고 해도 수많은 화살을 막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한 번에 몇 개씩을 동시에 날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갑판에 올라와 있는 자들의 수가 적지 않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날아드는 화살의 수는 너무 많았다.

제한된 장소에서 일방적인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아진은 맞기만 하는 역할에 점점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이 싸움이 마지막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여기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어 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계속 이렇게 있을 수가 없었다.

아진이 배 밖으로 몸을 던지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기함을 터뜨렸다.

“공자님!”

“의원님!!”

“서 소협!”

각자 아진을 불렀지만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대신 그의 몸이 물 위를 달려 수적들이 탄 배를 향해 달려 나가자 그들은 얼이 빠진 모습을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 놀라움은 수적들에게도 번졌다.

그들은 설마하니 아진이 물을 밟고 달려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듯했다.

구름을 불러들여 비를 내리게 하고 그 비로 불길을 껐는데 왜 그때까지도 틀에 갇혔을까.

아진의 경공은 기이할 뿐만 아니라 속도도 빨랐다.

“저자가 등평도수를……!!”

수적단의 우두머리 흑운괴는 어떻게든 빨리 정신을 차리고 서도진을 막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사련의 비무대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그들이 자기들을 노린다는 것 역시 알았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겁을 내는 대신 이번에야말로 사련을 박살 내고 사파 연합을 구축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었다.

역겨운 정파놈들을 도륙 내 버리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거라고 생각하며 꿈을 꾸기도 했다.

이름난 사파 고수도 영입을 해서 서도진이 가는 곳을 알아두고 일부러 여기로 온 것인데…….

“빨리 배를 돌려라. 빨리!”

뭍에서 날고 기던 사람들도 일단 물 위에서 싸우면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한 암초에 부딪히고 수세에 몰리게 마련이었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당황하며 조금씩 움츠러드는 것은 승부를 뒤집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껏 이들의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수적이 완전히 토벌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흑운괴는 아직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죽음이 찾아오는 그 순간까지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터였다.

흑운괴의 수하들이 배를 돌리려 했지만, 어느새 서도진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서…… 서도진…….”

죽립을 쓰고 있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 않았다.

흑운괴는 말을 해 보려 했다.

그러나 서도진이 벌이는 일 때문에 그럴 틈이 없었다.

서도진은 말을 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기가 분노와 짜증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그 강기에 두 척의 배가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렸다.

수전에 능한 그들이라고 하더라도 의지할 것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배가 부서진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버릴 수는 없는 것일 텐데 서도진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수면 위로, 수하들의 시체가 떠올랐다.

단순히 물에 잠긴 것이라면 살아있을지 모른다고 기대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서도진은 자기가 서 있는 배에 남은 자에게도 검을 휘둘렀다.

배가 부서지면 안 될 테니 이번에는 검강을 날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오산이었다.

서도진은 그 자신이 그렇게나 강하면서도 공격할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급해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방심하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흑운괴가 영입한 고수는 한 번 정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는데 그 기회가 끝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 거대한 강기를 날렸다.

이것이 생애 마지막 공격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공격.

그 거대한 강기가 그 순간 서도진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서도진은 그런 공격을 아무 준비 동작도 없이 그렇게 빠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빠르게 검을 휘둘러 검막을 만들어냈지만 그러고도 강기의 위력을 전부 다 막아내지는 못했다.

‘잡은…… 건가?’

흑운괴는 서도진의 팔에서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고 피가 비산하는 것을 보며 뜻밖의 희망을 품었다.

검강이 다시 한번 이어지고 이번에는 허리가 뭉텅이로 썰려 나갔다.

그러면 끝난 건데…….

이제 환호성을 질러도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흑운괴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죽음을 도외시한 눈빛.

끔찍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들어 올려 초식을 펼치는 서도진을 보면서 흑운괴는 말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을 느꼈다.

누구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면서 흑운괴는 자기가 뭘 깨달아야 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그는 이곳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를 끝내고 다른 곳으로 빨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좋지 않다.

자기를 통해서 뭔가를 얻어낼 생각인 게 아니면 흑운괴는 이곳에서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아무리 혈겁을 하고 토벌을 한다고 해도 필요에 의해 몇쯤은 살려두는 법이고 흑운괴는 자기가 그렇게 해서 얼마간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도진을 보며 그에게 그런 계획이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여기 말고 또 어디로 간 건지 알아야 할 텐데도.

“사, 살…… 살려주시오!!”

남들은 뭐라고 하건 이 세계에서 군림하며 살아온 흑운괴였다.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일단 자기가 사는 세계에서는 황제가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왜?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자기들도 크고 작은 잘못을 하지 않는가. 자기들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의와 협을 정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래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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