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4화
464화
“아쉽네요. 이번에야말로 공자님의 견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대가 많았는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산본표국에서 비무대회를 위해 온 표두가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 어느 정도 정해지자 사람들은 훈련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듯 그때부터 더 훈련에 매진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갔다.
* * *
비무대회에 접수한 사람은 그다음 날까지 3천 명이 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련의 지휘부는 크게 놀랐고 어쩌면 수적의 토벌이 마냥 헛된 꿈은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한두 단체만 건드릴 것이 아니라 수적을 일망타진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일단은 일정한 수로 나눠 황하 주변의 도시로 이동해 선착장에서 배를 타기로 했다.
원래 배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도 있어서 한 배에 쉰 명씩 타기로 하고 각각의 도시로 갈 사람을 나눴다.
유명한 이들과 함께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고 결국 아진은 산본의가 무인들과 떨어져 작은 문파에서 소수로 참가한 사람들과 함께 조를 이루었다.
만약 아진이 산본의가 사람들과 하겠다고 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산본의가 사람들과는 나중에도 기회가 많았고 언제든지 서로가 원하고 필요하면 견식을 시켜줄 수가 있는 것이라 이번이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뭉치기로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린린과 위도, 소청과 북리의천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조를 이루었다.
여러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 생각이 전해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곳에서 처음 보게 된 사람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한다는 것은 아진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아진만의 걱정인 듯했고 그와 함께 백진의 선착장으로 가게 된 사람들은 감격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을 했다.
나이도, 출신도, 소속도 각양각색이었는데 그들은 아진과 인사를 나누고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아진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백진으로 갔고, 가는 동안 그곳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 주었다.
“우리는 백진까지 나흘 안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닷새째 되는 날 백진의 선착장에서 다 함께 배에 올라야 합니다. 우선은 최대한 빨리 가서 이틀 정도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배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이견은 없었다.
그들은 아진이 하자고만 하면 무조건 따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생각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꼭 제 생각이 맞으리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일단은 가 보고 가다가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조절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특별히 지체해야 할 이유도 없고 몸도 모두 최상의 상태일 테니 최대한 서둘러 보지요.”
누군가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말에 동의했고 그때부터 저마다 신법을 펼쳤다.
그들 중 일부는 확연히 실력이 뒤처졌고 낙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시간 안에 백진까지 갈 수도 없었고 그런 사람들을 기다려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백진에 도착했을 때 남은 사람은 스물여섯 명이었다.
그것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수였다.
처음에는 정해진 것보다 하루 일찍 도착해서 그만큼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했었는데 계획 변경으로 낙오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될까 봐 도중에 다시 나흘 안에 도착하는 것으로 바꾸었었다.
낙오한 사람들은 그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처음에 비해 많은 이들이 낙오한 것에 긴장이 된 듯했다.
그래도 아진이 함께 있으니 수적에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처음의 그 장밋빛 계획에 먹구름이 낀 것 같다고 여기는 듯했다.
기세등등하고 희망찼던 표정이 며칠 만에 급격히 겸손해져 있었다.
그들은 선착장 주변의 객잔에 나눠 들어가 머물렀고 시간에 맞춰 다시 모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긴장이 되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람이 태반인 것 같았다.
아진은 모여든 사람들과 눈빛을 주고받았을 뿐 일행인 것을 티 내지 않았다.
선착장에 모인 사람은 백 명이 훨씬 넘었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중 수적의 간자가 몇 명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주의를 기울였다.
“선비는 미리 준비하십시오. 백진으로 가는 배입니다.”
배가 도착하고 거기에서 내린 선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몇 명의 선원이 더 내리고 몇몇은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배에 올랐다.
그곳에서 교대를 하게 되어 있는 사람들인 듯했다.
각자 선비를 준비하고 아진 일행이 배에 오른 후 이렇게 계속 태워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계속 배에 탔다.
‘이것도 꽤 좋은 사업이기는 하겠네. 수적에게 당하지만 않는다면. 수적에게 당하면 확실히 손실이 크기는 하겠고……. 중요한 사람이나 물건을 운반할 때는 무인을 고용하기도 하겠군.’
사람들이 전부 올라오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배가 출발했다.
무인도 뱃멀미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티던 사람들도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불편한 기색을 했다.
왜 수적과의 싸움이 어려운지 아진은 이해가 되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이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균형을 잡는 것도 힘이 들고 계속해서 구토감이 밀려드는데 어떻게 제대로 싸울 수가 있을까.
수적은 무공을 익힌 자들이 아니다.
간혹 무림인이 수적질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산적처럼 수적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싸우는 방법을 익혀서 사람들을 약탈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적들을 토벌하는 것이 어려운 데는 이런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될 터였다.
“공자님은 괜찮으십니까.”
여산문의 문도라던 사람이 아진에게 물었다.
핏기가 가시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예. 버틸 만합니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겨우 이것 가지고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습니다. 우억!”
그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아진의 앞에서 실례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 준 것이 고마웠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아진 일행을 심드렁한 눈으로 보곤 했다.
배를 자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이 웃기게 보일 수도 있을 듯했다.
‘수적의 간자도 배는 아주 잘 타겠지.’
확실히 배를 탄 경험이 없어서 더 힘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수적의 간자를 그런 식으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진은 죽립 아래로 사람들을 살폈다.
바람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선실로 갔는데 틈이 날 때마다 계속 살펴봤더니 갑판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얼굴이 익을 정도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진의 일행은 더욱 괴로워했고 자기들이 왜 배에 탔는지 잊은 듯 선실로 내려가 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루가 그냥 지났고 그러는 동안 수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 * *
선원들은 정말 편하게 배 위를 오고 갔다.
그게 참 경이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계속 그런 상태라면 수적이 나타나도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들이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아진은 혹시 마나가 움직이려나 하면서 여산문의 문도의 등에 손을 얹었다.
마나가 움직이더니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다.
정말 기운차게.
뜻대로 되지 않는 마나를 다시 사용하는 것이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와주겠다고 하면 이번에는 그 도움을 받아볼 생각이었다.
아진 자신에만 관련된 일이면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은 이러다가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았다.
‘다른 곳도 상황이 비슷하겠지.’
소굴을 찾았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육지에서 쳤어야 했다.
그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관군의 희생이 그렇게 많다고 했을 때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들이 관군이라서 그런 거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버린 것 같았다.
린린이나 소청은 잘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산본무관의 교두나 청수는, 무린은?
그러는 동안 마나가 빠르게 들어갔고 여산문의 문도는 희한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나를 흘려 기운을 차리게 해 주었다.
배에서 내리지 않는 한 임시방편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었다.
사흘이 더 지나도록 수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 나타난 것 아닐까요?”
여산문의 문도가 물었을 때 아진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자님. 혹시 수적의 간자가 아닐까 하는 자가 있습니다. 제가 눈여겨봤는데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그의 말에 누구냐고 묻자 그가 한 사람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는 자기 몸의 스무 배는 되어 보이는 짐을 옆에 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자리를 자꾸 옮겨 다녀요. 여러 사람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 게 지금 사련의 비무대회와 수적을 토벌할 거라는 얘기가 이미 상당히 알려져 있을 텐데 그렇게 눈에 띄는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단서가 없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의심만 늘게 되는 듯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합니다. 공자님. 멀미 때문에 죽을 것 같더니 공자님이 내공을 주입해주신 후에는 기적같이 말짱해졌습니다.”
그는 특이한 경우에 속했다.
다른 사람들은 활기를 되찾았다가도 다시 조금씩 안 좋아졌는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공이 아니라 마나를 주입한 것이지만 아진은 굳이 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갑판에 갑자기 화살이 날아든 것은 그때였다.
화살 하나가 날아와 꽂히더니 그때부터 수도 없이 많은 화살이 하늘을 새카맣게 물들일 기세로 날아왔다.
아진은 생각할 틈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선실에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갑판 위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선실로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서로 넘어져 뒤엉켰다.
그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커질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자기가 서 있던 곳에서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 대고 사선으로 몇 번을 그어대자 그 앞으로 날아오던 화살이 벽에 부딪힌 것처럼 떨어지거나 속도가 확연히 줄었다.
아진과 함께 온 사람이었다.
오는 동안 이야기는 거의 나눈 적이 없었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진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공적을 세우고 싶어 의욕을 보이는 동안에도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애쓰던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응을 하고 있었다.
아진은 그가 곧바로 많은 내공이 소모되는 무공을 펼쳤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와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은 더 있을 거라고 아진은 생각했다.
이곳에 오는 동안 펼친 신법의 수준을 보면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지금 바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는 듯했다.
먼저 앞에 나섰다가 나중에 도망칠 기운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살은 빗발치듯 쏟아져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