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3화
463화
“그런데 여기 물 정말 시원하다. 너도 발만 담가봐. 발 전부 담그기 싫으면 발가락만 담가봐.”
아진은 청량한 기분이 좋아서 린린에게 말했다.
“아냐. 괜찮아.”
“정말 시원한데.”
“그럼 발가락만 닿게 해봐.”
“그래.”
린린이 엄지발가락을 쑥 내밀었고 아진은 그 발가락만 물에 담근다며 조심조심 몸을 기울였다.
“앗, 내 검!”
린린의 검이 툭 기울지 않았으면 아진은 성공적으로 린린의 발가락만 담그는 것에 성공했을 텐데 검이 떨어지려는 순간 린린이 본능적으로 그것을 잡으려고 하다가 몸이 기울었다.
“어. 야!”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아진의 몸이 기울고 두 사람이 동시에 연못에 풍덩 빠졌다.
“서이린!!”
아진은 화가 나서 소리쳤고 린린은 기가 죽었다.
“아니. 검이 떨어지려고 해서. 미안.”
린린도 자기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분위기 파악을 한 후에 우기는데 이번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잘못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화를 내려고 했던 아진은 린린이 광속으로 사과를 하자 더 이상 말을 하지도 못했다.
“어이구. 이 화상아!”
그러다가 아진은 이제 린린이 물에 빠진 것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신을 보며 그사이에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린린이 아팠을 때는 린린이 잘못될까 걱정이 돼서 늘 안절부절못했는데.
“으우. 무거워. 옷이 물 먹었어.”
린린이 말을 하며 연못가로 걸어갔고 아진도 그 뒤를 따랐다.
그대로 신법을 펼쳐 산본의가로 돌아가도 되는 거였지만 오랜만에 그렇게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이 싫지도 않아서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풀밭에 앉았다.
“평화롭네.”
아진이 연못을 바라보며 말하자 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린의 머리카락과 턱에서 물방울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다가 아진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추운 거 아니지?”
“응.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추운데. 나는 말릴 건데 너는 놔둘까?”
“아아. 그럴 거야? 그러면 나도 말려봐.”
아진이 불꽃을 만들어내자 린린이 그 불꽃에 스윽 가까이 다가왔다.
“불꽃은 없애고 열기만 남게 해서 못 말려?”
“아. 해 볼까?”
엄청나게 어려운 것을 너무 쉽게 시키는 린린과 린린이 시킨 것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해내는 아진이나.
잠시 후에 두 사람은 언제 물에 빠졌나 할 정도로 말끔해져 있었다.
“손도 차가워졌는데.”
“이리 줘 봐.”
차가워진 손까지 열기로 데울 수는 없어서 아진이 린린의 손을 잡았다.
조바심 내지 않고, 급하게 해야 할 일을 떠올리지 않고 그렇게 편하게 있었던 게 얼마 만인가 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 오래오래 그 여유를 즐겼다.
* * *
사련의 비무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접수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본의가에서 출발한 이들도 일찌감치 그곳에 도착했고 사련의 무인들은 멀리서 모여든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비무대회와 수적의 토벌.
그 두 가지 일을 어떻게 접목시킬지에 대해 계속 여러 방안이 논의됐는데 결국 사련에서 일단 접수를 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실력 확인을 한 후 수적의 본거지로 가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비무대회의 최종 승자를 가려내는 것이 아닌, 함께 비무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내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다.
비무대회라는 본연의 의미는 이루지 못했지만 공동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동안 각자가 서로의 무공을 견식할 수 있고 무림이 화합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이렇게 된 이상 대회의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산본의가 비무대회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 명칭은 비무대회로 유지되었다.
“산본의가 영웅들이다!”
“검신 대협이 오셨어!!”
“천마신교 사람들이야!”
사람들은 생전 한 번 보기 힘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드는 것을 보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고 사련의 지휘부는 이 비무대회가 사련과 사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줄 거라고 확신했다.
오랜만에 스승과 만난 아진은 하연이 잘 자라고 있는지 물었다.
“하연이는 정말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왜 네가 오지 않냐고 묻더구나.”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도 못 하는 하연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나 하며 스승이 북리세가에 자주 찾아오지 않는 자기에게 서운해서 그러는 거라고 여긴 아진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이 제자가 더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스승님.”
“네 얼굴을 보니 내가 지금 농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구나, 아진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고 할까 하다가 순순히 시인하자 북리의천이 웃었다.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하연이는 정말 빠르다. 뒤집기도 빨리 하더니 앉는 것도 빨리하고 서는 것도 빠르더니 걷는 것도 빨랐지. 말을 하는 것도 빠르고 말이다. 그리고 아진아. 네가 우리 하연이를 보고 간 지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났단다.”
그래도 고작 몇 달이라고 생각하다가 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고얀 녀석. 소청아. 네 스승을 어찌해야 좋겠느냐.”
그가 묻자 소청이 웃으면서 용서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했고 북리의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사손이 그리 해 달라고 해서 봐주는 것이다. 인석아. 그런데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이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도대체 누가 믿을까 하는 생각은 들거든. 나라고 해도 안 믿을 테니 말이지.”
아진은 혹시 하연이 설인정이어서 그런 건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바쁜 일이 지나고 나면 한 번 오도록 해라. 아진아.”
“예, 스승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진행 요원들이 이동을 부탁했고 아진 일행은 그 말을 따랐다.
일단 그런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준다면 진행이 훨씬 매끄럽게 되는 법이었다.
천하의 검신과 서도진이 말을 듣는데 자기들이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릴 사람은 없을 터였다.
사람들은 보통의 비무대회와 확실히 다른 대회에 참가하고 이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 온 이들 중에는 수적을 토벌한다는 것보다 시대의 영웅들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임무를 수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기대를 하는 이도 많았다.
“이번 비무대회는 종전의 것들과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수적을 토벌하는 것이 황상의 뜻이기도 하고 많은 양민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여러 영웅들과 그 일을 이루려고 합니다. 경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이 수적을 토벌하는 것이 목적이니만큼 지금부터의 모든 과정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우승자는 어떻게 가리냐는 말에, 이번 대회에는 우승자가 없다고 말하자 몇몇 사람들이 원성을 자아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바꿀 수 없습니다. 혹시 이대로는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계신다면 접수비를 반환해 드릴 테니 돌아가도록 하시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 내키지 않았는지 별수 없다는 듯 잠잠해졌다.
아직은 계속 사람들이 모여드는 중이었고 접수를 마치는 사람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접수하는 사람이 얼마가 될지에 따라서 작전도 바뀔 수밖에 없어서 지금으로서는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황하에 오가는 배를 상대로 수적질을 하는 자들을 토벌하는 것으로는 얘기가 돼 있어서 몇몇 사람들이 서로 모여 얘기를 나누었다.
“낙양으로 가는 배를 곳곳에서 타고 수적들을 기다리는 것은 어떨까요? 그자들도 바보가 아니고 이렇게 크게 소문이 났는데 우리가 자기들을 노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건데 말이지요. 그냥 배에 타는 손님인 것으로 가장하고 말입니다.”
“크게 백진, 정주, 개봉에 나눠서 기다리고 있다가 배에 타고 승객을 가장하자면 될 것 같기도 하군요. 수적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니 말이지요.”
“저도 그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황하는 넓고 수적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니 흩어져서 노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젊은 무인들이 하는 말에 다른 사람들도 귀를 기울였다.
그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며 그 의견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 이야기가 결국 사련의 지휘부에까지 들어갔다.
사련의 지휘부 역시 괜찮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대회에 참가한 무림 명숙들에게 얘기를 했다.
“좀 더 세분해서 사람들을 나눠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촘촘하게 포위망을 좁힐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수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요? 수적들의 본거지를 알아내려고 수소문을 했습니다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정보가 들어와서 가 보면 건물 하나,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말이지요.”
“그래도 우선은 해봐야겠지요. 수적들 중에는 배에 미리 사람을 심어놓는 이들이 많습니다. 수적이 승객인 척 배에 타는 것이지요. 그러고 있다가 배에서 미리 정보를 모아두고 수적들이 나타나면 그자들과 합세하는 것입니다. 누가 돈이 많은지,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 미리 알아둘 수 있어서 수적들이 약탈을 하는 데 도움을 주지요. 그런 자들을 찾아낼 수 있으면 수적의 본거지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련의 군사에게서 나온 말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그럴듯하게 여겼다.
“접수는 언제까지 받으실 생각입니까, 련주님.”
북리의천이 묻자 련주가 내일이나 모레까지라 말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까지 해도 충분한 인원이 모일 것 같습니다.”
련주의 말에 다들 눈을 빛냈다.
이제 드디어 시작이라는 생각에 흥분이 되는 듯했다.
아진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산본의가에서 온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온 사람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그들은 장원 하나를 통째로 빌려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아진이 돌아가자 사람들이 수련을 하고 있다가 다가왔다.
“대략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접수는 내일이나 모레까지 받기로 했고.”
그러면서 아진이 얘기를 해 주자 사람들이 저마다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었다.
“정말 떨립니다. 공자님이랑 같은 곳에서 기다릴 수 있을까요? 아니면 조가 따로 편성이 될까요?”
무린이 묻자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제가 백진 가까운 곳에 살아서 그곳은 잘 아는데 백진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산본의가의 무인 석교열이었다.
산본무관에서 한동안 교두로 있다가 산본의가로 오고 싶다고 해서 옮겨온 사람이었는데 그가 백진 출신인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자 추연월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무인이라는 걸 숨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안 좋을 것 같은데요?”
“죽립을 쓰고 얼굴을 가리겠습니다. 그러면 간자를 찾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서요.”
석교열의 말에 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간자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분 중에는 연고지가 그쪽인 분이 안 계십니까?”
아진이 묻자 낙양과 정주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아진은 그들이 살던 곳으로 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들은 아진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싶었기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