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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61화 (461/470)
  • 제461화

    461화

    “감사합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한 번에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사련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도시는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사련으로 향하는 걸음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을 해 주니 고맙군요.”

    그 말만 전하려고 먼 곳에서 부련주가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그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을 말해주었다.

    부련주에게 그 정도 선물은 해 주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미공략 던전이 앞으로 얼마나 이곳에 나타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를 대비해 사련의 도움을 구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미공략 던전이 나타날 때마다 불려다니는 신세가 될 것 같은데 그 전에 미리 역할 분담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영 능력이 안 된다면 자기가 나설 수밖에 없을 텐데 이들의 실력을 키워놓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런 이유에서 얘기를 해 준 거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부련주는 아진이 엄청난 정보를 공유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감격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부련주는 사련의 위상이 그렇게나 높아졌구나 하면서 울컥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공자님. 그러면 다음에도 그런 것이 더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미공략 던전이라는 것 말입니다.”

    아진은 부련주가 무슨 생각으로 그것을 묻는지 알 것 같았다.

    자기들도 미공략 던전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공략하고 괴수를 죽여 이런 부산물을 얻을 수 있겠냐는 것 같은데 아진으로서는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단지 지금 상태로는 그들이 개죽음을 당하기만 할 거라는 것을 먼저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부련주님. 저는 그곳에 제 누이와 함께 갔습니다. 제 누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부련주님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지요. 천마님에 대해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제 누이도 처음에는 몇 번이나 위기를 겪었지요.”

    “……예?”

    “결국 괴수를 죽이고 공략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 전에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겪었다는 얘기입니다. 제 누이는 그사이에 공략법을 깨닫고 결국 괴수를 죽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죽을 겁니다.”

    아진은 부련주가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가 그럴 정도라면 사련에서는 미공략 던전의 괴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그렇군요……. 혹시 공자님은 사련에 괴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단언컨대 없습니다.”

    “…….”

    부련주는 낙심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지금 사련에 괴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요. 저는 사련이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미공략 던전이 생길 때 같이 싸우고 한 축을 담당해주어야 합니다.”

    부련주의 눈이 빛났다.

    “그러라고 사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닌 것 같지만 일단은 알겠습니다.”

    부련주가 싱글벙글하며 웃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아진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동안 사련에서 비무대회 준비를 위해 투자한 것도 있고 하니 투자한 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모로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아진이 그 말을 해 주자 부련주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금까지 들인 돈을 회수할 방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 * *

    부련주가 돌아가고 아진은 괴수의 사체가 해부되는 것을 보려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아진은 산본의가가 의가라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산본의가의 의원과 의생, 의녀와 의학당 사람들까지 거의 그곳에 와 있는 듯했는데 이 시간에 진료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게 희한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부터 미리 공지를 해 두었다는 말이 전해졌다.

    의가에 중요한 일이 생길 경우 일찍 진료를 끝낼 수 있다고 해두고 아침에 접수할 때부터 설명을 해놨더니 큰 불만 없이 돌아갔다고 했다.

    급한 환자는 우선적으로 모두 봤고 처방도 끝냈다며 자신만만했다.

    “이런 기회는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일이잖아요. 재미나 호기심으로 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전부 다 공부가 되기도 하고요.”

    북리소은이 말하고는 다시 눈을 빛냈다.

    도종은 추연월과 역천마의가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도왔다.

    “형수님은 왜 안 하세요?”

    “안 되더라고요.”

    “네?”

    “안 들어가요.”

    단순히 메스를 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내공을 불어넣어야 잘리는 거라는 것을 아진도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그가 원래 살던 곳에서도 모든 사람이 괴수의 사체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각성자가 마나를 사용해야 할 수 있어서 하급 헌터들이 그 일에 동원되었던 게 떠올랐다.

    제선문주와 역천마의는 이번에도 다시 한번 힘을 합칠 것 같았다.

    내단을 보는 제선문주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고 아진 역시 기대감이 높아졌다.

    일단 제선문주에 의해 다시 가공되면 그것은 완전히 달라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진이 뭘 걱정하는지 잘 아는 제선문주였으니 혹시라도 불순한 기운이 날뛰지 못하도록 그 부분은 확실하게 신경 쓸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럼 이제 철방에 가볼까 하면서 걸음을 옮기자 그곳으로 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무인들이 다가와 비무대회가 취소되는 거냐고 물었다.

    사련의 부련주가 다녀간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듯했다.

    “아닙니다. 그런데 아마 비무대회의 형태가 조금 바뀌기는 할 것 같습니다.”

    “예? 어떻게요? 곧 공문이 오기는 하겠습니다만.”

    그리고 아진이 다 같이 수적 토벌을 하게 될 거라고 말하자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런 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면서 혹시 공자님이 생각해낸 건 아니냐고 물었고 지나가던 벽예월이 왜 아니겠냐고 말했다.

    벽예월은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중이었다.

    철방에서는 괴수의 깃대로 창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철방의 방주뿐만 아니라 야장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엄청난 실력자들인 만큼 각자가 다 예술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 역작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느라 철방에서 아진과 놀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결국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미공략 던전 하나를 처리한 것이 산본의가에 가져온 변화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 모습을 보며 아진은 혼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산본의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문파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로 미공략 던전이 이곳에 나타난 건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된다면 미공략 던전이 나타나는 것을 마냥 두려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익숙한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황상의 전서구다……!’

    그걸 본 순간 아진의 머릿속에서 땀이 났다.

    ‘아직 보고를 안 하고 있었구나!’

    어떻게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하며 아진이 바닥을 차고 올라가 전서구를 잡아 내려왔다.

    전서통을 열기 전부터 황제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매번 짐이 먼저 연락을 하게 만드냐는 얘기가 구구절절 쓰여 있을 것 같았는데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아진은 웃으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벽예월에게 황궁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총관님 혹시 저만 따라다니시는 거 아니죠? 희한하게 가는 곳마다 총관님이 보이는 것 같아서요.”

    “저는 공자님이 저를 따라다니시는 줄 알았어요. 저도 그 생각 하고 있었거든요. 희한하게 가는 곳마다 공자님이 보인다고요.”

    같이 웃다가 아진은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그대로 황성으로 향했다.

    * * *

    “그래도 다행이구나. 그게 미공략 던전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만 그래도 그것으로 산본의가에 도움이 되었다니 잘된 일이다. 그래도 그곳의 일을 처리해준 대가는 줘야겠지.”

    그러면서 황제가 태감을 부르자 태감이 미리 준비해 놓은 커다란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열어보아라.”

    “예. 폐하.”

    황제의 얼굴을 보면 아진이 그 안에 든 것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확신을 하는 것 같은데 아진은 그럴 만한 게 뭐가 있을지 솔직히 궁금했다.

    이제는 사실 엄청난 황금이나 보검, 영약을 본다고 해도 그렇게 기쁘지 않을 듯했다.

    이미 워낙 많은 것을 보고 놀라고 누리다 보니 그런 감정이 많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은 것에도 감격했던 시절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며 함을 연 아진은 그 안에 들어 있던 소도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한눈에 봐도 좋아 보이지도 않고 왜 그걸 주었는지, 그리고 그걸 주고 왜 그렇게 흐뭇한 표정을 짓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뭔지요, 폐하?”

    “짐도 모른다. 나는 아진이 네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

    “……예?”

    “사냥꾼이 심산에 들어갔다가 자기가 노리던 사냥감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벼락이 내리쳤다는구나. 그러더니 앞에 있던 바위가 쪼개졌는데 그 안에 이게 들어 있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평범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치성을 드리고 짐에게 가져온 것이다.”

    “……예?”

    그런 신기한 물건이라니?

    “여자가 쓰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폐하.”

    “그래서 싫으냐.”

    “혹시 싫다고 하면 누구에게 주실 것인지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구나. 조금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그런 걸 저에게 주시면 안 되지 않는지요, 폐하?”

    “왜 약한 척을 하느냐. 그걸 가져가서 어떤 물건인지 알아보거라. 재미있지 않겠느냐. 어떤 황제가 이런 것까지 다 신경을 써준다는 말이냐. 심심하지 말라고 이런 선물도 주고 말이다.”

    “이게 선물이면 임무를 수행한 대가는 따로 주시는 것이지요, 폐하?”

    황제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얀 놈.”

    그러고는 아진에게 말했다.

    “그런 일이 없기는 하겠지만 혹시 돈을 달라고 할지 모르니 가져갈 때 무겁기나 하게 모두 은전으로 준비해두라고 했다! 갈 때 받아가거라.”

    아진이 웃으며 그러겠다고 하고 사련의 비무대회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었다.

    황제는 그런 생각을 했다니 정말 장하다면서 금방 표정이 풀어졌다.

    “참 좋은 생각이다. 관이 나서도 숨으면 그만이라 의미 없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었지. 토벌하러 간 관군이 배와 무기를 뺏기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목숨을 잃은 이도 많다. 그래서 토벌을 명하면 아예 일을 그만두고 나오지 않는 자도 늘어났다고 하더구나.”

    황제는 그럴 게 아니라 상품을 준비해야겠다고 하더니 바쁠 것 같다며 어서 가보라고 아진을 돌려보냈다.

    던전의 공략으로 이번에는 이래저래 수확이 많았다.

    웬 희한한 소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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