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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59화 (459/470)
  • 제459화

    459화

    “……어쩌라고?”

    린린은 감이 안 잡힌다는 듯이 물었다.

    “할 줄 알면서 그런다.”

    “이걸 들고 산본까지 가자는 건 아니지, 오라버니?”

    “도중에 쉬고 싶으면 말해. 그러면 쉬면 되니까.”

    도대체 무게가 가늠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뭘 어쩌라는 걸까 하면서 린린이 괴수의 밑으로 들어가 들어 올리자 아진이 칭찬을 해 주었다.

    “그렇지. 역시 내 동생이네. 준비되면 움직여. 내가 너한테 맞출 테니까.”

    “와, 내가 진짜 별짓을 다 해보네. 닭을 지고 날아보게 될 줄이야.”

    “너는 인마. 이 오라버니 만나서 인생을 이렇게 즐겁게 사는 거야.”

    린린은 말을 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하고 그대로 박차올랐다.

    그때부터 신법을 펼치는데 린린은 오랜만에 진이 다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고 금방 쓰러질 것 같다거나 그만두어야 할 것 같지는 않고 어느 단계를 지나면 다시 힘이 솟는 느낌이 들었다.

    ‘뭐야. 이 괴수에게서 전해지는 힘인가?’

    영물의 내단에도 그런 효과가 있으니 괴수에게서 비슷한 힘이 전해진다고 해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괜찮아, 린린? 아직 안 쉬어도 돼?”

    아진은 종종 그렇게 물으며 린린의 상태를 확인했고 린린은 그때마다 고개만 끄덕였다.

    한 번쯤 쉬어갈까 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번잡스럽겠다고 생각하며 끝까지 신법을 펼쳤는데 확실히 신기했다.

    결국 산본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고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내공이 막대하게 소모돼서 자주 사용하지 않던 신법을 펼치기도 했는데 그러고도 내공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오라버니. 이거 확실히 신기한 것 같아. 저절로 내공이 다시 채워지는 것 같았어.”

    산본의가가 눈앞에 보였을 때 린린이 말하자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게 있기는 할 거야. 괴수를 사냥하면 괴수 부산물로 수입이 높았거든.”

    그들이 산본의가 앞의 넓은 부지에 괴수의 사체를 내려놓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이건 또 뭡니까, 공자님?”

    곤오철을 들고 오는 것도 보고 독각화망을 들고 오는 것도 봤지만 하다 하다 닭을 들고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워낙 커서 멀리서부터 닭이 날아오는 것을 분명히 보고 사람들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했었다며 서로 떠들어댔다.

    아진도 그럴 만했겠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대체 이게 뭡니까, 공자님?”

    “황상께서 가 보라고 하신 곳에 이게 있었습니다. 동굴에 이 녀석이 있었는데 죽이고 가져왔어요.”

    “이걸 왜요? 요리해서 드시려고요?”

    어느새 달려온 소청이 묻자 아진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소청이 그 말을 하는 걸 듣고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듯 눈을 빛냈다.

    “이건 내가 살던 곳에 나타나던 괴수란다. 분명히 특별한 힘을 주기는 하지만 일단은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아아. 그런 거면 안 먹는 게 낫겠네요.”

    소청은 금방 포기하며 말했다.

    그래도 겉모습에는 관심이 가는 듯했는데 아진은 부산물을 이용해 무기와 장비를 만들면 효과가 좋을 거라고 했고 그렇지 않아도 일찌감치 와서 괴수의 부리와 발톱을 유심히 보던 철방 사람들이 아진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아진은 깃털 하나를 뽑아서 린린에게 해 주었던 설명을 다시 해 주었다.

    “공자님. 이건 정말 엄청납니다. 이건 곤오철과 맞먹을 것 같습니다.”

    철방의 방주가 말하더니 깃가지를 뽑아내고 깃대만 봐도 되겠냐고 했고 아진은 당장 깃가지를 뽑아내 주었다.

    “이걸 한 번 던져보시지요. 공자님. 공자님이 던지시는 걸 보고 싶습니다.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이거로 뭘 하면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바위를 노렸다.

    “모두 조심하세요. 스승님이 바위에 깃대를 날리실 거예요. 아무도 그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소청이 목청을 크게 해서 말하자 사람들이 안전하게 뒤로 물러났다.

    아진은 깃대를 창처럼 들고 방주를 보았다.

    “강기를 실을까요?”

    “아뇨. 우선은 그냥 던져 보십시오.”

    “네. 그럼.”

    아진이 말하고 바위에 깃대를 던지자 바위가 우지끈 부서졌다.

    “어…… 가모님한테 혼날 것 같죠?”

    방주의 말에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죠?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할까요?”

    방주의 말에 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하면 어머니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네요.”

    방주는 다른 바위에 이번에는 강기를 씌워서 창을 날려보라고 했고 아진은 그 말에 웃었다.

    깃대를 어느새 창이라고 말해서 그런 거였는데 방주는 아진이 왜 웃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방주의 말대로 강기를 실어 깃대를 날리자 바위가 먼지처럼 부서져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주위를 같이 초토화하실 수도 있나요, 공자님?”

    “물론이죠.”

    아진은 금방 새로운 깃대를 가지고 시범을 보였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신기한 구경을 하며 탄성을 쏟아냈다.

    “깃가지로는 화살촉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방주님.”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만들어도 아주 좋을 듯합니다. 정말 따뜻할 것 같습니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넣어 만든 피풍의를 팔면 정말 잘 팔리겠습니다. 제가 정말 추운 곳에서 살아봐서 잘 알지요.”

    아진으로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고 때마침 그곳에 온 위도는 우산을 만들어도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부러워하기에 아진은 선심을 쓰듯 각 사람에게 깃털 하나씩을 척척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준다고 해도 겨우 몇백 개였고 린린과 함께 가져온 괴수에게는 깃털이 차고 넘쳤다.

    “저희가 깃털을 뽑을까요, 스승님?”

    소청이 말한 저희는 소청과 랑랑이었다.

    “쉽게 안 빠질 텐데?”

    “우선 뽑아봐도 돼요?”

    “그럼. 해 봐라. 해 준다면 좋지.”

    소청은 아진이 왜 쉽게 안 빠질 거라고 했는지 이상하다는 듯이 쑥쑥 뽑아냈고 랑랑은 깃털을 뽑지 못하는 대신 그것을 모아 챙겼다.

    어느새 랑랑도 자라서 이제 그런 일도 어엿이 한다는 생각을 하며 아진과 린린도 그 일에 착수했다.

    그렇지 않아도 벽예월을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디에 있었는지 뒤늦게 온 벽예월이 이게 뭐냐면서 당장 눈독을 들였다.

    “공자님. 이거 독점권을 저에게 주시면 안 되나요?”

    “총관님께 아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정말요? 정말 이거 전부 저한테 맡기시겠어요?”

    “예. 그럼요. 그런데 뭐 하시려고요?”

    “화살을 만들어서 팔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서 황군에 납품을 하면 어떨까요? 수적도 속을 썩이고 왜군들이 해적질도 한다고 하던데. 그럴 때 화살이 좋지 않은가요?”

    그러던 벽예월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사련의 비무대회요! 그걸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떤가요, 공자님?”

    아진은 조금 겁이 났다.

    벽예월도 어머니를 조금씩 닮아가서 점점 가늠을 할 수 없어서였다.

    일을 벌이는 규모가 이제는 가모를 능가할 정도여서 이럴 때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언니. 그거 좋은 생각인 거 맞을까요?”

    린린이 먼저 단속에 나섰지만 벽예월은 확신에 찬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말 좋을 거예요! 비무대회에서 꼭 둘씩 싸워서 힘 자랑을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이 기회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수적을 소탕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좋은 게 아니라 수적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좋을 거예요.”

    벽예월의 말에 아진이 린린을 바라보았다.

    린린도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여기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데 수적도 사파 아니야, 오라버니?”

    “사련은 수적을 인정하고 있지 않을걸? 노선이 다를 거야. 우선 사련에 물어보고 그럴 의향이 있다고 하면 그런 식으로 방향을 틀어봐도 좋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면 한 번에 명분을 얻을 수도 있고 사련은 수적과 길을 달리한다는 게 널리 알려지는 거라서 의미가 있을 것 같기는 해. 총관님. 정말 여러모로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거로 화살을 만드는 일을 시작해볼까요?”

    벽예월은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는데 그건 정말 제대로 된 생각이었다.

    여기에서는 아주 조금만 방심하고 있으면 그걸 채갈 사람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아진이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선문주가 어디선가 와서 괴수를 보더니 소리쳤다.

    “내단은 나에게 줘야 하네. 무조건 나에게 줘야 하네.”

    그리고 추연월이 한 무리의 의학당 문하생들을 데리고 와서 자기가 해부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고 그 안에 있는 기관을 전부 꺼내주겠다고 했다.

    해부를 해 주겠다는 사람까지 생겨났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일들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일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의학당의 문하생들은 의학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집채만 한 닭을 해부해본 적은 없었다.

    피부만 잘라내는 데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그동안 해부를 하는 데 사용되던 메스도 이 닭에게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듯이 아진이 옆에서 대기하며 그를 도와주려 했다.

    “아무래도 검으로 해야 할 일인 것 같기는 하군요.”

    추연월도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와……. 신기하네. 산본의가에는 없는 사람이 없구나.”

    그러면서 린린이 아진을 슬쩍 바라보았다.

    “왜. 만들면 천마신교에도 좀 줬으면 해서?”

    “아니.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내단도 좀 줘?”

    “아니. 달라는 게 아니라…….”

    “뭘 아니야? 이건 네가 잡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당당하게 요구해도 돼. 줘도 되는 거고. 그렇게 하자. 내단 일부는 천마신교에 주자.”

    “아니야. 오라버니.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돼.”

    “그러면 역천마의를 불러서 해부하는 걸 같이 보게 하자.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면 되지.”

    “정말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오라버니가 아니었으면 이걸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도 몰랐을 거고. 내가 했다뿐이지 이건 오라버니가 잡은 건데.”

    “네 오라버니가 잡은 거라고 생각해. 그러면 이건 네 거지. 당연한 거 아니냐?”

    아진은 별소리를 다 한다는 듯이 린린을 보며 말했고 린린은 멋쩍어했다.

    아진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나무 위에 있던 제일조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날아왔다.

    “역천마의를 불러와. 다른 설명은 필요 없고 전서를 전할 필요도 없어. 그냥 함께 오면 돼.”

    제일조는 알았다는 듯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괴수의 사체가 오고 산본의가에는 전에 없는 활기가 넘쳤다.

    * * *

    아진은 산본무관에 가서 교두들을 모아 그들에게 창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교두들도 이미 창술을 할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자기들이 창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전부 착각이었다고 여겼다.

    아진이 펼치는 창술을 보면 절대로 자기들은 창술을 할 줄 알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산본의가에 닭 한 마리가 들어오고 거기에서 나온 무수한 깃대로 만든 창이 생겨나면서 산본무관에서 난데없이 창술 훈련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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