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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58화 (458/470)

제458화

458화

황제에게서 전서구가 온 것은 산본의가 사람들이 비무대회 참가를 위해 한창 열을 올려 수련을 하던 때였다.

한참 요괴가 나타난다고 하던 곳과 반나절 거리에 있는 동배라는 곳에 이상한 곳이 있는데 확인을 해 줄 수 있냐는 거였다.

황제치고는 참 완곡한 명령이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그러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전서구가 왔을 때부터 보고 있던 린린은 같이 떠날 채비를 했다.

아진은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린린을 기다려주기까지 했다.

떠날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말 한마디도 없었지만 미리 얘기가 오간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혹시 지금 두 사람 전음을 하고 있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위도가 다가와 오래 걸릴 것 같냐고 물었고 아진은 확인만 하는 일이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일단 그곳의 상황을 알 수 없는 일이라 우선은 서둘렀다.

린린도 두말없이 따랐다.

아진은 린린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도 이번 임무가 마음에 들었다.

린린 자신은 확실히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아진도 린린이 무리 없이 잘 회복돼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직접 상황에 닥쳐보지 않으면 자세한 것은 모르는 거니까.

“동배라는 곳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어, 린린?”

“아니? 엄청 외진 곳일 것 같아. 그곳의 소식이 어떻게 황상에게 전해졌는지도 조금 의문이고.”

그것은 아진 역시 생각하던 바였다.

우연이었을까?

때마침 지나가던 약초꾼이나 상단이 그곳을 발견하고 관에 신고를 했다.

그런 이야기?

아진은 ‘때마침’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식으로 벌어진 일 중에 함정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황상이 만든 함정은 아닐 테고 신고를 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졌다.

‘함정이라는 것도 내가 압도적으로 강하면 신경 쓸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그곳에 찾아가는 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려웠다.

인근에 사람 사는 곳이 없어서 가장 가까운 인가에서 동배가 어디인지 묻고 그때부터 그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한참 만에 찾아갈 수 있었지만 일단 그곳에 도착한 후에는 그곳이 황제가 말한 곳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아진은 그곳을 보자마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린린…….”

린린은 아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래. 오라버니?”

“이거…… 거기에 있던 거야.”

“거기라니? 혹시 오라버니가 살던 곳?”

“응. 거기에 있던 거야. 던전이라고……. 미공략 던전이야.”

던전 중에는 그 안에 있는 괴수를 공략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오는 것만 막는 조치를 하며 관리를 하는 미공략 던전이 있었다.

한국에는 없었지만 세계적으로 여러 군데에 이십여 곳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각지에서 아진에게 미공략 던전의 공략을 요청해 왔는데 아진은 관심이 없었다.

미공략 던전이 있다고 딱히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한 것도 아닌데 위험을 감수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공략을 시도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네가 목숨 걸고 들어가서 괴수 좀 처리해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말을 들어줄 리가.

그런 이유로 유지되던 미공략 던전의 숫자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 존재를 꺼림칙하게 여긴 사람들이 미공략 던전을 처리해 주는 헌터들에게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하면서 여럿이 팀을 꾸려 공략을 해나간 탓이었다.

몇몇 던전은 그런 식으로 순조롭게 처리되는 듯했는데 막대한 희생자만 낸 던전도 있었다.

그런 던전에 대해 정보가 공유되었고 아진이 지금 눈앞의 던전을 알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아진이 그 말을 하는 동안 린린은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들었다.

“오라버니도 그 던전이라는 걸 공략할 수 없었어?”

“나는 안 한 건데 잘 모르겠어. 만약에 시도했다면 성공했을지 아닐지도 모르겠고.”

“일단 안 좋은 것 같기는 하네. 거기에 있던 게 여기로 넘어왔다는 것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까? 사인걸이 넘어온 거랑 연관이 있는 건가?”

“그건 모르겠어.”

“던전이라는 건 어떤 건데? 저 안에 뭐가 있을지 대충은 아는 거지?”

린린의 말에 아진은 던전에 나오는 괴수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를 해 주었다.

“별것들이 다 있어.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만한 것들.”

아진이 말을 하는 동안 린린은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고생했네. 우리 오라버니.”

“그러게 말이야.”

왜 이곳에 미공략 던전이 나타났을까 해서 놀란 것일 뿐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미공략 던전이라는 건 외부에서만 봐도 구분이 돼? 바로 알아보네?”

“응. 워낙 자주 봤더니 친숙하네. 나도 이걸 본다고 바로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린린은 신기하다고 했고 아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볼까?”

린린은 준비됐다고 말하며 미리 검을 빼 들었다.

“기억해둬. 집채만 한 수탉이야. 들어가자마자 덤벼들 거야. 발이 날카롭고 부리도 매섭대.”

“응. 그런데 사람들은 뭘 보고 이상하다고 그런 걸까? 난데없이 이런 게 나타나서? 그 사람들도 안에는 안 들어가 본 거겠지? 안에 있는 게 밖으로 나온 것 같지도 않고?”

“응. 그런 것 같아.”

아진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가 하는 듯이 린린을 바라보았고 린린은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진이 말했던 대로 커다란 수탉 모양의 괴수가 두 사람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그러자 린린이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괴수가 다가오기도 전에 날아간 검격이 괴수의 몸을 베어내는 게 정상이었지만 던전 안에서 괴수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 듯했다.

그러나 린린은 이미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놀란 기색도 없었다.

그때의 린린은 아진의 귀여운 동생이 아니라 천마신교를 호령하는 천마였다.

괴수는 몇 번 린린의 공격을 견뎌내고 그때부터 날카로운 공격을 감행했다.

린린은 몇 번이나 더 날카로운 공격을 했다.

다른 곳 같았으면 벌써 지형이 변하고 주위가 무너져내려야 했을 텐데 던전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린린은 몇 번이나 동요를 일으켰을 것이다.

괴수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결국 린린이 아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라버니. 도와줘. 불이라도 날려봐!”

“안 돼. 린린. 괴수의 부산물은 엄청나게 유용해. 이건 태우면 안 돼.”

린린은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했다.

“오라버니. 이러다가 나 죽을지도 모르는데?”

“응. 안 죽어. 린린. 다르게 생각해야 돼. 너는 그렇게 거대한 녀석을 상대해본 적이 없는 것뿐이야. 크기는 크지만 원래 수탉과 습성은 비슷해. 수탉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생각해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내 동생이 이런 건 잘 못하네.”

그러면서 아진이 괴수의 발목에 올라섰다.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쪼아대려고 하던 괴수는 아무리 목을 움직이고 발을 들어도 제 발목 위에 올라선 아진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아아…….”

린린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알았다는 듯 아진을 따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감을 잡는 듯했다.

여차하면 아진이 나서서 불을 쓰건 뭘 쓰건 해서 괴수를 처리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겨 더욱 과감해졌다.

“이거 별거 아닌 거지, 오라버니?”

“그렇지.”

“그런데 왜 미공략 던전으로 남은 걸까?”

“너랑 나나 되니까 별거 아닌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까다로운 개체지. 속도도 이 정도면 정말 빠른 거고 일단 엄청나게 크잖아. 머리를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고. 간신히 피해도 다음 공격이 굉장히 빠르게 이어졌을 거야. 머리를 들 필요도 없이 콕콕 찍으면서 사람들 몸통을 갈랐을 테니까.”

“아아…….”

린린은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 한 말은 린린에게 도움이 많이 됐다.

린린이 괴수의 다리를 검으로 베자 괴수가 풀쩍 뛰어올랐다.

“결국에는 목을 찔러야 죽을 거야.”

“이렇게 큰데 어떻게?”

“올라가서 검강을 날려야지. 검을 먼저 박아넣고 그 안에서 터뜨려.”

린린은 그 말에 당장 시도했다.

린린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 얘기를 듣고 단번에 성공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두 사람이었기에 그 일을 성공할 수 있었다.

“린린. 내가 말한 대로 해야 돼. 검을 먼저 찔러 넣고 그 안에서 강기를 불어넣어. 먼저 강기를 씌우고 공격하면 안 돼.”

“응…….”

린린은 그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아진의 말을 들었다.

그렇게 공격에 성공하자 괴수가 크게 뛰어오르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린린이 확실히 하겠다며 연달아 후속 공격을 퍼부으려 하자 아진이 그녀를 막았다.

“그러지 마, 린린. 충분해.”

린린은 아쉬운 듯 괴수를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주위의 지형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던전이 사라지는 거야. 던전의 주인이 사라져서.”

“아……. 그럼 이제 이곳은 더 이상 미공략 던전이 아닌 거네?”

“그렇지.”

“던전이 사라지면 괴수가 확실히 죽었다는 의미가 되는 거야?”

“응.”

아진은 대답을 하면서도 정신이 다른 곳에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아진이 다가가 먼저 괴수의 몸에서 깃털을 뽑자 린린이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왜 강기를 미리 못 씌우게 했어? 던전에 있는 괴수에게는 그 공격법이 잘 안 통해?”

“아니. 그렇게 하면 깃털이 상할 것 같아서.”

“……어?”

“린린. 너는 이 깃털이 얼마나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지 생각도 못 할 거다.”

그러면서 아진이 깃털을 린린에게 보여주었다.

거대한 괴수의 깃털이라서 깃가지마저도 아진의 팔 정도 길이는 되었다.

“이거로 활을 만들면 공격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어. 여기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날아간다는 효과는 있을걸?”

“…….”

린린은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깃가지를 전부 떼 내고 가운데에 있는 깃대를 창으로 사용해도 될걸?”

산본의가에는 이런 것을 가지고 신기한 것들을 만들 사람들이 넉넉히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걱정할 이유가 없을 듯했다.

“내단은 어때? 괴수의 내단은 별 효과가 없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내단에서 직접 효과를 얻는 건 별로 안 내켜.”

“아아. 갑자기 힘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기는 하겠다. 내공이랑 충돌될 수도 있겠고. 그건 욕심내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런데 이거 정말 어마어마한데? 이거로 화살을 만들면 백만 개도 넘겠어.”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깃털을 보면서 린린이 말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것만 팔아도 산본의가가 가장 돈이 많은 가문이 될 거야.”

“그런데 이거 어떻게 가져가지, 오라버니?”

“나는 걱정 없는데? 힘 센 동생이 있어서.”

“나보고 이걸 옮기라고?”

“린린. 왜 이래. 너 센 거 이 오라버니가 다 아는데 어디서 약한 척이야.”

그러면서 아진이 먼저 한쪽으로 가서 괴수를 받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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