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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56화 (456/470)

제456화

456화

“다들 그동안 수련은 잘 하고 있었지?”

“네. 공자님.”

아이들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모여들었고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왜 이러실까 하면서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아진의 검에서 거센 바람이 일었다.

아이들은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자세만 해도 그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때부터 아진은 말없이 검을 휘둘러대며 그들을 압박해나갔고 아이들은 잘못하면 죽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주 맞고 쓰러지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그럴 정도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아이들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아진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끈질기고 혹독하게 수련을 해 온 것인지.

“좋아. 바로 수업을 시작해도 되겠구나.”

아진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아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아진은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교두들에게는 이미 섬풍대 아이들을 자기가 며칠 동안 지도하고 싶다고 말을 해둔 상태였다.

교두들도 섬풍대 아이들이 아진에게 배우는 동안 참관하며 아진이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대단한 기연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아진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한 것은 사황의 비고에 있던 무공이었던 탓이었다.

아진은 사도련의 제물로 쓰였던 아이들을 한곳으로 모으고 다른 아이들과 구분을 지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은 같이 가르쳤다.

아진은 아이들이 충격을 받거나 상처 입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을 해나갔다.

“너희도 기억하고 있겠지만 너희는 특별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그 후에 내가 가르쳐준 정순한 심법을 익혔다. 하지만 너희에게는 사파의 기운이 강하게 잠들어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울적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진은 그게 오래 남아있을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건 너희에게 좋은 일일 거다. 기쁘게 생각해도 좋다. 그 자리에 안주하는 사람은 안 그렇겠지만 너희는 다르다. 만약 너희가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일깨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다르고 나는 너희에게 내 계획을 알려주려고 한다. 너희와 같이 계획을 실현해가는 거지.”

아이들은 감격을 감추지 못하고 아진을 보았다.

“살아남기만 하면 너희들은 모두의 위에 서게 될 거다.”

“공자님도 저희 아래가 될까요?”

한 녀석이 말하자 아진이 웃었다.

“내가 죽은 후에 말하는 거야. 나랑 몇 사람이 더 죽은 후에. 우리가 늙어서 죽고 너희는 아직 살았을 때 말이지.”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와하하 웃었다.

아진도 그런 아이들을 보며 웃었고 그때부터 다시 가르침을 시작했다.

* * *

비무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를 두고 사련의 집행부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사이에 사인걸이라는 너무 큰 변수가 생겨버리는 바람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진행을 해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궁의 연회가 끝난 지도 시간이 꽤 흘렀고 사인걸의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 일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지금 그들이 비무대회를 연다고 해도 되는 건지 영 정확한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고 있을 때 산본의가에서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비무대회에 사용될 상비약을 가져왔다고 하며 산본의가에서 나올 무인들이 비무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했다.

사련의 련주는 그것이 아진의 배려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련에서 어떤 고민을 할지 짐작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보내온 것 같았던 것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우리도 부족함이 없도록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 알려주십시오.”

그때부터 사련은 비무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비무대회는 화려하게 준비하고 정작 사련에서 나가는 무인의 실력이 형편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고수들은 특별히 수련에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비무대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그 비무대회에 산본의가의 영웅들이 총출동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갔다.

팽수혁과 곽설도 함께 수련을 했는데 그들 역시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곽설, 사련에서도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올라가야 할 텐데.”

“그러게 말이야. 천마신교에서 안 나온다고 하면 기대를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천마신교에서 나오냐 마냐의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 산본의가에서 얼마나 나올지가 관건일 것 같다. 거기에서 고수들이 대거 참석을 해 버리면 우리는 본선에 오르기도 어려울걸?”

“이번이 끝은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워낙 큰일을 치르고 난 후라 사사로운 욕심이 저절로 사라지는 듯했다.

만약 사인걸이 산본의가로 가지 않았다면 사련의 고수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사인걸에게 내공을 흡수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생각할수록 산본의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커졌던 것이다.

“그런데 황상께서는 오시지 않겠지? 전에 산본의가에서 열린 비무대회에는 참석하셨다고 하는 것 같던데.”

곽설이 묻자 팽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오시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막상 오신다고 하면 어디에서 모셔야 할지 그것도 걱정이었다.

그리고 자기들이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 같다고 여겼다.

황상을 맞이할 생각에 걱정을 하고 있다니.

어느새 사련이 다른 사람들의 중심으로 가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기회가 저절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 * *

섬풍대의 훈련을 도와주고 돌아온 아진은 산본의가로 돌아가지 않고 언덕으로 향했다.

걷는 모습이 힘이 없어 보였는데 깊은 생각에 빠져 한없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냐고 했을 듯했다.

할 일 없던 독각화망과 흑주가 싸돌아다니다가 아진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왔다.

흑주가 반갑다는 듯이 아진에게 맹렬히 날아왔지만 아진은 흑주가 온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이기어검과 심검.

거기에 언령까지.

아진은 사인걸이 한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공이라면 자기도 누구 못지않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사인걸이 한 것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안 될 건 없지.’

사황의 비고에 적힌 무공 비급도 보았고 그에게는 그것 외에 너구리들이 있던 섬에서 얻은 비급도 있었다.

‘단순히 머릿속에 있는 것으로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어. 이미 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은 게 있을지도 몰라. 내가 모르는 게 아닐 거야. 알기는 하고 본 적도 있을 거야. 그런데 완전히 내 것이 되지 않은 것뿐이야.’

그동안 충분히 강했다.

더 이상은 적수를 찾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그랬다.

그러나 사인걸은 확실히 어려운 상대였다.

사인걸의 언령.

사인걸의 심검.

아진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췄다.

흑주는 아는 척 좀 하자는 듯 아진의 어깨로 날아와 슬쩍 부딪쳤다.

“어. 흑주야.”

아진이 말하자 흑주가 신이 나서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흑주의 안에 있던 그림자 용은 흑주가 그러는 바람에 정신이 사나운 듯했다.

“나와라. 그림자 용.”

아진은 자기가 언령을 해 본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사인걸이 어떤 식으로 언령을 한 건지 아진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무공이라기보다는 상태창이 준 힘이었다.

사황의 비고에 있던 무공으로 얻은 것과는 다른 종류의 능력이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자기가 그것을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원리도, 무리도 전혀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령은 접어두고 심검의 단초만 잡아보려고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림자 용이 흑주의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말을 해 본 거였는데 흑주의 몸에 금이 갔다.

뱅글뱅글 돌던 흑주가 그 자리에 우뚝 멈췄고 아진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나오지 마!”

설마 그게 자기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을 하고 아진이 급히 흑주를 끌어당겼다.

균열은 짧은 시간에 크게도 생겨나 있었다.

아진은 마나를 불어넣으려고 하다가 그게 더 이상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나오지 말아야 할 마나가 나와서 균열을 덮었다.

‘뭐야. 이건 왜 또 나오는 거야?’

짜증스러울 정도였다.

쭉 되거나 쭉 되지 말 것이지 어떤 때는 됐다가 또 어떤 때는 되지 않고…….

생각 같아서는 필요 없으니까 꺼져버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흑주의 균열을 없애는 데는 그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았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균열이 사라져버린 것을 보면.

흑주는 몸을 빼내더니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자신의 균열을 살피는 듯했다.

“괜찮은 것 같아. 겉으로 봐서는 티도 안 나. 금이 갔다는 거 아무도 모를 거야.”

흑주는 그제야 안심한 것 같았다.

“미안해. 내가 그림자 용에게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흑주도 그 일이 왜 생겼는지 잊어버렸던 듯하다가 우뚝 멈췄다.

아진은 그런 흑주를 두 손으로 감싸고 그 안에 있는 그림자 용을 유심히 보았다.

‘나오라고 하면 나오려나?’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흑주가 깨질 것 같았다.

그런 희생이 필요한 거라면 아진은 절대 그림자 용을 불러낼 생각이 없었다.

흑주도 그런 아진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진에게 다시 시도해 보라고 조르는 듯했다.

흑주는 자신의 생각을 특이한 방법으로 전달했는데 그때도 아진은 흑주가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흑주야. 내가 그림자 용을 불러내기를 바라?”

그러자 마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흉내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흑주가 아래위로 움직였다.

아진은 그림자 용을 다시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림자 용이 흑주를 다치지 않게 하고 나올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닌가? 벽에서 나온 것처럼 그런 식으로 나올 수 있는 건가?’

아진은 자신 없는 얼굴로 흑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흑주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위아래로 한 번 굴렀다.

‘그래……?’

아진은 언령을 시도했다.

“그림자 용, 흑주를 깨지 말고, 균열도 일으키지 말고 밖으로 나와.”

한 마디 한 마디를 분명하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생기면 안 된다는 듯이.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가 생긴다면 흑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진 자신이 흑주를 바로 고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마나가 제멋대로라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흑주를 깨지 않을 자신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있어.”

아진은 결국 그 말을 덧붙였다.

그림자 용도 그게 쉽지 않아서 그런 건지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 되는 모양이네.’

그게 그림자 용의 문제인지 자신의 문제인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언령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 언령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될 게 아니겠지.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돼.’

그리고 그는 처음에 해 보려고 했던 이기어검을 다시 떠올렸다.

그림자 용이 흑주의 밖으로 나온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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