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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55화 (455/470)
  • 제455화

    455화

    아진은 죽은 사람이 사인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의 충격이 상당했지만 일단은 조사를 면밀히 해나갔다.

    품을 뒤졌지만 안에서 나온 것 중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목을 조이고 그대로 들어 올린 듯 목에 자국이 있었는데 도대체 누가 사인걸을 상대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인걸이 죽었다.

    여전히 현실감이 들지 않는 말이었다.

    “전서를 써 보내라. 린린. 본가에도 보내고 사련에도 알리는 게 좋겠다.”

    “그런데 이자가 사인걸이 확실한 거지? 겉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사인걸이 이런 객잔에서 그냥 죽어버렸다고?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사인걸에게 호되게 당한 전적이 있는 린린은 특히나 그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린린도 그자가 사인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린린이 전서를 써서 제일조를 불러 전서통에 전서를 넣어주자 제일조가 그대로 날아올라 갔다.

    객잔 주인은 그들이 일 처리를 하는 것을 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이 부리는 새만 해도 보통의 전서구와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평범한 전서구여도 값이 비싼데 그들이 부리는 새는 그런 전서구와는 비교도 안 돼 보였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 하고 있는데 아진이 그를 보고 말했다.

    “이자는 사인걸이라는 자요. 사파의 흉수입니다.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혈겁을 벌이고 다녔고 수많은 사람을 죽여서 관에서 찾고 있는 자입니다. 점소이는 이자에게 죽은 것 같습니다. 원래 성정이 사납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자입니다.”

    그 말을 들은 객잔 주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사람을 죽인 자라면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자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의 객잔에 왜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온 건가 하면서 그는 덜덜 떨었다.

    “관에 신고를 하십시오. 이자의 목숨에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어서 이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괜한 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겠지요. 지금도 이자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찾아다니면서 수색을 하고 있을 텐데.”

    “예. 공자님.”

    객잔 주인은 자기에게 할 일이 생긴 것이 반가운 듯 그대로 쌩하니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누굴까?”

    린린은 사인걸을 죽인 게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서 물었다.

    아진도 린린만큼이나 그것을 알고 싶었다.

    얼마 후에 객잔 주인이 다시 돌아왔다.

    관에 신고를 하도록 사람을 보냈다고 하면서 그는 혹시 자기가 도울 일이 없냐고 했다.

    아진은 이 방에 누가 들어왔냐고 물었고 객잔 주인은 최선을 다해 기억을 해 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수확은 없었다.

    “점소이가 올라가고 난 후에는 아무도 2층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납니다. 2층이 이 방 말고는 다 비었거든요. 2층에 묵었던 손님이 점소이가 올라가기 전에 객잔을 떠났어요. 그래서 이 손님은 어떻게 할 건지 알아보라고 올려보낸 거였어요. 내려와서 식사를 할 건지도 알아야 했고 하루 더 머물 거면 돈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확실합니까?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

    “예. 그건 정말 확실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점소이가 죽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닐 겁니다. 무림인이라면 얼마든지 기척을 숨긴 채 숨어들 수 있지요.”

    아진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검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옷이 베인 자국도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흔적이라면 목에 난 손자국뿐인데 사인걸과 마주 서서 직접 겨뤄봤던 아진은 사인걸의 키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인걸을 이런 식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

    게다가 그 정도의 신력을 사용할 수 있고 사인걸의 공격을 모두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쉽게 상상할 수가 없었다.

    사인걸은 지금 바로 맞붙는다고 해도 자기가 이길 거라고 쉽게 장담을 할 수가 없는 상대였던 것이다.

    “희한하네. 누굴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인걸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끝끝내 알아낼 수가 없었다.

    * * *

    사인걸이 일으킨 풍파는 마침내 잠잠해졌다.

    산본의가도, 사련도 마음을 놓았다.

    아진이 린린과 함께 추연월을 보러 갔을 때 그는 의학당에서 수업을 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저를 보러 오셨습니까.”

    추연월이 환한 얼굴로 다가오며 물었다.

    “예. 얘기나 좀 했으면 해서요.”

    “사인걸의 얘기인 모양이네요.”

    “아니요. 상태창에 대한 얘기입니다.”

    “아…….”

    그 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위도가 지나가다가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무슨 얘기들 하는데?”

    추연월이 상태창 얘기라고 하자 위도도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그 상태창은 왜 자꾸 이 녀석한테만 그러는 걸까? 왜 나는 유혹도 안 해? 나도 넘어갈 수 있는데 말이야. 나한테도 좋은 것 좀 준다고 하고 시도를 해 볼 것이지. 안 그러냐. 아진아? 나만큼 너를 해치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냐. 어?”

    위도가 말하자 린린이 잘하는 짓이라는 듯이 그를 보았고 위도도 그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는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상태창 말이에요. 정말 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형? 제가 그렇게 싫으면 여기로 데려올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아니지, 아진아. 여기로 데려오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너는 레이드도 워낙 잘했잖아. 거기에 두면 죽을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안 죽으니까 여기로 데려온 거 아닐까?”

    “그것도 이상해요. 마나를 거둬간 걸 보면 마나를 준 것도 상태창일 것 같단 말이죠. 그러면 애초에 마나를 안 주면 되는 거였잖아요. 그것도 아니면 던전에 레이드를 하러 들어갔을 때 마나를 거둬가든가요. 그랬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텐데.”

    아진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위도는 아진이 정말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상태창은 자존심을 지키면서 뭔가 자기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요?”

    추연월이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그러자 중요한 얘기는 아니라며 추연월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기는 해요. 누군가 오라버니를 여기로 불러오고 그때부터 장난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게 그 작자한테는 아주 즐거운 것처럼 보여요.”

    린린이 진지하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너구리가 살던 섬 말이에요. 형님. 그 섬이 혹시 상태창과 관계가 있을까요? 그 섬도 희한하기는 했잖아요.”

    “내가 깨어났던 섬? 평범한 곳이 아니기는 했지.”

    “기이한 비급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도 그렇고 곤오철이 있던 것도 그렇고요. 온갖 영약이 그곳에 다 있었고 육지와 멀리 떨어져서 아무나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선이 남에게 알려준 적 없던 비급이 그 섬에 적혀 있기도 했다.

    그곳은 무엇일까.

    아진은 그 생각을 깊이 해 보려고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위도도 미리 고개를 저으면서 자기는 그런 복잡한 건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된 거야말로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이게 가장 희한한 일인 것 같아요.”

    추연월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했다.

    “참. 이제 비무대회 준비를 해야 하는 거죠? 비무대회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거죠?”

    갑자기 생각난 듯 추연월이 물었고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희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설마하니 추연월이 거기에 나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물었던 거였는데 추연월은 간단하게 코웃음을 쳤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도 나갈 거예요.”

    “거기에 왜요?”

    이번에는 린린이 물었다.

    추연월은 단순히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하는 것 같은데 산본의가 입장도 생각을 해 줘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무대회에 참가하면 소속을 밝혀야 하고 산본의가 소속이라는 게 밝혀질 텐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가 예선에서 떨어지면 무슨 창피인가.

    린린은 눈빛에서 그것을 전부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아니이! 정말 사람을 뭐로 보고 이러세요? 나 헌터였던 사람입니다. 그것도 S급이었다고요!”

    추연월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못 싸우잖아요.”

    린린이 왜 뻔한 얘기를 다시 하게 하냐는 듯이 말하자 추연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오해입니다. 처음에 여기에서 하필 여자 몸으로 깨어나서 그런 거지 이제는 다릅니다.”

    “그럼 대련을 해 보면 알겠네요.”

    아진은 몸으로 확인해보면 될 걸 가지고 못 배운 사람처럼 왜 자꾸 말로 하려고 하냐고 했고 추연월은 멍한 얼굴로 아진과 린린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턱짓으로 린린을 가리키며 린린과 붙어보라고 했다.

    산본의가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가장 붙고 싶지 않은 사람이 린린이었는데 하필 린린이라니.

    추연월이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위도가 자신의 검을 건네주었다.

    그렇게까지 하면 추연월도 마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위도가 건넨 검을 받으려고 하던 그는 검의 무게에 팔이 아래로 내려가다 그대로 무릎까지 꿇었다.

    “……끝인가요?”

    린린의 말에 추연월이 고개를 들었다.

    정확하게 린린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자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소립니까! 아니에요. 제대로 할 거란 말입니다!”

    “검도 못 들면서 어떻게요?”

    린린이 깐족거리려고 한 것은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그런 듯했다.

    추연월은 위도의 검을 내려놓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평범한 검을 빌려서 린린과 대련을 하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산본의가에는 넘쳐나는 게 곤오철이고 평범한 무사도 곤오철로 만든 검을 차고 다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 기다리십시오!!”

    추연월이 말하고 제 처소로 달려가 자기가 사용하던 철검을 가지고 돌아왔다.

    린린은 자기가 정말 추연월을 상대해 줘야 하는지, 만약 상대해 준다면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제대로 실력 발휘해. 실력을 숨기는 게 더 자존심 상할 거야.”

    아진의 말에 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위를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었던 건데 그렇게 수위를 정해준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덕분에 추연월은 순식간에 겸손한 자세를 배웠다.

    린린이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바로 검을 내렸던 것이다.

    저 인간은 대련을 할 때도 죽일 작정으로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추연월은 일찌감치 마음을 정했다.

    비무대회에는 무소속으로 나가기로.

    * * *

    섬풍대의 아이들은 아진이 다시 자기들을 가르치러 올 거라는 걸 생각도 하지 못했다가 그가 돌아온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진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황제도 보고 싶어 하며 왜 안 오냐고 수도 없이 전서구를 보내거나 사람을 직접 보내기도 하는데 시간이 조금 남았다고 다시 자기들을 가르치러 와 준 것을 보며 정말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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