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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54화 (454/470)

제454화

454화

아진을 이곳으로 데려온 상태창이었다.

그런 상태창에게 불가능한 일이 뭐가 있을지 그것을 생각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던 것이다.

팽수혁이 곽설을 위로하고 그곳에 있는 이들의 시신을 같이 옮겼다.

“그런데 이건…….”

벽을 보던 팽수혁이 먼저 벽에 적힌 글귀를 발견했고 아진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건 구결 같은데…….”

아진이 말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그들은 그것이 사황이 남긴 무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사황이 마지막에 창안한 그의 무공 천검7식의 구결도 보았다.

그게 뭔지 알지 못한 채로 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모두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함께 무공 비급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죽이고 무공 비급을 혼자만 알려고 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팽수혁과 곽설은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한 듯했고 오히려 아진과 린린이 자기들을 처리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는 모양새였다.

“두 분은 특히나 사황의 무공에 적합할 테니 잘 익히도록 하십시오. 가능하면 지금 외우도록 하세요. 이곳은 부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이 무공을 다른 사람이 익히는 것도 위험할 수 있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련은 사인걸로 인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내분에 휩싸일 것입니다.”

아진의 말에 두 사람은 모두 동의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한 번 본 걸 바로 외우지는 못하는데 곽설, 네가 외워.”

“나도 그런데. 네가 외워. 소련주.”

아진은 두 사람이 그걸 아직 못 외웠다는 걸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이 딱히 외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사황의 무공.

그것은 탐낼 만했지만, 그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알았을 터였다.

그들은 아진을 샅샅이 알 기회가 없었기에 지금은 이렇게 웃지만 나중에 자기들을 죽여 후환을 없애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부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자님.”

팽수혁이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이 말하자 곽설이 후련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이분들의 시신을 먼저 동굴 밖으로 옮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자 두 사람은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사파 무인들의 시신을 밖으로 옮겼다.

그러는 동안 아진과 린린도 도왔는데 팽수혁과 곽설은 아진이 동굴을 부수려고 하자 아쉬운 듯했다.

“안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밖으로 나가십시오.”

아진이 말하자 두 사람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진이 돌아왔을 때 린린은 벽에 적힌 구결을 보고 있었다.

“다 외웠어?”

“응. 그런데 여기는 그냥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섬풍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거든.”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왜 진작 생각을 못 했지?”

“내가 했으니까 됐지.”

린린과 아진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결계를 칠 수 있어.”

린린의 말에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파에는 대외적으로 이곳이 사라진 것으로 하는 게 나중에 분란이 생기는 것도 막고 좋을 듯했다.

“내가 동굴 뒤쪽으로 가서 폭음을 낼게. 철방 방주님이 만들어주신 폭약을 하나 터뜨리면 되겠다.”

“그래. 나는 결계를 만들게.”

두 사람이 합의를 하고 나서 잠시 후에 그곳에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우르르르 무너져내리는 소리도 들려서 팽수혁과 곽설은 사황의 동굴이 무너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는 동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가서 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팽수혁이 곽설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는 않아?”

“욕심을 부려서 뭐 해. 내 것이 아니면 욕심내지 않는 게 좋아.”

“네 것인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게 내 거라면 어떻게든 돌아오겠지. 그러면 그때 차지하면 되는 거고.”

팽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상으로는 그리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그사이에 부쩍 생각이 많이 달라진 듯했다.

곽설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사인걸은 어디에 있을까. 다른 곳에서 또 혈겁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진과 린린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이분들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저희가 할 테니 어서 산본으로 돌아가시지요. 걱정되시겠습니다. 공자님.”

그들이 할 일이 많기는 했지만 아진도 계속 그곳에 머무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해 그곳에서 그들과 헤어졌다.

린린도 그때부터는 아진과 함께 서둘렀다.

“신법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

“응.”

“솔직히 어느 정도야? 나는 먼저 올 줄 알았거든. 부상이 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는 린린이잖아.”

“정말 완전히 다 나았어. 확인해봐도 돼. 대련을 해 봐도 되고. 나는 오라버니가 걱정됐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그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그래서 알게 됐지. 그동안 오라버니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나는 지금도 쭉 대단해, 인마.”

아진이 말하자 린린이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니 린린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본가로 갈 거야, 오라버니?”

“아니. 추살접을 쫓아가야지. 그게 나아. 너는 어때?”

“나는 완전히 다 나았다니까? 나는 바로 가고 싶었는데 소련주가 고집을 부려서 그런 거였어. 조금 더 쉬고 가라고. 그 상태로 보내면 나중에 오라버니가 가만있지 않을 거라잖아.”

“그 말이 맞기는 하지.”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제일조가 날아와서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다.

린린은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제일조를 보았다.

아진이 추살접을 따라가겠다고 생각을 한 것만으로 제일조가 그곳으로 온 거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제일조와 추살접이 아진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심지어 추살접은 아진의 것도 아니고 역천마의의 것인데도 린린보다 아진을 더 잘 따르고 있었다.

제 주인을 잊어버리고 아진을 주인처럼 섬기는 제일조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진은 처음에는 린린의 상태를 확인해가면서 갔지만 나중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는 동안 몇 번 쉬기는 했지만 그 후로는 계속 제일조를 따라갔다.

제일조는 착실히 사인걸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그런데 오라버니. 마나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특별히 원망스럽거나 걱정되지는 않았어. 치사해서 안 쓴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 맞아. 오라버니는 이제 그런 거 안 써도 되잖아. 그래도 충분히 강하고.”

그러다가 린린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사인걸을 만나면 오라버니가 이길 수 있어?”

“잘 모르겠어. 네가 처리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 정도야? 나는 이미 처참하게 졌는데.”

“아. 이제 사인걸은 언령을 못 쓸 거야. 그러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때는 언령 때문에 그랬잖아.”

그러면서 아진이 자세히 말을 해 주었고 린린은 깊이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언령이 아니었다면 자기가 사인걸을 이길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겁먹지 않아도 돼. 린린. 너한테 아무 일도 안 생기게 할 거니까.”

“나한테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야. 오라버니를 지켜주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해서 그러는 거지.”

린린의 말에 아진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 그래야 내 동생이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제일조가 자기들을 데려간 곳에서 어떤 소식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제일조가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다 온 건가?”

아진과 린린은 서로 그렇게 말을 하며 덩달아 속도를 높였다.

신법을 계속해서 펼치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지친 기색은 없었다.

그러다가 제일조가 객잔의 위에서 맴도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그곳에 사인걸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갔다.

두 사람 모두 검파에 손을 얹은 채 사인걸과 마주치면 곧바로 대응을 하기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몇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사인걸과 관계된 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조심히 다가가자 주인이 사람들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 작자는 왜 하필 여기에서 죽어서!”

객잔 주인은 목소리를 낮추고 하소연을 하듯이 말했는데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주 왕래하는 객들인 것 같았다.

“괜히 관에 신고를 하면 조사한다고 부르고 귀찮게 해서 장사나 공칠 테니 그냥 우리한테 넘겨요. 은자 서른 냥이면 처리해 준다니까.”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거지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점소이도 죽었다면서요. 이렇게 되면 일이 더 복잡해져요. 그냥 복잡해지기만 하면 괜찮게? 주인장이 두 사람을 죽인 거라고 누명을 쓸 수도 있어요. 빠져나오려면 돈을 줘야 하고 말이오. 그것도 운이 좋을 때 얘기지 운이 나쁘면 빠져나오지도 못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며 객잔 주인의 얼굴은 점점 희게 변했다.

그러다 아진과 린린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나중에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이 자기들이 하는 말을 들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아진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사인걸이 관련된 걸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계속 그곳에 있어서는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아진은 린린도 그것을 느끼나 해서 바라보았지만 린린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웬만한 일이 생겨도 크게 놀라는 사람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기는 했다.

아진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 뭔가를 아는 게 있을까 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일이 벌어진 장소를 찾는 것은 두 사람에게 전혀 문제도 아니었기에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객잔 주인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1층에 없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며 2층으로 따라왔다.

두 사람은 이미 사인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객잔 주인은 그 많은 방 중에 어떻게 딱 그 방을 알고 들어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아진과 린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순간 방심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저, 저는……. 저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손님이 나오지 않기에 점소이를 올려보내서 돈을 받아오라고 했는데 그러고도 점소이가 내려오지 않아서 올라와 봤더니 점소이와 손님이 죽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점소이는 보다시피 체구도 작고 이런 손님을 스스로 죽일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싸울 줄도 몰라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진작 관에 신고를 해야 했는데 이 손님이 가지고 있는 재물이 탐이 나기도 하고 의심을 받을까 겁도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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