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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53화 (453/470)

제453화

453화

사인걸은 흠칫했다.

아직 여기를 떠나지도 못했는데.

그곳에는 점소이의 시신이 있었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 좋을 것은 전혀 없었다.

점소이를 죽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다른 사람까지 더 죽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째 일이 자꾸 꼬이는 것 같았다.

‘그냥 모르는 척할까? 대답을 안 하면 그냥 가지 않을까?’

사인걸은 자기가 그런 것까지 고민해야 하는 건가 해서 더욱 짜증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갈등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문손잡이가 부서지며 문이 열리고 밖에 있던 사람이 들어왔던 것이다.

사인걸은 웬만한 사람을 보고 놀랄 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방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는 진심으로 놀랐다.

피풍의를 걸치고 죽립을 쓴 이가 고개를 들었다.

“……!!”

그동안 놀랄 일은 수도 없이 겪어왔던 사인걸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숨을 멈췄다.

죽립을 쓴 자의 얼굴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눈코입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목구비가 없다는 것도 놀랄 일이었지만 그자는 얼굴 자체가 없었다.

단지 얼굴만 없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옷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도 정상적인 몸이 아닌 것 같았다.

흡사 허공에 신기한 술법으로 피풍의와 죽립을 걸쳐놓은 모양새였다.

사인걸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검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자가 소리도 없이 사인걸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목을 쥐었다.

소매에서 나온 것은 형체도 없는 그늘 같은 검은 공간이었지만 사인걸의 목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자가 아무리 괴상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사인걸은 자기가 그런 자에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황의 비고에서 얻은 비급이 사인걸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인걸은 목을 붙잡힌 채 꼼짝을 하지 못했다.

“으으으윽!”

간신히 그런 비명만을 흘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와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객잔은 2층이었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1층에 몰려 있을 거였다.

사인걸은 자신의 몸이 들어 올려지는 것을 느끼고 허우적거렸다.

손을 쥐어뜯으려고 두 손으로 힘껏 잡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추연월을 죽이고 영원한 언령의 힘을 얻으시겠습니까?]

그때 갑자기 상태창이 나타났다.

사인걸은 상태창이 다시 한번 자기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고 보다가 왜 그 문구가 다시 나오는 건가 했다.

‘사려……, 사려…….’

살려 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그는 점점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느꼈다.

[추연월을 죽이지 못해 당신의 목숨이 회수됩니다.]

사인걸이 마지막에 본 문구였다.

그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 * *

사인걸이 죽고 나서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진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사련으로 향했다.

언제 사인걸이 다시 산본의가로 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진이 도착하자 사련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다가왔다.

“공자님. 사인걸은 어찌 되었는지요. 사인걸을 잡았습니까?”

아진은 아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놓쳤습니다.”

“산본의가에 가기는 했던가요?”

“예. 그곳에 왔습니다.”

“어찌 되었는가요. 피해가 크지는 않습니까?”

먼저 아진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그곳으로 다가와서 그 행렬에 가담했다.

아진은 련주전으로 먼저 가고 싶었지만 자기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마냥 모른 척하고 가버릴 수도 없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일찍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인걸이 본가를 떠나기는 했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서요. 지금은 동생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아. 그렇지요. 그렇겠습니다. 서 소저는 몸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내일 중으로 떠난다고 했는데 공자님이 와서 다행이군요. 아무래도 혼자 가는 것보다는 둘이 가는 게 나을 테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빨리 린린이 보고 싶어져서 아진은 그때부터 서둘렀다.

그러나 린린이 있다는 곳에 갔을 때 그곳은 비어 있었고 린린이 산본으로 떠나기 위해 련주에게 인사를 하려고 련주전으로 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급히 서둘러 련주전으로 갔고 그곳에서 나오는 린린을 보았다.

“린린. 하마터면 엇갈릴 뻔했다.”

“오라버니. 괜찮아? 어떻게 됐어? 사인걸을 만났어? 사인걸을 잡았어? 안 다쳤어?”

린린은 물어볼 게 너무 많은 듯 아진에게 다가와 물으며 아진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사인걸은 정말 대단하더라. 무시무시했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 별일은 없었어. 그자가 언령이라는 걸 사용했는데 그건 정말 무서웠어. 사람들에게 죽으라고 말하는데 그 언령의 힘이 너무 강해서 정말 무서웠어.”

“죽으라고 말하면 죽는 거지?”

린린은 이미 그 일을 당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사인걸을 확실히 인정하고 있었다.

사인걸의 언령에는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인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았어. 그래서 바로 가고 싶었는데 몸은 회복이 더디고…….”

“너는 어때? 무리한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어우.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이기어검에 심검이라니. 오라버니는 마나도 사용을 할 수 없었다며. 연 군사님한테 미리 안 배웠으면 수술도 못 했을 거고 나는 꼼짝 없이 죽었겠지? 죽는 게 겁나는 건 아닌데 너무 허무할 뻔했어. 사인걸 같은 인간에게 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데 말이야.”

둘이 밖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련주가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아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제 곧 들어올 건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결국 참다 참다 자기가 나왔던 것이다.

“서 공자.”

“련주님. 다녀왔습니다.”

“어찌 되었습니까.”

아진은 린린에게 했던 얘기를 다시 간략하게 해 주었고 련주는 다행이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산본의가로 돌아가야지요. 사인걸이 떠났다고는 하지만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고 말입니다.”

“사인걸이 사련으로 오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그자가 고수들의 내공을 흡수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자라면 사련을 노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련주의 그 말은 합리적이었고 그렇게 생각할만했다.

아진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우선은 산본의가를 먼저 지켜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복잡했다.

련주는 걱정이 되면서도 아진을 적극적으로 잡지는 못했다.

사인걸이 사련으로 갈지 산본의가로 갈지 거의 반반이었고 자기들을 위해서 여기에 남아달라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산본의가에 수많은 고수가 있다고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사인걸을 맞아서 넉넉하게 이긴 것도 아니고 정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듯했다.

“우선은 가 보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그러셔야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서 공자님.”

“저야말로 동생을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팽수혁에게도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를 찾으려 하는데 린린이 그를 보았다.

“오라버니. 만약 본가에 일이 생기면 제일조가 와서 우리한테 알려줄 거야. 그러니까 우선은 사황의 비고를 먼저 찾아보면 어떨까? 나는 그게 더 급한 것 같아. 그리고 그 후에는 우리가 사인걸을 찾아 나서는 거야. 아직 추살접이 사인걸을 쫓고 있지?”

“그렇지.”

대답을 하며 아진도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사황의 비고는 그 근처에 있을 거야. 다시 가 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도 사인걸이 나오지만 않았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내가 가까이 다가갔던 거야. 그래서 사인걸이 동굴을 지키려고 나온 거야.”

린린의 말에 아진도 그럴듯한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그러는 동안 소문을 들은 팽수혁이 두 사람을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소련주님.”

“무사하셨군요. 공자님.”

거기에서 또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아진은 자기들이 지금 사황의 비고에 가는 길이라고 하며 같이 가겠는지 물었다.

팽수혁은 눈이 동그래졌다.

사황의 비고라니.

그곳에 간다고 하면서 같이 가겠냐고 묻는 아진이 그는 이해되지 않았다.

사황의 비고를 찾을 수 있다면 그곳에는 그들끼리만 가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영약 한두 개가 걸린 그런 수준의 기연이 아니었다.

“고, 공자님……. 정말……. 저를 그곳에 같이 데려가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아진이 웃었다.

“저희도 사황의 비고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곳을 살피다가 사인걸과 마주쳐서 제 누이가 그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뿐이지요. 소련주님이 가서 열심히 찾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혹시……. 곽설도 같이 가면 어떨지요. 서 공자님?”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비고를 찾는 것이니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 같았는데 실상은 곽설을 챙기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 것을 알고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공자님. 곧 불러오겠습니다.”

곽설도 같이 린린을 돌보느라 사련에 와 있었기에 쉽게 찾아서 데려올 수가 있었다.

* * *

함께 사황의 비고를 찾아 나선 그들은 그다지 오래 헤매지 않고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결계가 오히려 린린을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린린이 결계를 느끼고 그것의 흔적을 따라갔다가 동굴을 발견한 것이다.

“왜 그동안 사람들이 이 주위까지 오고도 못 찾았는지 알 것 같아. 결계 때문이었어.”

린린의 말을 들으며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희가 긴장해야 할까요?”

안에 사인걸이 있을 수도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지 팽수혁이 물었다.

“사인걸이 안에 침입자가 올 것을 대비해 두었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크게 염려할 상황은 아닐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조심해두면 좋기는 하겠지요.”

아진의 말에 두 사람은 마음을 놓는 듯했다.

아진이 선두에 나서고 세 사람이 그 뒤를 따라 사황의 비고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사파의 고수들이었다.

특히나 흑사문의 표사들과 적무단 무인들이 한곳에 처참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본 곽설은 크게 충격을 받은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린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과 싸우던 사인걸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사인걸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강해지는 것 같았었는데 그게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연관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니겠지.’

이들의 내공을 뒤늦게 흡수했던 걸까 했지만 그것은 격체전력의 상식에도 어긋났다.

린린이 뭔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아진이 이유를 묻자 린린은 자기가 생각한 것을 말했다.

그러자 아진이 어쩌면 그것도 가능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태창은 이곳의 규칙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지만 꼭 거기에 구애되는 건 아닌 것 같아. 격체전력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내공을 흡수하게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해도 상태창은 사인걸에게 내공을 흡수시킬 방법이 있는 것 같거든.”

린린도 그게 맞겠다고 여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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