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447화 (447/470)
  • 제447화

    447화

    사인걸.

    돌아온 헌터.

    아진은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그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상태창이 사인걸을 돕고 있고 이제 자신은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 같다고 깨달았다.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만약 린린이 이렇게 다치지만 않았다면 걱정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사인걸에게서 어느 정도 멀리 떨어지고 아진은 멈춰 선 채 위도를 바라보았다.

    “형님이 마나를 불어넣어 보세요.”

    “나는 고치는 능력이 없다, 아진아.”

    그 말이 맞았다.

    “공자님. 제가 해 볼까요?”

    청수가 말을 하고 다가왔다.

    뭐라도 해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일 뿐, 아진은 청수나 무린이 아직 운기요상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련의 련주라면 할 수 있을까?

    산본의가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는 동안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추연월이 알려준 수술로도 안 될까, 아진아?”

    위도가 다급하게 말했을 때 아진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망이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선 뭐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차피 하지도 못할 거면서 귀한 시간만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을 굳혔다.

    “사련으로 가죠. 수술을 한다고 해도 린린의 체력이 너무 약해져 있어서 린린에게 내공을 불어넣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사련의 사람들은 린린의 내공과 안 맞는 것 아니야?”

    “우선은 해 봐야죠. 수술을 하는 동안 체력이 버틸 수 있는 정도로만 해 주면 되는 건데…… 린린은 워낙 특이한 애잖아요.”

    근처에 정파 무림의 고수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위도는 진작 그런 것을 연습해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다른 건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천치처럼 못하기도 했는데 위도는 지금 피눈물이 흐를 정도로 그것이 아쉬웠다.

    그들이 사련으로 갔을 때 그들을 발견한 사련의 무사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자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혹시 사인걸을 만나신 겁니까!”

    “치료를 해야 합니다. 련주님을 뵈어야겠습니다.”

    아진이 말하자 무인들이 먼저 서둘러 움직여주었다.

    곧 사련의 지휘부가 달려 나왔고 린린이 의식까지 잃은 채 아진에게 안겨 있는 것을 보았다.

    련주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고 아진을 곧장 련주전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이 직접 린린에게 운기요상을 시도했다.

    아진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련주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부상이 너무 심합니다. 단순히 검으로 벤 것도 아니고 이것은…….”

    아진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수술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누이가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련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가 수술을 하는 동안 련주님께서 내공을 불어넣어 누이가 수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습니까.”

    련주는 그 말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은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 도구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면 그것을 구하느라 다시 얼마나 시간을 지체했을지 알 수 없을 일이었다.

    위도는 밖으로 나가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켜 섰고 아진은 숨 막히게 긴장되는 시간을 보냈다.

    린린이 잘못되는 것을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곳에 와서 린린이 없이 살았던 기간은 고작해야 몇 년뿐이었다.

    린린이 태어난 이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린린과 함께 했다.

    린린이 저의 앞에서 이렇게 무력하게 쓰러져 있던 적이 언제였을까.

    아진은 좀처럼 평정을 찾지 못했다.

    환자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어려서부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담했던 아진이었지만 지금 그는 자꾸만 심장이 떨려와서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손이 떨리는 것 같아서 잠시 멈춘 게 벌써 여러 번이었다.

    “공자님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아끼는 마음이 앞서면 안 하던 실수를 하기도 하는 법입니다만, 공자님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자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지요. 공자님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고 중한 병자를 고치기도 하는데 의원이 사용하는 방법을 쓰는 것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러시는 것을 보면 중대한 변화가 생긴 것이겠지요.”

    련주가 아진의 손을 가만히 잡은 채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얘기를 들으라는 것 같았다.

    말을 하면서도 내공을 불어넣고 있어서 린린의 상처는 안정되고 있었고 출혈은 멈추었다.

    “공자님. 살면서 보니 위기가 기회일 때도 있더군요.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은 주저앉아 버리기도 합니다. 저는 공자님이 주저앉으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마에 대해서도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마가 천마의 발아래에 있다는 말이었지요. 그런데 뭘 두려워하십니까.”

    그 말을 듣자 아진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다닌 건가.

    염마가 알면 얼마나 화가 날까.

    웃음이라는 것이 가진 힘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때까지만 해도 까마득해 보이기만 하던 시야가 다시 밝아지는 것 같았다.

    “천마는 강한 사람입니다. 겨우 이 정도에 죽지는 않을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서 자기 힘으로 살아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굴면서 공자님의 속을 뒤집을 테니 말입니다.”

    이번에는 소리까지 날 정도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것이 연륜이라는 걸까.

    아진은 그때부터 긴장감을 잃은 채 수술을 집도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급한 것을 해내고 나자 그때부터는 여유가 생겼다.

    절개된 곳을 일일이 찾아서 봉합하면 련주가 그곳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아진은 그의 내공으로 린린의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았다.

    아진은 련주 자신도 자기가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유능하다는 것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외의 순간에 빛이 발한 경우인 것 같았다.

    치명적인 상처를 잡고 나자 절로 긴장이 풀렸다.

    “신기하군요, 공자님.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치료를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련주의 말에 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할 정신까지 생겼다.

    “사인걸을 보았습니다. 린린과 위도 형님이 먼저 발견했는데 린린이 저에게 위도 형님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이 나서고 사인걸을 해치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거의 안 했는데 그자…….”

    아진이 말을 하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온 거였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인걸이라는 자가 헌터인가 그거였다는 말인가요?”

    련주야말로 놀란 듯이 물었다.

    “예. 련주님. 여기에도 내공을 주입해 주십시오.”

    말을 하면서도 아진은 그런 것을 챙기고 있었다.

    “예. 그런데 천마가 내공을 아주 야무지게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이 녀석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런데 련주님이 이 정도의 내공 고수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가진 내공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내공을 운용하는 능력이 월등합니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나중에 영약이나 하나 주십시오.”

    련주가 허허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것은 절대로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림인치고 영약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진은 그에게 아낄 것이 없었고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해 주었다.

    련주는 민망한 것 같았지만 기쁜 마음을 숨기지는 않았다.

    “아. 하던 얘기를 계속하자면, 그래서 일이 꼬였던 겁니다. 사인걸이라는 자. 특별한 도움을 받는 것 같더군요. 사인걸 때문에 제 힘이 나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평소에 사람을 고칠 때는 마나라는 걸 사용했는데 그 마나가 흩어지기만 할 뿐 이번에는 말을 듣지 않더군요.”

    “그게…….”

    련주는 놀란 듯 아진을 보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것 같았다.

    “도망쳐왔습니다. 누군가의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잡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도망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더군요.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 같습니다.”

    련주는 그때야말로 기함했다.

    천마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싸움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지금 서도진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도진이 누구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진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던 그였지만 이제는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앞으로 누가 사인걸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듯했다.

    “공자님.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차근차근 풀어가야 하겠지요.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전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나는 제가 알지 못하는 다른 존재가 저에게 값없이 준 힘이었습니다. 그 힘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사라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도 없었지요. 그래서 그 힘이 사라질 경우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을 했습니다. 의술을 배운 것도 그 일환이었고 말이지요.”

    아진이 웃는 것을 보며 련주는 서서히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아진에게 놀라운 말을 계속 들었지만 그가 들었던 어떤 이야기도 그것처럼 놀랍지는 않은 듯했다.

    이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얼마나 커다란 그릇이면 자기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채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는 건가.

    아진을 격려하기는 했지만 련주는 막상 그 일이 자기에게 닥치면 그리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격려를 듣고 일어섰고 다시 앞을 보고 있었다.

    “공자님. 내가 지금까지 헛살아 온 것 같습니다. 공자님을 보고 있자니 정말 부끄럽군요.”

    “저도 후회 많은 삶을 살았고 지금도 제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민망한 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말이지요. 그래도 어느 순간 불현듯 삶이 멈출 때까지는 계속 이 실수를 반복하면서라도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하겠지요.”

    말을 마친 아진이 가만히 린린의 손을 쥐었다.

    아진의 얼굴을 본 련주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던 사람이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린린의 상태가 나아져서 그런 것이기도 했겠지만 이 사람은 원래 그렇게 거대한 자였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공자님.”

    그러자 아진이 그를 보고 웃었다.

    “지금까지 저에게는 사파가 가장 어려웠지요. 오히려 천마신교와 황실은 어렵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파와도 손을 잡게 되는군요.”

    련주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다.

    “공자님에게는 정말 그랬겠군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산본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인걸이 산본으로 갔을 것 같아서 서둘러야 할 듯합니다.”

    이제 더는 그 일을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쉬지도 않고 바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말을 드리겠습니다.”

    “말을 타고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주신 것은 감사합니다.”

    아진은 말을 하고 린린을 안은 채 밖으로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