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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46화 (446/470)

제446화

446화

‘심검……?!’

심검을 사용하는 자들을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린린은 심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엄청난 내공을 소모해서 오래 사용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다가 린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인걸이 격체전력으로 내공을 모으려고 했을 거라는 아진의 말이 떠올랐다.

‘사인걸이 벌써 성공한 건가?’

제발 아니기를 바랐지만 사인걸의 움직임을 보면 전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내공이 많아진 게 분명했다.

‘그동안 잡아갔던 사람들에게서 내공을 모두 받은 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사인걸의 움직임을 보면 그게 맞는 듯했다.

사인걸의 얼굴에는 점점 여유가 깃들었다.

그가 웃으면서 검을 더욱 자유롭게 휘둘렀다.

“윽!”

린린은 결국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검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연달아 빈틈을 파고드는 바람에 결국은 검을 놓쳤던 것이다.

사인걸의 얼굴에 통쾌한 웃음이 지어졌다.

린린은 한순간 방심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인걸은 조금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더 빨라지고 강해진 것처럼 린린을 공격했다.

이기어검과 심검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이 몇 개가 날아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린린이 알기로 그것은 어떤 검객에게도 가능한 수위가 아니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고 수많은 고수와 마주했지만 이런 경우는 단연 처음이었다.

이건 상상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린린은 몇 번이나 평정심을 잃었다.

아진도 이 정도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그랬다.

하나하나의 위력이 맹렬했고 호신강기를 두른다고 해도 그것을 뚫는 것 같았다.

생각만 그렇게 한 것뿐이지 린린은 호신강기를 두르지도 못했다.

몸 전체에 호신강기를 두르는 것은 불가능했고 검격이 가해질 곳을 보호할 수 있을 뿐이었는데 그게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리해서 전체에 호신강기를 두른다면 아무리 내공이 많은 린린이라고 하더라도 내공이 소진되고 말 듯했다.

이자와의 싸움은 며칠 주야로 계속 이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릎을 꿇는 사람은 자신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린린은 몸을 날려 사인걸에게서 피했다.

도망치는 것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 말고는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사인걸은 린린이 도망치도록 놔두지 않았다.

“여기에 올 때는 나를 죽이려고 했겠지. 그랬으면 네 목숨도 내놓을 생각을 해야지, 천마. 안 그런가? 그래야 공정할 것 같은데?”

사인걸은 지금이면 자신의 언령이 통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도했다.

“멈춰라, 천마!”

린린은 태산이 제 위로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이번에는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다리가 풀리며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다리를 세우고 몸을 바로잡았다.

“멈춰라, 천마!”

한 번 더 언령이 발하고 린린의 코와 귀에서 피가 흘렀다.

“멈춰라, 천마.”

사인걸은 언령을 반복했다.

그럴수록 자신의 말에 더욱 강한 힘이 실린다는 것을 그 자신도 느끼는 중이었다.

점점 그 말에 반응을 보이는 천마를 보자 멈춰야 할 이유가 없었다.

생전 이런 고양감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멈춰라, 천마.”

마침내 린린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깨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느껴지고 다리가 풀렸다.

‘이건 무공의 영역이 아니다!’

린린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염마도 꼼짝 못 하게 했던 그녀였다.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재해를 불러일으키고 주변의 지형을 바꾸어대던 린린이었는데 그 린린이 지금 사인걸의 앞에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라버니와 같은 사람이야!’

린린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게 아니라면 이것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넘어올 사람은 다 넘어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린린은 왜 변수가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추연월이 된 연월랑에게 계속해서 상태창이 나타나며 그에게 명령을 내렸는데도 그가 반응을 보이지 않고 거부해서…….

그래서 결국 새로운 사람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던 듯했다.

사인걸에게서 몰아치는 기운은 점점 더 강해졌다.

한계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불길했다.

다시 날아온 심검이 린린을 찔렀다.

사라졌다가도 궤적을 바꾸어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도 수월했다.

지독한 전능감에 사인걸은 점점 더 취해갔다.

사인걸은 이번에야말로 죽인다고 생각하며 심검을 날렸다.

그러나 그때까지 움직이지 못한 채 자신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천마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바람?’

사인걸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었고 천마가 거기에 휘말려 날아가 버린 듯했다.

그러나 바람에 휩쓸린 것치고 착지가 부드러웠다.

바닥에 나뒹군 것도 아니고 부드럽고 우아하게 내려선 것이다.

아니. 내려선 것도 아니었다.

천마의 몸은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안긴 것 같은 자세를 하고.

사인걸이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천마를 안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

사인걸은 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연히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바로 서도진일 거라는 생각이.

“서도진인가, 네가?”

사인걸의 말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인걸은 서도진의 몸에서 희한한 것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마나……?’

사인걸이 희한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이 이상하게 흩어져 버려서였다.

바람이 불어 연기가 흩날리는 것처럼 서도진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헌터였던 사인걸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알아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서도진의 얼굴이 경직되는 것을 보며 사인걸은 자기가 생각한 게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인걸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서도진이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인걸은 진심으로 기뻤다.

그동안 살아왔던 모든 날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랬다.

사인걸의 얼굴에 웃음이 짙게 드리워지는 동안 서도진은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냥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마나를 불어넣는 중이었다.

사인걸의 공격을 막아 내는 동시에 마나를 불어넣어 린린을 치료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공격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그에게 린린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자신의 몸이 상한다고 하더라도 린린을 낫게 하는 것이 더 급했다.

그런데 마나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린린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마나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던 서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사인걸을 보았다.

“너는 누구냐.”

서도진의 물음에 사인걸이 통쾌한 웃음을 지었다.

“내 이름을 아직 못 들었나? 우리 구면인데 말이지.”

사인걸은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적어도 그자가 누구에게 죽는지는 알기를 바랐다.

결국 마지막에 이긴 사람은 자신이라는 걸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사인걸이었지.”

그러나 서도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인걸은 서도진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너와 같은 부류다. 나도 헌터였지. 상태창이 나타나서 묻더군. 무림으로 이동하겠냐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하고 여기에 왔지.”

이번에도 표정의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사인걸은 우리가 구면이라는 말을 던졌고 이제 당연히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를 본 적이 없다고 하거나 최소한 누구냐고 물어볼 거라 생각했고 서도진이 물으면 어떤 식으로 말을 할지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도진은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뭐지? 말을 제대로 못 들었나?”

그러고 있을 때 주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인걸은 그저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긴장을 하며 몸을 피하기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천마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서도진도 마나가 흩어지며 공격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금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고 손꼽히는 서도진이었고 그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천마였다.

그 두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어놓고 나니 무서울 게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또 저자잖아?’

천마와 함께 있던 자였다.

이번에는 조무래기도 데리고 왔다.

그래 봤자 어린 티를 다 벗지도 못한 녀석들 둘뿐이었다.

그러나 사인걸은 그 아이들이 함부로 볼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그를 자극했던 것이다.

‘저 녀석들…… 그놈들일 수도 있겠군.’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정파의 기운이면서 묘하게 익숙했다.

사도련의 제물이 되었던 놈들.

사인걸의 머릿속에 그 계산이 들었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은 여러모로 운이 좋은 날인 듯했다.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어려울 텐데 이렇게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사인걸은 누구를 먼저 요리해줄까 생각했다.

한 번에 모두를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그는 점점 흥분이 됐다.

서도진만 있었을 때는 천마를 먼저 죽여 서도진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자는 마음이었는데 아이들이 나타난 순간 마음이 바뀌려고 했다.

“서도진. 괴수 앞에서도 멍청하더니 여기에서도 마찬가지군. 마나를 사용할 줄도 모르는 건가? 마나가 다 흩어지잖아.”

사인걸은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서도진에게 말했다.

오랜만의 재회인데 서도진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영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별것도 아닌 것이 신경이 쓰였다.

‘설마 내 이름을 모르고 있었던 건가? 그건 아니겠지. 내 이름을 모른다는 게 어떻게 가능해? 여기에 와서 내 이름을 들었을 때 이미 그걸 떠올렸을걸? 희한하다고 생각했겠지. 어떻게 이 이름을 여기에서 다시 듣게 되는 걸까 하고.’

그러나 서도진은 그런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마나가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마나로 린린을 고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이제 답은 하나였다.

자신의 마나가 통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서도진은 위도와 아이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이곳을 떠나 산본의가로 가야 한다고.

마나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린린을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위도와 아이들은 그 말을 알아듣고 깜짝 놀랐고 곧 거기에 맞춰 움직였다.

사인걸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야 하는 것이 아쉽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인걸은 그들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뭘 하려는 거지?”

그러면서 사인걸이 그들의 앞으로 가려 했을 때 갑자기 그의 눈앞에 보랏빛 구름이 몰아치는 듯했다.

눈속임 같은 걸 거라고 생각하며 사인걸은 검을 움직였다.

맹렬한 검풍에 보랏빛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비……?’

구름이 흩어지는 대신 조각 나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인걸이 가까이 다가갔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에 서도진과 그의 일행이 도망쳤지만 사인걸은 서두르지 않아도 그들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산본의가.

그곳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지금 그들이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해도 거기에 먼저 가서 사람들을 죽여 매달면 어차피 서도진도 그곳에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사인걸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갈가리 찢어진 나비를 집어 들었다.

‘신기하네. 이게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거지?’

그는 살아남은 추살접 한 마리가 자신의 등에 내려앉은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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