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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44화 (444/470)

제444화

444화

황제는 아진을 반기며 사인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아진은 먼저 장서각에서 찾아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폐하. 우선은 장서각에 갔으면 합니다.”

“그렇구나. 어서 가보아라. 하월을 보내 도와주라고 하겠다.”

“그리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이남 형님도 보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을 하는 걸 보니 급한 일인 듯한데 짐도 도우랴.”

아진이 잠시 머뭇거리자 황제가 웃었다.

“돕겠다면 맡기고 싶기는 한데 짐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몰라서 그러는 것 같구나. 이 괘씸한 놈.”

“잘 하실 수 있는지요, 폐하.”

그 말에 황제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서 가 있으라고 말했고 아진은 그 길로 장서각에 갔다.

아진과 얘기를 하는 동안 황제가 먼저 태감을 장서각에 보내 아진의 출입을 허락하도록 해두어서 아진은 다른 절차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황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하면서 아진은 다시 한번 장서각의 막대한 서적의 양에 기가 질렸다.

“공자님. 공자님을 도우라는 폐하의 명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도울 것이 있으면 말씀을 해 주시지요.”

하월이 오기 전에, 장서각에서 업무를 보던 관리들이 와서 그에게 말했고 아진은 잘 됐다고 생각하며 사황에 대한 자료를 모아달라고 했다.

“혹시 사황이 창안했다는 무공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사황에 관련된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으니 그것을 찾아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가져온 자료만 해도 이백 권이 넘었다.

사황이 쓴 무공서도 있고 거기에 대한 주석만 수십 권에 이르렀다.

아진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추리는 것만 해도 벅찼을 테지만 그는 특유의 오성으로 그 일에 매달렸다.

하월과 선이남이 속속 도착했고 아진의 옆에 앉아서 그 일을 도왔다.

“그러니까 폭약을 만드는 법과 그걸 이용한 무공을 사인걸이 익힌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흡성대법이건 뭐건 특이한 방법을 사용해서 고수들의 내공을 흡수하는 거고.”

선이남의 말에 아진이 눈은 쉬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염빈까지 데리고 와서 몇 권의 책을 가져가서 아진이 말한 대로 분류를 했다.

건질 게 없는 것처럼 빠르게 책장을 넘기면서 책을 한쪽으로 치우던 아진의 손이 갑자기 멈추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격체전력…… 이거였던가 봅니다. 이거라면 말이 되겠습니다.”

아진이 말하자 선이남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데 그건 내공을 주려는 사람이 자의로 해야 하는 거지 않으냐, 아진아.”

“협박으로 하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억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경우에도 격체전력으로 내공을 받을 수는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진이 선이남과 하월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하자 그들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격체전력으로 내공을 받기 위해서 고수들을 잡아갔다는 거구나. 그리고 그 일을 지금 어느 정도 성공도 한 거고.”

그때 염빈이 황제에게 말했다.

“폭약을 다루는 무공이라는 것이 혹시 이게 아닌지요, 폐하?”

황제도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염빈이 찾은 책을 아진에게 건넸다.

황제가 염빈을 데리고 왔을 때 염빈이 잘 할 수 있을까 했던 아진은 뜻밖의 성과에 기분이 들떴다.

여기로 오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아진이 하월을 보며 말했다.

“하월 공자. 공자는 이곳에서 특별히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사련으로 가 주면 어떻겠습니까. 사인걸이 청수와 무린이를 노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서 공자는 말을 해도 참. 앞의 말은 빼고 해도 되는 게 아닙니까.”

그러더니 자기가 뭘 바라겠냐는 듯 하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웃어버렸다.

그러다가 아진을 바라보더니 만약 그런 거라면 산본의가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물었다.

“사련은 그 자체로 사인걸이라는 자가 접근하는 것이 어려울 거고 그자가 청수와 무린이의 내공을 탐내는 거라면 산본무관 섬풍대로 바로 갈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고 하월은 황제와 염빈에게 인사를 한 후 그곳을 떠났다.

“사황의 무공이 정말 뛰어났던 모양이다. 나는 사련이 사황을 과대평가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나기만 했으면 무림 역사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칠 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며 선이남이 보여 주는 부분들을 확인하면서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사황의 비고를 찾아다닌 사람들의 기록이다. 자기들은 찾지 못했지만 분명히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적혀 있구나. 한 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황제가 찾아준 것은 아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은 다른 것보다 중요한 게 그 자료일 것 같았다.

“근거도 나름대로 합리적입니다. 사인걸이 사황의 비고를 찾고 이런 무공을 알게 됐다고 하더라도 계속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일단은 여기를 찾아보는 것에서 시작을 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사인걸이 다시 문제를 일으킬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 할 것이 없으니까요.”

“사인걸이 정말 이곳을 발견했다면 여기를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이 찾아다닐 거라는 걸 알 텐데 그냥 놔둘 이유가 없겠지. 나라면 벌써 없애버렸을 것 같기는 하다.”

황제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우선은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수색을 해 보기로 하자고 그렇게 결론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찾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해도 자기들이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러면 아진이 너는 이대로 가서 수색을 먼저 시작해봐. 내가 여기에서 내용을 더 확인하고 너한테 필요할 만한 걸 추려서 사련으로 갈 테니까.”

선이남이 역할을 분담해주어 아진은 후련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쉬지도 않고 바로 가야 하는 것이냐. 아진아.”

황제가 안타까워했지만 그도 지금 사안이 급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이 해결되는 대로 와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리저리 돕는 손길들이 있고 이렇게 뜻밖의 곳에서 단서가 발견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래. 너를 믿는다. 몸 상하지 말고 항상 네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하도록 하거라.”

“예, 폐하. 감사합니다.”

아진은 더 이상 그곳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은 채 물러났고 황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런 아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진에게 너무 크게 의지하며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 *

사련으로 돌아온 아진은 위도의 강권으로 억지로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우리를 믿고 너는 좀 쉬도록 해라, 아진아. 우리가 바보도 아닌데 왜 너 혼자 전부 다 떠맡으려고 하는 거냐. 그건 우리를 무시하는 처사다.”

그 정도로 세게 하지 않으면 아진이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위도가 말했다.

무리하는 것도 모르고 계속 한계까지 몰아붙이다가 나중에 내공이 부족해지면 어쩌려는 거냐는 말에 아진도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알았습니다, 형님. 그러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어느 정도 앞이 트인 것 같아서 마음이 마냥 부담스럽기만 하지는 않았다.

아진이 쉬는 동안 위도와 린린은 아진이 가져온 정보를 바탕으로 사인걸을 찾아 나섰다.

사련에 말을 해서 그들과 함께 가는 건 어떤지 위도가 먼저 물었지만 린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같이 나서면 각각의 기량이 어떨지도 모르는데 그들 중에 무위가 떨어지는 사람이 기척을 들켜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이유였다.

위도도 그 말이 맞겠다고 생각하고 린린과 함께 책에 나온 일대를 뒤지고 돌아다녔다.

그래도 뭔가 시작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후련하기는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면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정말 못 하겠다.”

“저도요, 오라버니.”

“사황의 비고라는 게 여기에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우리가 이걸 왜 찾는 거지, 린린? 사인걸이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면 사황의 비고를 찾는 게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그래도 가보면 단서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린린 역시 자기가 사인걸이라면, 그리고 사인걸이 그곳을 찾았다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부수고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인걸은 찾지 못한 것이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사인걸이 그런 여지를 남겨뒀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근처에 사황의 비고가 있을 거라는 것도 사람들의 추측인 거잖아. 그러니까 여기에 없을 수도 있는 거지?”

위도의 말에 린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위도도 그런 부정적인 말은 멈추고 열심히 주위를 살폈다.

“이 정도에서 이제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평생을 바쳐서 찾아다닌 걸 우리는 반나절도 안 찾았어요. 오라버니.”

린린의 말에 위도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만약 자기가 아니었다면 린린이 그렇게 오래 참아주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위도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린린은 점점 더 집중했다.

“린린. 혹시 뭔가 있는 것 같아?”

린린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자세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위도도 그때부터 린린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위를 살폈다.

위도는 계획을 바꿨다.

어차피 자기는 사황의 비고를 찾는 능력은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자기가 도움이 될 수는 있을 듯했다.

린린이 거기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주위에서 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자기가 봐주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분담을 하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린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린린이 왜 그러는 건지 위도는 알 수가 없었다.

‘희한한 느낌인데…….’

린린은 이상한 기분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면서도 정확한 방향을 찾아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사이 사인걸에게 나타난 상태창이 그에게 린린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천마가 7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천마가 6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천마가 5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

.

[천마가 1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인걸은 상태창이 계속해서 뜨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하며 어리둥절했다가 나중에는 정신을 차렸다.

‘천마? 서도진 동생? 그 작자가 왜 여기에 나타나?’

사인걸은 천마가 7리 안에 나타났다는 것을 봤을 때까지만 해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태창이 왜 그런 것까지 알려주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천마가 아무리 가까이 다가온다고 해도 자기가 있는 곳을 알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천마는 사인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접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다가왔다.

1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상태창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잖아?’

사인걸이 있는 비고는 처음부터 결계가 있었다.

사황이 쳐놓은 결계였다.

사황이 죽은 지 워낙 시간이 많이 지나서 사인걸이 밖으로 나갔을 때는 그 결계가 거의 효력이 없었는데 사인걸이 다시 결계를 만들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해야 하는 거였는데 천마는 상관없다는 듯이, 애초에 그런 결계는 자기에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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