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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43화 (443/470)

제443화

443화

“생각할 필요도 없겠다 싶으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셔도 됩니다. 나는 그냥 내가 느낀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장을 보고 느낀 겁니다만 그곳에 있던 사람은 적어도 사 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사람은 우연치 않게 갑자기 내공이 늘었고 자기가 새로 갖게 된 내공을 어느 정도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지 시험을 해 보려고 한 것 같습니다.”

묵 장로가 말할 것이 있다고 했을 때 기대가 된 것처럼 주의를 기울였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묵 장로는 일단 자기가 시작한 얘기는 끝을 맺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다른 분들의 표정을 보니 내가 한 말이 허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시작을 했으니 전부 말을 하겠습니다. 내 생각에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사인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이 폭약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고 폭약을 사용하는 무공도 익혔습니다. 그리고 세 번의 장소에서 각각 자기가 가진 내공을 조금씩 끌어 올린 것 같습니다. 마지막 현장에서 그는 자기가 가진 내공을 거의 9할까지 사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건 왜인지요?”

서도진이 묻자 오히려 묵 장로가 희한하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내가 하는 말을 믿습니까?”

“예. 믿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왜 9할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멈췄으니까요. 그게 아니었다면 더 일을 일으키지 않았을까요? 세 번째 현장이 마지막이 되었던 것은 확인을 끝내서 그런 것 같거든요.”

“갑자기 내공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내공을 자기가 얼마나 잘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에 알고 있던 무공을 사용해서 내공을 시험적으로 운용해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런 가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말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일단 그 폭약을 만드는 방법이나, 현장에서 사용된 무공 자체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걸 손에 넣는 게 아주 불가능하기만 한 건 아니죠. 저는 그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자 묵 장로가 정말이냐며 물었다.

“예.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현장에 모두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라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멈춘 이유도 석연치 않았는데 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고 말입니다. 사람들을 데려다 폭약을 심고 폭사시킨 건 그 무공을 연습한 거였겠군요.”

“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표사와 무인들이 사라진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내공이 급격히 늘게 된 것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흡성대법을 생각하십니까?”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서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런 거라면 이런 일이 앞으로도 더 일어날 수 있겠군요. 흡성대법을 사용해 자기가 데려간 사람들에게서 내공을 추가로 흡수하면 또 확인을 해 보고 싶을 테니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확인을 하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하면서 내공을 길들이는 의미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사인걸은 반드시 그걸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내공을 많이 갖고 있다고 능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많아진 내공을 자기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장로님.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묵 장로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서도진을 보며 말했다.

약문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명맥을 유지해 왔다.

폭약이나 만드는 자들이 무슨 무림인이라고 그러는 거냐면서 사파에서도 그들을 무림인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들 자신도 내공을 사용하고 수련을 거쳐 무공을 하는 거였지만 배척을 받으며 괄시를 받으면서 버텨온 시간이 길었다.

이번에만 해도 사련에서는 사인걸이 일으킨 문제로 약문의 사람들을 오라 가라 하면서 하인 부리듯이 하고 있었고 그가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허튼소리를 한다면서 비웃기만 할 뿐 귀를 기울여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만 했을 뿐 확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입을 열기만 하면 사람들의 무시와 조롱을 당하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만약 자기 말이 맞는 거라면 수많은 죽음을 자기가 막을 수도 있는 건데 어떻게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까 했다.

결국 용기를 내서 말을 해 본 거였는데 서도진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니 제대로 통한 것 같았다.

묵 장로는 그동안의 모든 시간을 다 보상받는 것 같았다.

서도진이 누구던가.

사련의 련주도 서도진의 앞에서는 한 수를 접고 들어가야 하는 판국이었는데 그 서도진이 은공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를 대하고 있었다.

“장로님.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련주를 보며 말했다.

“묵 장로님을 사련에서 모시고 이곳에서 이번 일에 관련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사인걸을 잡는 데 묵 장로님의 도움이 크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수시로 장로님께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예. 물론이지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사련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련주는 그것을 사련의 공로로 가져갔는데 묵 장로는 그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이 잘만 된다면 자신의 문파가 더 이상 사련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폭약과 무공을 익히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군가 그걸 배우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어디에서 배워야 했을까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문파에 들어와서 가르침을 청했겠지요. 그런데 사인걸은 그런 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흡성대법을 익혔다면 정상적인 문파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그러자 사련의 다른 사람들도 그 말이 맞을 거라며 수긍했다.

서도진은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나 한결 눈이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제 생각입니다만…… 사황의 비고에는 수많은 무공비급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설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황이 실제로 존재했던 분이니 사황의 비급을 누군가 찾았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지요. 사인걸이 사황의 비고를 찾았고 그곳에서 폭약을 사용하는 무공과 흡성대법을 익혔다면 다른 것도 설명이 됩니다.”

묵 장로는 서도진이 한 번 자신의 말에 동의를 해 주었다고 그때부터는 과감하게 생각을 말했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과한 비약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했다.

서도진은 그들에게 물었다.

“흡성대법에는 제한이 없습니까? 남의 내공을 흡수하는 것은 무한하게 가능한가요?”

그러자 모두 자신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만 하면 모두 흡성대법을 익히지, 왜 힘들게 다른 무공을 하겠습니까? 하다못해 부작용이라도 있겠지요. 버림받은 무공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련주의 말에 서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봐야 제자리걸음이군요. 아직 사인걸이 있는 곳은 전혀 알아낸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누군가 묵 장로를 견제하고 싶은 듯 말했지만 묵 장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말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련주님. 사련의 장서각에 사황에 대한 기록이 있으면 그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평소라면 외부인인, 게다가 사파도 아닌 정파의 서도진이 그런 것을 부탁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련주가 그 청을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보는 것은 무리일 테니 소련주님과 흑사문의 소문주님이 찾아서 알려주신다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직접 보겠다고 한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그렇게 말을 해 주어 련주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련의 사람들과 헤어진 후 아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위도와 린린은 아진이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후에는 중대한 결정이 내려지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황성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형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형님이 아이들을 잘 지켜주세요. 무슨 일이 생겨도 우선은 나서지 말고 지켜보는 것으로 하고요. 사인걸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황성에는 왜?”

“사황이 창안했다는 무공과 사황에 관한 기록이 황실 장서각에 있을지 찾아보려고요. 사련에 맡게 두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황실에서 찾는 게 더 빠를 거예요. 여기에는 없다고 해도 황실에는 있을 수도 있고요. 지금은 그게 꼭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생각했으면 어서 가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와. 하월 공자하고도 얘기해 보고. 그 사람은 머리가 비상해서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예. 형님.”

아진이 청수와 무린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다른 일에 나서려고 하지 말고 너희를 지키는 데 가장 주력해야 한다. 만약에 이번에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으면 다음부터는 안 데리고 다닐 테니 명심해라.”

“네. 공자님.”

“그렇게 할게요.”

청수와 무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진은 린린의 어깨를 한번 톡톡 두드리고 그대로 그곳을 떠났다.

흡성대법은 아니다.

계속 마음에 걸린 것은 그거였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그런 것이건 아진은 사인걸이 다른 사람의 내공을 노린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고 그것이 사파 고수들이 사라진 이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자꾸 생각이 미쳤다.

청수와 무린.

그리고 섬풍대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의 내공을 탐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졌다.

가는 동안 아진은 제일조를 보내 북리의천도 그곳으로 오도록 하고 싶었지만 갓 태어난 아기 때문에 사고의 곁을 떠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최대한 빨리 이 일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빨리 사인걸을 잡지 않으면 안 돼.’

묵 장로의 말을 들으면서 더욱 확신이 든 거였는데 사인걸은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고 지금까지 혼자서 이 일들을 수행해온 것 같았다.

아진이 황성에 도착했을 때 황성에는 이미 사인걸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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