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0화
440화
곽설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공자님. 그 말씀이 맞습니다. 사인걸은 사악한 술법을 사용하는 듯합니다. 이 일을 먼저 알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주의하도록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게 될 겁니다.”
“자세히 설명을 해 보십시오.”
아진이 말하자 곽설이 자기가 본 것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대주와 사련의 사람들은 짜증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곽설 같은 자가 일을 망치는 거라는 생각이 그들의 얼굴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지금 자기들이 잠깐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 곽설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대주.”
아진이 딱 지목해서 부르자 사련의 대주도 별수가 없었다.
“일각을 주겠습니다. 사련의 모든 무인은, 그리고 흑사문 소속이 아닌 모든 사람은 일각 안에 이곳을 떠나시오. 흑사문의 어떤 사업장에도 당신들의 모습이 보이면 안 될 것이오. 일각이 지난 후에도 그곳에 당신들이 있으면 나는 그들을 죽일 것이오. 이 일로 사련이 나에 대항하려고 한다면 나는 사련도 죽일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아진이 허튼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냐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그 일이 이루어질 거라는 것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황상께서 당신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은 당신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오. 정파를 견제하기 위한 것뿐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양민들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신 것뿐이오. 어떤 사람들은 좋은 것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지. 지금 사인걸이라는 자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당신들은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었을 것이오.”
“죄송합니다. 공자…….”
“일각이오.”
아진이 말하자 대주가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수하들이 서둘러 움직이며 퇴각을 명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못 볼 꼴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곽설이 아진의 앞으로 와서 말했다.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근처의 야산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리고 오십시오. 그리고 소문주님은 이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설명해주시오. 사인걸이 벌인 일과 그가 나타난 곳, 표국에서 했던 일도 전부 다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공자님.”
일각이 지난 후에는 아진도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아진은 빠르게 전서 한 장을 썼다.
“형님은 성주에게 이것을 가져다주십시오. 그리고 성주에게 말해서 인근의 다른 성주들에게도 소식을 전하라고 해 주세요. 그자가 이곳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 대응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제일조를 보내도 되겠지만 더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나한테 맡겨. 이걸 하고는 어디로 가지?”
“그건 제일조를 통해서 알려드릴게요.”
“그래. 조심해라, 아진아.”
위도가 사라지고 곽설이 서도진의 옆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 가보도록 하지요.”
“다른 분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실 생각이신지요. 공자님?”
“예.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적은 인원이 움직이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방법을 찾지 않으면 피해만 커질 거라서 말이지요.”
“그렇군요.”
곽설은 희미한 기대감마저 느꼈다.
* * *
적무단이 사라진 곳으로 간 그들은 그곳에서 폭사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소문주님은 평소에 사인걸이라는 자를 잘 알고 있었습니까?”
“아뇨. 그게 아쉽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면 미리 조치를 취했을 텐데 너무 늦었습니다.”
“총표두까지 될 정도면 한두 해 표국에 있었던 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고 워낙 무위가 높아 빠르게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곽설의 말을 들으며 아진은 사람들의 시신에 마나를 불어넣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효과도 없었다.
“잘 안 되시는지요. 공자님?”
옆에 있던 무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진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요, 공자님?”
곽설은 아이들이 말하는 게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아진에게 할 수 있다고 다독이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이상하구나. 그동안 살리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마나가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럴까요?”
“저희를 고쳐주실 때는 마나가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분들은 다른 걸까요?”
그 말을 들으면서 곽설은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 아이들인 것이다.
사도련의 제물이 되었던 아이들.
곽설은 그때부터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이들에게서는 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정순한 내공이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서는 놀랍게도 전혀 상처가 느껴지지 않았다.
곽설은 새삼스럽게 서도진이라는 사람에게 놀라고 있었다.
자기라면 그런 상처를 절대로 치유하지 못할 것 같은데 그 사람은 넉넉하게 그 일을 해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게 짜 맞추지 않으면 이 아이들이 사도련의 제물로 끔찍한 일을 겪은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게 말이다. 마나를 받아들이는 힘이 느껴지지 않고 내가 마나를 불어넣으려고 해도 겉돌다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이분들이 달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분들에게 폭약을 심은 사람 때문일까요? 아니면 폭약 때문일 수도 있을까요?”
“그것도 모르겠다.”
곽설은 아진이 혼자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조용히 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했는데 가만 보니 아진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 가면서 해답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곽설은 그게 왜 중요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린 적도 있었고 실패한 적도 있었으니 이번에는 안 되나 보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도 되는 문제가 아닌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진은 그 문제를 그냥 지나가지 않았고 시간을 들여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이 사람들을 꼭 살리고 싶은 건가?’
그러면서도 곽설은 아진에게 그것을 묻지는 못했다.
“혹시 무슨 생각 하세요. 공자님?”
“모르겠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지.”
아진은 복잡하다는 듯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청수야. 무린아. 아. 아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자 제일조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아진은 제일조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전서를 쓰기 시작했다.
청수와 무린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죽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끝까지 아진을 도울 거였다.
아진을 위해서 싸우다가 죽을 수 있다면 후회가 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서를 써서 제일조에게 보내고 아진은 다른 시신들에게도 마나를 불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다 결국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신을 묻어줘야겠다.”
아진이 말하자 무린이 한쪽으로 가서 발을 굴렀다.
곽설은 무린이 진각을 밟은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것이 자신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에 놀랐다.
“무린은 흙의 힘을 사용하는 아이입니다.”
아진이 말하자 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신을 매장한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아진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향화문 지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향화문 지부에 도착하기 전에 사람들이 떠들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정말 마을 사람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죽었다는 거야?”
“그곳에 물건을 대는 상인이 보고 와서 한 말이니까 맞는 것 아닐까? 요괴라도 본 것처럼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던데.”
무슨 말인가 하면서 아진 일행이 다가가 묻자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들이 들은 얘기를 해 주고 싶었던 듯 금방 얘기를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에 갔는데 그곳 사람들이 전부 죽었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은 건지 몸이 조각조각 나 있더라는 거예요.”
“거기가 어디라고 합니까!”
아진이 묻자 그들은 서로를 보더니 마을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진이 곽설을 보자 자기가 그곳을 안다며 곽설이 먼저 신법을 펼쳤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곳을 시작으로 세 곳의 마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범행은 점차 진화하는 듯했다.
처음 본 곳에서 사람들이 폭사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점점 더 폭약의 위력이 강해지는 듯했다.
그 일을 벌이는 자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고 제물을 찾는 듯했다.
세 번째 마을에서는 살덩어리가 확연히 잘게 잘라져 있었다.
“사인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공자님.”
곽설이 물었지만 아진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 * *
사인걸은 결과적으로 사련을 기사회생하게 해 주었다.
사련은 정신 차리고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더 이상 이전의 권력을 계속 누릴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결과 모든 무인들이 나서서 양민을 보호했다.
사련이 치안을 강화하면서 일시적으로 사인걸의 발이 묶이는 듯했다.
그리고 한 번 주춤했던 이후 사람들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계를 강화했다.
그것이 아진에게는 천재일우였다.
린린이 합류한 후 아진은 폭사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사인걸의 단서를 찾기 위해 매달렸다.
가장 먼저 사인걸의 정체를 파악한 곽설이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현장에서 조사를 하던 아진이 갑자기 곽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소문주님. 소문주님 말씀대로라면 추살 3조를 찾으러 간 사람들은 다른 임무를 하러 간다고 하면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그 후에는 돌아왔습니까? 그들이 하러 간 임무는 뭐였습니까?”
그러자 곽설이 놀란 듯 아진을 보았다.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돌아온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전서가 만약 사실이 아니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나는 적무단이 사라진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적무단은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지요.”
“……제가 사람을 보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님. 그들이 돌아왔는지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제일조를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전서만 하나 써 주시지요.”
“예, 그러겠습니다.”
곽설이 서두르는 동안 위도와 린린이 아진에게 다가갔다.
“혹시 무슨 생각을 해, 아진아?”
“그건 모르겠어요. 그런데 전서를 보낸 게 흑사문의 무인들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적무단주와 단원들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요.”
위도와 린린도 그 점에 대해 생각을 하는 듯했다.
“만약에 그런 거면 죽은 사람들이랑 살려둔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거지?”
“양민은 그냥 주저 없이 죽이는 것 같고 무인은 살리는 것 같은 느낌인데. 무인을 살리는 거랑 폭사시키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무인들을 통해서 그 힘을 얻은 건가?”
“만약에 그런 거면 그전에도 무인들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겠는데?”
린린과 아진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전서를 쓰던 곽설은 그것도 물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