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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39화 (439/470)
  • 제439화

    439화

    “서…… 서 공자님……!!”

    팽수혁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제대로 자각도 하지 못한 채 그에게 다가갔다.

    “소련주님이 보내신 거였나 보군요. 맞습니까?”

    “예. 공자님. 정말 독수리가 전서를 제대로 전달했군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흑사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건 저도 아직 모릅니다. 공자님에게 전서를 보내면서 흑사문에도 전서를 보내기는 했습니다. 이 독수리가 거기에도 전달을 했다면 소식을 미리 알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떤 결정을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라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먼저 그곳으로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요. 청수야. 무린아. 공자님과 함께 오도록 해라. 형님은 저랑 같이 가시지요. 아니. 린린. 네가 공자님과 같이 오는 게 낫겠다.”

    “응. 오라버니.”

    팽수혁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교주님도 그곳으로 같이 가 주시지요.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아진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흑사문에서 걱정해야 할 일은 사련이 아닙니까.”

    그 말을 끝으로 아진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팽수혁은 뒤늦게 깨달았다.

    사련만 상대하면 되는 거라면 아무것도 겁날 것이 없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 말이 뼈아프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는 안심이 되었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서도진이 그곳에 가기만 하면 그 일은 이제 저절로 해결이 될 터였다.

    아진이 사라지고 난 후에 팽수혁은 린린의 시선을 느꼈다.

    “지금 상태가 어떤지 내가 확인을 해 봐도 되겠는지요. 공자.”

    맥을 잡아보겠다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선뜻 허락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린린의 앞에서 안 된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자기가 도움을 청한 입장이고 자신의 상태를 확실히 알아야 린린이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비슷해 보인다고 하지만 린린은 천마였고 자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것을 팽수혁도 알고 있었다.

    결국 팽수혁은 린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린린은 팽수혁의 내공이 거의 바닥인 것을 알아차렸다.

    운기조식을 해서 조금 회복을 하기는 했지만 마음 놓고 운기조식에 집중할 수가 없었을 터였다.

    “어차피 오라버니가 먼저 갔으니 그곳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내가 지킬 테니 내공을 먼저 회복하시죠. 그게 가장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린린이라면 믿을 수가 있었기에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내공을 먼저 회복하지 않으면 앞으로 뭘 하건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일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안전한 장소를 찾으면서 팽수혁은 생각이 많아졌다.

    아진과 함께 있던 두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 아이들은 나이도 한참 어린 것 같던데. 그런데 공자님의 신뢰를 받는 모양이구나.’

    문득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산본의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굳이 정사마로 구분을 하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교주가 산본의가에 상주하고 있으며 가주의 딸인데 그런 것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가주의 아들은 정파 무림의 핵심이고 딸은 천마신교의 교주인데 그걸 논해서 뭘 하겠는가.

    팽수혁은 그런 집단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제 그들이 저와 함께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 * *

    흑사문의 터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흑사문을 놓친 것에 화풀이라도 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집기를 내동댕이치고 부쉈다.

    그러나 흑사문의 모두가 화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도망치라는 말을 들었어도 누군가는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삶의 터전이 거기에 있는데 그것을 다 두고 어디로 가서 뭘 어떻게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붙잡혀온 듯했다.

    그렇게 꿇어 앉혀진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여기에는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겁니까, 대주?”

    “곧 명령이 내려오겠지.”

    “그런데 저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죽여야 할 거다.”

    “죽이기 전에 재미 좀 보면 안 될까요?”

    그 말에 그렇지 않아도 그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은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안 될 것이야 없겠지. 어차피 죽을 몸인데 저것들한테도 좋은 것이 아니겠냐.”

    “그러면 대주부터 하시죠. 흐흐흐.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럼 그래볼까?”

    그자가 누구를 욕심내는지는 볼 것도 없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어찌 같은 사파의 무림인이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당신들이 어찌 우리 흑사문에 이리 대할 수가 있다는 것이오! 련주님께서 이 일을 아시면 여러분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계속 비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소리 지르는 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연회에서 본 자인데.’

    아진이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름이 떠올랐다.

    ‘아. 곽설이라고 했지. 왜 도망치지 않은 거지? 다른 사람들이 돌아오는 걸 보고 데려가려고 하다가 붙잡힌 건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다가가던 대주는 가소롭다는 듯이 곽설을 바라보았다.

    “이 명령을 내린 게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소문주. 련주님의 명령 없이 우리가 움직였겠느냐.”

    “그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왜 련주님이 그런 명령을 내리신다는 것입니까!”

    “이리 머리가 안 돌아가서 어찌 하느냐. 너무 억울하게만 생각하지는 말아라. 잘못이 전혀 없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으냐. 그런 자를 총표두로 앉혀 놨다가 놓쳤고 추살조를 보내고도 잡지 못한 것은 모두 흑사문의 잘못이다. 지금이 어떤 때이더냐. 때를 너무 잘못 골랐다.”

    “그래서…… 그래서 흑사문을 멸문이라도 시키려는 것입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의 입을 모두 막으면 사인걸이 벌인 짓이 없던 것으로 되기라도 한다는 것입니까. 사인걸이 벌인 짓을 없던 것으로 하기 위해서 흑사문에 이런 짓을 벌인다면 당신들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임을 모르는 것입니까. 그렇게 해서 누구의 눈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소문주. 나는 너와 이런 말을 나눌 이유가 없다. 나는 련주님의 명을 받는 사람이고 나에게 명이 내려졌다. 그래서 이러는 것이니 나를 너무 원망은 하지 말거라.”

    그리고 대주는 더 이상 말을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의 검은 곽설을 베지 못했다.

    오히려 바람 소리를 내며 몇 바퀴를 돌다가 저만치 날아가 내동댕이쳐지자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그들은 그곳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면서도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칼밥 먹고 사는 사람의 출수가 이렇게 느려서야. 그런데 대주라고? 사련의 대주인 게 맞는 거지? 사련은 이런 자를 대주로 세우고 있나? 사련도 볼 장 다 본 모양이군.”

    위도가 검을 어깨에 척 하니 걸치며 말했다.

    곽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곽설은 지원군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병장기를 들고 위도의 주위를 에워쌌다.

    “네, 네놈은 누구냐!!”

    “나? 위도라고 한다. 산본의가에서 살고 있다만.”

    위도가 한 그 말 한마디로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웬 놈이 멋모르고 설치는 게 아닌가 하던 사람들은 할 말을 완전히 잃었다.

    왜 그자가 이곳에 나타난 건가 하면서 일이 제대로 꼬였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위…… 위 대협. 무슨 말을 듣고 여기에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위 대협이 잘못 들은 것입니다. 우리 사련은 위 대협을 적대하지 않소. 산본의가에 대해서도 늘 좋은 마음을 갖고 있소. 그런데 왜 위 대협이 여기에서 우리에게 검을 겨누려고 하는 것이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말로 잘 풀었으면 합니다.”

    대주의 말에 위도가 웃었다.

    “내가 좀 전에 뭘 봤거든.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여기에서 개 같은 짓이 벌어졌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가만있어야 하는 건가?”

    “위 대협. 사람이 조금 흥분하다 보면 별일이 다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닌데 어찌 그러는 것인지요. 그리고 위 대협이 그만두라고 하신다면 저희는 당연히 조용히 물러날 것입니다.”

    “내 말 한마디에 그렇게까지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위도는 그들이 뭐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냥 물러날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다.

    사련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게 됐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들 중 용기를 낸 곽설은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구했다.

    자신들이 조금만 늦었다면 곽설은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아니. 위 대협.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난감한 얼굴로 위도를 달래려 했고 그사이에 곽설이 말했다.

    “대협. 죄송한 부탁입니다만 이 밧줄을 좀 풀어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리고 아무래도 사련의 소련주가 위험한 것 같습니다. 소련주는 저와 함께 추살조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었습니다. 그러다가 헤어졌는데 소련주가 사련에 도움을 청했다가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자들이 소련주도 노렸을 것 같은데 부디 소련주를 찾아주십시오.”

    “소련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련주가 전서를 보내서 그 전서를 보고 우리가 온 것입니다. 소련주는 무사합니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만 아마 많이 지쳐서 시간이 걸리기는 할 겁니다. 이제 우리가 이자들을 어찌하면 좋겠는지 말을 해 보십시오.”

    곽설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아진을 발견했다.

    그제야 곽설의 얼굴이 완전히 펴졌다.

    이제 걱정할 일은 전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자기들의 처지가 떠올랐는지 수심이 가득해졌다.

    아진의 앞에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사련의 명령으로 이루어졌다.

    아진이라면 사련이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덮으려고 한 건지 생각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을 터였다.

    사련의 비무대회.

    그 성공이 불러올 장밋빛 미래.

    아진이 그것을 알게 된 이상 비무대회는 물론이고 그동안 사파에 다시 주었던 기회까지 거두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파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진의 눈앞에 드러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곽설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억울하고 분하고 안타까웠다.

    아진은 곽설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만약 팽수혁과 곽설이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련에게서 기대를 접어버렸을 것이다.

    사련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자들은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포기해버렸을 터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팽수혁이 있었고 곽설이 있었다.

    “지금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큰 적을 두고 서로 싸울 필요는 없겠지.”

    아진은 곽설의 근심을 거두기 위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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