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4화
434화
자신의 힘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고 있었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그런 그녀를 격려했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독고소영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백모님. 전부 잘되어 가고 있어요. 백모님은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독고소영은 꿈결에 그 소리를 들었다.
내가 잠이 들었구나.
안 되는데.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끔찍한 산통이 그녀를 덮쳤다.
그 일이 얼마나 더 반복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산통이 사흘째로 접어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했다.
이대로는 산모와 아이 모두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장로회에서 나왔다.
가주는 그때마다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도 마음이 흔들렸다.
분명히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북리의천은 독고소영이 고군분투하는 전각 앞에서 목석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흘이 지나는 동안 쉬지도 않고 그 자리를 떠난 적도 없었다.
물도 음식도 입에 넣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독고소영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모두 듣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힘겨운 일일지 가주도 모르지 않았다.
결국 가주는 북리의천에게 다가갔다.
“형님…….”
“아무 말 말게.”
북리의천이 말했다.
가주가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것인지 그도 모르지 않았다.
“소영은 해낼 것이네.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이네. 소영은 아이를 낳을 것이야. 두 사람 모두 건강할 거야. 아진이가 같이 있지 않은가. 소은이도 있고 말이네. 나는 모두를 믿네. 우리 아이까지도.”
가주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결국 하려고 했던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 * *
“아진아…….”
북리소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독고소영은 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아진은 북리소은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서 더 많은 마나가 독고소영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내공이 아닌 마나였다.
독고소영은 그렇게 주기적으로 정신을 잃다가 산통에 깨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산통이 찾아와도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다.
“사고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아진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독고소영이 눈을 떴다.
그리고 버티려고 애를 썼다.
아진은 태아에게 말을 걸었다.
단전도 없는 태아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전음을 보냈다.
[루주 님. 린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루주 님이 돌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린린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루주 님이 태어나면 무공을 가르쳐주겠다고 벼르고 있어요. 루주 님과 함께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계획하고 있어요. 린린은 루주 님이 잘못될 거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루주 님이 아니었으면 린린은 신교로 돌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늘 루주 님을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아진은 계속해서 전음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서 아진은 루주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다시 깨닫고 있었다.
아이가 잘못되면 린린은 견디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늘 강한 모습을 하지만 린린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마음에 담아두고 그리워하는지 아진은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잃게 된 사람들을 잊지 못해서, 그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아두었던 거라는 것을그는 알았다.
설인정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린린이 떠올랐다.
아진은 설인정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루주 님도 포기하지 마세요. 염마가 허튼 수를 쓴 거라고 해도 루주 님이 이겨주세요. 염마라면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게 하고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루주 님은 린린을 다시 슬프게 하고 싶지 않지 않습니까. 힘내세요. 부탁입니다. 나는 린린이 슬프지 않았으면 합니다. 루주 님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진은 독고소영이 자신의 팔을 붙잡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고님.”
“아진…… 아…… 으흐으으윽!!”
독고소영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아진아. 보여. 아기 머리가 보여. 백모님. 힘을 줘 보세요. 조금만 더 힘을 줘 보세요!”
독고소영은 이를 악물었고 아진은 그녀에게 더욱 많은 마나를 흘려보냈다.
몇 번의 진통이 더 찾아왔고 독고소영은 북리소은이 힘을 주라고 할 때마다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울음소리가 터졌다.
북리소은의 얼굴에서 눈물이 철철 흘렀다.
그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기를 안아 들었다.
아기는 시원하게도 울었다.
문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북리의천은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생전 이렇게 긴장했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스승님. 들어오시지요.”
문 안에서 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북리의천은 그대로 방에 들어갔다.
아진은 린린도 누구 못지않게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선은 독고소영과 북리의천을 아이와 먼저 만나게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아기를 안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북리소은은 완전히 진이 빠졌고 아진은 북리소은에게도 마나를 불어넣어 주었다.
“도련님도 힘이 들 텐데요.”
그 말이 맞았다.
당장 누워서 며칠 동안 잠만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정도였다.
“스승님. 우선은 방으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혹시 제가 필요하시면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고맙다. 아진아. 네가 소영과 아이를 살렸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축하드립니다. 스승님.”
“그래. 고맙다. 어서 쉬어라.”
북리의천도 독고소영만큼이나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아진이 밖으로 나가자 린린이 먼저 달려왔다.
“오라버니.”
린린은 아진의 얼굴을 보고 놀란 듯했다.
힘든 시간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초췌해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운기조식을 해야겠어.”
“그래. 내가 지켜줄게.”
그 말처럼 믿음직스러운 말도 없었다.
“고마워. 오라버니. 고마워.”
린린은 민망한 듯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그렇게 말했다.
그런 린린을 보고 아진이 피식 웃었다.
“너한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아는데 태어나기도 전에 잃을 수는 없잖아.”
“염마 짓인 것 같아. 염마는 설인정을 순순히 돌려줄 생각이 없었던 거야. 나라면 설인정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린린은 생각이 깊어지는 듯했다.
그런 린린을 보고 아진이 웃었다.
“약 오르냐? 네가 이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아니. 앞으로는 염마한테 안 덤비려고. 염마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생각하는 중이야. 염마가 아니었으면 산본의가에서 태어나지도 못했고 오라버니를 만날 수도 없었잖아.”
“야. 낯간지럽게 갑자기 왜 이래?”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린린은 아진이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텨준 건지 알고 있었다.
염마가 설인정을 환생시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도 자신과 거의 비슷하게 추측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아진이 얼마나 간절하게 아기를 건강하게 태어나도록 하고 싶었을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염마에게 화가 나기보다 오히려 고마워졌다.
아진을 만나도록 해 준 일등 공신이 바로 염마였으니까.
‘나중에 만나게 되면 염마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어. 죽으면 염마에게 쉬라고 하고 내가 염마 대신 그 일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서 린린이 아진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아기를 안 봐도 되겠어?”
“어차피 지금은 못생겼을 거야.”
그 말에 아진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기다렸을 게 뻔한데 이제 와서 강한 척을 하는 린린이 딱 린린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라버니 좀 부축해봐. 걷지도 못하겠다.”
“그래. 오라버니. 나에게 기대.”
객당으로 가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지는 태양빛이 붉었다.
* * *
북리소은이 산본으로 돌아가고도 아진과 린린은 북리세가를 떠나지 않았다.
북리세가 사람들이야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진과 린린이 누구던가.
바쁘기로 말하자면 그들을 따를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텐데 그 두 사람이 아기에게 붙어서 움직이려고 하질 않았던 것인가.
그건 정말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독고소영은 두 사람이 지치지도 않고 아기를 바라보는 것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들이 마냥 아기를 귀여워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기의 옆에 앉아서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아진아.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아기가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보고도 안 질려?”
“네. 사고님.”
독고소영의 말대로였다.
아기는 자고 있었고 몇 시진 동안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진과 린린은 그 모습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라 희한하게 보이는 게 당연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진이 독고소영의 회복을 도우려고 남아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제 독고소영이 스스로 운기조식을 할 수 있어서 그 도움이 필요 없기도 했지만 아진이 아기에게 정신이 팔려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잘 보고 있어. 나는 잠깐 나갔다 올게.”
“네. 사고님.”
대답을 하면서도 아진의 시선은 아기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린린도 마찬가지였다.
린린은 아예 독고소영에게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지금 아기에게 열심히 전음을 보내는 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인정. 태어났으면 이제 눈을 좀 떠봐. 염마가 혹시 기억을 안 남겨주고 환생을 시킨 건 아니겠지? 설인정. 내가 네 주군인 것도 몰라보는 건 아니지? 대체 얼마나 자려고 이러는 거야? 환생자면 환생자답게 굴어야지 아기로 태어났다고 아기처럼 굴 생각이야?]
[그런데 린린. 그러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환생자라고 해도 아기 때를 거쳐서 자라야 하는 거니까. 너도 그랬어. 너도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혼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너 때문에 흑주가 고생이 많았지. 나중에 기어다니고 앉고 두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됐을 때는 흑주를 잡고 침을 묻히면서 핥아댔거든.]
[오라버니. 나는 지금 설인정이랑 대화하는 중이거든?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다른 곳에 가서 놀아. 흑주랑 놀면 되겠네.]
[나도 루주가 반가워서 그런 건데? 그리고 루주 입장도 생각을 좀 해 줘. 너를 보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냐?]
[설인정이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런데 나를 알아보겠지? 나를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염마 그자를 믿을 수가 있나.]
린린은 점점 초조해지는 것 같았다.
아진은 린린이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진도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