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2화
432화
아진과 소청이 북리소은과 함께 북리세가로 갔다.
아진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나섰지만 북리소은과 함께 가게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형수님이랑 처음에 북리세가에 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련님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그때 많이 당황하셨지요?”
“그때는 참 암담했죠.”
북리소은의 말에 아진이 웃음을 터뜨렸고 소청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왜 암담하셨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자꾸 졸라대서 그랬지. 말을 안 들어줄 수도 없는데 계속 고집을 부려서 그냥 콱 때려주고 싶었어.”
소청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북리소은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소청은 아진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북리소은이라면 그 이야기를 생생하게 해 줄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리소은도 소청이 무슨 얘기를 기대하는지 알아차린 듯했다.
“듣고 싶어, 소청아?”
북리소은에게 소청은 정말 각별한 아이였다.
랑랑이 지금까지 소청 때문에 위험을 벗어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몰랐다.
“소청아. 너는 형수님이 안 어렵냐? 나 같으면 엄청 어려울 것 같은데.”
지금 소청과 랑랑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북리소은은 높은 확률로 소청의 장모가 될 사람이었다.
소청이 랑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고 정작 소청 자신도 랑랑을 무척 좋아하고 있어서 훗날 두 사람이 잘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소청아, 우리는 아주 친하지?”
북리소은이 말하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 보면 소청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아진이 허허 웃었다.
“말씀해 주세요. 저희 스승님이 어렸을 때 어떠셨는지요.”
소청이 말하자 북리소은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지난 일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때 나는 제선문에 있었는데 산본의가 소식이 종종 들려왔었지.”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지난 이야기를 거의 빠뜨리지도 않고 소상하게 말을 한 덕분에 그들은 지루한 것도 모르고 북리세가에 이르렀다.
“정말 파란만장하죠, 형수님? 돌아가셨던 사고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도 그렇고. 두 분이 부부의 연을 맺으시고 마침내 아이까지 낳으시게 됐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두 분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북리소은의 말에 아진은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죽어서도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온 북리소은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북리세가의 사람들은 전에도 소청을 귀여워했지만 이제는 소청이 북리소은의 사위가 될 수도 있다며 더욱 귀여워했다.
소청은 그게 부끄러운 듯했지만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듯 웃었고 아진은 그런 소청이 정말 귀여웠다.
북리소은과 소청이 가주전에 오래 붙잡혀 있는 동안 아진은 스승과 함께 독고소영을 먼저 보러 갔다.
“사고님은 좀 어떠신지요. 스승님?”
“건강하고 아주 좋다. 노산이라서 걱정이 되고 가끔씩 불안해하는 것 같기는 하다만 산본의가에서 의원이 올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놓은 것 같아. 소은이가 올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소은이가 더 편하겠지.”
“예.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수님이 잘하기도 하고요.”
“소은이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
“예.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런 말 할 것 없다. 계속 소식을 전하지 않았느냐. 산본의가에서는 일이 끊이질 않는 것 같더구나. 정말 재미있다. 사련의 일도 얘길 들었다. 소련주가 먼저 그렇게 말을 해 왔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정말 그렇습니다. 련주가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큰일을 겪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련주는 그런 것 같지 않고 조심해야 할 것을 철저히 조심하는 듯합니다.”
“그래. 사파의 복이지. 황상께서 위험을 감수하고 사파의 숨통을 열어주신 것이니 조금만 잘못해도 바로 사정의 칼날이 날아올 거라는 걸 자기들도 안 것이지.”
“그렇습니다. 황상도 이번에 그런 것까지 전부 겸사겸사 보려고 불러들이신 것 같았는데 연회가 여러모로 유익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본 것이라 할 말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섬풍대에도 관심을 가졌고 섬풍대의 아이들이 비무대회에 나갈 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영이 아이를 낳고 나면 나도 비무대회에 나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구나.”
“스승님은 안 됩니다.”
“왜?”
그렇게 단호한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듯 그가 묻자 아진이 절대 안 된다고 다시 한번 말을 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제가 우승할 것입니다.”
그 말에 북리의천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독고소영이 웃으면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어서 오너라. 아진아.”
독고소영의 얼굴색은 좋았고 완벽하게 건강해 보였다.
노산을 걱정한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사고님.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아진아. 가까이 좀 와 봐라. 자세히 좀 보자.”
독고소영의 말에 아진은 자기가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것 같다고 생각하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래. 너는 미안한 걸 알아야 한다. 아진아.”
괜찮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가 독고소영의 말을 듣고 아진이 찔려 하자 북리의천이 웃었다.
“소영은 나에게도 이런다. 그런데 나는 소영이 이럴 때마다 정말 좋아. 예전의 소영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나는 소영이 다시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요즘에도 자다가 잠에서 깨곤 한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소영을 상상하기만 해도 그래.”
얘기를 듣던 아진은 독고소영을 유심히 보았다.
독고소영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의 배를 보는 거였다.
린린이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었을 때도 가장 먼저 알아본 아진이었다.
독고소영이 그 시선을 느꼈는지 북리의천을 바라보았다.
북리의천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았다.
“왜 그러느냐. 아진아?”
“스승님. 사고님. 제가 진맥을 해 봐도 되겠는지요?”
“물론이다.”
독고소영이 먼저 말을 하고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린린을 가졌을 때는 아진이 아주 어렸다.
그리고 어머니여서 어머니의 배를 스스럼없이 만져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독고소영은 아무리 사고라고 해도 배를 만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아진이 진맥을 하는 동안 독고소영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먼저 짐작을 한 것 같았다.
“배를 만져봐야 하면 만져보아라. 아진아. 이상한 것이 있는 것 같으면 괘념치 말고 알아봐 줘. 그게 더 좋다.”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확실하게 해 주면 좋겠구나. 아진아.”
독고소영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아진도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녀의 배에 손을 얹었다.
그 느낌이었다.
린린에게서 느껴졌던…….
독고소영은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태아는 상당히 많이 자란 상태였다.
아진은 자신의 마나를 가만히 밀어 넣어 보았다.
독고소영은 그것을 느꼈고 시원한 기운이 채워진다고 생각했다.
“왜 그러느냐. 아진아. 혹시 문제라도 있느냐.”
독고소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아진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닙니다. 사고님.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태아는 건강하고 사고님은 순산하실 것입니다.”
“아진이가 그렇게 말해 주니 안심이 되는구나.”
독고소영이 말을 하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아진은 독고소영이 좋아할 만한 얘기를 해 주고 한참 후에 객당으로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지만 아진은 우선 좀 쉬고 싶다고 말을 하고 안에서 머물렀다.
북리세가에 와서 그런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진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었다.
‘태아에게서 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 거지?’
아진은 무언가 손가락에 닿았다가 아슬아슬하게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독고소영의 배에 손을 댔을 때 아진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고 스승과 사고가 자신의 얼굴을 뚫어질 듯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서둘러 손을 뗐다.
자기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두 사람이 얼마나 걱정할지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도 그냥 좀 더 확인을 해 볼 걸 그랬나?’
확실히 안 좋은 일은 아니었다.
태아는 건강했다.
그런데 어떻게 태아에게서, 이제 처음 만들어진 아이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가 했던 것이다.
아진이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진아. 들어가도 되겠니?”
독고소영이었다.
아진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사고님.”
스승도 같이 왔나 했는데 그녀뿐이었다.
“쉬고 있었어?”
독고소영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 네. 들어오세요. 사고님.”
허리를 손으로 짚은 채 만삭의 독고소영이 걸음을 옮겼다.
아진이 그런 그녀를 옆에서 부축했다.
“아진아. 다시 한번 진맥을 해 주겠니? 아이에게서 뭔가를 느낀 거지?”
“……네?”
독고소영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스승을 두고 혼자만 온 걸 보면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아이가 잘못됐니?”
“아뇨. 사고님. 그건 아닙니다.”
아진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알았어. 그래도 일단 진맥은 다시 해 줘.”
사고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아진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가 독고소영의 배에 손을 대자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아진의 손을 보았다.
아진은 집중한 채 기운을 흘려 넣었다.
분명히 이 기운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익숙했다.
독고소영은 고개를 돌렸다.
아진을 보고 있으면 아진이 짓는 표정을 보면서 감정이 널뛰었다.
불안해지고 걱정이 되고.
그렇게 하면 아진이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처소에서 그만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독고소영은 아진이 편하게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던 아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나왔다.
“……아!”
“왜. 아진아?”
“아닙니다. 사고님. 아이는 건강합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독고소영은 아진이 뭔가를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아진아.”
독고소영이 간절한 목소리로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진의 표정은 확실히 밝아졌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힘이 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독고소영은 자기가 아진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지?”
“네. 사고님. 전혀요.”
아진의 말을 들으며 독고소영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돌아가고 아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가 막혔다.
정말 기가 막혔다.
그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이 밖으로 나갔다.
하늘을 바라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일조가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왔다.
날아온 제일조에게 아진이 말했다.
“린린을 불러와. 이리로 오라고 해.”
전할 내용이 없이 누군가를 급히 불러와야 할 때는 전서를 따로 쓸 필요도 없었다.
제일조는 그 길로 날아올라 창공을 가르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