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7화
417화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그들을 보았다.
점점 쌓여가는 그릇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도 있었다.
분명히 린린의 옆에 있었는데 가만 보니 그릇들이 어느 틈에 아진의 옆으로 와 있었다.
“하! 이 자식이!”
상승무공을 이렇게 써먹나?
아진도 다시 그릇을 밀어놨고 린린이 또 그릇을 옮겼다.
가공할 절기가 여기에서 그릇을 미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릇 좀 치워주시죠.”
결국 보다 못한 아진이 지나가던 점소이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손님. 그렇지 않아도 주방에 그릇이 없어서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이 인간이 얼마나 먹어댔으면 주방에 그릇이 없다는 건가 해서 아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린린이 한참 만에 허리를 펴면서 흐뭇한 얼굴을 했다.
“햐. 이 집 이거 정말 잘하네. 나중에 역천마의도 데려와야겠어. 신교에 가서 분점 하나 낼 생각 없는지 물어볼까? 이 천마가 맛있게 먹었다고 하면 장사 잘될 텐데. 그것보다 산본에 분점을 내보라고 할까?”
“됐어, 인마!”
아진이 말하고 주위를 보았다.
정말 잘 먹는 것 같던데 이걸 먹자고 여기까지 오기는 어렵겠고.
가기 전에 비법을 한 번 물어볼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어우. 배불러. 나는 밖에 나가서 좀 걷고 있어야겠다. 오라버니는 천천히 먹고 나와.”
“웃기고 있네. 개수작 부리지 말고 빨리 계산 안 해?”
“오라버니는 어떻게 이래? 고작 동생한테 점심 한 끼를 못 사줘?”
“인마! 너한테 하루 세끼 사 먹이는데 금자 한 냥이 다 들어간다. 어머니한테 전부 다 말씀드릴 거니까 그런 줄만 알아.”
“그걸 왜 오라버니가 내? 나중에 황상께 받아야지. 황상께서 맡기신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들어간 경비잖아.”
린린은 굴하지 않고 따박따박 말했고 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비 중에 식비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걸 아시면 황상께서도 너를 못 끼게 하실 거야.”
“그럼 안 되지. 그러면 오라버니는 누가 지켜줘? 다른 사람이랑 다니면 나랑 다닐 때처럼 마음이 놓이지는 않잖아. 그건 오라버니도 인정하지?”
“아니거든?”
“그렇게 말해봤자 다 알아. 그럼 하월 공자가 나보다 나아? 아니면 이남 오라버니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귀라도 기울이지.”
얄미운데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린린이 먼저 일어나 활기차게 밖으로 나가고 아진은 주방으로 슬그머니 찾아갔다.
계산을 하고 나서는 음식을 만드는 데 특별한 비법이 있는지 물었고, 린린의 입에서 신교네 산본이네 황상이네 하는 말들이 나오는 걸 들으며 그들의 정체를 간파한 숙수는 최대한 상세하게 비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아진은 무공비급을 들으면 그렇게 잘 이해되던 것이, 왜 요리 비법을 들으면 전혀 감이 안 오는 걸까 하면서 시무룩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자 린린이 세상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날도 좋고.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오라버니.”
린린의 말에 아진은 또 꼬투리를 잡고 싶어졌지만 그 말에는 왠지 반박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날도 좋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비가 쏟아지는 것은 무슨 일인지.
* * *
그 비는 파천의 종주 역산이 머물고 있던 장원에도 내렸다.
역산은 장원에서 창문을 통해 비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 작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 정도는 남겨 두는 것인데 아무래도 잘못했다는 후회였다.
그랬으면 이런 날 차를 가져오라고 말하고 운치 있게 차를 마실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 버리는 바람에 하루 종일 피비린내가 장원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만한 장원을 대가 없이 차지한 것은 마음에 들었다.
“귀찮네.”
그러나 귀찮아서 그런 것일 뿐 막상 하려고 하면 그도 잘했다.
객잔 점소이로 위장한 지 몇 년이던가.
능숙하게 차를 끓이고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가 어렸을 때 마을에 마적단이 들어왔었다.
역산이 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마적단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커다란 칼을 휘둘러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죽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산은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해서?
그럴 리가.
압도적인 힘으로 모두를 쓰러뜨려 자신의 발아래에 두는 자들이 경이로웠던 것이다.
역산이 마을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부모의 밑에서 평범한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
지극한 평범함의 연속이었다.
제 가족이 죽는 것도 보았다.
운 좋게 자리를 잘 잡아 마적단에게 들키지 않고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일을 하기가 싫어서 숨어 있었는데 형제가 워낙 많다 보니 부모는 몇 번 찾다가 보이지 않으면 역산에 대해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일을 시작했다.
그날도 그런 이유로 숨어 있었던 거였는데 역산은 자기가 역시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적단은 그냥 함부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죽이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는 역산의 눈에도 그 규칙이 들어왔다.
그들이 누구를 죽이는지.
정확하게 말하면 상품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다.
아주 어린 아이들.
나이 든 여자들.
병든 남자들.
노인들.
젊고 예쁜 여자나 건강한 남자들이 그들을 구하려고 달려들면 발로 차거나 얼굴을 때리거나 하기는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역산은 왜 그러는 건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곳곳을 누비며 말을 타고 몇 사람을 죽이자 마을에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적단은 조용히 하라고 외쳤고 사람들의 소리는 잦아들었다.
몇 사람을 죽여 본보기로 삼자 마을 사람들은 마적단의 말을 들었다.
‘저렇게 하는 거구나.’
역산은 그런 생각을 하며 더욱 눈에 불을 켰다.
그 후에도 마적단은 몇 명을 더 죽였다.
한 번에 다 죽이는 것보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죽이는 게 효과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그렇구나. 저기에도 다 노림수가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역산의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나중에는 마적단에게 저항하는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마적단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하고 마을 광장에서 먹고 마셨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을 향해 흉악한 짓도 서슴지 않았는데 역산은 자기가 마적단의 편이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힘도 없는 자들이 자기 편이라는 게, 자기가 그쪽에 속해 있다는 게 화가 나고 짜증스러웠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부모와 가족에게 의존할 나이였는데도 그랬다.
그는 아직 사람들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가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적단이 자기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게 걱정이 됐다.
자기는 몸뚱어리도 작고 일도 잘 못 할 것 같고 마적단이 주저하지 않고 베어버렸던 쪽에 들어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분명 그곳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홀연히, 그야말로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그는 지나가던 무림인이었고 마을이 혈겁을 당할 뻔한 것을 알고 그곳에 온 거였다.
그의 검에서 검풍이 일렁이고 마적단 수십 명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죽었다.
정말 대단한 광경이었다.
역산은 이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
그에 비하면 마적단이 보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역산을 정말 충격에 빠뜨린 것은 두 시진쯤 싸움이 이어진 후 내공이 소진된 노인을, 어느 마적단 조무래기가 해치운 사건이었다.
그는 마적단 내에서도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 같았는데 마침내 그 노인을 죽인 사람은 그가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
그가 가장 강한 거였다.
아무리 강한 무림인이라고 해도 일단 죽어버린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시신이 되어 모욕을 당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최후의 승자는 아니었다.
무림인은 상당한 고수였고 그가 죽었을 때 마적단은 고작 세 명이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회를 노려 반격을 가했다.
마적단은 제압되어 붙잡혔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 친지들을 죽인 마적단인데도 그들을 쉽게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갇혀 있던 마적단은 다음 날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역산의 짓이었다.
역산은 무림인을 죽인 마적단을 자기가 죽였다는 사실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첫 살인이었고 그날부터 그것을 마음에 품었다.
부모를 졸라 무관에 들어가 배우려 했지만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사파에 가담해 무공을 배우고 살수공을 익혔다.
그리고 살종에 들어가 살수로 생활하다가 의뢰인들을 알아두었다.
그것이 파천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도 운영을 해 나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살수도 그런 식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다른 살수종에서 실력 있는 살수들에게 접근해 끌고 갔던 것이라 하나같이 유능했다.
살종을 운영하는 것은 장래가 유망한 사업이었다.
자기 손에 피를 안 묻히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지천에 깔려 있었다.
그런 사람들로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황실에 문제가 생기면서 파천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날아올랐다.
‘모든 게 다 잘되더라니.’
갑자기 차가 맛이 없어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던 역산의 눈에 희한한 것이 들어왔다.
‘……이게 뭐야?’
휘장이 펄럭이는 것처럼 자색 물결이 일렁였다.
자기가 잘못 본 건가 했는데 가만 보니 나비였다.
그런 나비는 본 적이 없었기에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생각 정도였다.
희한하다는 생각.
그것이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추살접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은 얼마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자색 나비에 대해서 듣기는 했지만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 자색 나비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역산은 흠칫하고 나비 떼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것들은 역산의 가까이에서 맴돌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혹시나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자 나비 떼는 정확히 그 간격을 유지하며 날아왔다.
기가 막혔다.
이렇게 된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자기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역산은 추살접에 대해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사도련을 괴멸시킨 일등공신.
그것들의 무서운 집념에 대해서는 질리도록 들었다.
정신이 든 역산은 나비 떼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느릿한 날갯짓으로 평화롭게 그 주위를 날아다니던 나비들이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속도로 흩어졌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공격을 하는 것이 애매해졌다.
‘이것들이 여기에 있다면 내 위치를 들킨 건가?’
역산은 지금 자기가 여기에서 나비를 공격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 그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