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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16화 (416/470)

제416화

416화

특히나 무가 출신으로 그곳에 와 있는 사람들은 더 그랬다.

그동안 그들이 알고 있던 살수 집단은 같은 영역과 신념을 갖고 있었고 적도 공통의 적인 경우가 많아서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답을 내기는 해야 하는 문제였다.

한동안 답을 내지 못하다가 린린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도 살종을 만들면 안 되나?”

아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린린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오고 간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소청이 조심스럽게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청아. 너까지 왜 그러냐?”

“스승님. 우리는 목숨을 제거해야 할 적(敵)이 있을 때 손쉽게 죽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신 복수해주는 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만 해도 현령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뻔했었잖아요. 그때 스승님이랑 사고님을 만나지 못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그리고 제 스스로 어머니의 복수를 할 힘이 없다면 저는 살종을 찾아가서 현령을 죽여달라고 의뢰하고 싶을 것 같아요.”

“…….”

아진은 소청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가 설득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맞는 것도 같았다.

사적인 보복.

“그러면 파천의 일도 정당화되나?”

린린에게 물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린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린린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쟤한테 물어보면 안 되지.

그러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소청과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이 녀석도 안 되는데.

잽싸게 고개를 돌렸는데 이미 시선에 소청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하……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네요. 차라리 누가 그런 건지 몰랐으면 몰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고 넘어가면 되는 건데.”

북리세가의 무인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만약에 잡는다고 하면 어느 정도로 손을 쓰실 생각입니까, 공자님? 이번 일을 의뢰받고 사람들을 죽인 살수만 죽이실 건가요? 일단 종주랑 수뇌부는 처리하실 생각인 것 같기는 한데 이번 일에 투입되지 않은 살수는 살려 주나요?”

그걸 물은 사람은 표국의 국주였다.

아진은 점점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았고 그곳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연월랑과 위도는 아진과 생각이 비슷했는데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답을 찾는 걸 포기하는 것까지도 그랬다.

린린은 끝까지 뭐가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고 그때마다 그 옆에서 소청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염빈도 만나보러 가야 하는데 파천의 처리를 마냥 미뤄둘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스승님께 여쭤봐야겠어.”

결국 아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린린이 그를 따라나섰다.

소청도 함께 가고 싶어 했지만 섬풍대의 수련을 도와주는 것 때문에 앞으로 조금은 더 그곳에 묶여 있어야 할 판이었다.

“린린. 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냥 스승님이 스승님의 의견을 말씀하실 수 있게 가만히 있어.”

“나는 항상 그러는데?”

“웃기시네.”

아웅다웅하면서 북리세가에 도착한 아진은 또 다른 고향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의원님. 벌써 소식을 들은 겁니까?”

위사들이 그를 보고 대뜸 하는 말에 아진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들은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일 때문에 오신 게 아닌가요? 그럼 왜 오셨어요?”

“무슨 일인데요?”

이제는 린린이 더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위사들은 웃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뿌듯해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 얼굴이었다.

결국 성질 급한 두 사람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위사들에게서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스승이 아버지가 된다는 소식이었다.

독고소영이 아이를 가진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와…….”

그것은 순수한 감탄만은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이 좋은 건가 하는 감탄이 뒤늦게 들면서 자기는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승님이…… 와…….”

아진의 심정은 린린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한테는 우리도 함부로 못 하겠다. 그렇지, 오라버니?”

“함부로 하면 안 되지. 그리고 함부로 할 일도 없을걸? 얼마나 예쁘겠냐? 세상에. 아기라니. 너무 귀엽겠다.”

“오라버니는 어쩔 거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기저기서 오라버니한테 혼인하라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은데.”

“그런다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혼인을 할 생각은 없어.”

“오라버니가 원하는 혼인은 뭔데?”

“없어.”

린린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이 아진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같이 얘기를 해도 자기 머리만 아프다는 듯이.

그렇게 스승이 머무는 처소로 간 두 사람은 정원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을 보았다.

특히나 아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처음 그곳에 와서 스승을 봤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스승은 나비를 보고 있었다.

괴질에 걸려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한 채로.

아진은 그 이야기를 해 주었고 린린은 신기하다는 듯이 들었다.

“그날 스승님은 나비를 보시면서 다음에도 그 나비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셨었지. 그런데 내가 스승님께 달려가서 꽉 안아드렸어. 내 마나가 스승님에게 넘쳐 들어갔고 스승님의 눈으로 검은 게 흘러나왔어. 아버님의 뇌종양을 고쳐드린 것도 뿌듯했지만 스승님을 고쳐드린 것도 정말 뿌듯했지.”

“왔으면 냉큼 와서 인사하지 않고 뭘 하느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북리의천이 말했다.

“스승님. 저희 왔습니다.”

아진과 린린이 후다닥 가서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독고소영은 차마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민망하구나.”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아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북리의천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넘쳐흘렀다.

“내가 드디어 해냈느니라!”

“미쳤나 봐. 조용히 해, 의천!”

두 사람은 혼인을 한 후에도 계속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동생으로 생각하고 잘해 주어야 한다.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너희가 더 오래 같이 살지 않겠느냐. 우리는 이미 나이도 많고.”

북리의천의 말에도 두 사람은 대답을 할 생각도 못 하고 신기한 듯이 독고소영의 배를 보았다.

옷도 풍성하고 아기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렇게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 기뻐서 시선이 옮겨지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더 일찍 알려 주시지 그러셨어요.”

아진의 말을 듣고 북리의천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내가 너희에게 소식을 보내지 않았지. 그런데 여기에는 웬일이냐? 바쁜 사람들이 둘씩이나?”

북리의천은 마냥 반가워하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듯이 물었다.

두 사람이 같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은 스승님과 사고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아진은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황성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살종 파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두 사람도 거기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성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파천에 의해 자행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는 파천의 처리를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종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모릅니다만 찾으려면 찾을 수 있습니다. 추살접이 쫓고 있고 제일조가 추살접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가려고만 하면 제일조가 앞장서서 저를 데려가 줄 겁니다.”

“제일조가 그런 일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이냐. 추살접은 알뜰하게 잘 써먹는구나. 추살접이 아니었으면 한가하게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말이다.”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은 추살접으로 종주를 쫓게 했다는 것을 칭찬하며 말했다.

아진 자신도 그때 추살접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꽤 곤란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진이 이야기를 마치자 두 사람은 신중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파천은 그동안 해온 일들이 악랄하고 잔인했지. 전부 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게 맞는 것 같고. 아진이 아니었으면 이런 문제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그렇게 명령을 내렸을 텐데 이 녀석은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생각이 많다기보다 우리하고는 다르게 문제를 보는 것 같아.”

독고소영과 북리의천이 서로 말했다.

북리의천의 말에 독고소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진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해 줘서 좋기는 해. 의천은 이제 정말 많은 힘을 가졌잖아. 의천이 한마디만 하면 목숨을 걸고 그 명령을 행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그게 잘못된 명령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래. 그럴 수 있겠지.”

두 사람은 한참 더 신중하게 논의를 하고 나서 말했다.

“파천은 모두 죽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진아.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험한 사문을 멸문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지. 상처 입은 맹수가 날뛰고 마을로 내려가면 어찌할 것이냐. 그 마을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 맹수로부터 자신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번 일에 가담하지 않은 살수들의 처리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그들의 기억을 아진이 네가 더듬어보면 될 것 같기도 하구나. 그러면 내 생각에는 죽어 마땅한 일을 벌인 것이 드러날 것 같다. 그렇게 했는데도 그 사람들이 무고하다면 그때는 다른 판단을 내려도 좋을 거고 말이다. 일단 그자들을 눈앞에 두면 이런 고민을 오래 할 필요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스승과 사고가 말하자 아진도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명료해졌다.

파천의 살수들.

이제 그들의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사고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요.”

“그래. 아진아. 이렇게 찾아와줘서 좋구나. 이리 물어주니 아직 우리가 쓸모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언제나 쓸모가 있었어, 의천.”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몸조리 잘하시라는 말과 함께 아진과 린린은 그곳을 떠났다.

왔으니 조금 더 있다 가라는 청을 받아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산본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린린과 함께 임무를 하러 가기로 했던 것이다.

* * *

아진은 린린을 보면서 자기가 왜 이 혹을 달고 온 걸까 하고 있었다.

지금 린린이 음식을 먹는 모습은 게걸스럽다고밖에 할 수가 없을 듯했다.

린린은 가끔씩 이렇게 식탐을 보였다.

“창피해서 원. 내가 너를 굶기냐? 너는 잘하다가 한 번씩 이러더라?”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아진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손에는 린린의 얼굴에 뭐가 묻으면 닦아 주려고 천을 쥐고 있었다.

“아닌데. 왜? 그냥 맛있어서 먹는 건데? 이것저것 다 맛있어서 많이 먹는 거고 먹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뿐인데?”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먹고 있잖아.”

“굳이 이렇게 팔이 많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두면 이만큼만 움직이면 되는데?”

한마디도 안 지면서 그사이에도 야무지게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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