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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14화 (414/470)
  • 제414화

    414화

    “서도진이 조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좋아요. 온갖 기이한 일들을 벌이는 자라고 하니 파천의 살수가 잡히게 하면 안 되겠죠. 그자들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거겠지요? 잡히면 곧바로 자결하도록 확실하게 이르도록 해요. 서도진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도 긁어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무지몽매한 자들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얘기일 것이고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폐하. 그리고 파천의 자들은 믿을 만합니다. 그자들은 자기들의 목숨에 사사롭게 연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 의지를 갖지도 못하는 자들이니 마음을 놓으셔도 됩니다.”

    아진은 황후가 한 번 더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듣기에 따라서 황후를 무지몽매한 자로 치부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어서였다.

    그러나 황후는 그 말까지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 오래 처소를 비우는 것이 황후에게도 부담이 되었을 터였다.

    황후가 그곳을 나서 가마에 오르는 것을 보고 아진이 하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는 좌부도어사를 따라가겠습니다. 잘하면 파천의 꼬리를 잡겠습니다. 공자는 황제 폐하를 뵙고 황제 폐하와 함께 황후전으로 가보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뭣하면 서 공자님이 황제 폐하께 가도 됩니다.]

    [재미있기는 할 것 같지만 파천도 궁금해서 말입니다.]

    말을 마치고 아진이 좌부도어사에게로 돌아갔다.

    좌부도어사는 변복을 한 채 급히 말을 타고 그곳을 나섰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나서는 것을 보니 그 일을 얼마나 중대하게 다루는지 알 것 같았다.

    아진의 입장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는 좌부도어사의 움직임이 너무 느린 것 같아 답답했지만 그래도 끈기를 갖고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 건데 변복까지 하는 걸까 하면서 조용히 따른 지 이각이 되었을 즈음 좌부도어사가 탄 말이 객잔으로 향했다.

    ‘……어? 저기는…….’

    언젠가 린린과 함께 간 적이 있던 객잔이었다.

    그곳에서 아마 북궁마영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때 린린이 태연하게 과파육을 먹어서 야단을 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나와서 좌부도어사를 맞았다.

    좌부도어사는 변복을 하고 죽립까지 썼는데 그에게 다가오는 점소이의 움직임이 특이했다.

    거리상으로 더 가까운 곳에 다른 점소이가 있었는데, 멀리 있던 점소이가 그에게 왔던 것이다.

    “뭘로 드릴까요, 손님?”

    “음식은 됐고 방으로 올라갈 거니까 방을 잡아줘.”

    “예. 손님.”

    점소이는 전에 아진이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진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설마 이자가 파천의 사람인가 해서였다.

    단순히 의뢰만 전달하는 사람인 건가 하면서 그것만 하더라도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아진의 기척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진은 모습을 완벽하게 감춘 채로 좌부도어사의 뒤를 따르다 아직 문이 열려 있을 때 방으로 들어갔다.

    점소이가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 앞에서 짓던 방정맞고 가벼워 보이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에 떠오른 이채마저도 달라졌다.

    “서도진이 황성에 왔소. 서도진이 누구인지는 종주도 아실 거요.”

    방으로 들어온 그들은 기막을 둘렀지만 아진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진은 그 점소이를 종주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속으로 기함했다.

    그때 북궁마영 패거리들이 누구 앞에서 행패를 부렸던 건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아진은 북궁마영이 그곳에 나타났을 때 겁에 질린 것처럼 두려움에 벌벌 떨던 점소이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 다 연기였던 거라고? 종주가 왜 이런 곳에 있어? 기가 막히네…….’

    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그러는 동안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계속 이야기가 오갔다.

    “서도진이 나타난 것과 의뢰를 취소한다는 게 무슨 상관이 있소?”

    “일이 잘못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종주.”

    “파천을 뭐로 보는 건지 모르겠군요. 일을 맡긴 이상 우리는 실수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이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의뢰했다가 취소한다고 해도 약속한 돈은 전부 줘야 합니다. 착수금은 돌려주지 않을 거고 성공 보수금도 모두 줘야 하오.”

    그 돈이 얼마로 정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좌부도어사는 그 말에 발끈했다.

    좌부도어사라고 하면 낮은 지위가 아닌데 살종의 종주 앞에서 존대를 해 가며 불편하게 구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종주라는 자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러는 건가 해서 아진은 점점 더 호기심이 생겼다.

    “그것은 말도 안 되오. 그리고 아주 의뢰를 취소한 것도 아니고 서도진이 황성을 떠나면 그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오!”

    “살인을 의뢰받으면 시기와 장소는 우리가 정하오. 취소하고 다시 의뢰할 거면 두 번 돈을 내야 하오.”

    “알 만한 사람이 왜 자꾸 이런다는 말입니까. 각각의 의뢰비가 적지도 않은데 한 번쯤은 융통성을 발휘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점소이가 코웃음을 쳤다.

    “대단치 않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데 당신들은 파천을 우습게 봤소. 고작 산본의가 공자 따위가 무서워서 살행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라는 말이오.”

    “종주. 일을 복잡하게 하지 맙시다.”

    “일을 복잡하게 만든 건 당신이오.”

    “알겠소. 그러면 이 의뢰는 취소하는 것으로 하겠소. 서도진이 황성을 떠날 때까지 더 이상 우리가 의뢰한 일을 하면 안 되오. 돈은 주겠소.”

    점소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고집스러운 입술이 굳게 닫혔다.

    좌부도어사는 다시 한번 확답을 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했고 점소이는 피식 웃더니 그러자고 했다.

    진실성은 별로 담기지 않은 말투였는데 좌부도어사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좌부도어사가 밖으로 나가고 아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제부터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좌부도어사를 따라갔다.

    그라면 황후에 관한 것과 파천의 종주에 관한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좌부도어사가 말을 타고 한참을 달렸을 때 아진은 그가 으슥한 곳으로 갔을 때를 노려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아진의 발꿈치가 좌부도어사의 옆구리에 꽂히자 좌부도어사가 옆으로 굴렀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겠지만 동시에 아혈을 짚는 바람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진은 말을 달래놓고 좌부도어사의 뒷덜미를 잡은 채 나무 위로 올라갔다.

    좌부도어사는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했다고 생각했을 텐데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오래 할 틈이 없었다.

    아진은 그의 혈을 짚고 기억을 훑기 시작했다.

    황후는 이전의 황후와 태자에게 일이 생길 때부터, 그리고 아진이 곳곳을 다니며 그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을 불러들여 2황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했다.

    좌부도어사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좌부도어사는 일찌감치 황후에게 줄을 댔고 그때부터 그 일을 같이 계획했다.

    파천의 종주를 알고 있다는 것이 좌부도어사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그것이 언제까지 행운으로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그는 파천의 종주를 알고 있었고 그 계획을 직접 내놓았다.

    황후는 그 계획을 마음에 들어 했고 세부적인 내용을 정해주었다.

    누구를 죽일 것인지.

    파천은 만만한 살종이 아니었다.

    일단 의뢰를 받으면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몇 번이건 다시 시도를 해서 결국에는 성공한다는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켜냈다.

    그 일에 들어간 돈이 지금까지 황금 열 관이 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부 다 회수될 거라고 생각했다.

    2황자가 태자가 되기만 하면.

    그가 황상이 되기만 하면.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점점 더 손에 가까이 와 닿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이 잘되어 갔다.

    좌부도어사는 즐거운 꿈을 꾸었고 서도진이 황성에 왔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도 그 상태는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서도진이 황성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때부터 조금 긴장을 하기는 했지만 서도진이 계속 황성에 머물 것도 아닐 것이라 이 시기만 잘 지나면 될 거라고 여겼다.

    서도진과 북궁하월이 사건 현장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찾아낼까 했다.

    지금껏 파천은 단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직의 비밀이 알려지지도 않았다.

    ‘잘 될 것이다. 이번에도 다 잘 될 것이다.’

    그것이 좌부도어사의 생각이었다.

    아진은 그 정도로 해두고 그곳을 떠났다.

    좌부도어사가 나무에서 어떻게 내려올지 그것은 상관치 않았다.

    좌부도어사라면, 형체도 없이 나타나 자신을 말에서 떨어뜨리고 나무 위에 올려놓은 사람이 서도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때부터 아진은 정말 재미있는 장면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황궁을 향해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 * *

    “황후.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한 것이오?”

    자상한 얼굴을 하고 황제가 묻고 있었다.

    황후전에 도착한 아진은 여전히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그사이에 놓친 장면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후는 가마를 타고 오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던 듯했다.

    그녀는 황후전에 몰래 들어왔다가 그곳에 있던 황제와 딱 맞닥뜨린 참이었다.

    황제의 옆에 서 있는 하월은 황후가 왜 그 시간에 밖에서, 그것도 변복을 한 채로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황후는 요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았지만 상상하지도 않은 사람을 예상하지 않은 시간에 마주치는 바람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폐, 폐……하. 여기에는 어쩐…… 일이신지……요.”

    어설프게 웃으면서 황후가 물었다.

    “오늘은 폐하께서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잠시 밖에…….”

    황후도 자기가 입을 열 때마다 얼마나 멍청한 소리가 나오고 있는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려. 황후. 그러면 황후는 짐이 황후를 찾지 않는 날마다 이리 변복을 하고 밖을 나돌아다닌 것인가 보군.”

    “폐, 폐하……. 결단코 그것이 아닙니다.”

    “황후. 황후는 짐을 뭐라고 생각하시오. 짐이 참…… 그동안 조용하게 살기는 했지.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됐다고.”

    황후는 황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았을 터였다.

    황궁에 피바람이 분 게 얼마나 됐다고 이런 희한한 짓을 하고 돌아다니냐는 거였을 것이다.

    “황후. 짐이 하는 말 중에 이해가 어려운 것이 있느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면 말을 해 보아라. 그러면 다시 말을 해 줄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대답을 하지 못하면 짐이 너를 어찌할지 그것은 미리 생각을 해 보도록 하여라.”

    “폐하!”

    황후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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