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1화
411화
그들이 자리를 옮기자 황상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느 정도 서로들 이야기를 나눴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아진이는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
“……예? 저는 살종과 파천에 대한 얘기를 이제 막 들은 것뿐입니다만. 폐하.”
“그래. 그러면 이제부터 파천을 찾을 생각인 것이냐.”
“……예?”
“역시 아진이 와 주니 든든하구나.”
폐하?
아진이 하월을 보자 하월이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황상이 부른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파천을 먼저 찾지 않으면 일을 막기가 어려울 겁니다. 공자님. 황성의 모든 관리를 전부 지킬 수도 없고 말입니다.”
향화문주까지 그렇게 말을 하자 아진은 피할 길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하월이 아진을 도와주도록 하거라.”
“예, 폐하.”
그 후로 한동안 더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미 들었던 얘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은 없었다.
‘파천을 어디에서 찾는다…….’
* * *
다음 날부터 아진은 하월과 함께 그동안 의문의 죽음이 벌어진 사고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아진을 알아보고 최대한 협조를 해 주려고 했지만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봤자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모두가 혼자 있다가 일을 당한 거였고 자기들이 마지막에 봤을 때까지만 해도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건지 몰라 겁에 질린 모습들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아진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에 신기하다는 마음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대해 감탄했다.
“사실 살수가 작정하고 노린다면 안전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겁니다. 아무리 초고수라고 해도 매 순간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말입니다. 서 공자님이라고 해도 자객의 습격은 걱정되지 않습니까?”
하월이 물었고 아진은 대답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자기는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월이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그런데 서 공자님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지금껏 서 공자님의 목숨을 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 같거든요. 지금까지 살행 의뢰를 받고서 공자님을 죽이려고 시도한 살수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럴 것 같기는 하네요. 그자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만약에 들어왔다가 발각됐으면 보고가 됐을 텐데 그런 것도 없는 걸 보면 도중에 포기한 걸까요?”
“그럴 것 같습니다. 시도했다가 경비가 너무 철저한 걸 보고 포기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처소에 있을 줄 알고 갔다가 공자님이 거기에 없어서 돌아갔을 수도 있겠네요.”
아진은 자객이 자신의 처소에 숨어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누구의 눈에도 발각되지 않고 처소까지 들어온다?’
결국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은 상상되지 않아서였다.
산본의가를 지키는 무인들 하나하나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또 있었다.
별에게서 미리 진실을 듣는 벽예월.
위도에게 일이 생길 때도 벽예월은 먼저 그 일을 알아차리지 않았던가.
아진을 노리는 사람이 있고 아진이 위험에 처한다면 벽예월이 미리 알 것 같았다.
“일을 의뢰한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 정도의 살행을 의뢰하려면 황금 한두 관을 가지고 시작할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뢰비가 비쌉니다.”
하월이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진은 왜 그 생각을 안 했을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이 황실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촉발된 것이라면 황후와 후궁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고 그들의 가문이 주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황제는 죽은 태자의 모후였던 황후가 친정 가문의 권력을 등에 지고 자신을 압박했던 경험 때문에 새로운 황후는 전혀 반대되는 가문에서 골랐다.
그리고 가문의 힘이 강한 후궁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 중 누군가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벌인 일일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추측일 뿐이었고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답답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 같은데 각자 움직이면서 정보를 모아보면 어떻겠습니까. 서 공자님?”
하월의 말에 아진도 수긍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들은 몇 황자를 지지하던 사람들이었습니까?”
“골고루 있습니다. 특히 2황자 전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요.”
“2황자 전하라면 이제 태자 전하가 되실 수도 있을 거라는 그분 말이군요.”
“예.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지요. 새 황후 폐하의 친정 가문이 워낙 힘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을 당한다고 말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빨리 2황자 전하를 태자로 책봉하셔서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재미있겠습니다.”
“예?”
“아닙니다.”
하월은 아진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진은 하월과 헤어진 후에 향화문주를 다시 찾았다.
“시신을 보고 오셨습니까, 공자님?”
향화문주는 진전이 있는가 하며 물었고 아진은 사건 현장에만 가 봤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에 대해 향화문에서 조사한 것을 알려달라고 했다.
향화문주는 아끼지 않고 그 내용을 모두 전해 주었다.
모든 황자의 측근들이 고르게 피해를 당했지만 피해가 가장 큰 것은 2황자였다.
2황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황후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서 안팎에서 황후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향화문주에게서도 나왔다.
“4황자 전하의 세력만큼은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향화문주는 그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도 4황자 전하가 의심스러우십니까?”
“문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황자 전하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렇군요.”
향화문주는 그렇군요 라는 말이 그런 상황에서 나오자 자기가 잘못 생각한 건가 하며 아진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어렵지요. 복합적인 측면을 모두가 갖고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3황자 전하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4황자 전하를 지지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마지막 순간을 위해 다른 분을 지지하는 것처럼 하는 걸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죽은 사람이 누구의 측근이고 누구의 지지자라고 확정 지어서 말하는 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도 정리를 해서 구분을 지어야 앞으로 한 걸음을 더 옮길 수가 있을 것 같아서요.”
“네. 맞습니다. 이제 거기에서 다시 또 한 걸음을 가야겠지요.”
아진의 말을 듣고 향화문주가 웃었다.
“역시 공자님이 계시니까 마음이 놓입니다.”
“제가 황성에 있다는 것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살수들이 마음 놓고 활개 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모르지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면 그자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자님. 오늘 안에 황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모두 다 알게 만들겠습니다.”
엄청난 말이었는데도 일단 향화문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일이 마냥 어렵지만도 않을 듯했다.
그것이야말로 향화문의 위력이었다.
* * *
오후가 되었을 때 선이남이 아진을 찾았다.
아진이 남이천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선이남은 아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다가 남이천과 있는 걸 보고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아진아, 이 녀석아. 폐하께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던데 너는 이렇게 한가하게 놀고 있는 거냐?”
“아. 죄송해요. 형님. 린린이랑 같이 농땡이 치던 게 버릇이 돼서 그만.”
그 말에 선이남과 남이천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저를 찾아오셨어요?”
“그래. 황후 폐하께서 너를 한번 보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왜 형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황후 폐하께서 나에게 사람을 보내서 너를 만날 방법이 없냐고 물으셨거든.”
“아아. 그럼 황후전으로 가면 되나요?”
“응. 나랑 같이 가자. 황후 폐하는 아직 한 번도 못 뵈었지?”
“예.”
선이남을 따라 황후전에 가면서 아진은 황후가 왜 자기를 부른 건지 생각했다.
선이남에게 물었지만 그도 아는 건 없다고 했다.
“황성에 왔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온 김에 한 번 얼굴을 보겠다고 생각하신 건 아닐까?”
“그냥 그런 거면 좋겠네요.”
“왜? 다른 이유가 있을 게 있나? 아아. 2황자 전하를 지지해 달라고 하실까 봐서?”
선이남의 말을 들으며 아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선이남이야말로 그런 얘기를 많이 듣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던 것이다.
“형님은 누구를 지지하세요? 형님도 그런 부탁을 많이 들으시겠어요. 특히나 형님은 황상께서 특별히 총애하시니까 더 그러겠는데요?”
그러자 선이남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형님은 누구를 지지하시는데요?”
“나는 그런 거 없어. 그런 게 있으면 안 되지. 황상께서도 특별히 당부하신 거기도 하고.”
“그러셨어요?”
황상은 신경 쓰는 일이 정말 많겠다고 생각하며 아진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도 불려가서 당부를 받았다고 하더라. 황상께서는 우리만큼은 그런 일에 관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그러실 만도 하죠. 형님들이랑 계실 때는 그런 복잡한 얘기를 하지 않고 속내를 꺼내놓고 싶으실 테니까요. 외로우신 분이니 형님들이 잘 보살펴드리세요.”
“그래.”
선이남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황후전에 도착하자 태감이 크게 반기며 그들을 안내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두 사람이 들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전에도 이곳에 온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아진은 황후전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서들 오세요.”
황후는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며 두 사람을 맞았다.
아진은 선이남의 도움을 받으며 인사를 올렸고 황후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이리 보게 되는군요. 황상께서 아끼시는 동량이라 이 사람도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빨리 보고 싶었는데 올 때마다 소리 소문 없이 다녀가서 언제 보게 될지 기대가 아주 많았습니다.”
“이리 폐하를 뵙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선 부정은 이제 돌아가도 좋아요.”
선이남은 황후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 보이고 그곳을 나섰다.
황후는 시립해 있던 자들을 전부 물리고 아진을 가까이 와서 앉게 했다.
아진이 가까이 가자 황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