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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09화 (409/470)
  • 제409화

    409화

    실전이 벌어졌을 때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한 무기나 격투법만 만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데 자연지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러나 이렇게 미리 한 번 보여주고 나면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생각하는 것도 훨씬 나을 거였다.

    두 아이를 가르치는데 참관인의 수가 이백 명을 훌쩍 넘었다.

    드문드문, 산본의가의 무인들도 보였고 표국의 국주와 표두, 표사들에, 나중에는 산본의가의 의원들도 보였다.

    아진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모인 건지 알 수 있었고 청수와 무린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자기가 깨달은 것들을 모두 알려주기로 했다.

    청수와 무린은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너희가 사용할 수 있는 자연지기는 제한돼 있지만 나중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일단 지금은 내가 아는 걸 전부 알려 줄 테니 그걸 계속 수련을 해 보도록 해라.”

    “예.”

    아이들은 감격한 얼굴로 말했고 아진은 그 앞에서 자연지기를 움직여 흙더미를 솟구치게 하거나 바닥이 가라앉게 하고 바닥에서 물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주위에 물이 없는데도 아진이 물을 끌어올리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이 물은 어디에서 나온 건지요. 공자님?”

    누군가 묻자 아진은 땅속에 있던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 주위에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있으면 위력이 훨씬 더 강해지겠습니다. 공자님.”

    “확실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두의 말에 대답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것을 상상해보는 듯했다.

    아진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청수와 무린에게 시켜보자 그들은 그 상태에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였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자연지기를 사용해 공격을 하는 것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소소하게나마 공격을 성공시켰을 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청수에게서는 백산선문의 표월이 했던 염화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불꽃이 쏘아지는 게 고작이었고 무린이 조종한 흙은 조금 솟구치다가 말아서 우연인지 공격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정도였지만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이 그 정도를 해냈다는 사실에 모두가 감탄했다.

    “그래. 지금 이 정도를 했다는 건 정말 엄청난 거다. 너희의 집중력에 근성이 더해지면 앞으로 놀라운 성과가 나타날 거다. 아주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대로 계속해 나가면 될 거야.”

    아진이 격려하자 두 사람의 얼굴에 헤벌쭉 웃음이 걸렸다.

    “공자님. 공자님과 같은 공격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막아야 합니까?”

    의가의 무인이 묻자 위도와 린린이 앞으로 나왔다.

    자기들은 아진이 하는 공격을 할 수 없으니 파훼법을 보여주려고 그런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사람을 보았다.

    “파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온 거예요. 형님?”

    “그럼. 당연하지.”

    위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린린은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들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본의 아니게 비무가 시작되었는데 아진은 그때부터 순전히 자연지기만을 사용해 공격을 펼쳤고 위도와 린린은 그것을 막아가며 공격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위도와 린린뿐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사람들이 늘어갔다.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상대의 수가 다섯 명이 되더니 거기에서 급격히 불어 스무 명으로 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호에서 명성이 높은 초고수들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아진이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처음에는 위도와 린린이 밀리는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나섰지만 나중에는 조금씩 호승심이 생겨 비무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었지만 자연지기를 사용한 공격을 파훼하는 방법을 산본무관의 문하생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싸움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아진도 그냥 대충 져주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욱 열중했다.

    갑자기 바닥이 허물어져서 대여섯 명이 흙더미에 파묻히기도 했고 그 주위에 있던 거목들이 연달아 쿵쿵 넘어지기도 했다.

    일을 이렇게까지 벌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한 번 정도는 문하생들이 이런 견식을 할 필요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갈 데까지 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흙더미 속에 파묻혔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 아진이 말했다.

    “실제로 싸울 때는 흙 속에 파묻혔을 때 바로 바닥을 다지면 그대로 상황이 끝날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범을 보이는 것처럼 발을 구르자 바닥이 청석을 깐 것처럼 단단해졌다.

    아진이 사정을 봐주지 않고 공격을 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깨달은 사람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아진을 향해 수많은 검기 다발이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아진은 그것을 막거나 베어내려 하지 않고 바람으로 변해 표홀히 피해 버렸다.

    “아아아…… 저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때 도종이 수십 개의 침에 강기를 실어 날렸고 산본의가 의원들이 도종을 따라 했다.

    도종은 바람으로 변한 아진의 위치를 정확하게 보았고 일단 침이 몇 개가 꽂히자 대단한 안력으로 의원들이 그 위치에 같이 침을 날렸다.

    바람이 갑자기 그 자리에 멈췄고 사람들은 침이 허공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며 아진의 위치를 파악했다.

    일단 그렇게 되자 아진도 본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도종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아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님한테는 못 당하겠지?”

    도종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하자 아진이 웃었다.

    “좋은 시도였어. 그런데 나는 형님이 침을 날리려는 걸 알고 호신강기를 두를 수 있었어. 우선은 이것도 파훼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려주려고 맞아준 거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웃어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걸 본 아진이 손을 들고 손가락을 펼치자 수십 개의 침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찔린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손가락에 잡힌 것이다.

    “…….”

    도종이 그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너는 참…….”

    “계속할까요?”

    “네에!!”

    아진의 말에 무관의 문하생들은 신이 나서 일제히 외쳤다.

    “좋아. 다 덤벼! 쓰러뜨리자!!”

    린린이 외치자 문하생들도 우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아진은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라나는 새싹에게는 세상의 쓴맛을 먼저 보여주는 게 좋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아진이 검기를 뿌리려 하자 린린이 외쳤다.

    “아니. 그건 안 되지. 오라버니는 자연지기만 사용해야지. 우리는 지금 그걸 파훼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거니까.”

    “아니지. 자연지기를 다루는 사람도 검술을 할 줄 알아.”

    “그래도 지금은 자연지기에 대비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거니까 검술은 쓰지 마.”

    “…….”

    뭔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아진과 싸우는 사람들은 그 말이 맞다며 모두 그렇게 하라고 했다.

    검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진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뿐이지 얼음과 흙, 심지어는 바람과 불을 이용해서도 검기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날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생각만 했지만 그다음에는 하나씩 그들의 앞에서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각각의 것들에 내공이 주입돼 유형화되어 날아들자 기겁했다.

    그러면서 그것도 자연지기만을 사용한 게 아니니 안 된다고 억울해했다.

    아진은 그 말도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자연지기만을 사용해서 공격을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공격의 강도가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괴로움을 토로했다.

    무인들의 어떤 공격은 성공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진의 코앞까지 날아든 검기를 보면서 이제야말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진은 그게 거의 얼굴에 닿을 때까지도 손을 쓸 필요가 없어서 놔둔 것뿐이었고 그것을 피할 수 없어서 피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이 되면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그러는 건가 하면서 여기저기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린린과 위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들이 힘을 합치면 아진의 손발을 묶어둘 수는 있지 않을까 했는데 언제 저렇게 아진이 더 높이 올라가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진이야말로 신이 났다.

    사람들에게 견식을 넓혀 준다는 명분까지 생기자 그때부터는 마음껏 날뛸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견식을 높이려는 거니까 그냥 보도록 하세요.”

    린린은 자연지기만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게 제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었다.

    그들이 만나게 될 사람들이 자연지기만 사용하라는 법도 없고.

    아진은 검집을 들었다.

    사람들은 검을 빼 들지 않고 검집을 들었다는 것에 안심하다가 이게 지금 마음을 놓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검날의 날카로운 예기는 없지만 그의 검집에 한 번 맞으면 뼈를 추리기도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둔탁하고 소름 끼치는 타격음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시야가 막혀 더욱 괴로워했다.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풀풀 날리면서 도저히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잘한 우박 같은 것을 만들어 날리기도 했다.

    시간이 계속될수록 무인들은 지치기도 지쳤지만 과연 실전에서 이런 공격을 마주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크게 낙심했다.

    그래도 아진이 멈췄을 때는 모두 크게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이제 자기들 정도면 어느 정도 극의에 이르렀다고 자만한 마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무인들이 견식에 고마움을 표하고 돌아가고 난 후에도 산본무관의 문하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대체 뭘 본 건가 하면서 감격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공자님. 그동안 공자님의 무위를 직접 볼 일이 많지 않아서 이 정도인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자주 시간을 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한 번 이렇게 보는 것만 해도 많이 배울 듯합니다.”

    교두들이 앞다투어 말했고 아진도 그러겠다고 약속을 해 주었다.

    섬풍대는 특히나 더 아진에게 열렬히 환호하며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럼 이제 청수 형이랑 무린이도 공자님처럼 그런 걸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묻자 청수와 무린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나는 아직 멀었지.”

    청수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지만 무린은 조금 자신감을 보였다.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이십 년만 지나면 공자님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 워낙 자신만만하게 굴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뒤에 나오는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십 년 만에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도 우습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문하생들은 자기들이 직접 아진에게 배우지는 못한다고 해도 그가 산본무관에 있는 동안 자기들도 모르는 걸 묻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기대했다.

    교두들도 그걸 주저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상황이었기에 앞으로 아진은 산본무관에서 기를 빨릴 일만 남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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