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408화 (408/470)
  • 제408화

    408화

    “죽일 수는 있고요? 죽일 수 있는 방법이나 알려주고 죽이라고 해야지 이 상태창은 정말 무책임해요.”

    정말 억울한 것 같은 연월랑을 보며 아진도 웃어버렸다.

    “이번에 나온 보상은 정말 괜찮았어요. 그쪽 세계로 다시 돌아가서 SSS급 헌터가 되게 해 주겠대요. 스탯이 서 공자님보다 높았어요. 공격력이랑 방어력도 다 높고 힐러도 되게 해 주겠다고 하고. 그런데 서 공자님을 생각하니까 별로 내키지 않더라고요.”

    “네. 가지 마세요. 그래봐야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유능한 헌터를 사람들이 그냥 놔두겠습니까? 그리고 헌터 스탯이 왜 오르겠어요? 그건 괴수들도 그만큼 강해진다는 뜻이잖아요.”

    “아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그런 생각은 못 했는데.”

    세 명의 헌터가 열심히 얘기를 하는 동안 산본의가 사람들이 하나둘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어어. 이렇게 뭉치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끝도 없이 해요?”

    린린이 말하며 다가오자 아진이 웃으며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일반인은 모르는 헌터의 세계라는 게 있지.”

    “가 보고 싶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린린. 너야말로 정말 조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네 앞에 상태창이 나타나도 안 된다고 해. 안 간다고 확실히 말해. 알았어?”

    아진은 린린이 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며 어깨를 잡고 말했고 린린은 어렵지도 않다는 듯이 팔랑팔랑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없으면 오라버니 성질을 누가 받아줘?”

    “그래. 맞아. 거기는 천마가 살 만한 곳이 아니야. 여기가 좋아. 여기가.”

    “오라버니가 겁먹었나 보네. 그쪽으로 넘어갔다는 사람을 보고서.”

    린린은 아진이 거듭거듭 그렇게 말해주는 게 흐뭇했다.

    아진은 생각난 김에 산본의가 사람들 모두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고 돌아다녔다.

    어느 날 상태창이 나타나서 물어도 절대 그러겠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장난기 가득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들은 가 보고 싶다고 했고 그때마다 아진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려주었다.

    연월랑과 위도도 가세했고 산본의가 사람들은 확실히 정신 교육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자기들의 눈앞에 상태창이라는 게 나타날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러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이세계에서 온 헌터들이 산본의가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자기들을 소중히 여겨서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마음 깊이 뿌듯함을 느꼈다.

    나오기만 해봐라, 상태창.

    완전 차갑게 무시해주겠다!

    그들의 마음에는 그런 다짐들이 새록새록 쌓여갔다.

    * * *

    결과적으로 백산선문의 일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아진이 혼자서 끝내게 되었지만 그 일로 그는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청수와 무린을 찾아가 그들의 수련을 돕기로 했다.

    두 사람은 산본무관에 만들어진 섬풍대 소속이었고 섬풍대에서 딱 그 두 사람에게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아진이 그곳에 나타난 때부터 모든 관심이 아진에게 쏠렸다.

    아이들의 입이 활짝 벌어지고 시선이 아진에게 고정돼서 다른 교두들도 일찌감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교두들마저 아이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아이들을 탓할 처지가 못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님.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교두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일단 교두가 먼저 아진에게 말을 건 이상 조용히 물러나기는 힘들 듯했다.

    “교두님.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셔도 됩니다. 저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온 건데 수업이 끝난 후에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공자님은 산본에서 가장 바쁘신 분인데 하실 일이 있거든 먼저 하십시오. 혹시 저를 보러 오신 거면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교두는 의욕적이었다.

    그러면서 제발 자기를 보러 온 게 맞다고 말해 달라는 듯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러자 다른 교두가 아진의 앞으로 와서 물었다.

    “혹시 저를 보러 오신 건지요. 공자님?”

    “아뇨…….”

    이러다가는 그곳에 있는 모든 교두들이 한 번씩은 다 물어볼 것 같아서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건 아니고요…….”

    그리고 청수를 보자 청수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눈치가 빠른 아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아아’ 하고 작게 소리를 내더니 자연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고 다른 아이들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두들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는 듯했다.

    “공자님. 바쁘시겠지만 무관에 자주 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공자님의 무공을 견식할 수 있으면 아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교두들은 이제 아진을 놔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교두님들만 애를 쓰셨어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희야 저희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애를 쓴다고 할 게 있겠는지요. 그냥 사심이지요. 저희도 옆에서 보고 배우고 싶어서요. 하하하하.”

    교두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고 아진은 그렇지 않아도 그들을 진작 보고 인사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던 차에 잠시 더 얘기를 나누었다.

    산본무관에서 양성하는 무인들의 실력은 대단했고 황실과 황도를 지키는 수많은 무인들이 산본무관에서 배출됐다.

    그래서 산본무관의 교두는 명성이 높았고 전국 각지에서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형국이었다.

    “아이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어서 하시지요. 공자님.”

    교두들의 배려에 아진은 아이들과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직 수업을 하는 중이라 도중에 빼 올 생각은 아니고 기다리려고 했는데 말을 듣기 전까지는 계속 자기만 보고 있을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청수와 무린은 아진이 자기들을 보러 왔다는 사실에 긴장한 모습이었다.

    “공자님. 무슨 일인지요?”

    청수가 공손하게 물었고 무린은 조금 더 의욕적으로 눈을 빛냈다.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난처했겠다.”

    그러고는 아진이 습관적으로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그게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이들도 커서 이제 그런 손길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멈칫거리자 아이들이 웃었다.

    “저는 공자님이 머리 쓰다듬어주시면 정말 좋습니다. 안전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무린의 말을 듣고 아진이 웃었다.

    아직 이 아이들은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얼굴에 그늘이 남아 있지 않아 마음을 놓았다.

    “나는 너희가 다른 방식으로 수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교두님들과도 그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해 볼 건데 너희가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으니 자연지기를 이용한 전투 기술을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한 후에 섬풍대로 돌아가서 너희의 기술로 돕는다면 섬풍대의 기량은 훨씬 높아질 거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죠.”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더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공자님이 저희를 가르쳐주실 시간이 될까요? 저희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시는 거면…….”

    청수가 조심스럽게 묻자 아진이 웃었다.

    “내가 안 가르쳐주면 혼자서 깨우칠 수는 있고?”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확실히 한계가 있어서요. 한두 걸음은 스스로 내디딜 수 있었는데 그 후에는 완전히 막혀서 뭘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같이 해 보자. 너희는 이미 무관에서 교두님들에게도 많은 것을 배워서 내가 조금만 가르쳐줘도 그걸 가지고 응용할 수 있을 거다.”

    아이들은 아진이 한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아이들의 뜻을 들은 후 아진은 기다렸다가 교두들에게 그 일에 대해 허락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교두들은 아진이 무슨 일로 온 건지 먼저 얘기를 듣지 못하는 한 집중을 하기가 어려운 듯했고 결국 아진은 그들에게 먼저 말을 해 주어야 했다.

    맡은 일에 있어서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교두들이 일단 아진이 그곳에 나타나고부터 여간해서 집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며 웃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제가 수업을 방해한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공자님. 산본무관의 가장 큰 장점이 뭐겠습니까. 정해진 것 외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서 강해질 수 있다는 게 아닌지요. 저희도 공자님이 그런 방법을 찾으신 게 아닌가 해서 기대를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아진도 더 이상 미적거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백산선문에서 자연지기를 다루는 사람들과 겨루고 느낀 생각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싸우는 사람이 한둘만 있어도 얼마든지 다채롭게 전투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정말 그럴 겁니다. 사실 저희도 청수와 무린이가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그걸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자유 수련 시간을 많이 주는 식으로 했는데 다른 식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안타까웠지요. 저희도 조만간 그 일로 공자님을 한 번 뵈었으면 하고 있기는 했습니다. 지금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기인데 저희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게 아닌가 해서요.”

    교두들은 역시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고 아진이 도중에 끼어들려고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은 채 도움을 고마워하고 있었다.

    아진은 자기가 백산선문에서 승부를 내면서 깨달은 것들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교두들이 눈을 빛내다가 그걸 모든 문하생들의 앞에서 보여줄 수 없겠는지 물었다.

    “아이들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을 테고 말이지요. 처음 보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테니 견식을 넓혀주시면…….”

    아진은 그렇게 말해준 교두가 고마웠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부탁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게 특히나 더 그랬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청수와 무린이를 가르치는 동안 산본무관 사람은 누구나 와서 같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래 주신다면 저희는 더 바랄 게 없지요.”

    아진은 다른 사람들도 그 수업을 참관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교두들이 더 열심히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날도 남아 있는 수업이 있었지만 교두들은 잠깐 동안 회의를 거치고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아이들이 아진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게 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 그게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자기들이 가르치는 건 다음에도 할 수 있지만 아진에게는 언제든 다시 일이 생기고 가르침이 중단될 수도 있다고 여긴 듯했다.

    산본무관의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 알고 있었고 심지어 임무를 맡아 다른 곳에 나가 있던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서둘러서 산본무관으로 돌아왔다.

    아진은 그 일이 그렇게까지 환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좋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