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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00화 (400/470)

제400화

400화

마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신의 힘을 전부 드러내지는 않고 뭔가 이유가 있어서 급히 도망친 것 같군요. 거기에 계속 있다가는 자신의 정체를 들킬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 여자를 공격한 사람들이 초고수들이었습니까?”

아진은 고개를 저으며 린린을 보았다.

아이들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는 듯이.

린린은 볼을 가득 부풀린 상태라 입을 열지는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니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애매했다.

“뭐라고?”

“앚다고.”

린린이 고개를 들고 간신히 입을 벌린 채 말했다.

“맞다고? 앚다고?”

그 틈을 노려 놀리는 아진을 보며 마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도 그 아진의 옆에 있어야만 교주의 얼굴이 행복해 보이는 걸 어쩌랴 하면서 그는 온갖 접시들을 린린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일단 제가 백산선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마선은 사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초대 문주가 제자를 들였고 자기가 특별히 만든 환단으로 체질을 개선시키고 제자들을 우화등선시키려고 했는데 그 후에 실제로 우화등선했다더라 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런 이야기는 어떻게 확인을 해야 하는 걸까 싶었다.

선계에 가서 그곳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건 그냥 그 사람들이 말한 것뿐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릅니다.”

마선은 조금 호승심이 동하는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자연지기를 사용한 무공을 창안하기 시작한 것도 처음에는 백산선문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조금씩 매달렸더니 조금씩 성취를 보였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그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 봐야 결국 내가 가는 길은 막다른 곳에 이를 거라고 생각했다면 도중에 포기해야 했겠지요.”

아진은 그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져서였다.

“그런데 공자님. 나무의 기운을 사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그냥 됐어요.”

그럴 때마다 아진은 조금 난감해졌다.

이제는 자기가 하는 말을 그저 좋게만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러는 게 당연했다.

유독 산본의가 사람들이 이상했던 것이다.

질투하는 게 당연할 때도 환하게 웃으면서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알려 주지 말 걸 그랬습니다.”

마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마하니 그렇게까지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본의 아니게 진심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사문은 어디에 있어요?”

린린이 손등으로 입을 닦고 말했다.

손등에 고추기름이 묻어나자 또 본능적으로 아진의 눈치를 살폈다.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나면 오라버니가 봤을까 안 봤을까 하는 게 늘 가장 먼저 궁금해졌다.

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야!”

그래도 그걸로 계산이 끝났다는 듯 후련한 표정을 짓는 교주를 보고 마선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신교의 사람들이야 교주가 산본의가에서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교주가 늘 웃을 수 있으면 족한 거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상은 과욕이었다.

“아세요. 마선님?”

아진까지 묻자 마선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도 신기하기는 하네요. 도대체 어디에 있기에 지금까지 들킨 적이 없었을까요? 약초꾼만 해도 온갖 심산을 다 들쑤시고 다니지 않습니까?”

“본 사람은 전부 다 죽였나 보네요.”

린린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만한 이야기이기는 했다.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나타났다면 이 노부도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수련을 해야겠습니다. 사문에서 내려온다면 그때는 두 분으로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산본의가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들이 전부 나선다고 해도 어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연월랑은 줄기차게 역천마의를 따라다녔다.

역천마의도 한 번 정도 연월랑을 직접 보고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들이 많았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

“연 군사. 그렇지 않아도 몇 가지 결정을 위해서 연 군사를 보기는 해야 했었어요.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험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한지라 그 선택은 연 군사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성공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위험은 감수할 수 있어요.”

연월랑이 말하자 역천마의가 신중히 생각해야 할 거라며 바라보았다.

“죽을 수도 있어요. 본교의 대법은 그만큼 위험해요. 하늘을 거스르고 하는 일인데 그러지 않을 리가 없죠. 연 군사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는 말이에요.”

죽을 수도 있다…….

연월랑은 그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안 좋은 경우라고 해 봐야 대법이 실패하는 것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듣고 긴장이 됐던 것이다.

역천마의는 이제 연월랑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할 거라고 짐작했다.

산본의가에서 그만큼 지내면서 적응을 해 왔으니 그곳에서의 삶에 재미를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는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역시나 연월랑에게서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면 포기해야 할까요?”

“결정은 연 군사가 해야 되는 거예요.”

“역천마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정확히 반반이라고 해야 할 거예요.”

역천마의는 연월랑을 남자의 모습으로 돌려주는 것이 크게 탐탁지 않았다.

처음에 연월랑이 린린을 보고 호감을 나타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 역천마의는 이제 그 기억은 잊고 자기가 왜 연월랑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를 막연히 싫어하고 있었다.

연월랑은 고민이 깊어졌다.

계속 이 몸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니면 5할의 성공 가능성을 가지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연월랑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역천마의에게 물었다.

“제가 남자로 돌아가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 모습이요. 이 모습에서 윤곽이랑 선이 남자처럼 변하는 걸까요?”

솔직히 지금 연월랑의 외모는 수준급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본바탕으로 해서 성별만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천마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죠. 그럴 가능성은 오히려 아주 적을걸요? 환골탈태 수준의 격변을 겪게 될 거예요. 환골탈태를 하고 나면 대부분 용모가 좋아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절대적으로 그럴 거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에요.”

역천마의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희망을 품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언제나 여지를 남겨 두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빠져나갈 곳을 만들어 두는 것 같았는데 그 때문에 연월랑의 고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면……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애써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야 주군의 명에 따르는 것뿐인데 뭘요.”

역천마의는 연월랑이 시무룩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역천마의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정은 결국 본인이 해야 했던 것이다.

연월랑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진이 다가갔다.

표정을 보니 일이 잘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대법이 어렵다고 합니까?”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대요. 그래서 결정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목숨을 걸고서라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 그걸 제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성별이 돌아간다는 것뿐이지 얼굴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대요.”

“아…….”

아진도 그런 문제라면 조금 고민이 될 것 같기는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성별이 바뀌고 그때부터 그 모습으로 7년을 산 것이다.

그동안은 외형이 여자라는 것 때문에 북혈마제가 계속 수작을 걸어왔으니 그것 때문에 치가 떨려서라도 남자로 돌아가고 싶었겠지만 그것과 목숨을 바꾸는 문제라면…….

그건 아무래도 고민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공자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연월랑이 묻자 린린도 궁금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곧 마음을 정했다.

“저라면 그냥 살 것 같습니다. 죽고 나면 내 주위의 사람들을 다시는 못 보게 될 텐데. 제 여동생이 입에 고추기름을 묻히고 먹어도 그걸 닦아 주지도 못할 거고요.”

아진이 린린의 어깨에 팔을 걸치면서 말하자 연월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은 그런 것들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 같았고 그런 것을 결정할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연월랑은 그것이 부러웠다.

그에게도 서서히 그런 것들이 생겨나고 있기는 했다.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들.

얼마 전이었다면 그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역천마의에게 자신의 성별을 바꿔 달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자기가 머뭇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했다.

지금의 상황이 그만큼 만족스럽다는 의미였기에.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것저것 따져 가면서 해요. 그러면 될 것 같아요.”

린린까지 그렇게 말하자 연월랑은 한결 마음이 편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선님과는 얘기가 잘됐습니까?”

아진과 린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잘된 건지 안 된 건지 그들도 잘 몰라서였다.

그래도 이곳에서 마선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했고 그들은 서둘러 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 * *

백산선문.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그 사실만 해도 표월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사문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문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거칠고 잔인했다.

선계에 오르기 위해 동문끼리 피를 보며 싸운 기간이 길었고 상대방이 가진 무공을 탐하면서 획책을 쓰거나 죽이는 것도 불사했다.

마선이 알고 있는 것조차 진실이 아니었다.

처음에 백산선문을 세운 세 사람이 각자 제자를 들였고 그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들이면서 사문은 폐쇄적으로 운영돼 왔다.

그들에게 제자란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끈끈했다.

한번 제자를 맞아들이면 자기가 가진 것을 대부분 전수해 주었고 개인의 수련 시간을 쪼개서 제자의 무공을 연마해 주어야 했기에 한꺼번에 많은 제자를 키우는 것은 어려웠다.

누가 더 뛰어난 제자를 들이고 어떤 제자가 더 큰 성취를 이루느냐에 따라서 스승의 영향력이 커졌고 그것은 결국 파벌로 나타났다.

표월은 현천의 제자였고 태혈령은 자선의 제자였다.

현천과 자선 두 사람과 처음에 백산선문을 세운 주악은 가장 먼저 선계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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