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2화
392화
“이런 생각을 우리만 하는 건 아닐 테고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하겠네요. 제가 북혈마제에 대해서 다 알고 있고 그 이야기를 공자님에게 했을 거라는 걸요. 북혈마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으니까 확실히 이건 정당한 방법이 아니기는 해요. 그 사람들은 그걸 문제 삼아서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할 거예요.”
“다섯 명이 아니라 열 명 정도가 동시에 덤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도종이 말하자 아진이 설마라는 얼굴로 도종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꺼번에 열 명이 덤벼서 자신을 막는다면 그걸 자랑할 수 있겠냐는 거였는데 연월랑은 피식 웃었다.
아진이 싸움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공자님은 북혈마제를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북혈마제는 그냥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우아한 승리 같은 건 북혈마제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요. 야비해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게 북혈마제의 생각이에요.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예요.”
그 말은 중요했다.
아진은 자기가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독이랑 암기도 사용을 잘합니까?”
“거기에 재주가 없어서 하지 못하지만 만약에 할 수 있었으면 했을걸요?”
연월랑은 확신에 찬 채로 말했고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함부로 말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혈마제라면 그런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 영입해서 데려올 수도 있을 거예요. 공자님이랑 비무를 할 사람요.”
“아…….”
아진은 자기가 북혈마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전면적으로 조정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구나…….”
“북혈마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거예요. 공자님에게 개죽음을 안기겠다는 생각요. 공자님의 시신을 얼마나 처참하게 능욕할지 그 생각만 할걸요? 공자님의 시신을 개 먹이로 주겠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런 얘기까지는 자세히 해 주지도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연월랑은 신이 난 것 같았다.
도종은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상상해 버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뭐…… 달라지는 건 별로 없네요. 그렇죠?”
아진이 말했지만 거기에 동조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 *
황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북방의 초원에 들어서고 그들은 반가운 모습을 발견했다.
제일조였다.
산본을 떠나올 때는 보이지 않던 녀석이 어느새 그들을 따라붙었다.
제일조는 자기가 왔다는 듯이 그들의 앞으로 날아가 낮게 날며 반가운 날갯짓을 했다.
“제일조!”
아진도 신이 나고 반가워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제일조가 날아왔고 아진은 냉큼 팔을 내렸다.
제일조가 친한 척을 하면서 한번씩 팔에 앉을 때마다 엄청나게 아팠던 것이다.
제일조는 그럴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그 발톱으로 살을 파고들면 눈물이 찔끔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호신강기를 펼치면 되기는 하지만 그냥 제일조에게 그러지 못하게 하는 게 더 나았다.
“제일조가 왔으니까 북혈마제에게 미리 서신을 보내는 게 어때, 아진아?”
도종의 말은 즉흥적으로 나왔는데 연월랑은 반색을 했다.
“그렇게 하면 정말 좋을 것 같기는 해요. 그러면 이미 정당성이 확보가 되잖아요. 기습을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왔다고 생각할 거예요. 북혈마제가 그렇게 말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함께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공자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될 거예요.”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새롭게 북천을 다스리게 될 사람들은 지금 북혈마제의 옆에 있는 사람들일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공자님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게 하는 게 좋아요.”
아진 역시 그 말에 충분히 동의했고 곧바로 서신을 쓸 준비를 했다.
“다섯 명과 비무를 해서 북천의 패자를 가리는 걸로 하자고 할까요?”
아진의 말에 연월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릴까 봐 싫었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북천의 패자라고 말을 한 게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와. 정말 재미있겠네요. 북혈마제가 이걸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전부 그려지는 것 같아요. 부들부들 떨면서 종이를 움켜쥐고 찢어 버릴걸요? 아. 이 새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북혈마제는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온 새와 전령을 다 죽여요. 죽이고 사체를 전시하죠.”
“…….”
아진이 제일조를 바라보았지만 제일조는 걱정 없다는 듯이 제 다리를 척 내밀었다.
걱정할 것 없으니까 일단 그걸 통에 넣으라는 것 같았다.
“하긴. 제일조가 잡혀야 그런 일도 가능할 텐데 우리 제일조는 잡힐 일이 없잖아.”
도종이 말하자 제일조도 자기 말이 그 말이라는 듯 눈을 빛냈다.
아진이 서신을 넣어 주자 제일조가 높이 날아올랐다.
연월랑은 그 모습을 희한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저 새는 북혈마제가 살고 있는 곳을 모르잖아요.”
“그러는 게 정상이기는 한데 제일조는 알아요. 알더라고요? 신기하기는 해요.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영물이겠죠.”
“그래요? 저 새가 영물이에요?”
“그럼요. 영물이죠. 한 번도 가 보지도 않은 곳을 다 알잖아요. 북혈마제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요.”
영물이라는 것이 또 그렇게 설명되는 건가 싶어 연월랑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진과 도종은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북혈마제의 궁까지는 마차로 갔을 때 사흘 정도 거리예요. 이 정도면 그자의 영역에 들어갔다고 봐도 되는 거죠. 슬슬 기습이 시작될 거예요. 우리가 누군지 모르더라도 공격을 할 겁니다.”
연월랑의 말은 사실이었다.
북혈마제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공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불필요한 희생은 내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먼저 아진 일행을 발견한 사람들이 무작정 덤벼드는 바람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저는 못 싸워요. 아시죠?”
연월랑은 혹시라도 그들이 잊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는지 미리 말을 하곤 했고 도종은 걱정하지 말라며 연월랑의 옆을 든든하게 지켰다.
“그리고 어차피 아진이만 싸우면 될 거예요. 아진이는 그런 걸 확인하고 싶어 하거든요. 자기가 그동안 배웠던 게 얼마나 숙련됐나 하는 거요. 저도 싸우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동생을 위해서 참는 거죠.”
“아아…… 네.”
도종이 평소에 워낙 진지했기에 연월랑은 그게 농담이라는 것도 모르고 진지하게 답했다.
아진은 자연지기를 사용한 공격 방법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바람과 흙을 사용한 공격법은 이제 상당히 숙달돼 가는 것 같았는데 아진이 사용하는 공격은 그 두 가지를 떠올렸을 때 상상되는 일반적인 방법을 완전히 벗어나곤 했다.
사람들이 달려오는 길의 뒤에서 흙더미를 높이 솟구치게 해서 인위적으로 산사태를 일으켜 사람들을 생매장해 버리기도 했는데 처음에 아진이 그것을 성공했을 때 연월랑과 도종은 한참 동안 멍하니 그걸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리 자기들 편이라고는 해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진은 그게 상당히 효과적이겠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면 수백 명을 일시에 처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는데? 바닥에 먼저 구덩이를 판 다음에 하면 더 좋으려나? 도망칠 곳이 없게?”
진지하게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아진을 보면 그를 함부로 화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모르는 사람을 봤으면 최소한 누구냐고 물어보고 말을 들어 보기라도 하는 게 예의 아닌가? 예의만 갖췄어도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아진은 혀를 차면서 땅에 매몰된 사람들을 보다가 다시 마차를 몰았다.
그런 식의 온갖 비전형적인 살인이 이루어져서 북혈마제는 자신의 구역에 아진 일행이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들이 일으킨 일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일조를 통해 아진의 경고를 먼저 받은 북혈마제는 연월랑이 말한 것과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화를 내고 부들부들 떨며 제일조를 잡아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일조는 일찌감치 사람들을 따돌리고 나무 위로 날아 올라가 북혈마제를 구경했고 북혈마제가 제일조를 향해 화살을 날릴 때도 굴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재미없다는 듯이 푸드득 날아 올라가 아진에게 돌아갔다.
북혈마제는 자기가 새에게까지 능욕을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렇게 화나 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도진이 온 것이다.
연월랑도 왔지만 서신을 받은 북혈마제는 자기가 더 이상 그렇게 풋풋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북혈마제는 궁 안의 세력들을 모았다.
서열 20위까지였다.
그 자리에 모여든 사람들은 아진이 보내 온 서신의 내용을 공유받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사람은 북혈마제를 띄워 주며 서도진이 여기가 죽을 곳이라는 것도 모르고 온 것 같다며 그놈에게 뜨거운 맛을 똑똑히 보여 주자고 했고 몇몇 사람들은 자기들이 서도진을 죽이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여러 말을 했지만 북혈마제는 보기 드물게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이럴 때는 늘 연월랑이 북혈마제 대신 생각을 해 주었었기에 연월랑의 빈자리가 더욱 컸다.
“그자가 왜 그런 조건을 내걸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그자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궁주님. 왜 다섯 명이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궁주님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전사들이 훨씬 많은데 말입니다. 그놈은 알량한 말로 우리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승부를 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말입니다.”
“맞습니다. 궁주님. 그놈의 제안을 우리가 따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중 몇 사람은 아진이 북혈마제에게 그 제안을 한 것이 북천을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어차피 서도진에게는 북천의 수만 전사를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쓸데없는 피를 흘리게 하지 않으려고 북혈마제와 담판을 지으려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북혈마제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고 자신의 옆에서 떠들어대는 이들과 생각을 같이했다.
“이 일을 위해서 꼭 본궁만 나서야 할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궁에 불러들인 자들 중에 사람들을 골라도 될 것입니다. 궁주님.”
“그것이 좋겠다. 당장 그렇게 하도록 해라.”
북혈마제는 그 일을 서둘렀다.
아진 일행이 이미 북천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던 것이다.
북혈마제는 자기가 겁을 먹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시각각 아진이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서도진에 대해서 들어왔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때로는 아는 게 병이 된다는데 지금의 북혈마제가 그랬다.
‘하필 연월랑이 그자에게 가서 의탁할 것은 뭐란 말이냐!!’
북혈마제는 자신의 힘도 지키고 자존심도 상하지 않은 채 이 일을 끝낼 방법이 없을지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연월랑이 낀 이상 아무래도 그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