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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89화 (389/470)

제389화

389화

“여기는 저절로 발전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연월랑은 신이 나서 말했다.

의학당에 가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수련생들에게 이제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하러 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 각자 혈관문합을 시작합시다. 먼저 마비산으로 쥐를 마비시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연월랑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 * *

“상처나 수술 부위를 넓게 노출시키는 데 사용하는 게 따로 있고 시야 확보를 위해서 조직을 잡아 주는 기구가 따로 있어야겠네요?”

“예. 안 그래도 그것도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참. 거칠게 찢겨진 피부를 잘라낼 때 사용할 가위도 있으면 좋겠어요.”

“아아.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만들면 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실을 자르는 가위도 따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예. 종류가 많네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없다더니 그 말인가 봅니다.”

“예…….”

연월랑은 재미있는 말이라는 듯이 웃었다.

방주가 연월랑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진은 그 옆에서 연월랑이 시킨 것들을 계속 연습했다.

“꼭 쥐를 가지고 해야 합니까? 이건 너무 작네요. 저는 손도 큰데.”

아진이 투덜거리면 연월랑은 새끼 쥐를 쥐여 주면서 그 쥐를 절대 죽이지 말고 다시 살려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아진은 다시 비숙련자의 처지로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공자님. 혹시 연습을 빠르게 해 보고 싶으면 그런 환자들이 많이 생기는 곳으로 가면 도움이 되기는 할 겁니다. 실전 경험이 쌓이면 실력이 빨리 늘기는 해요.”

“예. 그렇기는 하겠죠. 그런데 요즘에는 대규모로 전쟁을 하는 곳이 많지 않을 텐데요?”

“많지 않은 거지 아주 없지는 않죠. 북천만 해도 항상 싸움이 벌어지는데요?”

연월랑의 말에 아진은 북천으로 가자는 거냐며 연월랑을 보았다.

그곳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걱정을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이제는 한층 여유가 생긴 듯했다.

“가시겠다면 같이 가 드릴 수는 있다는 얘기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월랑은 기대가 되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 그렇게 해 보죠. 만약에 내가 고쳐야 하는 환자가 아군이라면 나는 저절로 마나를 사용할 것 같아요.”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자는 거지요.”

아진은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며 당장 그 일을 추진했다.

산본의가의 의원들은 연월랑에게 배우고 싶은 게 많았기에 그 사실을 안타까워했지만 아진은 더욱 서둘렀다.

“스승님.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소청이 너는 본가를 지켜 주면 좋겠다.”

“네. 스승님.”

소청은 기분 좋게 웃으며 아진을 보았다.

그는 스승이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사용해오던 힘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자신을 거기에 맞게 훈련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힘이 들 텐데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아진을 보며 소청은 실제로 그런 날이 올 때 자기가 스승님의 부족한 부분을 반드시 채워 주겠다고 생각했다.

린린은 아진이 자기까지 두고 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았는데 그 자리에는 린린이 빠지고 대신 도종이 들어갔다.

어쩌다가 도종이 낀 건지는 아진도 알지 못했는데 아진과 연월랑이 떠날 준비를 하자 어디서 도종이 자기 몸보다도 훨씬 큰 짐을 들고 나타나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마차에 실었던 것이다.

“형님?”

“나도 갈 거다.”

그 말로 끝이었다.

연월랑은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가방에는 철방의 방주가 만들어 준 수술 도구가 들어 있었고 마차에는 소독약과 각종 상비약까지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응원하며 열심히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연월랑은 산본을 떠나면서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그동안은 계속 남의 집에 얹혀 지내느라 불편했는데 이제는 그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산본의가는 편한 곳이었지만 아진을 자기 집 앞마당에서 끌고 나오니 괜히 대등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월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진은 치료법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고 연월랑은 그때마다 대답을 해 주었다.

도종의 질문은 더 많았다.

도종은 그동안 자기가 살릴 수 있었을 많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잃은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말을 해 주고 연월랑 같으면 그때 어떻게 했을지 물었다.

연월랑은 그때마다 자기 생각을 말해 주었다.

쓸 수 없는 곳은 잘라내고 다른 곳은 살릴 거라는 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말로 하는 거랑 실제로 하는 건 차이가 커요. 눈앞에서 피가 솟구치면 정신이 없기도 하고요. 무림인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기는 하겠네요. 점혈해서 피를 멈추게 할 수 있잖아요.”

연월랑이 말했지만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그런 건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무림인이 아닌 의원이 할 수 있는 것만 해 볼 생각입니다.”

연월랑도 아진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환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갑자기 큰 통증을 느끼면서 허리를 접은 채 비명을 질렀고 사람들은 의원을 불러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그들이 불러오는 의원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아진 일행은 모두 알고 있었다.

환자 역시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의원이 돈만 받아먹지 병은 고치지도 못한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이 의원을 데려와서 괜한 돈을 들이게 될까 봐 걱정이 된 것 같았다.

아진은 자기가 산본의가의 공자라고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을 하지 않은 채 환자를 따라갔고 환자의 집안 마당에서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가족이 주위에 둘러앉아 하염없이 울어댔는데 연월랑이 먼저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의원이오. 이 사람은 지금 상태가 아주 많이 나쁩니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봐 왔으니 다들 알 것 같은데 내가 치료할 수 있게 해 준다면 환자를 살펴보겠소.”

환자의 가족들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연월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연월랑의 말끔한 차림새를 보고 믿음이 가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는데 먼저 그렇게 손을 내밀어준다면 그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연월랑은 끓는 물을 준비해 달라고 말하면서 그들 각자에게 일을 맡겼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할 때 극도로 초조해지지요. 사소한 일이라도 맡겨 주면 그나마 마음이 놓일 겁니다. 나중에 환자가 깨어나면 자기가 어떻게 도왔는지 자신만만하게 말을 해 줄 수도 있을 거고요. 무기력한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어요.”

연월랑은 말을 하면서 환자의 복부를 절개했다.

그의 상태를 보고 어디가 문제인지를 어느 정도 파악해 둔 상태였다.

열어 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까지 확신을 갖고 진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때부터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요구되었다.

사실 그것은 연월랑에게만 한정된 문제였고 아진은 마나를 사용해 환자의 아픈 부위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연월랑의 방식에 숙달되기로 했을 뿐이었다.

연월랑이 생각했던 부위에 문제가 생겨 있었고 바로 수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눈으로 아진을 몇 번 보면서 신호를 주고받았다.

아진은 연월랑이 뭘 하는지 알았고 자기에게 뭘 하라는 건지도 이해했다.

아직 자신은 없었지만 연월랑이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 그를 믿었다.

연월랑은 아진이 문제 된 곳을 제거하고 혈관문합을 해 나가는 것을 보았다.

손길은 섬세했고 집중력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차분해지는 것 같았고, 아진의 대담한 성격이 그런 때에도 잘 드러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조금 긴장을 한 것 같더니 점차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연월랑을 바라보는 아진의 눈에 웃음이 지어졌다.

연월랑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완벽하게 한 거 봤어요?’

도종은 아진이 수술을 끝내는 걸 보면서 자기가 땀을 닦았다.

“와…… 긴장돼서 죽을 뻔했네. 아진이 너.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잘한다?”

“그러게 말이야. 형님. 나는 도대체 못하는 게 뭘까? 이것까지 잘하면 정말 미안한데. 형님은 나 때문에 속상하지?”

“아니야. 참을 만해.”

도종이 말하더니 복부의 봉합은 자기가 했다.

그런 것은 도종도 여러 번 해 와서 어렵지 않았다.

“이걸 그런 식으로 하네.”

도종은 여운이 남는 듯이 말했고 연월랑은 도종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사람의 몸은 정말 신비하고 위대하죠.”

“그건 맞는 말 같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태에서 몸이 낫는 걸 보면 말이죠.”

그곳에서의 일이 끝나고 다시 길을 나섰던 사람들은 시장 골목에서 한 여자가 배를 부둥켜안고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충수염이죠?”

아진이 말하자 연월랑이 아진을 보았다.

배를 부둥켜안고 쓰러졌다고 충수염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었지만 아진은 자신만의 근거를 갖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게 처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진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생각해내는 건가 해서 연월랑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진은 마나로 병의 원인을 알아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환자의 상태가 위급한 것을 보자 저절로 그 힘이 사용되었다.

이럴 때 의원에 데려가면 의원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현대 세계에서는 충수염으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여기라면 사정이 달랐다.

연월랑은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 수술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아진에게 말했다.

아진이 여자를 안아 들자 도종이 무작정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죽어갑니다. 급합니다. 장소 좀 빌려 주십시오. 환자를 눕혀야 합니다. 나는 의원이오.”

여자의 상태를 보고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상점의 주인은 물건들을 급히 옆으로 치우며 자리를 만들었다.

침상으로 사용할 만한 것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눕히고 연월랑은 환자의 복부를 절개한 후에 충수돌기를 찾았다.

연월랑이 한참을 더듬고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아진은 철방의 방주가 만들어 주었던 수술 도구들을 꺼내 놓으면서 연월랑을 보았다.

충수돌기를 쉽게 찾지 못한 연월랑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아래쪽에 있습니다. 아래쪽을 더듬어 보세요.”

연월랑은 아진이 뭘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하면서도 손가락을 아래쪽으로 내렸고 마침내 충수돌기를 찾았다.

그것을 소작기로 지져서 떼어낸 연월랑은 하마터면 충수가 터졌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아진이 그것의 위치를 어떻게 안 건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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