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387화 (387/470)

제387화

387화

북혈마제는 차라리 연월랑을 잊고 싶었다.

북천의 주인이 여자 하나를 잊지 못해서 그렇게 가슴앓이를 한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얼마나 우스울까 하면서 그는 몇 번이나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연월랑을 찾아 나서지 못한 것은 그녀가 둥지를 틀었다는 곳이 하필 산본의가여서였다.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곤 하는 북혈마제였지만 그도 자기가 감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갈등을 일으켰다.

연월랑을 납치해 올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될 것 같았다.

산본의가와는 부딪치지 않고 연월랑만 데려올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는 연월랑의 잘못을 하나도 묻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못하도록 타이르고 달래고 다리 정도는 자를 수 있겠지만 그럭저럭 용서를 해 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타올랐다.

더위에 메말라가는 사람처럼 그는 연월랑에 대한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연월랑을 데려오는 자에게는 영약과 무공비급을 주겠다. 산본에 가서 연월랑을 데려올 영웅은 어디에 있느냐!”

북혈마제는 자기가 나서는 순간 중원과의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수하를 충동질했다.

그런 북혈마제를 보면서 그의 연정이 북천의 꿈을 좌절시킨다며 낙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북천을 일통할 수 있을 거라던 꿈이 그대로 멈추어 버리는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방향을 잃은 꿈과 열정이 끝없는 어둠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연월랑 한 사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 * *

아진은 연월랑과의 첫 만남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와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것은 린린도 마찬가지였다.

연월랑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으면서 산본의가에는 전과 전혀 다른 종류의 활기가 넘쳐났다.

사람들은 천재를 보고 감탄할 수는 있지만 천재를 보면서 그와 같이 되겠다는 마음과 도전의식을 갖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연월랑은 그들이 넉넉히 따라잡을 수 있는 선두주자처럼 여겨졌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연월랑을 목표로 수련을 해 나갔다.

어느덧 정상에 이르러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무력감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연월랑은 그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연 군사님. 연 군사님에게 고마운 게 많습니다. 처음의 무례는 용서해 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아진이 말하자 그는 두 손을 내저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실 만도 했습니다. 한 번에 정신이 들도록 확실하게 말씀해 주셔서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린린에 대한 감정은 어느 순간 저절로 정리가 되었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이었을 것이다.

린린이 아무리 좋아도 우선은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린린은 그냥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남기기로 마음을 먹었고 일단 그렇게 결심을 하자 그것이 꼭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오신 후에는 상태창이 나타나지 않던가요? 그 전에는 상태창이 나타났지 않습니까?”

그러자 연월랑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오고는 나타난 적이 없었습니다. 나타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태창이라는 것도 웃기는 것 같았다.

위도에게는 아진을 죽이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하유란에게는 그들을 죽이라고 하면서 그 일에 성공했을 때의 보상까지 제시했다.

연월랑에게도 여러 가지 보상을 제시했다가 연월랑이 거절하는 바람에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기는 하지만 위도에게는 왜 처음부터 아진을 죽이라고 요구도 하지 않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연 군사님은 상태창이 뭘 노리는 것 같습니까?”

연월랑은 북혈마제의 군사로 활약할 만큼 지략이 뛰어나다고 생각했기에 아진은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연월랑도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연월랑도 그게 궁금했다.

상태창이 바라는 것은 도대체 뭘까 하고.

서도진과 조 위도의 죽음?

그게 목표라면 그 두 사람을 이곳에서 왜 이렇게 강하게 만든 건지 그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연월랑은 이곳에 와서 하유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위도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하유란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밀이었다.

아진과 위도, 린린과 벽예월.

그 네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연월랑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준 것은 연월랑이 함께 그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아 주기를 바라서였다.

하유란은 연월랑 자신만큼은 아니었어도 원래의 세계에서 가지고 있던 스탯이 그대로 옮겨지지는 않은 듯했다.

아무리 잘 쳐주려고 해도 절정의 문턱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아진과 위도는 무공의 수위도 높을 뿐 아니라 기연이 그들을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과연 상태창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그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진과 위도를 죽이라던 요구는 하유란과 연월랑의 앞에 판 함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진지하게 들 정도였다.

연월랑이 그 말을 하자 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연월랑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아진과 위도는 거의 천하무적이었다.

개개인의 기량도 그랬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걸 각오로 모여들 사람까지 생각한다면 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연 군사는 정말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까? 만약 연 군사의 성별을 원래대로 돌려준다고 하면 생각해 볼 의향이 있었을까요?”

그러자 연월랑이 큰 소리로 웃었다.

“원래 남자였는데 남자로 돌려놔 주겠다는 게 보상이라고요?”

그런데 말을 하고 보니 끌리기는 했다.

지금은 그냥 무념무상의 상태로 살고 있지만 나중에 정말 마음에 꼭 드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역천마의에게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본교에는 극양의 무공이 몇 개 존재하는데 그걸 익혀서 원래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가장 강한 양기를 지녔다는 만년화리의 내단도 마침 본교의 보고에 있으니 조만간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연월랑은 갑자기 눈앞으로 뭔가가 휙 지나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그냥 멍하니 듣고 흘릴 내용이 아니었는데 뭔가가 휙 지나가 버린 것이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연월랑이 묻자 린린은 자기가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들려주었다.

연월랑은 그 말을 듣지 못해서 물은 게 아니고 믿지 못해서 그런 거였지만.

“왜…… 저한테 그 귀한 걸 주겠다고 하시는지…… 만년화리의 내단은 쉽게 구할 수도 없고…… 정말 귀한 게 아닙니까?”

“정말 귀한 거죠. 그런데 정말 귀한 영약이 모두 쓰이는 건 아니에요. 보고에는 많은 영약이 있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게 많이 있죠. 영약 자체를 함부로 반출하지 않는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린린은 질문의 요점을 영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귀한 게 아니냐는 말이 그 뜻은 아니었는데…….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연월랑은 직접적으로 물었다.

“연 군사님은 열쇠인 것 같아서요. 오라버니의 문제를 풀어 가는 데 연 군사님이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연 군사님이 오라버니의 편이 되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위도 오라버니가 그런 것처럼요. 아무튼 위도 오라버니나 연 군사님은 천하에 널린 수많은 사람과 같은 사람은 아니잖아요. 오라버니가 살던 세계의 세 명뿐인 S급. 거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겠지요.”

린린이 자신에게 투자를 하려는 이유가 연월랑 개인이 가진 이유가 아니라고 해도 연월랑은 충분히 고마웠다.

“그러면 포기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포기하려고 하셨어요?”

“아뇨. 아닙니다. 말을 바꿔야겠군요. 아직 낙심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로요.”

그러자 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본가의 분들이 연 군사님 때문에 다시 목표를 가진 것도 좋고…… 연 군사님에게는 많이 고마워요.”

“앞으로…… 더 많이 고마운 존재가 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월랑은 감격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 * *

향화문은 북천 무인들의 동태를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북혈마제가 연월랑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산본으로 공격해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북천의 패자로서 수많은 세력을 그 아래에 복속시키고 있었고 관외 지역의 많은 무림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연합할 수도 있는 그들이었기에 만약 그들이 실제로 공격을 감행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산본의가에서는 더 많은 향화문도들을 그곳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동향을 살폈다.

황제 역시 그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북혈마제가 황실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황실에 우호적인 그들이 북천을 점령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에 황제가 별도의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그곳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연월랑은 그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에 산본이나 황실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산본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이기적인 선택이라 판단했다.

린린과 아진은 연월랑이 말이 없이 오래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일단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대협. 조만간 저는 이곳을 떠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다고 해도 소식은 계속 전하면서 오래 인연을 이어 가고 싶습니다.”

연월랑이 그렇게 말했을 때 위도 역시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월랑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고 있었고 위도 역시 연월랑이 상상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연월랑을 마냥 붙잡고 있는 것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시죠. 산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연 군사의 위치가 드러나 있으니까 한 번 정도 위치를 바꾸는 것도 좋을 거라고 여깁니다.”

“예. 일단 마음을 정했으니 시간을 끌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전 같았다면 자기 혼자 외따로 떨어져서 사는 것에 부담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혹시 린린이랑도 그 이야기를 해 봤으면 이참에 천마신교에 들어가는 건 어떻습니까?”

위도가 말하자 연월랑도 관심을 보였다.

역천마의의 옆에서 대법이 준비되는 과정을 직접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악은 그사이에 연월랑에게 정이 듬뿍 들었던 듯 연월랑이 그런 말을 하자 아쉬워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분위기를 알아차린다는 게 신기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언제 얘기를 할 생각입니까?”

“오래 끌 필요 있나요? 바로 말하죠.”

연월랑이야말로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자의로 가는 것이 아니고 떠밀리듯 가는 것이라서 아쉬움이 컸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떠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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