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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84화 (384/470)

제384화

384화

서도진과 위도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목숨을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 우선은 북혈마제를 먼저 해치우자는 건데 아무래도 그사이에 인과관계가 삐끗한 것 같았다.

“그리고 뭐. 내가 먼저 이렇게 부탁을 안 해도 결국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연월랑이 결연하게 말하자 이제는 위도가 긴장이 됐다.

“왜요?”

“북혈마제가 여기를 치면 당연히 방어를 하면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연 군사가 여기에 없으면 우리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는데요?”

“네. 그런데 저는 여기에 있을 거예요.”

뻔뻔하다면 뻔뻔했는데 연월랑의 처지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어서 정말 난감했다.

“대협. 대협이 당한 일이 아니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제가 동생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대협의 동생이 어느 날 여자가 됐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데 어느 날 턱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놈이 결혼을 하자고 덤벼들면 어떻겠냐고요.”

“일단 나한테는 동생이 없습니다.”

“그러면 서악이가 그렇다고 생각해 보세요!”

연월랑이 서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위도가 불쾌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위도는 연신 고개를 저어댔다.

“하여튼 그게 누군지, 나를 이렇게 만들고 나를 꼬드겨서 무림에 오게 한 놈이 누구인지 알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대협도 그럴 거죠? 그놈이 걸리면 죽일 거죠?”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를 죽이라고 한 놈인데 살려 둘 수는 없죠. 앞으로도 무슨 짓을 할지 알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에요. 제가 도와주겠다고요.”

연월랑은 위도가 하는 말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어가곤 했는데 위도는 연월랑과 얘기를 할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제가 새로 얻은 몸이 머리가 좋아서 그런 쪽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북혈마제가 일군 승리는 다 제 머리에서 나왔거든요. 그건 아시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미 향화문의 문도들이 확인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자님은 언제 올까요? 오래 걸리네요.”

연월랑은 산본의가에 온 지 며칠 만에 벌써 적응을 마치고 자기 집처럼 편하게 여기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런 연월랑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에는 자신의 비밀을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위도를 만난 후에 연월랑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던 것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 입어왔던 옷은 벗어 던지고 편한 무복을 입은 채 돌아다니며 위도의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연월랑은 위도에게 특별한 동지의식을 느껴서 그런 거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연월랑이 위도에게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하유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고 하유란이 위도와 서악을 두고 집을 나갔다고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연월랑과 위도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연월랑과 위도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둘 다 버럭 했을 텐데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제라면 서악이었는데 서악이 연월랑을 잡고 엄마와 비슷한 발음으로 부르는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연월랑은 경악하면서 자기를 숙부라고 부르라고 했고 위도는 그 말에 다시 난감해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서악이 얼마나 헷갈리겠느냐는 거였는데 연월랑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진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연월랑은 산본의가 탐방을 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대협. 산본의가에는 대단한 미인들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벽 소저는 정말……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아름답던데. 대협이 벽 소저에게 저를 좀 소개해 줄 수 없을까요?”

“…….”

위도는 연월랑을 당장 북천에 다시 데려다 놓고 싶었다.

입만 열면 이상한 소리를 해 대는 바람에 난감했던 것이다.

벽예월은 연월랑을 허물없이 대했고 위도는 연월랑에 대해서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는 건가 하면서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랬기에 아진이 돌아왔을 때 위도가 느낀 반가움이 얼마나 컸는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아진 일행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돌아왔고 랑랑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아진과 린린은 일찌감치 연월랑을 찾아왔다.

“……!”

연월랑은 드디어 서도진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러나 그 감격은 5초도 안 돼서 사라졌다.

서도진 옆의 린린을 보면서였다.

연월랑은 생전 린린과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전신에서 뿜어지는 오묘한 매력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아진은 연월랑이 린린에게 홀딱 빠진 것처럼 바라보는 걸 보고 린린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견제했다.

“연 군사. 얘기는 들었습니다.”

아진이 다소 딱딱한 어조로 말하자 연월랑이 정신을 차리고 아진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린린을 향해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북혈마제의 군사였던 연월랑이라고 합니다.”

린린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연월랑을 관찰하듯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들에게 다가온 위도가 아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진아. 레오루카라는 헌터를 기억하냐?]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는 있지만요.]

[아니. 네가 알고 있는 게 맞아. 그런데 여기로 오면서 여자가 됐대. 그리고 무공도 못 해. 딜러였다는데 전투 기술도 다 잊은 것 같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면 연월랑이라는 여자의 체력과 체질을 그대로 가지고 깨어난 거예요?]

[응.]

아진은 이렇게 운이 나쁠 수도 있는 걸까 하면서 연월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게 단순히 운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창을 통해 레오루카를 이곳으로 데려온 존재가 일부러 일으킨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위도의 말을 들은 순간 연월랑이 린린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연 군사.”

“…….”

“연 군사.”

린린을 보면서 넋을 빼놓고 있던 연월랑은 아진이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아. 예. 공자님.”

“내 동생에게 관심을 두지 마시오.”

아진은 냉랭한 시선으로 연월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월랑은 아차 싶었는지 아진을 보았다.

그러자 오히려 린린이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였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여자에게 질투를 느끼는 건가 했다.

그러자 그때부터 위도가 린린에게 전음을 보내 그간의 사정을 말해 주었고 린린도 연월랑에 대해 알게 됐다.

연월랑은 아진의 말이 서운하기는 했지만 산본의가가 아진의 작은 제국과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꼬리를 내렸다.

연월랑은 아진과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아진은 연월랑이 영 거슬렸다.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데도 연월랑은 이미 자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처럼 린린을 넋 놓고 보곤 했는데 아진은 자기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정작 그 사이에서 선을 정한 것은 린린이었다.

“연 소저.”

“예. 서 소저.”

“계속 그렇게 보다가는 시력을 영영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안구를 잃을 수도 있어요.”

“……예?”

“앞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

연월랑은 설마하니 그게 진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웃을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린린은 자기가 한 얘기의 어떤 부분이 재미있냐는 듯이 연월랑을 쏘아보았고 연월랑은 자기가 린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린린은 안 하던 무형지기마저 발출했고 연월랑은 교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제대로 깨달았다.

“나를 보지 마세요. 연 소저. 연 소저를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나에 대해서 멋대로 오해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일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뿐이지 내 의지는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천마라는 걸 함부로 잊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

“들었으면 대답을 하세요.”

“예…….”

“북혈마제에게 도망쳐서 여기에 온 게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는 그렇게 편한 곳이 아닐 거예요. 연 소저가 선을 넘는 걸 그냥 묵인해 주는 곳도 아닙니다. 경고는 여러 차례 하지 않을 겁니다.”

“…….”

“대답하라고 말했을 텐데.”

“예.”

연월랑은 굴욕감을 참으면서 말했다.

잠시 후에 연월랑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객청으로 돌아갔다.

레오루카였던 자신의 모습을 봤다면 린린도 넘어왔을지 모르는데 왜 하필 이런 꼴을 하고 있는 건가 해서 화가 났다.

‘와.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내 마음에 든 사람은 처음이었는데…….’

연월랑은 억울하고 속이 상했다.

그러나 앞으로 한 번 더 연정을 품은 눈으로 린린을 봤다가는 정말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 같았다.

시력이 아니라 안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닐 거라는 것을 연월랑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나?’

연월랑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어 댔다.

* * *

그래도 린린이 한 번 강하게 얘기를 한 후에 연월랑이 스스로 조심하는 것 같아서 위도도 일단은 마음을 놓았다.

연월랑은 이제 위도 옆에 딱 붙어서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질 않았다.

위도도 연월랑이 옆에서 레이드 이야기를 하면 지난 일도 생각나고 재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하더니 이제는 연월랑과 얘기를 하는 게 제법 재미있었다.

“거기는 길드 대우가 어땠어요?”

“쩔었죠. 다른 곳은 헌터들 관리한다고 길드를 정부에서 감독한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 말 들으면서 엄청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왜 그런 곳에 남아 있어요? 국가가 뭘 해 준 게 있다고? 정부도 정말 양아치들 같지 않아요? 헌터들이 목숨 바쳐서 괴수를 죽여줬는데 세금 떼 가는 거 봐요.”

“나도 그건 좀 불만이었어요. 이탈리아는 세금이 얼마였어요?”

“저희는 35%였는데 헌터들이 단체행동을 해서 15%로 내렸어요. 35%가 말이 돼요? 미친 거죠. 그래서 확 그냥 이민 가려고 했었어요. 그나저나 서도진 헌터는 정말 대단했었죠. 만약에 제 스탯이 그렇게 나왔으면 저는 헌터 때려치웠을 거예요. 아니면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뭘 그렇다고 자살까지 해요? 다른 거 하고 살면 되지. 그래도 버티니까 스탯이 확 올랐잖아요.”

연월랑과 얘기하는 게 재미있기는 했는데 이상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셔악이도 헌터. 셔악이는 힐러. 슉부님처럼.”

제 귀에 들어와서 꽂히는 말을 따라 하는 서악이가 이상한 말을 배웠던 것이다.

위도는 서악이 앞에서 말을 할 때는 조금 주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연월랑과 얘기를 하다 보면 과몰입을 하게 돼서 레이드를 할 때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해 댔다.

그러다 보면 서악이 어느새 그 말을 배워서 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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