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383화 (383/470)
  • 제383화

    383화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그러는 거죠? 당신들은 누굽니까?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를 납치하는 건가요?”

    연월랑은 이제 그들에게서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자 연월랑을 데려온 사람이 말했다.

    “위험에 빠진 것 같아 구해준 것뿐입니다.”

    “나를 따라오고 있었습니까?”

    뇌연청은 거기까지 말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연월랑은 한 조직의 군사로 있던 사람이었다.

    머리를 쓰는 일은 누구 못지않게 잘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연월랑이에요. 당신들을 보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나를 놔주면 나는 계속 쫓길 거예요. 그러면 당신들이 나를 구해 준 의미도 사라지겠죠. 내가 잡힌다면 말이에요.”

    “…….”

    뇌연청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돌아왔다.

    철령대주를 죽이지는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따돌리는 데는 성공한 듯했다.

    연월랑은 그들이 철령대주를 뿌리치고 온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사용했던 침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

    침을 그런 식으로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한 군데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침은 사천당문도 그렇게까지 잘 다루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연월랑은 깜짝 놀라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깐만요. 당신들 혹시. 산본의가 사람들인가요?”

    그 말에 오히려 그들이 당황한 표정을 했다.

    표정 관리라면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는데 갑자기 산본의가라는 이름을 듣자 자기들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다.

    향화문의 문도로서 점점 노련해져 산본의가와의 관련성이나 향화문도냐는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연월랑은 자기가 그들을 괜히 긴장시켰다고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당신들한테라면 내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아요. 서도진 공자를 잘 알죠?”

    “…….”

    향화문의 문도들은 이렇다 저렇다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연월랑은 이제부터 그들에게 답변을 요구하지 말고 그냥 쭉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서도진 공자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어요. 꼭 해야 할 말이 있고요. 이건…… 이것까지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서 공자님과 같은 사람이에요.”

    연월랑의 말에 향화문의 문도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산본의가에 모인 무인들의 앞에서 아진이 자신의 비밀을 말한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세간에 퍼지고 있었고 향화문 사람들은 그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진이 산본의가에서 밝힌 것보다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연월랑이 하는 말을 검증할 방법도 있었다.

    연월랑이 하는 말을 믿기는 어려웠지만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겼다가 이 일이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었기에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연월랑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건지 파악하기로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십시오.”

    뇌연청의 말에 연월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곳의 S급 헌터였습니다. 어느 날 상태창이 나타났고 무림으로 이동하겠냐는 말에 그러겠다고 했어요. 산본의가의 이공자 서도진을 죽이라는 상태창도 봤지만 그 일은 실행하지 않았어요. 여기에 온 건 7년이 돼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신은 힐러였습니까? 아니면.”

    “딜러였어요.”

    연월랑은 자신의 공격력 수치와 방어력 수치를 각각 말했고 처음에 각성했을 때의 수치와 처음에 레이드를 했을 때 던전에서 어떤 괴수가 나왔는지도 알려 주었다.

    향화문의 문도들은 연월랑이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질문을 했지만 나중에는 연월랑이 하는 말의 진위 여부를 더 이상 판가름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자기들이 가진 정보를 훨씬 넘어서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연월랑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가 보도록 하죠. 저희는 판단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공자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연월랑은 드디어 서도진을 만나게 됐다는 사실에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 * *

    흑주와 부딪쳐 기억을 잃은 후 산본의가에 자리 잡은 제일조는 아진을 따라 다니면서 산본의가에 주기적으로 오고 갔다.

    산본의가에서 급히 아진에게 전할 소식이 있을지도 몰라서였는데 그렇게 간 산본의가에서 제일조가 특이한 소식을 가져왔다.

    북천의 군사 연월랑에 대한 소식이었는데 그녀가 S급 헌터라는 말에 아진은 한동안 신기해하며 서찰을 읽었다.

    “뭔데?”

    아진이 서찰을 보고 말없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고 린린이 먼저 물었다.

    “어? 어어. 남은 S급 헌터를 찾았나 봐.”

    “정말이야? 누군데? 어디에 있었대? 지금 바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이건 중요한 문제잖아. 오라버니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았대? 오라버니를 죽이려고 왔다가 잡힌 건가?”

    “그건 모르겠어.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걸 생각하는 중이야. 그 사람은 지금 쫓기고 있대. 우리가 그 사람을 데리고 있다는 걸 알면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대.”

    아진은 자기가 알게 된 사실을 말해 주었고 북혈마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혈마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앞뒤 안 가리고 일을 저지를 거야.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알아도, 그리고 자기 세력을 다 잃게 될 거라는 걸 알아도 아마 못 멈출걸?”

    “그래? 꼴통이네.”

    “그렇지.”

    린린은 그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연월랑을 만나 봐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오라버니는 어쩌고 싶어?”

    “본가로 돌아가서 연 군사를 먼저 보는 게 좋겠어.”

    모두 아진의 말에 이견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호행의 목표는 이미 충분히 이루었고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들을 하던 참이었다.

    “잘만 하면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도 있겠네.”

    돌아가던 중에 아진이 먼저 희한한 점을 깨달았다.

    “이상하네. 내가 알기로 S급 헌터 중에 여자는 하나뿐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 그자가 거짓말을 한 거야?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네.”

    린린은 당장 의심하기 시작했고 아진 역시 그쪽으로 생각이 굳어 갔다.

    한편 연월랑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마침내 서도진을 만나게 됐다는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타지에서 동향 사람을 보게 되는 것처럼 괜히 기대가 되었던 것이다.

    * * *

    산본의가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연월랑이었다.

    연월랑은 위도를 먼저 만났는데 위도 역시 연월랑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도 남아 있는 S급 헌터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였다.

    연월랑은 자기를 본 위도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폭소를 터뜨렸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시겠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이 거지 같은 상태창이 나한테 엿을 먹였어요. 여기에서 눈을 뜨기 전에 나는 남자였어요.”

    연월랑의 말에 위도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물었고 연월랑은 웃음을 터뜨린 후에 자기에 대한 얘기를 전부 들려주었다.

    연월랑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는 레오루카가 아니라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위도는 자기가 연월랑을 의심했던 것을 당장 반성했다.

    “우리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잖아요?”

    위도가 말하자 연월랑이 그를 바라보았다.

    연월랑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었는데 워낙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던 성격이어서 위도와 무슨 얘기를 나눴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위도를 어디에서 봤는지, 그때 무슨 행사가 열렸었는지는 기억을 해서 위도는 연월랑이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헌터 때의 기량이 여기에서도 발휘된 건가요?”

    연월랑은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는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도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왜 하필 연월랑만 그런 건가 했다.

    연월랑만 성별이 바뀌었고 헌터의 기량이 사라졌다.

    전투 능력조차도 이어지지 않았고 간신히 군사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말에 위도는 혼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에 자기가 그렇게 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월랑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서악이 빨빨거리며 정원을 걸어다니다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저 아이는 저렇게 넘어지면서 뭐가 좋다고 계속 걷는 걸까요? 아이들은 참 신기해요. 그렇게 해 봐야 땀밖에 안 날 텐데.”

    위도는 연월랑이 말하는 방식이 웃겨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북혈마제가 연 군사를…….”

    위도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연월랑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대협. 혹시 부업으로 살행 같은 거 안 하십니까? 북혈마제 목만 따 주면 제가 그동안 모아 뒀던 재물을 전부 다 줄게요. 제가 그 새끼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나는 남자잖아요!”

    “아…….”

    위도는 주먹을 말아쥐고 큼큼거렸다.

    어딜 보나 여자인 연월랑이 그렇게 말하는 걸 다른 사람이 본다면 연월랑이 미친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하…… 지금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아는데…… 그래도 이제는 저도 숨기지 않아도 되잖아요. 저는 남자라고요!”

    연월랑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때마침 서악이 다가와서 연월랑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쟈!”

    위도는 연월랑이 그러는 게 서악의 교육에는 아주 안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악아. 아니야. 이분은 여자야. 음…… 아무튼 그래.”

    그러면서 연월랑에게 자기 아들을 헷갈리게 하지 말라는 듯이 눈치를 주었다.

    연월랑은 기가 막혔지만 일단 이곳에서는 위도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북혈마제에 대해서는 나도 좀 들은 게 있는데…… 그래서 향화문 사람들은 연 군사를 우리가 데리고 있는 게 아주 위험할 수도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예. 그럴 거예요. 그 새끼는 한 번 눈이 돌아가면 물불을 안 가리거든요. 그리고 저를 좋아해요. 알아듣게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을 한다고 누가 믿겠느냐고요. 그리고 그 새끼는 아마 상관없다고 할 거예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대협.”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

    연월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부탁했고 위도는 지금이 웃을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나와서 애를 먹었다.

    “북천의 정보는 제가 다 드릴 수 있어요. 북혈마제가 어디에서 자는지 침소도 다 알고 지도도 다 그려 줄 수 있어요. 그 정보만 있어도 북천을 정복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을걸요?”

    “그런데 우리는 북천을 정복할 필요가 없거든요. 여기도 땅이 넓고 여기서도 할 일이 쌓여 있는데 그곳까지 갈 이유가 없는 거죠.”

    위도의 말에 연월랑은 경각심을 느꼈다.

    그냥 생각 없이 맹하니 앉아 있는 것 같은데 호락호락하지 않아서였다.

    “대협. 사람이 꿈을 크게 가져야죠.”

    “우리는 넘치도록 크게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이뤘어요. 여기에서 더 크게 꿈을 가질 수는 없어요.”

    “대협. 그 상태창이 꼭 S급 헌터들만 불러들이라는 법도 없잖아요. S급 헌터는 이곳으로 올 수 있는데 A급 헌터는 안 되라는 법도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위도도 연월랑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