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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75화 (375/470)

제375화

375화

“이 스승님은 소청이 네가 언젠가 너의 친척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해 왔어.”

“…….”

소청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진은 그런 것으로 시간을 끄는 걸 정말 싫어했는데 이번에는 방법이 없었다.

“자세한 건 가 봐야 알겠지만…… 그 사람들이 좋지 않은 방법으로 힘을 얻으려고 한 것 같다.”

“어떻게요?”

아진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했고 이야기를 듣는 소청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저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그래…… 그렇지. 네가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안 보낼 거야.”

“가고 싶지 않아요. 바보 같아요. 그런 짓을 하다니요.”

소청은 생각할 여지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진은 소청이 그렇게 말해 주기를 바랐고 린린을 바라보았다.

린린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다행이다. 네가 흔들렸으면 난감했을 텐데 말이야.”

“제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분들이 결정했던 걸 그대로 따를 수는 없잖아요. 그건 말도 안 돼요.”

소청이 제법 단호했기에 아진은 소청이 다른 일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소청아. 혹시 내가 이상한 결정을 하거나 그러면 그때는 나도 안 볼 거야?”

“그때는 말씀을 드리고 끝까지 설득해야죠. 그러면 안 된다고요. 울면서 매달릴 수도 있고요. 스승님이 그런 결정을 하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먼저 들어 보고 그러고도 안 될 것 같으면 울면서 사정할 거예요. 그러면 스승님도 제 말을 들어 주실 거잖아요.”

“아닌데…….”

아진이 말하고는 빙긋 웃었다.

그러자 소청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이 상당했다.

아진은 말을 다 해 놓고 후련해져서 소청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제자는 이렇게 영리한데 괜히 혼자서 마음고생 하면서 걱정했다.”

“그러게요. 그런 건 바로 말씀해 주시면 돼요. 이제 와서 친척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제가 그분들을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스승님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랑랑의 수신호위이니까 랑랑을 떠날 수도 없고요. 제 친척분들도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면 이해해 주실 거예요. 그 말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하면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그래.”

아진은 가끔 소청을 볼 때마다 소청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지곤 했는데 그때의 소청을 보면서 그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에게도 소청 같은 면이 있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 보면 소청의 아버지도 그러기는 했었지. 마공을 익히다가 멸문을 당한 거니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건 소청의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네.’

처음에는 그들이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는데 생각을 해 보니 안타깝기도 했다.

“린린. 만약에 말이야. 그 사람들이 계약 같은 걸 맺었다면 그걸 파기하는 방법은 없어?”

그러자 린린이 고개를 저었다.

“강한 고수의 사념이나 원념은 아주 강해. 그 사념이나 원념이 의지할 수 있는 몸을 얻었는데 그걸 쉽게 포기할 리가 없지. 그런 일을 일으킬 정도면 정말 엄청난 고수였을 가능성이 높고.”

린린의 말에 소청도 걱정된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친척들이 자신을 억지로 데려가려고 한다면 거절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면 그들을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아진도 소청이 어떤 생각인지 알 것 같았고 일단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같이 갈 거야. 소청아?”

“그래야죠. 제 말을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설득해 봐야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에게는 중요한 분들이었을 테니까요.”

결정을 내린 이상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랑랑아. 너는 고모랑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위험할지 모르니까.”

“내가 같이 가야 될걸? 오라버니가 아무리 강해도 그런 쪽으로는 잘 모르잖아. 주술에 대해서는 더 그렇고.”

린린은 아진이 랑랑을 자기에게 맡길 거라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선수를 쳤다.

“랑랑. 화망이랑 잘할 수 있지? 이번이 네 첫 실전이 될 수도 있어. 내 조칸데 당연히 잘할 거야. 나는 믿어.”

그러면서 린린은 벌써 랑랑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

랑랑은 그 말에 좀 겁이 나는 것 같았지만 독각화망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화망이랑 제가 한 사람은 맡아 볼게요.”

“한 사람? 겨우 한 사람으로는 안 될지도 모르는데?”

린린이 웃으며 말하자 소청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래도 일단은…… 말로 먼저 해 보는 거죠, 사고님?”

그들을 처음부터 공격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말하는 소청을 보고 린린도 아차 싶었다.

“그래. 그렇게 할게. 소청이의 친척들이라는 걸 자꾸 잊어버리게 되네. 얘기가 잘 안 될 때만 나서는 걸로 할게. 이번에는 소청이 네가 지시를 내려.”

소청은 그럴 것까지는 아니라면서 두 손을 내저었다.

“긴장되지. 소청아?”

아진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사실 좀 그렇기는 해요.”

“그래. 오랫동안 너를 그리워했을 분들이니까 최대한 설득해 보자.”

아진은 랑랑에게도 격려를 해 주었다.

“랑랑. 너는 아직 어리고 어릴 때는 얼마든지 실수를 해도 돼. 실수하면서 배우면 되는 거니까 겁내지 마. 알았지? 다만 실수한 걸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최대한 빨리 털어 버리고.”

랑랑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었지만 전력은 상당했다.

독각화망의 독만 해도 독공 고수 여러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해낼 텐데 거기에 이제 랑랑의 암기술도 제법 그럴듯해져서 의지를 해 볼 만했던 것이다.

* * *

석가장의 장주가 말한 산으로 올라가자 여러 개의 커다란 동굴이 연달아 나왔다.

아진은 그중 장주가 알려 주었던 동굴을 찾아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가자 동굴 입구를 지켜 서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구시오!”

그들은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놀랐는지 각자 검을 앞으로 들어 올리며 물었다.

“잘 찾아온 게 맞는 것 같다.”

아진이 소청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할 정도로, 동굴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소청과 은근히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게요. 저도 알 것 같아요. 스승님.”

“그러면 네가 말을 해 볼래?”

아진이 말하자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누구냐고 물었…….”

그러다 그들도 말을 멈추는 것이 소청이 누구인지 알아본 것 같았다.

“저는 은소청이에요.”

소청이 말하자 그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에는 어떻게…… 네가 근처를 지나갈 거라는 얘기는 들었다만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것이냐.”

그들은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를 찾으려고 하신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그래…… 잘 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진은 그들이 소청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서로 어떤 이야기들을 했을지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나요? 안에 들어가면 더 많은 분들을 뵐 수 있어요?”

“그래. 그렇다. 그런데 너만 들어갈 수 있다.”

동굴 입구를 지키던 사람의 말에 아진이 먼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 제자와 함께 갈 거요. 안에서 내 제자가 안전할 거라는 것을 장담할 수 없는 한 혼자 보내지는 않을 거요.”

그들 역시 소청과 함께 온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짐작을 한 것 같았고 그 말을 들은 후에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아진을 상대로 해서 승산이 있을까 하는 것 같았다.

소청은 그곳에서 오래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런 소청을 막지 못했고 그 뒤를 이어 아진과 린린, 그리고 독각화망을 앞세운 랑랑까지 안으로 들어가자 퍼뜩 정신이 든 듯 안으로 달려갔다.

동굴 안은 어두웠지만 각자의 내공 덕분에 앞을 분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직 내공이 부족한 랑랑은 어떨지 몰라 아진이 랑랑을 안고 걸었다.

안쪽에서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니 그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지내는 것 같았다.

그림자 용이 벽에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알 수가 없었다.

동굴은 안으로 깊게 이어졌다.

한참을 갔지만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오는 것을 보며 아진이 가장 앞에 섰고 린린이 소청을 보호하듯이 서 있었다.

다가오는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도 마흔이 되지 않은 듯했다.

“소청아. 이제야 너를 보게 되는구나. 너를 기다렸다.”

“…….”

소청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소청이 자신을 궁금해한다고 생각했는지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네 아버지와는 육촌이 된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멀겠지만 네 아버지와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지. 네 아버지가 당한 일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도 죽지 않고 혈육을 남겨서 얼마나 다행이냐.”

소청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아진은 그런 소청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린린이 랑랑을 데려가 주었다.

소청에게도 아진이 곁에 같이 있어 주는 게 안심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한다. 소청아. 오늘은 네가 뭘 몰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다만 다음부터는 다른 이를 데려와서는 안 될 것이다. 너는 나를 가주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내가 은씨세가의 새 가주가 되었으니 말이다. 원래는 네가 물려받았어야 할 자리이지만 운명이 이리된 것에 대해 나를 탓하지는 말거라.”

“스승님이 오시지 못하면 저도 여기에 들어오지 않아요.”

소청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가주가 그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너는 이제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한다. 소청아. 그동안은 우리가 있는 곳을 몰랐으니 근본도 없는 아이처럼 떠돌아다녔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저는 한 번도 근본 없는 아이였던 적이 없어요. 어머니도 저를 그렇게 키우시지 않았고 저도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저는 아버지가 생각하시기에 부끄러웠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어요.”

소청은 주눅 들지 않은 채 자기가 할 말을 했고 다른 이들의 표정은 그에 따라 굳어졌다.

아진은 소청이 말을 하는 동안 동굴 벽을 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사이한 기운의 존재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 일을 결정하기에 너는 너무 어리다. 그동안 너는 보살핌과 훈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어서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가 너를 지켜 줄 것이다.”

아진은 벽을 따라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 움직이기라도 했다면 아진은 그것이 그자의 그림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다.

벽 속에서만 유영할 수 있는 미지의 존재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이제 그만 돌아가 주었으면 합니다만.”

가주가 아진에게 축객령을 내렸지만 아진은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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