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4화
374화
“소청아. 그러지 말고 내 제자 하자니까? 그러면 천마신교 소교주가 될 수도 있고 차기 교주가 될 수도 있는데.”
린린도 린린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청을 졸라 봐도 소청이 꿈쩍하지 않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매달렸던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얘기가 오가는 동안 아진은 둘의 대화에 끼지 않고 혼자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린린도 나중에 그것을 알아차리고 아진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오라버니?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어?”
“응?”
아진은 뒤늦게 정신이 든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이상하던데. 석가장에서 나오면서부터 그런 것 같던데. 왜 그래? 석가장에 있던 소저가 너무 예뻐서 이대로 못 가겠어? 가서 얘기라도 해 보려고?”
린린이 말하자 소청이 흥미진진하다는 듯 눈빛을 밝혔다.
“그 소저 예쁘기는 하던데요. 가지고 있는 책을 보니까 학식도 풍부하신 것 같았고요.”
“독각화망도 안 무서워했어요.”
소청과 랑랑이 지원사격을 했다.
린린은 굳이 그런 도움까지는 필요 없었기에 샐쭉해져 있었다.
“밥 먹고 할 일 없으면 잠을 자든가 수련을 하든가 해.”
그러면서 아진은 별 쓸데없는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러자 랑랑은 정말 독각화망을 데리고 가서 수련을 시작했다.
“화망아. 너 독을 분사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 같더라. 그리고 한 번 공격을 성공하고 다음 공격을 할 때까지 시간도 너무 많이 걸려. 좀 빠르게 움직여 봐.”
독각화망은 랑랑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연습을 해 나갔다.
자기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드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꾀를 부리지는 않고 랑랑이 시키는 대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랑랑은 독각화망의 뒤에 숨어서 비수를 날리는 연습을 했다.
제일조는 나무 위에 앉아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왜 저렇게 고생을 사서 할까 하는 표정을 지었고 흑조는 소청의 앞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랑랑아. 암기를 그렇게 던지면 안 된다니까? 그러다 보면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 그럴 거면 연습을 안 하는 게 나아.”
독각화망 잡는 랑랑에, 랑랑 잡는 소청이었다.
소청이 랑랑에게 가서 암기 던지는 법을 본격적으로 봐주는 동안 린린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뭔데 그래. 오라버니?”
“응? 아니. 별건 아닌데…….”
아진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결국 린린에게 털어놓았다.
“장주님이 은씨세가 얘기를 하셨는데 장주님이 말한 은씨세가가 소청이의 가문 같아서.”
“은씨세가 얘기를 하셨어? 언제 하셨는데?”
“식사하고 나서 잠깐 같이 걸을 때.”
“왜 나는 안 부르고?”
“장주님도 확신은 하지 못하셔서 우선 나한테만 얘기를 하느라고 그러신 것 같아.”
“소청이 가문은 멸문당했다고 소청이 어머니가 그러셨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그렇잖아. 멸문당했던 가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모여서 다시 가문을 세우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남궁세가를 시작으로 그동안 여러 이유로 사라졌던 가문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은씨세가도 그렇게 다시 시작한 듯했다.
“그런 거면 잘된 거 아니야?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오라버니?”
“좋은 얘기가 아니라서.”
아진은 말을 하더니 린린을 바라보았다.
“너. 명교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들어본 적은 있지. 지금은 없어졌을 텐데 왜? 혹시 그 사람들이 명교랑 결탁했다고 해?”
“그렇다나 봐. 명교의 세력이랑 결탁을 한 게 아니라 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좀 이상해.”
그 말을 들은 린린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왜 아진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는 듯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소청이랑 어떤 관계야?”
“먼 친척들인 것 같은데 소청이에 대해서 아는 것 같았어. 소청이를 데려가려고 한대.”
“장주가 그 얘기까지 해?”
“응. 만난 적이 있대. 우리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모양인데 나를 만나게 돼서 얘기를 해 준 거야. 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소청이에게 접근하려고 하고 있었대.”
“이제 와서 소청이를 데려가서 뭘 하겠다는 거지?”
“소청이가 어떤 아이인지 자기들도 들었겠지.”
소청이가 어떤 아이인지.
린린도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어느 누구라고 하더라도 소청을 보면 탐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청은 그런 아이였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 절정 고수 열 명 이상의 몫을 거뜬히 해냈고 강한 정신력은 누구와도 쉽게 견줄 수가 없었다.
그런 소청이었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탐을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관심도 갖지 않더니 이제 와서 소청을 데려가겠다는 건가 해서 린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안락한 장소를 마련해 주고 소청을 키우겠다고 해도 보낼까 말까 한데 지금은 소청의 명성을 가문의 부흥에 이용하려고 하는 것처럼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보낼 필요 없잖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린린이 말했지만 아진의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소청이에게 일단 말은 한번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래?”
“그것도 그런데 그 사람들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명교도 그렇고 다른 것도 그렇고 이상한 게 섞이면 그때부터는 손대기가 어렵기는 하지.”
린린의 말을 들으면서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가장의 장주가 한 말은 아진을 꽤나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곳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그들이 벽 속의 용을 섬기고 그 용에게 자기들의 피를 제물로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었다.
어지간해야 그러냐고 하지, 그건 워낙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려서였다.
그러나 장주는 진지했고 그것이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벽 속에 있는 용에게 어떻게 피를 준다는 말입니까?”
아진이 물었을 때 그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몸을 검으로 찌르고 검이 피에 흠뻑 젖으면 그 검으로 벽을 찌릅니다. 그러면 용이 피를 먹어서 검에서 피가 사라지지요.”
“그건…….”
말도 안 되는 거라고 하고 싶었지만 장주는 자기가 하는 말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점점 분위기가 나빠졌다.
자기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건데 계속 아진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이 기분이 나빴던 듯했다.
그러면서 장주는 직접 가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했고 어차피 조만간 보게 될 거라고 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었다.
그들이 소청을 찾고 있으며 소청을 데려갈 거라는 말이었다.
“소청이가 따라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린린은 이제 그게 걱정이 되는 듯했다.
소청이 가겠다고 하면 보내 주기는 해야 할 텐데 그들이 소청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뻔히 보여서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우선은 소청이한테 말을 해 봐야 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아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기들이 힘이 없어서 그런 일을 당한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힘을 얻는 방법은 어렵고 마공은 그나마 빠르게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지만 마공을 익히면서도 곧 벽에 봉착했을 테고 그때부터는 또 다른 힘에 의지하게 됐을 거야.”
“다른 힘?”
“응. 그자들이 스스로 얻은 힘은 아닐 테고 아마 사이한 존재가 먼저 손을 내밀었겠지. 그자들은 힘을 얻는 대가로 그 손을 잡았을 테고.”
“그게 가능해?”
아진은 놀란 얼굴로 린린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린린이 말하는 사이한 존재라는 것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존재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린린도 아진의 표정을 보면서 그 생각이 들기는 한 것 같았지만 그 두 존재가 같지는 않을 것 같아서 뭐라고 선뜻 대답을 해 주지는 못했다.
“그런 존재들은 역사적으로도 많이 있었어. 그런데 내 생각에 오라버니를 이곳에 데려온 존재는 훨씬 더 큰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 어쩌면 선계의 존재인지도 모르고. 오라버니가 지금 말하는 건 그런 존재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하들의 힘이나 빌리는 걸 테고.”
아진은 뭔가 단서를 얻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린린은 우선 자기가 하려던 이야기나 먼저 끝내겠다고 생각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정파의 무공은 성취에 시간이 걸리고 마공은 위험이 따른다.
빨리 강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사람들을 수많은 유혹에 빠지게 하는데 스스로 저주를 받기를 자청하며 강해지기를 바라는 존재도 수없이 많았다.
그런 인간들을 들여다보며 제 힘을 주고 그 인간들의 남은 생을 갉아먹는 존재들이 있었는데 린린은 소청의 가문 사람들이 그 저주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했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환단도 비슷한 거겠구나.”
아진이 말하자 린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조금 다른 게 아닌가 해서였다.
“그건 계약이나 저주의 문제는 아니지.”
“아아…….”
“오라버니가 들은 게 맞다면 아마 그자들은 벽에 갇힌 그림자 용에게 자기들의 남은 생을 주기로 하고 용에게서 힘을 얻기로 한 것 같아. 그런데 용이 요구한 건 남은 생만이 아닌 것 같고. 앞으로 어떤 걸 더 요구하게 될지 모르겠어. 그자들의 피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자들은 어쩌면 사도련에 버금가는 악행을 저지르게 될지도 몰라.”
“하필 왜 소청이의 친척들이…….”
아진이 그 말을 하고 있을 때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소청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두 사람이 미리 기막을 쳐두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소청은 두 사람의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고 자기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다 안다는 듯 아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뭔데요. 스승님? 저는 괜찮으니까 말씀해 주세요.”
“……뭘?”
아진은 모르는 척하려고 했지만 누가 봐도 어색했기에 린린은 혀를 찼다.
“스승님은 저를 못 속이세요. 저는 스승님 얼굴만 봐도 스승님이 무슨 생각 하시는지 다 알아요.”
“그래? 그러면 말 안 해 줘도 다 알겠네.”
“그건 아니고요.”
소청이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소청의 얼굴에서는 늘 그렇게 웃음만 보고 싶은데 이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해서 아진은 할 말이 궁해졌다.
랑랑도 어느새 독각화망과 함께 와서 소청의 옆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독각화망조차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얌전하게 굴었다.
“소청아. 이리 와 봐라.”
아진이 두 팔을 벌리고 말하자 소청이 재미있다는 듯 아진을 보고 웃었다.
“이제 스승님한테 다 안겨지지도 않을걸요?”
“그럴까? 나는 네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돼도 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소청이 환하게 웃으면서 아진의 옆으로 가자 아진이 소청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소청아. 나는 소청이 네가 행복해할 때가 가장 좋다. 그런데 살다 보면 웃음이 사라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지.”
“네…….”
소청은 아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지 못한 채 긴장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