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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72화 (372/470)
  • 제372화

    372화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값진 가르침인지 알고 있었고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달았다.

    “다 같이 해 보십시오. 안 되는 것은 지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꿈이라도 꾸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주는 너무 신이 나서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연무장에 도열해서 각자 초식을 펼쳐 보였다.

    아진은 곳곳을 다니면서 잘못을 바로잡아 주었고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는 앞으로 나와서 한 번 더 보여 주며 고쳐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어렵고 막연하게만 느껴질 무공을 조금 더 가깝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펼쳐 보일 요량으로 시작했고, 길어봐야 한 시진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무장에 짙은 어둠이 깔리자 여기저기에 화롯불이 밝혀졌다.

    귀인이 오셨는데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모두 그 자리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한 것 같았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그들이 그렇게 매달리는 것을 보자니 재미가 생겼고 아낄 게 뭐가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상승의 절기도 알려 주었다.

    그들이 가진 내공의 한계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는 사람도 나올 거라고 생각하며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그들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검법이었다.

    “됩니다!”

    누군가 외치자 여기저기서 폭음이 나며 덩달아 성공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검기가 나왔습니다!”

    “이게 검기가 맞지요?”

    아진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것을 이루는 데 몇 해가 걸렸을지도 모르고 십 년이 넘도록 깨닫지 못해 벽에 갇혀 허우적거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날 연무장 곳곳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나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들은 자기들이 성공한 것을 완전히 체득하기 위해 연습을 계속해 나갔다.

    “소협. 정말 죄송하고 염치없는 말씀입니다만…… 혹시 권법을 가르쳐 주실 수는 없으실지…….”

    아진은 한참 전부터 한 사람이 수련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눈치만 보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는데 쭈뼛거리면서 다가와 한 말이 그거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검법 대신 권법을 수련하고 있었던 모양이었고 그것을 부탁해도 되는 건지 고민이 깊어서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어도 부탁은 해 보자는 심정으로 아진에게 말을 해 본 듯했는데 아진에게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남궁세가의 권법이었기에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구벽신권과 폭뢰신권을 하실 수 있습니까?”

    “구결은 알고 있습니다만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는 아진의 말에 대답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던 것처럼 곧바로 답했다.

    “해 보십시오.”

    그는 쭈뼛거리면서 아진의 앞에서 주먹을 내질렀다.

    “다른 분 중에도 권법을 수련해 온 분들이 있으면 오십시오.”

    “함께 병행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괜찮은지요. 소협?”

    여기저기서 한두 사람이 다가왔고 시간이 지나자 거의 모든 사람이 와 있었다.

    배워 두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것은 반복된 훈련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내공을 늘려서 성취를 이루어나가고 실전을 반복하다 보면 기교들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권법은 특히나 상대와 가까이 붙어서 싸워야 하는 것이라서 보법의 성취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아진은 구벽신권과 폭뢰신권의 초식을 선보였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던 듯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해 보라고 하면 실전에서는 어려움을 겪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진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저에게 덤벼 보십시오. 저도 공격하겠습니다.”

    “예, 옛?”

    그들은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었다.

    팔은 두 개지만 주먹은 그렇지 않았다.

    수백 개의 주먹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쏟아져 들어갔던 것이다.

    여럿이 있었으니 주먹이 나뉘어 들어가야 할 텐데도 맞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주먹이 전부 자기를 향해서만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맞은 사람들은 벌떡 일어서서 어떻게라도 방어를 해 보려고 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맞는 것으로도 배우는 것이 있기는 했다.

    너무 아파서 머리가 깨져 버릴 것 같았지만 그래도 버텨야 배운다는 생각에 벌떡벌떡 일어섰다.

    아진은 그들을 때려눕히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피할 방법을 알려 주면서 자기에게 주먹을 날려 보라고 말을 하고 그들에게 동작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린린도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지루했는지 그들 틈으로 들어와 지도 대련을 해 주었지만 사람들은 린린에게 선뜻 다가가지 않았다.

    아진에게는 믿음이 있었지만 린린은 마공을 사용한다는 생각에 잘못 배우면 뒤섞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 참. 사람을 차별하시네.”

    린린은 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골고루 주먹을 날렸고 그들도 결국은 린린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진은 더욱 재미가 느껴져서 가르치는 데 열을 냈다.

    “어! 방금 그건 진짜가 아니었어요? 실초 같았는데.”

    “이 중에 실초는 몇 개 되지 않습니다. 그걸 구분해 내야 하는 거고요.”

    그러나 그 말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실초가 수도 없이 많았던 것이다.

    그것은 비단 그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다.

    아진은 수많은 무공을 익혔지만 편한 것을 집중적으로 사용해왔는데 그들에게 지도 대련을 해 주면서 새록새록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반복해서 시범을 보이는 동안 초식의 연결이 부드러워지며 위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

    이제는 그의 주먹이 적중하면 사람들이 나가떨어진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여기에 강기를 실으면.”

    “아니. 강기까지는 안 실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소협.”

    “왜요? 한번 할 때 확실히 봐 두시는 게 좋잖아요.”

    “아니. 더 이상은 안 좋아도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아진의 손을 잡으며 땀을 흘리면서 막았다.

    “그런데 지금 상승무공을 익혀도 되는 걸까요?”

    그럼 이제 좀 쉬어 볼까 하면 어느새 다른 사람이 툭 치고 들어왔다.

    “그게 아니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안 해도 됩니다.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전장 한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고, 도움이 되는 건 뭐든 집어 들고 몸을 방어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싸울 무기를 이것저것 따지고 고를 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

    그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깨닫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량이 높아지면 여러분은 대창궁무애검진을 펼칠 수도 있을 겁니다. 각각의 사람이 진을 만들고 그 힘으로 진을 강하게 하면 그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힘을 훨씬 뛰어넘는 힘이 나오죠. 여러분은 그 일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진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부심.

    그것이 분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랑랑과 소청은 아진을 찾아서 경내를 돌아다녔다.

    아진과 린린이 먼저 자기들을 깨우러 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랑랑은 독각화망을 데리고 갔다.

    만약 숙부에게 일이 생겼다면 자기도 힘을 써야 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화망아. 이건 빼자. 오늘은 네가 실력 발휘를 해야 할지도 몰라. 그런데 뿔을 비단으로 묶고 있으면 사람들이 너를 별로 무섭게 보지 않을 거야.”

    작전이라면 작전이었다.

    소청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서 스승님이 어디에 계신지 물으려고 했는데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전부 다 이상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상태가 모두 심각했던 것이다.

    “소청아. 랑랑아. 지내는 데 불편한 것은 없었느냐? 배가 고프겠다. 본가의 숙수들이 아주 솜씨가 좋으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곧 식사 준비가 될 것이다.”

    “저희 스승님은 어디에 계세요?”

    소청이 묻자 그들은 방에서 주무시지 않겠냐고 했고 소청과 랑랑은 혹시 자기들이 놓친 건가 하면서 다시 객청으로 돌아갔다.

    세가 밖에서는 독각화망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질러댔는데 세가에서 독각화망을 본 사람들은 신기해했고 독각화망도 이곳에서는 조금 편하게 다녀도 되나 보다고 생각하며 한껏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스승님. 사고님.”

    소청이 소리를 드높여 달려가자 아진이 뒤늦게 눈을 비비면서 나왔다.

    “일찍 일어났구나.”

    “저희는 일찍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수련도 했어요. 그런데 스승님은 못 주무셨어요? 사고님은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모르겠다. 잠든 지 한 시진도 안 됐을걸?”

    그러면서 아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소청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소청아. 여기서는 말과 행동을 정말 조심해야 한단다. 네 사고가 이제 잠 좀 자면 안 되겠냐고 말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연무장에 잡혀 있었을 거야.”

    “네에?”

    소청은 고생이 많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의미도 있었고.”

    “그럼 더 주무세요. 스승님. 랑랑이는 제가 잘 볼게요.”

    “그래. 그럼 조금만 부탁하자.”

    소청은 의기양양하게 랑랑을 데리고 남궁세가를 돌아다녔다.

    세가의 무인들은 소문이 자자한 그 소청이라는 것을 알고 다가왔고 소청은 스승이 말했던 것이 무슨 얘기였는지 금방 깨달았다.

    도망쳐 보려고 했지만 이미 그때는 많이 늦은 후였다.

    소청은 의미가 있었다는 말이 뭔지도 깨달았다.

    소청이 수많은 사람과 동시에 대련을 해 주는 동안 세가의 무인들은 소청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소청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로 소청에게 배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자기들이 소청에게 밥도 안 먹이고 계속 붙잡아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 경악했고, 그때부터는 소청과 랑랑에게 온갖 좋은 음식을 가져다주기에 바빴다.

    아진은 일찌감치 남궁세가를 떠날 계획이었었지만 잠이 깼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무리 내공이 많아도 잠을 자는 것만큼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며 조금 게으름을 부리다 나온 아진은, 그래도 아주 늦게 일어난 건 아닌가 보다고 생각하다가 그 빛이 여명이 아니라 저물어 가는 저녁 빛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그러고 보니 잠결에 소청과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아진 일행이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 줬으면 하고 바라면서 객청 주위를 지나다닐 때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다녔고 그 결과 아진이 오래 숙면을 취했던 것이다.

    아진도 세가의 무인들이 자기들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급히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며칠 더 머물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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