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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70화 (370/470)

제370화

370화

랑랑은 사람들이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는 동안 독각화망과 열심히 기웃거리고 다니면서 자기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훌륭한 검객이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시작하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듯했다.

“아버지. 어머니. 랑랑도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랑랑도 제 한 몸을 스스로 지키고 싶고 다른 분들도 지켜 주고 싶어요.”

린린만 해도 무공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독고소영도 서서히 자신의 기량을 되찾으며 검후의 아성을 되찾기 위해 수련을 거듭하는 상황이었기에 여자라고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것은 아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억세고 거친 곳에 발을 들이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도종과 북리소은의 바람이기는 했지만 그런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독각화망이 늘 랑랑을 따라다니면서 지켜 주고 있어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 독각화망과 함께 랑랑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도종은 아진을 불러 혹시 랑랑을 지도해 줄 수 있는지 부탁했고 아진은 소청에게 그 일을 위임했다.

그러나 그것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랑랑아. 정말 귀엽다. 정말 잘한다.”

소청은 랑랑의 초식을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랑랑을 보는 것 같았다.

랑랑이 손짓만 해도 좋아죽는 소청은 헤벌쭉하게 서서 랑랑을 보며 웃는 게 전부였고 랑랑도 일단 소청이 잘한다고 하니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이래서는 발전이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랑랑은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강호행을 나가겠어요.”

그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모두가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랑랑은 자기에게 그 일이 정말 필요하다며 강변했다.

“강호행이라면 뭘 생각하고 있는 거냐. 랑랑?”

그래도 들어 보기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도종이 묻자 랑랑이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줄줄이 말했다.

“강호에서 독문으로 유명한 문파들을 찾아다니면서 비무를 신청해 보려고 해요. 어차피 독공은 강한 독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 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저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봐요.”

그 말은, 자기에게는 독각화망이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는 거였다.

도종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아진이 랑랑을 설득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진은 랑랑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서 랑랑은 산본의가의 다음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후계였고 그나마 평화로운 시기일 때 그런 것을 경험하는 게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진이 린린을 힐끔 바라보자 린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강호행에 나서기 전에 심법을 3성까지는 끌어올려. 그러면 가도 돼.”

랑랑은 정말 가게 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한 번 질러봤다가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랑랑은 그냥 조르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갑자기 심법을 3성까지 끌어 올리라는 말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소청은 랑랑과 함께 수련을 하면서 랑랑의 심법을 지도해 주고 자기도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아진아. 내가 괜히 너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도종의 말에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형님. 랑랑은 특별해. 영물은 자기가 주인을 골라. 독각화망이 랑랑을 주인으로 삼기로 했다는 건 랑랑에게 특별한 게 있다는 의미야. 우리 조카가 독공에 재능을 보이는데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나도 견문을 넓히지 뭐.”

도종은 금방이라도 아진이 살던 세계의 괴수들이 수도 없이 넘어오면서 천하를 멸망시킬 것 같았다가 그 일이 잠잠해진 것에 마음을 놓으면서도 그것이 지금 일시적으로만 가라앉았을 뿐 언젠가는 빚을 받으러 오는 것처럼 다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점에 아진이 랑랑을 데리고 강호행에 나서 준다고 하는 것은 랑랑에게 기대하는 게 있어서 그런 걸 거라는 생각도 뒤따랐다.

“이럴 때 형님이 있어서 다행이야. 든든하게 본가를 맡아 주고 있으니까 우리도 믿고 떠날 수가 있는 거고.”

아진에게는 다른 계산도 있었다.

황궁 비고에서 무공비급을 받고 실전된 가문의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그것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하면 필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상승무공을 익히고 싶은데 내공은 부족하고, 초식을 위해 급히 내공을 끌어올리려고 하다가 주화입마에 걸리는 것도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진은 이 기회에 문파마다 찾아다니며 그들의 무공을 함께 봐 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방적인 호의가 아니었고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때 어느 곳에 있는 누구를 불러야 할지 각자의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해 두려는 의도도 있었다.

“우리 랑랑이도 어느새 커서 강호행을 나서겠다고 하고. 이 할애비가 랑랑에게 줄 것은 없고.”

가주 서종욱은 떠나는 손녀에게 각종 상비약이 가득 담긴 봇짐을 주었고 제선문주 역시 그에 못지않게 커다란 봇짐을 하나 더 내어 주었다.

가문에서 사랑받는 아이인 만큼 모두들 그동안 자기들이 아끼던 것을 선뜻 쾌척했는데 그것들 중에 실제로 랑랑이 쓰게 될 것은 얼마 되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랑랑은 벅찬 마음으로 모두에게 인사를 하며 그곳을 떠나왔다.

“랑랑. 이제부터 너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너에게는 이제 산본의가가 걸려 있다. 너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산본의가가 어떤 곳인지 생각하게 될 거다.”

아진의 말에 랑랑은 긴장한 듯했다.

“네. 숙부님,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소청에게도 부탁했다.

“오라버니. 내가 실수하기 전에 가르쳐 줘야 해. 잘못하는 게 있으면 바로 알려 주고.”

“응. 그런데 랑랑이 네가 잘못하는 게 뭐가 있겠어? 다 잘하는 것 같던데.”

소청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은 그렇게 잘 찾아내고 잘 알려 주면서도 일단 랑랑만 보면 그런 기능이 전부 다 상실돼 버리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는 나를 너무 예뻐해서 문제야.”

랑랑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흐뭇한 듯했고 린린은 조그만 것들이 잘들 논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어디로 먼저 갈 거야?”

“남궁세가.”

“거기에는 왜?”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기대하는 것도 있고.”

“가장 믿을 수 있는 곳?”

린린은 의외라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검신 대협보다 남궁세가를 더 믿느냐는 것 같았는데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기는 했다.

사람마다 성취의 정도가 다르고 어제의 최강자가 오늘도 최강자일 거라고 확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인들도 늙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고 인생의 절정에 서 있는 사람들의 성취는 눈이 부신 법이다.

나이 든 무인들은 초식의 숙련과 내공이 뒷받침되어서 청장년의 무인들을 뛰어넘는 기량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절정에서 뿜어내는 신력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남궁세가에 가장 먼저 가서 확인을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 사람들. 수련을 열심히 한 것 같기는 하더라.”

황궁 비고에서 황제가 무공비급들을 주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과 각오이기는 했겠지만 어떤 곳도 남궁세가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갖고 모든 이들의 위에 군림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힘을 잃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그냥 뇌리에서 사라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그러지도 못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수치스럽게 입에 오르내려야 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고는 해도 그 결과는 뼈저렸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절치부심했을 터였다.

그러면서도 다시 힘을 합하고 일어서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기회를 얻은 그들이었다.

다시는 잃을 수 없는 기회.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궁세가가 무림 최고의 검가로 명성을 날릴 동안은 가문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이들이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가문의 중추가 되어 있었다.

아진은 그들을 만나보고 싶은 거였다.

“랑랑에게 알려 주고 싶으신 거죠. 스승님? 한 사람의 잘못으로 가문이 어떤 수모를 당하게 되는지요.”

소청의 말에 린린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사실 그가 노린 것은 그게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의 첫 행선지는 그렇게 정해졌다.

그들은 크게 서두르지 않으며 안휘성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린린은 많은 것을 보고 배웠고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소청은 틈나는 대로 수련을 했고 린린은 소청에게 지도 대련을 해 주었다.

“소청이 너는 정말 많이 늘었구나. 이런 건 타고 나야 하는 것 같아. 몇 년 후면 강호에서 너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린린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했다.

린린이 그런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소청을 보면 그런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때도 저는 두 분의 등을 보면서 따라잡으려고 허겁지겁 달려가고 있기만 할 것 같습니다.”

소청은 아직 멀었다는 듯이 말했지만 아진 역시 린린처럼 고개를 저었다.

꾸준하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소청은 그런 부분에서 아진을 뛰어넘는 것 같기도 했다.

“후기지수 중에 소청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아.”

린린이 연거푸 그렇게 말하자 소청이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중에 제가 그자가 나타났을 때 스승님을 도와드릴 수도 있을까요?”

“그자?”

“예. 그곳에서 건너올 그 사람요. 아직 한 사람이 남았다고 했잖아요.”

아진과 린린은 소청의 말을 듣고 소청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때 아진을 지켜 주기 위해서 어린 몸으로 지금까지 끝없이 수련했던 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럼. 당연하지. 소청이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아진은 울컥했고 린린 역시 그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린린이 소청의 머리를 쓰다듬자 소청은 마음을 놓는 듯했다.

그거면 족하다는 듯이.

후기지수 중 최고라는 말도, 강호 제일이라는 말도 소청에게는 전혀 탐나는 칭호가 아니었고 그는 그저 지금 옆에 있는 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을 품을 뿐이었다.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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