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368화 (368/470)

제368화

368화

서도진과 조 위도.

그 두 사람이 이미 이곳에 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나 유명해져 있었는지 그들에 대한 소문은 온 나라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래도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산본의가 비무 대회.

그들의 곁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 * *

처음 산드라 레이첼이 이곳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름 없는 사문의 제자였다.

제자는 전부 다 해 봐야 스무 명이 되지 않았는데 스승은 대단할 것 없는 무공을 가르쳤다.

심법 하나, 검법 두 개, 신법 하나.

그게 스승이 가르치는 것의 전부였다.

그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일류를 벗어나 절정의 중반에 이르렀고 레이첼이 일류였다.

레이첼은 다른 사람들 틈에서 수련을 했고 그 사문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가끔씩 밖으로 나가 낭인 생활을 했다.

레이첼도 그래야 했고 그녀는 그 생활을 싫어했다.

무림으로 이동하겠냐는 물음에 그러겠다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자기가 잘못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깊은 후회가 밀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살행을 마치고 돌아가서 약속된 것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구차한 삶을 이어 가는 것은 절대로 그녀가 원한 바가 아니었다.

산본의가 비무 대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레이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자기가 비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고 그녀의 사형들은 그녀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하유란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그때부터 독자적인 행동에 나섰다.

어차피 사문은 중요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며 혼자서 비무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문이라는 것이 그녀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하유란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유란이 속한 사문은 그것을 그렇게 빡빡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하유란이 사문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에 차라리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측면도 있었다.

산본에 온 이후 하유란은 전혀 다른 세상을 본 것처럼, 하루하루를 꿈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살았다.

기가 막혔다.

그동안 자기만 이상한 삶을 살았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유란은 서도진과 조 위도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서도진을 먼저 죽이려고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아 버렸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일을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위해 거쳐야 할 전제 조건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하유란은 까마득해졌다.

서도진은 쉽지 않은 상대이니 조 위도라도 해치워 볼까 했지만 조 위도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거짓말처럼.

하유란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들을 우러러본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두려워하기는 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조 위도에게 다가갈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혼자였고 아직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위도가 혼자 있을 때를 노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무 대회가 이루어지는 동안 그 일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길을 잃은 척해도 됐고 검이 부러져서 손을 봐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도 되었다.

하유란은 온갖 상황을 만들어 위도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위도는 그녀의 부탁에 친절히 응해 주었다.

그 자신이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는 하유란이 풀어 놓는 거짓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고 자신을 이입한 것 같았다.

이야기는 잘 통했다.

그녀는 그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가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공감해 주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갔고 하유란은 산본에서 정착하고 싶다고 했다.

그도 비무 대회가 끝나면 하유란이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하유란이 그 말을 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다.

“표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표사 자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위도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그 일은 자연스럽게 풀렸다.

표국에서 표행을 따라다니는 것은 정말 지루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위도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이 표국에서 잘 먹혔다.

사람들은 하유란을 점점 특별하게 대해 주었고 그녀는 그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산본의가의 모든 사업장에 특별한 규칙이 적용된다는 거였다.

그들은 구조적인 부패를 끔찍하게 싫어했고 누군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을 알면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손을 놔 버렸다.

그래서 위도의 측근이라는 사실로도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제한되어 있었다.

다른 곳 같았다면 훨씬 더 알량한 권한을 가지고도 목과 어깨에 힘을 주고 행세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산본표국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았다.

위도는 하유란에게 매사에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을 하곤 했다.

하유란이 자기에게 특별한 사람이니 더 그래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빨리 이 일을 끝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이 더 강해졌다.

시간은 잘 갔고 위도와의 관계가 그럭저럭 좋아졌다.

위도는 이제 하유란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유란은 감정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

상처 입은 위도를 조종하는 것은 특히나 더 쉬웠다.

하유란은 마침내 위도에게서 청혼을 받아 내는 데 성공했고 그와 혼례를 올렸다.

그녀에게 위도는 그냥 지나쳐가는 정거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위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한 순간은 없었다.

애초에 위도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녀가 원하는 삶이 따로 있었기에 그 둘은 처음부터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표국에 속해 있는 몸이라는 것이 좋았다.

한 번씩 성과 성을 오가는 표행에 나갔다 오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결혼 생활을 그런 식으로 버텼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 맺어진 존재에 하유란은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자기가 원하던 시간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하루도 낭비하지 않고 그 시간을 제대로 누리면서 살 터였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들은 아주 늦게까지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는데 위도는 어떤 이름이 더 좋을까 해서 하루에도 몇 개의 이름을 지었다가 다시 포기해서 그런 거였고 하유란은 이름을 짓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였다.

아기는 엄마를 좋아했지만 그 감정은 일방적이었다.

마침내 위도가 지은 이름이 서악이었지만 그 이름도 얼마 만에 파기될지 몰랐다.

어느 날 그보다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르면 그것으로 바뀌어 있을 터였다.

그곳에서 건너온 사람이 강해졌다는 것은 위도와의 관계로 인해서 생겨난 변화였다.

정작 그녀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지만 위도는 하유란의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위도는 그녀를 믿었고 하유란은 이제 그를 죽일 기회를 어렵지 않게 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위도는 허술한 것 같았지만 틈이 없었다.

게다가 하유란보다 무공도 훨씬 잘 했다.

그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암기와 독.

암기에 독을 묻혀서 기회를 노린다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의 몸은 확실히 숨기고 있어야 했고 표행에 나간 것으로 한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위도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은 결국 시도도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는 빈틈을 찾아야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을 텐데 그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벽예월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닌 것은 그즈음이었다.

하유란은 위도가 얼이 빠져 있는 것처럼 정신을 빼놓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며 무슨 일인가 했다.

그리고 벽예월이 위도에게 한 말을 알게 됐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하유란이 느낀 놀라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벽예월이 그런 사실까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 수 있다는 건가 해서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벽예월 때문에 마음은 급해졌고 설상가상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요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

하유란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런 생활을 왜 참아 왔는데.

상황이 격변하는 것을 깨달은 후 그녀는 머릿속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우선은 벽예월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경고를 해서 그들에게 주의를 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벽예월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릴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곳에 서 있었고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위도의 눈을 마주해야 했다.

하유란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 간단하게 제압당했다.

누가 뭘 어떻게 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단단한 바람이 그녀의 혈을 짚은 것 같았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린린이 다가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하유란은 설마 린린이 섭혼술을 하는 건가 하면서 몸부림을 치려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안 돼. 읽지 마. 남의 생각을 그렇게 멋대로 끄집어내지 말란 말이야!’

그러나 하유란이 뭐라고 하건 린린은 그녀의 생각을 읽어 버렸고 그동안 무슨 짓을 해 온 건지, 왜 위도의 곁에 머물렀던 건지 모두 알아차린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어려우면 제가 해도 돼요.”

린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에 있는 걸 텐데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위도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유란은 위도에게 살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 알더라도 아기를 봐서, 서악이를 봐서 용서해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도 않았고 위도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그녀가 그럴 거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위도를 보지 못하도록 한 것 같기도 했다.

하유란은 눈물만 쏟았고 위도와 아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진은 만약 위도가 부탁을 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를 위해 하유란을 죽여 줄 수 있었다.

아진도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설마하니 살수가 그렇게 가까이에 숨어들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리고 벽예월에게 놀라고 있었다.

그 일을 어떻게 자기에게까지도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해서였다.

벽예월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위험에 처할 뻔했다.

위도는 오래 고민하지 않은 채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