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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64화 (364/470)

제364화

364화

“그게 아니라…… 오라버니가…… 죽게 되나 봐요. 저쪽에서 사람들이 넘어왔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오라버니를 죽이게 되나 봐요.”

“…….”

위도는 멍하니 린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린린. 그놈들은 내 상대가 안 돼. 그놈들이 둘이 같이 덤빈다고 해도 나는 겁이 안 난다. 내가 이길 자신이 있어.”

린린 역시 그러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금의 위도라면 정말 그럴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특별한 힘이 부여되지만 않았다면.

“그 사람들. 더 강해질 거래요.”

“뭐? 그런 것도 아는 거야?”

위도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웃음이 사라진 눈가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화가 나는 듯했다.

린린은 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린린. 너도 알잖아. 내가…… 내가 이 세계에서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던 거. 인연이 만들어지는 걸 피하려고 했던 거…… 너도 알고 있잖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도는 마침내 정착했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결실을 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그러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 같았다.

“흥……!”

위도가 코웃음을 치더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뜻대로 안 될 거다. 나를 여기로 데려올 때는 내가 어리바리하고 뭘 잘 몰라서 그랬지만 이제는 뜻대로 안 될 거야.”

그는 말을 하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쓸데없이 많은 말을 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놈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도 안다고 하던?”

“그건 안 물어 봤어요.”

“내가 이곳에 있으면…….”

위도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낮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위험해질 수가 있을까? 그것도 모르나? 그냥 내가 벽 소저에게 직접 묻는 게 나을까?”

“그럴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벽 소저에게 말을 해 봐야겠다.”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정말 그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양분해 싸우는 것 같았다.

두려울 게 없었던 위도의 거대한 어깨가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린린은 그를 그렇게 겁에 질리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밥풀 같은 이를 드러내놓고 한없이 사랑스럽게 웃는 그 아기.

그 조그만 아기가 이 대단한 영웅을 한없이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위도는 그날 밤늦게까지 벽예월을 찾아가지 못했다.

어떤 말을 듣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섣불리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먼저 하유란에게 돌아갔다.

그녀가 걱정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상공. 무슨 일이에요? 혹시 아가씨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거예요? 상공이 도울 수 있는 일이었어요? 내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하유란은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위도는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란.”

위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유란은 위도를 보면서 그가 왜 그러는 건지 알아보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당신은. 나를 모르지. 내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말 안 해도 돼요. 내가 아는 걸로 충분해요.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하유란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위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자신의 비밀이기만 했다면 그는 아내에게 진작 얘기를 해 주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진과 공유한 비밀이었고 아직 아진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 때가 된다면, 자신도 아내와 아들에게만큼은 그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위도는 하유란의 손을 잡은 채 깊이 고민했지만 끝내 말을 하지는 못했다.

만약 자기가 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런 얘기를 듣고 절대로 견디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의 인생은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릴 것 같았다.

웃을 힘도 사라져 버릴 것 같고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듯했다.

그는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병원에 가지 못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듣게 되면 낙담이 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차라리 그냥 모르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

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늦은 시간에 밖으로 나갔다.

벽예월이라면 그 시간에 별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가 한동안은 별을 보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한 번 별을 봤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 됐으니 그때부터는 좋건 싫건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적어도 위도가 죽어서 그 사실이 실현이 될 때까지는.

위도가 다가가는 것을 벽예월은 알고 있었다.

벽예월은 하늘을 보고 있었고 별들이 각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위도의 별은 하루 만에 훨씬 더 희미해져 있었고 다른 별은 아진을 능가할 정도로 강렬하게 빛났다.

사술을 쓰기라도 하는 걸까.

벽예월은 아진만큼 강한 존재가 무림에 나타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별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벽 소저. 린린에게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네.”

위도가 오기 전에 상황이 조금이라도 변해 있기를 바랐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알려 주려고 왔습니다.”

벽예월이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죽지 않는다고 알려 주려고 왔습니다. 나는 원래도 강했지만 이제는 더 강합니다. 더 강해야만 하고 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걸 알려 주려고 온 겁니다. 하늘이 벽 소저에게 뭘 보여 주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려 주려고요. 하늘에 속지 말라고 말입니다.”

위도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런 말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말이 나왔다.

말을 하고 나니 후련했고 심장이 쑤시는 것 같은 통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린린이 웃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무너져 내리는 위도를 위로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하며 와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녀의 착각인 듯했다.

‘그래. 그렇지. 쉽지 않을걸? 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거.’

린린은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한껏 비웃어 주었다.

* * *

하늘의 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한 아진은 바람으로 변한 채 요괴가 나타난다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연지기를 다루는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점점 더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새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느낌도 많이 사라졌다.

‘요괴.’

그의 생각은 요괴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것에 미쳤다.

처음에는 요괴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너무 엉뚱하다고 생각했지만 던전에 괴수가 나타나는 곳에서 살다 왔으면서 요괴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웃긴다고 여겼다.

각종 술법이 난무하는 무림이라면 요괴의 존재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터였다.

가는 길이 멀었지만 지루하다고 느낄 틈이 없었다.

먼 거리를 한 번에 주파하면서 새로 터득한 신법을 몸에 익숙해지도록 할 수 있어 유익하기도 했다.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요괴가 나타난다는 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부족했다.

아진은 정보를 조금 더 모으기 위해 도시로 내려갔다.

환한 빛을 밝히고 있는 주루가 있어서 그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야 정보를 얻는 게 쉬울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루로 들어가는 동안 한 무리의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나왔다.

보호세를 받아가는 것 같은데 쓸데없는 시비를 일으키지는 않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에게 돈을 쥐어 준 것 같은 주인도 그럭저럭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원했던 평화로운 삶.

그것이 그런 삶의 단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진은 안으로 들어가 술을 시켰다.

한 병을 시키려고 했는데 옆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한 잔을 시키기에 잔 단위로 시켜도 되는 건가 하면서 아진도 잔으로 시켰다.

그러자 점소이가 옆에 있던 손님을 향해 눈을 가자미같이 뜨고 흘겨보았다.

아진은 그 대신 안주를 넉넉히 시키고 점소이가 요리를 내오기를 기다렸다.

“이 근방에서 요괴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거기가 어디쯤인지 알고 있소?”

그러자 점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요괴라는 말도 있고 영수라는 말도 있어요. 영수인데 사람들이 경쟁자가 몰리지 못하게 하려고 요괴라고 한다는 말도 있고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관군까지 전멸당했다고 하던데.”

“그것도 그 사람들이 한 일 아닐까요?”

“관군까지 전멸시켜가면서 말이오?”

“뜻을 정했으면 그게 어려울까요?”

점소이는 그 생각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요괴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거대 상단들이 연달아 상로를 바꿨습니다. 그게 얼마나 중차대한 문제인데요?”

곧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소?”

그들은 그 말에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고 그곳에 나타나는 게 요괴네, 영수네 하는 얘기가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적어도 3할 이상은 그 영수를 쫓아온 사람들일 걸요?”

점소이가 다시 그렇게 말을 하는 바람에 아진은 사정을 했다.

“알았소. 그러니 그 영수가 나오는 곳을 좀 알려 주시오.”

거기에서 거의 반 시진을 허비한 후에야 아진은 영수가 나온다는 곳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거기가 아니야. 거기는 초기에만 말이 나왔던 곳이고 사람들이 찾아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어.”

“아저씨는 그냥 조용히 하고 술이나 마셔요. 누가 아저씨한테 물어 봤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괜히 나서지 말고 그냥 조용히 술이나 마시고 방에 가서 잠이나 자요.”

점소이의 말투는 꽤나 건방졌고 아진은 그 사람을 보면서 위도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리고 웃었다.

아진은 결국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말한 곳을 전부 외워 두었다가 주루를 떠났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말한 곳으로 먼저 향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아진은 상관치 않았다.

적적해진 그 시간이 오히려 그가 활동하기에는 더 편했다.

한 줄기의 바람이 숲으로 들어가더니 거칠 것 없이 유영하던 바람이 돌연 그 자리에 멈췄다.

바람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이가 있다면 세상의 어떤 바람이 그렇게 별안간 멈추는 걸까 하며 기이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진은 자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온 곳이 자기가 찾던 곳이 맞았다는 것은 운이 좋았지만 자기가 정말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왜 저것들이 여기에 나타나?’

아진은 속으로 작게 뇌까렸다.

그 앞에 있는 것은 분명 그가 그토록 자주 봐 왔던 던전의 괴수였던 것이다.

* * *

아진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너무 충격이 커서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괴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을 보고서야 자신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은 아진을 발견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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