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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58화 (358/470)
  • 제358화

    358화

    “신기한 독초들을 많이도 구해다 놓으셨네요. 독초는 저도 많은데 그것도 가져올 걸 그랬어요.”

    “가져오면 되지. 이 일이 끝나면 가서 가져와.”

    린린은 어려울 게 뭐가 있냐는 듯이 말했고 역천마의는 그럴 것 없이 지금 제일조를 보내서 뇌혈검에게 가져오게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비고에 제가 그동안 모아둔 독물(毒物도 많아요. 그것도 전부 가져오라고 하시죠. 주군.”

    “그래?”

    “네. 아아. 어…… 음.”

    “뭔데 그래?”

    역천마의가 뭔가를 떠올리고 그때부터 주저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린린이 그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역천마의의 옆에 딱 붙어서 물었다.

    “아니…… 그게요.”

    “역천마의. 이 본좌에게 아까운 것이 있어?”

    “그것은 아니지만…… 지존께는 당연히 아까운 것이 없지만…….”

    랑랑은 지존이 아니잖아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 역천마의를 향해 린린이 빨리 말을 하라는 표정을 짓자 역천마의가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 독각화망을 잡았거든요. 정말 어렵게 잡았는데…… 동굴을 찾아다니다가 만났는데 몇 사람은 생명이 위독해질 정도였어요. 마선님이 계셨으니 겨우 잡았지 안 그랬으면 못 잡았을 거예요.”

    “독각화망? 독각화망이 지금 신교에 있어? 잘됐다.”

    독각화망은 머리에 뿔이 달려있다는 뱀으로 다른 영물을 잡아먹으면서 더 강해지는 영물로 알려져 있었다.

    맹독을 가졌을 뿐 아니라 가죽이 질겨 도검에도 당하지 않기에 독각화망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독각화망이 신교에 있다는 말에 린린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독각화망의 내단을 먹으면 내공을 늘릴 수 있다던데 혹시 내단에 손을 댄 사람은 없지?”

    “그럼요. 교주님의 허락 없이 누가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런데 독아에서 독을 몇 방울 얻어다 쓰기는 했어요. 주군. 그건 괜찮지요?”

    “필요했으니까 썼겠지. 그리고 독은 몇 방울 쓴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가만. 독각화망을 가져오는 건 뇌혈검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 내가 가서 가져올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그렇지만…… 아마 지존도 어려우실걸요?”

    역천마의가 소신 있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린린은 설마하니 자기도 어렵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역천마의.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 녀석은 정말 강하니까요. 지존. 독각화망을 잡으면서 다치고 사경을 헤맨 사람이 서른 명이 넘고 그때 산본의가의 의원님들이 나서주지 않았으면 태반이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저도 힘을 다해서 치료하기는 했는데 독각화망은 정말 무시무시했거든요. 이빨을 박아 넣어서 독을 주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아에서 독을 분사하기도 하는데 그게 정말 위험해요.”

    린린은 여전히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독각화망이 얼마나 강한지 그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도 독각화망을 데려오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 때문이었다.

    린린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겨우 참으며 역천마의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걸 누가 가져올 수 있는데?”

    역천마의는 린린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때부터는 말을 신중히 했다.

    신중한 것을 넘어서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바람에 결국 린린이 다시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역천마의!”

    “공자님이라면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주군.”

    “오라버니가 왜? 내가 오라버니보다 더 센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역천마의는 하나 마나 한 말까지 일일이 상대해 줄 힘은 없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었고 아진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린린. 너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역천마의를 괴롭히지 말고 빨리 결정해. 독각화망이 있으면 좋기는 하잖아.”

    결국 린린도 더 이상은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걸 여기로 가져와도 괜찮을까? 랑랑이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두 분이 계시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저희도 아직 길들이지는 못했고 비고 안에 가둬 두기만 했지만요.”

    역천마의는 독각화망의 주인은 처음부터 따로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오라버니가 다녀와.”

    교주인 린린의 허락도 받았겠다, 비고를 지키는 경비 무사들도 알고 있으니 아진이 그곳에 가서 독각화망을 데려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아진은 역천마의와 린린이 독각화망에 대해 나누는 얘기를 들으면서 점점 기대감이 증폭되었기에 빨리 놈을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가득 했고 일단 결정이 내려지자 그대로 바람으로 변해 날아갔다.

    역천마의는 아진이 자연지기를 사용해 바람과 흙으로 자유롭게 변할 수 있다는 말을 마선에게 들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역천마의의 감탄에 린린은 자기가 칭찬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쭐해하면서 말했다.

    역천마의는 랑랑이 다른 곳에 가서 노는 동안 린린에게 랑랑에 대한 것을 물었다.

    “주군. 랑랑이 혹시 독물도 다룰 줄 아나요?”

    “독물을 다룬다는 게 무슨 말이야?”

    “독초의 독 성분에 몸이 상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물의 독에도 당하지 않는 몸인가 해서요.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은 아주 드물게 독물을 다룰 수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역천마의의 말을 들으면서 린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물이 위험한 것은 꼭 독 때문만이 아니었다.

    독각화망만 해도, 독뿐만 아니라 괴력도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 커다란 몸으로 사람을 칭칭 감고 힘을 주면 안에 감긴 사람의 뼈가 순식간에 으스러졌다.

    그런데 그런 독물을 다룬다…….

    린린은 역천마의가 하는 말이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 모습을 상상해 보기는 했다.

    독물을 다룰 수만 있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공을 특별히 익히지 않아도 독물을 조종하는 능력만으로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사 속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없지도 않았다.

    그들이 다루었던 독물은 독각화망과 같은 영물급은 아니었고 독성을 가진 짐승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곤란을 야기했다.

    ‘그런데 독각화망을 다룬다면…….’

    린린의 머릿속에는 즐거운 상상이 차올랐다.

    “랑랑이 독각화망을 보고 놀라지나 않을지 모르겠어요. 겉모습이 정말 흉측하게 생겼거든요.”

    커다란 뱀인데 머리에 뿔까지 달려 있다면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할 수는 없을 터였다.

    랑랑은 평범한 어린 여자아이였고 그런 아이 중에 뱀을 좋아할 아이는 없을 것 같았다.

    독물을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건 별개의 문제겠다고 생각하면서 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넘어야 할 산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역천마의는 술법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냈다.

    역천마의가 만들어 놓은 공간 안에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며 독초가 크게 자라 있었던 것이다.

    “이걸 먹어도 랑랑은 괜찮다는 거지요?”

    “응. 얘기로만 들은 거기는 하지만 그렇대.”

    “그동안은 어떤 독초들을 먹었다고 하던가요. 주군?”

    “…….”

    그러고 보니 그건 알지 못했다.

    역천마의는 어떻게 그런 걸 알아보지 않을 수가 있냐는 듯이 린린을 쳐다보았다.

    “역천마의.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더 당연한 거야. 어떤 독초들을 먹고 안 죽는지 알아보겠다면서 독초를 마구 먹일 수는 없는 거잖아.”

    “아…….”

    역천마의는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동안 자신은, 그런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독초를 먹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기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죽도록 앓으면 치료해 주고, 그러고도 죽으면 그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주군. 그런데 그 동굴이 다시 생겨나고 거기에서 이상한 자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공자님께는 주군도 계시고 소청도 있는데 이제 랑랑까지 생긴 거잖아요. 랑랑은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랑랑이 독물을 제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정말 대단할 거예요.”

    역천마의의 말을 들으며 린린도 이게 대단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겁낼 필요 없어. 오라버니를 잡아가는 놈들이 있으면 우리가 다시 가서 오라버니를 구해 오면 되는 거니까. 그때 독각화망으로 그놈들 머리를 똑똑 따먹게 해야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빨리 독각화망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아진은 십만대산을 통과하는 동안 몇 가지 문제를 만났다.

    그동안 린린과 함께 올 때는 린린의 존재 자체가 해진을 하는 열쇠가 되었기에 안으로 들어가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진이 십만대산에 이른 순간 수많은 신교의 전사들이 침입자를 찾으려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십만대산에 들어섰다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신교 본부로 이동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비상 상황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신교 전역에 울렸을 때 아진은 이미 신교 내부에 들어서 있었다.

    린린의 부재중에 신교의 안전을 맡고 있던 마선이 가장 먼저 아진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수련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마선을 본 아진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올리자 마선도 환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일찍 찾아왔군. 그동안 깨우친 것을 보여 주겠는가.”

    아진은 독각화망을 가지러 온 거였지만 그동안 아낌없이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마선에게 그 정도 보여주는 것은 거절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마선의 앞에서 자기가 할 수 있게 된 것들을 보여 주었다.

    “놀랍군. 놀라워…….”

    마선은 아진의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겨우 할 수 있게 된 것과, 그것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는데 아진이 바람과 흙의 두 자연지기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마선은 호승심을 느끼며 아진과 겨뤄 보고 싶었지만 아진에게서 조급한 마음이 느껴져서 차마 그것까지 부탁하지는 못했다.

    “그래. 여기에는 무슨 일인가.”

    “독각화망을 가지러 왔습니다.”

    “쉽지 않을 것이네. 전혀 길이 들지 않았어. 화가 잔뜩 나서 독아에 그 어느 때보다 진한 독이 가득 차 있을 거야.”

    “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질녀가 만독불침의 몸이라고 하더라도 독각화망의 독에는 고생 좀 할 거네.”

    그 독에 물린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며칠은 앓아누울 거라는 의미였다.

    마선은 기대와 우려가 반쯤 섞인 얼굴을 하고 아진을 비고로 안내했다.

    “비고에는 전에도 가 본 적이 있다고 들었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야. 마신님께서 특별한 보호를 하시는 거라고 밖에는 생각을 할 수가 없더군. 비고에 들어가고도 전혀 상하지 않고 나왔다니.”

    마선은 그 사이에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자신이 깨달은 것으로 신교의 후배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이다.

    신교가 이렇게 마음 편하게 느껴질 줄 알았다면 왜 그동안 진작 신교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아진은 비고로 가는 동안 익숙한 얼굴을 많이 만났고 그들은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진은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기는 했지만 우선은 독각화망을 데려가야 한다는 중차대한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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